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르포ㅣ일본 오제국립공원 히우치가다케 2,356m] 결코 잊을 수 없는, 고산습지의 감미로운 향연

글·사진 신준범 기자 2015. 9. 5.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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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넘고 습지 트레킹 즐기는 1박2일 일본 국립공원 산장투어

판타지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아니 영화의 특수효과보다 더 환상적이었다. 오제습원 한가운데에 자리한 야시로산장의 새벽이었다. 사람들은 무언가에 홀린 듯 산장 앞 드넓은 습원으로 걸어 나갔다. 멀리 시부츠산(2,228m)이 검은 실루엣을 이루고 나머지는 온통 초록 습지였다. 사람의 시간이 아님을 깨달은 건 기묘한 안개의 율동 때문이었다.

[월간산]신비한 새벽안개가 오제 습지를 어루만진다. 홀린 듯 묘한 아름다움에 취해 나무데크를 따라 걸어가게 된다. <사진 김용균 브라이트스푼 대표 제공>

하얀 기류는 섬세한 그림을 그리며 메시지라도 전하려는 듯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었다. 동이 터오는 빛의 변화와 습지의 신비로움에 반해 사람들은 넋을 놓고 습지 깊숙한 곳으로 걸어들어 갔다. 이 세상 너머 어딘가로 걸어가는 듯 몽환적인 풍경이었기에, 꿈인지도 모른다고 모두들 생각했다. 꿈결 같았던 일본 오제국립공원 산행이었다.

월간<山> 창간 46주년을 맞아 일본 명산 트레킹이 기획되었다. 북알프스처럼 유명하고 베테랑들만 갈 수 있는 험산이 아닌, 덜 알려진 대중적인 명산을 소개하기로 했다. 본지와 카카오톡 플러스친구를 통해 트레킹에 동참할 여행객을 모집하는 광고가 실렸고, 30명의 모집 정원이 마감되었다. 본지와 한국여행사인 브라이트스푼, 동북관광추진기구(일본 동북지역 관광 담당 정부기관), JTB(일본 현지 여행사)에서 공동 주관했다. 참고로 일본 여행 시 가장 염려하는 원전과 오제국립공원의 거리는 약 160km이며, 약 180km 떨어진 도쿄와 비슷한 편이다.

[월간산]마나이다구라에서 내려서는 길. 해발고도 1,600m대에 자리한 오제호수가 보인다.

미이케의 넓은 주차장에서 산행팀과 습지 트레킹팀으로 나뉘었다. 종일 산행해야 하는 만만찮은 코스 임에도 참가자 중 절반이 산행을 택했다. 히우치가다케(2,356m) 정상에 선 뒤 오제호수로 내려선 다음 산장타운이라 할 수 있는 미하라시(오제가하라)로 갈 예정이다. 야시로산장에서 하룻밤 자고 산조노타키 폭포를 구경한 다음 미이케로 내려서는 1박2일 산행이다.

안내를 맡은 일본인 산악가이드가 신신당부 한다. 히우치가다케 정상에서 산장으로 바로 내려서는 코스가 산사태로 통행이 금지되어 둘러가는 코스를 택했다고 한다. 17km의 당일산행으론 긴 코스다. 다행인 것은 들머리인 미이케의 고도가 1,437m로 고도 900m만 올리면 정상이다.

[월간산]2 습지는 목도를 따라서만 걷도록 되어 있다. / 3 나무뿌리가 계단을 이룬 풍성한 숲길 / 4 중간 기점인 누마지리다이라 휴게소에 도착한 산행팀. 화장실과 샘터가 있으며 맥주 등의 음료를 판다. 화장실은 유료(100엔)다.

 한국과 비슷하면서 다른 숲이다. 가장 눈에 띄는 건 거목. 수령 100년은 훌쩍 넘을 법한 큰 나무가 아무렇지 않게 널려 있다. 산길은 좁고 가파르다. 이끼가 장식처럼 곳곳을 덮고 있어 원시림의 진한 향이 풍긴다. 나무로 등산로를 만든 목도가 드문드문 이어져 대체로 잔잔한 바위를 딛고 오르는 오르막이다. 해외산행이라 관광하는 마음으로 찾은 이들은 중산리에서 지리산 천왕봉 오르는 것 같은 가파른 코스에 살짝 당황하게 된다.

