[명산순례기 | 여항산] 하늘로 오르는 바위 배(船)를 타다

글·사진 | 윤제학 동화작가·월간山 기획위원 2015. 9. 5.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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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나리꽃이 웃는다. 온 산이 흔들릴 듯이 활짝 웃는다. 얼굴에 박힌 주근깨가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다. 산나리꽃은 한여름의 크기로 웃는다.

[월간산]정상부의 암릉에 선 취재팀. 뱃머리에 선 것 같다.

산나리꽃은 여름의 정점을 알리는 지표다. 맹렬하다 못해 무모할 정도로 푸르러만 가던 숲이 한껏 들이킨 태양의 기운을 마음껏 토해 놓을 때, 비로소 산나리꽃이 핀다. 산에서 나리꽃을 만난다는 것은, 여름 숲바다가 일으키는 파도의 정점에 섰다는 것이다.

[월간산]1 미산령과 정자.

산나리 혹은 나리는 참나리, 중나리, 털중나리, 땅나리, 노랑땅나리, 솔나리, 말나리, 하늘말나리, 하늘나리 같은 많은 종류의 나리를 아울러서 부르는 이름이다. 종류도 많고 비슷비슷하여 이들을 정확히 구분할 재간이 나는 없다. 아무튼 이들 가운데서도 하늘말나리나 하늘나리가 조금 더 좋다. 내 얼굴을 보며 웃어 주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의 무구한 웃음이 마음을 다독여 줄 때의 그런 기분, 다들 알 것이다.

[월간산]2 여항산 주릉에서 만난 패랭이꽃과 망초꽃. 천연스러운 어우러짐이 아름답다. 이것이 자연의 힘이다. 3 여항산 동쪽 기슭의 돋을샘 근처에서 만난 영지버섯.

여항산으로 들자마자 하늘말나리가 발길을 세운다. 풀숲에서 해사하게 웃는다. 줄기와 잎은 억새풀과 환삼덩굴에 묻혀 보이지 않는다. 그 모습도 보기에 좋다. 숲속에서도 경쟁은 하지만 왕따는 없다.

[월간산]4 여항산 정상 남쪽. 화면 왼쪽이 서북산이다.

며칠 전 태풍의 언저리가 지나면서 뿌린 비 덕분에 숲에는 생기가 가득하다. 아직도 태풍의 영향이 다 사그라지지 않았는지 하늘은 푸른 잿빛이다. 걷기 좋은 날씨다.

[월간산]여항산 정상 서쪽 조망. 지리산은 구름 속에 잠겼고 그 앞으로 백화산과 오봉산이 보인다. 화면 오른쪽 가운데 마을은 창원시 진전면 여양리이다.

지명 유래와 관련해 수많은 얘기 전하는 함안 진산

[월간산]미산령에서 시작하는 능선 길의 소나무 숲. 이 길은 낙남정맥 종주길이기도 하다.

여항산(艅航山, 770m)은 경상남도 함안의 진산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이렇게 기록돼 있다. ‘군 서남쪽 15리 지점에 있으며 진산이다.’ 그런데 한자가 지금처럼 ‘배이름 여(艅)’가 아니고 ‘남을 여(餘)’자다. 두 한자는 각기 다른 지명 유래와 통한다. 함안군청 홈페이지에 소개된 지명 전설은 다음과 같다.

어느 오랜 옛날 천지사방이 물에 잠겼을 때 이 산의 꼭대기만 배만큼 남았다고 한다. 그래서 산 이름을 여항산(艅航山)이라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여항산 정상은 길죽한 암릉으로 이루어졌는데 그 모습이 배의 형상을 닮았다.

다른 전설은 조선 선조 대의 학자 정구(鄭逑)가 함안군수로 부임하면서 함안의 지형이 남고북저(南高北低)하여 물이 역류하는 까닭에 역모를 꾀할 기운이 있으므로 이를 풍수지리적으로 다스리고자 북쪽을 이름으로써 산을 대신하여 ‘대산(代山)’으로, 남쪽은 배가 다닐 수 있는 낮은 곳이라는 의미를 담아 ‘여항산(艅航山)’으로 고쳤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산은 이미 사용해 오던 지명이므로 잘못 알려진 것이라는 것이 함양군청의 설명이다.

한편 여항산은 주민들에게 곽(갓)데미산, 배넘기산, 필봉으로도 불렸다고 한다. 정상의 너럭바위를 곽(槨, 郭)이나 갓(冠)에 빗대고 큰 덩어리를 의미하는 순우리말 데미(더미의 경상도 사투리)를 붙여 곽(갓)데미산으로 불렀다는 얘기다. 배넘기산은 정상의 암릉을 배가 넘는 형상으로 상상하여 붙인 이름일 터이다. 필봉은 어느 고을에서나 그랬듯이 문사가 나기를 염원하여 붙인 이름일 것인데 여느 문필봉과 달리 눕힌 붓 모양으로 그 형상을 유추한 것이 조금 다르다 하겠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갓뎀산’으로도 불렸다 한다. 한국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선을 지키기 위해 여항산 일대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는데 이때 큰 피해를 입은 미군이 ‘갓뎀(goddam)’을 남발한 데서 비롯된 이름이겠다. 실제로 그렇게 불렀다기보다는 갓데미와 갓뎀의 유사한 발음에 착안한 탄식 같은 언어희롱이라 보면 될 것 같다.