저마다 “이~야!”하고 탄성을 지르는 곳은 산중 습지다. 너른 잔디밭 사이로 목도가 나 있다. 잔디 같지만 발을 넣으면 빠지는 습지다. 산행 시작 후 처음 시야가 열린 곳이라 가뭄의 단비처럼 반갑다. 사람들이 처음으로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는다.

[월간산]미이케에서 정상으로 이어진 길에 만나는 고산 습지. 걷는 것만으로 힐링이 되는 감미로운 꽃길이다.

달콤한 풍경의 습지를 지나 산을 오르니 이번엔 더 넓은 습지다. 히우치가다케는 두 개의 연봉이 정상을 이루고 있는데 시바야스구라와 마나이다구라다. 서쪽의 시바야스구라가 10m 더 높은 상봉이다. 너른 습지 뒤로 마나이다구라가 뚱뚱한 산세로 섰다. 약간의 눈이 골에 쌓여 있다. 우리나라보다 위도가 높은 지역의 높은 산임을 실감한다.

오제는 지금이 봄이다. 축구장 몇 개 크기의 너른 습지에 흰 야생화가 피어 알프스 초원에라도 온 듯 착각이 들게 한다. 습지 한가운데는 긴 목도가 끝없이 이어져 선명하게 갈 길을 알려 준다. 산악 가이드는 “습지 보호를 위해 절대 목도를 벗어나면 안 된다”고 여러 번 강조한다.

[월간산]6 수백 년 된 거목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사진 김건우 제공> / 7 습지에서 본 야시로산장. <사진 김건우 제공> / 8 고산습지 너머의 산줄기에 잔설이 수북하다.

오제습지는 일본에서 환경 문제가 처음 제기된 곳이다. 과거 1960~1970년대 일본에서 오제는 누구나 한 번쯤 다녀오는 유명 관광지였다. 그러나 워낙 많은 사람들이 다니면서 토사 유출과 쌓인 쓰레기로 습지가 훼손되기 시작했다. 이후 이곳에서 환경운동이 시작되었고, 등산로에 목조데크를 깔아 주변 환경을 보호한 것도 오제습지가 일본에서 처음이었다고 한다. 오제에는 유난히 목조데크길이 많은데 스틱 촉을 고무마개로 막고 사용할 것을 당부한다. 스틱 촉으로 나무데크를 찍으면 수명이 절반으로 줄어든단다.

압도적인 경치의 마나이다구라

[월간산]산조노타키폭포. 80m 높이에서 떨어지는 기운 넘치는 폭포다.

습지 한가운데에 그림 같은 쉼터가 있다. 물이 고인 작은 웅덩이가 예쁘장하다. 목조 길에선 멀리 설산 능선이 장쾌한 실루엣을 이루었다. 이제 정상을 오르는 일만 남았다. 고도를 급하게 올리는 오르막이 시작된다. 구름 한 점 없이 물감을 칠한 것 같은 순수한 하늘과 봄이 절정을 이룬 신록의 산에 두근거리는 심장을 담근다. 결말을 예측할 수 없는 드라마처럼 변화무쌍하게 산길이 이어지는 통에 숨 가쁜 줄도 모르고 상쾌하게 올라선다.

멀리서 보았던 흰 눈이 발치에 있다. 마지막 잔설이 팬 골을 따라 깔려 있다. 아이젠과 스패츠가 없어도 어렵지 않게 걸을 수 있지만 질퍽거리는 잔설이 등산화에 스며들까봐 조심스럽게 오른다. 2,000m 초반의 산에서 7월에도 눈을 볼 수 있다는 게 신선하다. 사람들은 기념사진을 찍으며 깜짝 이벤트를 즐기는 것마냥 즐겁게 오른다.

[월간산]2 누마지리다이라의 휴게소. / 3 습지의 목도에선 스틱 촉을 고무마개로 막아서 사용해야 한다. / 4 6월 중순부터 8월 초순까지 다양한 야생화를 볼 수 있다.

 눈을 털어내고 사면을 휘감아 도는 데크길로 접어들어 오르자, 사람들 소리가 들린다. 지리산 천왕봉처럼 바위가 솟은 마나이다구라(2,346m) 정상이다. 반대편 남쪽으로 전혀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산 중턱 고도 1,600m대에 자리한 오제호수가 시선을 끈다. 서쪽으로는 정상인 시바야스구라가 불끈 솟았다. 사방으로 보이는 건 오로지 산뿐이다. 우리나라와 비슷하면서도 미세한 차이가 있는, 색다른 경치다.

산악가이드는 시바야스구라를 들를 시간이 없다며 오제호수로 길을 잡는다. 눈앞의 봉우리를 두고 가는 것이 섭섭하지만, 단체의 룰을 따르는 것이 정답이다. 히우치가다케는 잔설이 남아 있는 모습이 멀리서 보면 불을 지피는 도구인 풍로(히우치바사미)를 닮았다고 한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따라 고도를 내리자 멀리 보이던 오제호수가 가깝게 보인다. 호수 전망대 역할을 하는 미노우치봉이다.

[월간산]미이케에서 히우치가다케 정상으로 이어진 길의 예쁘장한 물웅덩이.

미노우치를 지나면서부터 빽빽한 숲길이 길게 이어진다. 크고 잘생긴 전나무들로 가득하다. 며칠 전 비가 왔기에 진흙탕이 많아 발이 덜 빠지는 가장자리를 골라 걷는다. 정상에서 5km를 내려서자 너른 호수가 수고했다며 산꾼들을 반긴다. 오제호수를 따라 걷는 목도가 시작된다.

산행에서 걷기길로 바뀌었다. 너른 잔디밭 습지가 햇살을 가득 머금고 밝게 맞아 준다. 북사면에서 보았던 습지와 다른 꽃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오제호수를 걸으며, 그제야 오제가 왜 국립공원이며, 1960~1970년대 그토록 일본인들에게 사랑 받았는지를 이해한다. 차분한 호수와 깨끗한 습지, 해맑은 야생화가 조화를 이뤄 걷는 것만으로 도시인의 굳은 마음이 스르르 풀려버린다.  호수가 끝나는 곳에서 만나는 목조건물은 휴게소다. 무더운 날씨에 시원한 것이 당긴다. 마침 이번 오제 산행에 참가한 전남대총동창산악회 최희동 회장이 전원에게 캔맥주를 한 턱 낸다. 잔잔한 산정호수를 바라보며 마시는 이 청량감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월간산]마나이다구라에서 아사미시츠겐으로 이어진 웅장한 전나무 숲길.

 산행 시작 8시간이 넘자 화사한 습지가 나와도 사람들의 얼굴에 피곤이 묻어난다. 빠르게 걸어 미하라시 산장타운에 도착한다. 여러 개의 산장이 마을을 이루고 있다.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색다른 풍경이다. 대부분 100명 이상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산장들이라 일본의 산꾼과 트레커들로 붐빈다.

숙소인 야시로산장 앞에는 광활한 습지가 펼쳐진다. 산장에선 시원한 생맥주를 파는데, 의자에 앉아 경치를 바라보며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의 여유가 부럽다. 샤워할 수 있는 목욕탕도 있다. 한 방에 많게는 20명 정도 같이 자는데 이불을 제공한다. 저녁식사와 아침식사, 다음날 점심 도시락까지 포함해 1박 비용이 1만 엔이다.

[월간산]

해가 기울자 기온이 급격히 떨어진다. 가벼운 다운재킷을 입지 않으면 밖에 나가지 못할 정도다. 이색적인 일본 산장에서의 밤이 지나고, 다음날 새벽 마법 같은 안개를 맞았다. 산의 정령의 손길이 안개가 되어 지나간 아침, 다시 목도를 걷는다. 한여름 논처럼 풀의 키가 큰 습지를 지나 폭포 전망대로 향한다. 목도에 익숙해져서인지 사람들의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너른 습지를 지나 짙은 숲 속으로 들어가더니 절벽 아래로 흐르는 힘 좋은 계곡이 보인다. 암반을 타고 흐르는 세찬 물줄기가 시원하다. 얽히고설킨 뿌리의 나무들이 사람 발길 곁에서도 악착같이 살아남고자 노력한다.

산조노타키폭포 전망대다. 제법 떨어진 거리에서 보는데도 “콰콰콰콰”하며 80m 절벽을 추락하는 물의 위용이 전해 온다. 다만 폭포가 잘 보이는 장소는 3~4명밖에 설 수 없어 줄을 서서 폭포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다. 폭포가 더 잘 보이게 간벌하고 전망대를 넓히면 좋을 것 같다.