우리나라의 자연 지명 가운데에는 그 유래가 전해 오는 것이 많다. 사실에 부합하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 연원이 확실하지 않고, 근자에 지어낸 것들도 많다. 옛 이름과 현재의 이름이 상이한 것들도 상당하다. 산 이름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 이름의 유래가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든 아니든 공통점이 있다. 사람이 산(자연)과 맺은 관계의 소산이란 점이다.

함안군의 지형은 여항산 지명 유래에서 본 것과 같이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다. 남쪽에는 여항산, 서북산(739m), 봉화산(676m), 광려산(720m)이 성곽처럼 버티어 섰고, 북쪽은 남강과 낙동강이 막아섰다. 천연의 요새인 셈이다. 더욱이 남쪽의 산지에서 발원해 남강으로 흘러드는 함안천과 석교천,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광노천은 그 유역에 충적평야를 이루었다. 이런 자연 조건이 삼한시대부터 독립된 나라를 이루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곧 한계여서 신라에 복속되었다. 충적평야를 이룬 저지대는 남강과 낙동강이 범람하면 하천의 역류로 인해 물에 잠기곤 했다. 함안을 둘러싼 산과 강은 혜택과 재난을 동시에 안겨 주는 양날의 칼 같은 것이었다.

홍수철만 되면 물난리를 걱정해야 했을 함안 사람들에게 배[航}의 형상을 닮은 여항산의 꼭대기는 구원의 상징이었을 것이다. 저 곳만 물에 잠기기 않으면 살 수 있다는 믿음으로 불안을 잠재웠을 것이다. 이런 그들에게 ‘역모의 기운’ 운운하는 풍수지리적 전설은 터무니없다고 보는 것이 온당할 것 같다. 도참사상의 어두운 그림자가 아닐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함안(咸安)’을 뜻으로 풀면 ‘모두의 평안’이다. 문제는 홍수였다. 그래서 함안 사람들은 부지런히 제방을 쌓고 저수지를 만들었다. 지금의 함안은 말 그대로 모두가 평화롭게 사는 땅이다.

절대 높이로 보자면 여항산은 그리 높은 산이 아니다. 하지만 이 일대에서는 으뜸으로 높다. 지리산 영신봉에 뿌리를 두고 남강과 낙동강의 남쪽을 감싸며 뻗어나가 김해의 분성산(산경표의 낙남정맥 마지막 산은 분성산이지만 최근에는 낙동강 가의 신어산까지를 낙남정맥으로 여긴다)에 이르는 낙남정맥의 산 가운데서 가장 높다.

수많은 산에 전설이 깃들어 있지만 여항산만큼 많은 이야기가 깃든 산도 드물 것 같다.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의 의지처였다는 방증일 것이다. 고대사에서도 현대사에서도 그곳은 생명의 보루였다. 다만 현대사에서는 한국전쟁의 상흔이 깊게 배어들었다. 한국전쟁 당시 함안의 격전 상황은 군청 소재지의 이동으로도 알 수 있다. 당시 군청 소재지였던 함안면이 피해가 극심해 1950년 10월 임시로 군청을 가야읍으로 옮겨야 했고, 1954년 9월에는 정식으로 가야읍이 군청 소재지가 되어 오늘에 이른다.

정상부 암릉은 배 타고 산너울 넘는 즐거움 선물

여항산 등산로는 산의 북동쪽으로 열려 있다. 여항산의 북쪽 끝자락 아래에 있는 여항면 미산마을의 미산저수지에서 임도를 따라 미산령에 올라 줄곧 능선으로 정상으로 향하거나, 미산마을에서부터 산날을 타고 올라 주릉의 기슭을 따라 가다가 정상 북쪽 헬기장 어름에서 능선으로 올라설 수 있다.

정상 동쪽의 좌촌마을에서는 곧장 산기슭에 붙어 능선으로 향하는데 경사가 만만치 않다. 미산마을 기점의 경우 돋을샘, 좌촌마을 기점의 경우는 가재샘과 갓샘을 지나게 되므로 물 걱정도 덜 수 있다. 주릉의 조망을 즐기고 싶다면 미산마을에서 미산령으로, 숲 그늘에 안겨 샘물에 목을 축이며 걷고 싶다면 다른 코스를 택하면 된다.

여항산의 능선은 조망(서쪽으로 지리산 일대)은 물론이거니와 숲도 좋다. 남쪽인데다 그리 높지 않아서일 것이다. 미산령에서 올라서면 소나무 숲이 아늑하고, 사방이 열리는 산마루에 서면 태고의 분위기를 드리우는 소사나무 숲길도 지난다. 산기슭으로 난 길은 인공조림한 편백나무와 자연림이 어우러진 숲의 평화를 온몸에 채울 수 있다.

여항산 정상부의 암릉은 배를 타고 산너울을 넘는 즐거움을 선물한다. 눈 쌓인 계절만 아니면 크게 위험할 건 없지만 아래로 데크가 놓여 있으므로 안전을 염려할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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