 숲길이 길게 배웅한다. 잔잔한 오르내림을 과제로 내어주며 현란한 변주곡에 몸을 맞추라 얘기한다. 짙은 그늘의 숲을 깨는 건 비밀의 정원처럼 문득 나타나는 환한 습지다. 배웅 선물처럼 드문드문 나타나 오제를 잊지 말라고 당부하듯 비경을 펼쳐놓는다. 미이케에 닿자 먼저 내려온 일행들이 웃으며 손 흔든다. ‘오제’라고 발음하면 산뜻한 습지의 빛깔이 자동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트레킹 정보

오제국립공원은 후쿠시마ㆍ군마ㆍ니가타 3개현에 걸쳐 있다. 6월부터 10월까지 개장하는데, 7월까지 잔설이 남아 있으며 9월 말부터 눈이 내린다. 야생화가 가장 만발하는 시기는 6월 중순부터 8월 초순이지만 9월 말까지도 야생화가 있다. 10월에는 눈 덮인 산정이 어우러진 풍광도 볼 수 있다.

오제트레킹은 산장에서 1박하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우리나라 국립공원 대피소와 달리, 샤워 가능(비누ㆍ샴푸ㆍ치약 금지)하며 시원한 생맥주와 캔맥주 등을 판매한다. 이불을 제공하기에 침낭이나 매트리스가 필요 없으며, 저녁식사와 아침식사ㆍ점심 도시락을 포함한 1박 가격이 1만 엔이다. 미이케를 들머리로 히우치가다케 산행을 해서 산장에 도착하거나, 미이케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누마야마토케휴게소에서 습지 트레킹으로 산장에 닿을 수 있다. 샤워는 저녁 6시까지 가능하며, 산장 앞 넓은 습지가 볼거리이므로 산장에 일찍 도착하는 것이 좋다. 산장 앞마당의 테이블에서 버너로 간단한 조리는 가능하다. 

누마야마토케에서 오제호수를 산책하는 코스가 가장 아름다운 코스이므로 가급적 포함하는 것이 좋다.

미이케에서 정상까지는 5km이며 가파른 편이다. 최소 3시간 걸리는 땀 깨나 흘려야 하는 코스이므로 가벼운 트레킹을 원하는 사람은 습지 트레킹을 하는 것이 낫다. 정상에서 아미시츠겐으로 내려서는 코스는 가파른 숲길이 5km 이어져 지루할 수 있다. 마나이다구라에서 오누마시츠겐휴게소로 바로 내려서면 시간을 아낄 수 있다. 월간<山>과 일본 동북관광추진기구, 일본 여행사 JTB, 한국 여행사 브라이트스푼이 함께하는 일본 동북여행은 9월과 10월에도 있을 예정이다.

문의_브라이트스푼(02-755-1266).

미하라시(오제가하라) 산장타운에서 산조노타키폭포를 보고 미이케로 내려서는 코스는 11km에 5시간 걸린다. 잔잔한 오르내림이 있지만 완만한 코스가 많아 히우치가다케 산행보다는 수월하다.

오제국립공원은 산길 대부분에 목도가 깔려 있으며, 스틱 촉에 고무마개를 끼워 목도가 상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목도를 벗어나선 안 되며 지정된 화장실을 이용해야 한다. 미이케와 누마야마토케의 화장실은 무료지만 호숫가 휴게소 화장실은 관리를 위해 유료로 운영된다(100~200엔). 지정된 캠프장 외에는 야영이 금지되어 있다.

교통 

인천에서 주 4회 센다이행 아시아나 비행기편이 운항한다. 월ㆍ수ㆍ금ㆍ일요일 오전 10시 10분 출발, 2시간 걸린다. 센다이에서 인천행은 오후 1시 10분에 출발한다. 미이케로 가려면 센다이에서 열차나 버스로 아이즈고원 오제구치역으로 와야 한다. 여기서 아이즈 승합차버스를 타면 미이케에 닿는다. 

숙박

오제국립공원이 위치한 미나미아이즈는 스키장이 유명하며, 다양한 규모의 호텔이 있다. 갈아타는 교통편과 숙소 예약이 복잡하므로 여행사를 이용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일본 전문가 김용균 대표가 운영하는 일본 전문여행사 브라이트스푼(cafe.naver.com/jpinside)이 있다. 미하라시 산장타운에는 야시로산장(090-1456-7500), 오제고야산장(090-8921-8342), 하라노고야산장(090-8921-831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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