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잔잔해지는 먼 곳으로의 여행 | 우리 이제 작별할까? 사천의 동양화 '실안 각산' 오르기

2015. 9. 2.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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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안은 경상남도 사천시 남쪽 끝에 있는 마을 이름이다. 각산角山은 실안을 품고 있는 약 400m 높이의 산이다. 오늘 여행의 목적지는 이곳이다. 여행의 조건은 ‘맑은 날씨’다. 절대적으로 맑아야 한다. 특히 오후 4시에서 7시 사이의 시간 예보를 주목해야 한다.

서울에서 6시간쯤 달리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낙조풍경을 볼 수 있는 ‘각산’을 만날 수 있다.

한남IC에서 각산까지 4시간 350km

길이 참 좋아졌다. 경부고속도로를 출발한 자동차가 대전통영고속도로로 갈아타고 통영과 갈라지는 진주JC에서 남해고속도로로 나가 사천 IC에서 삼천포항을 향해 남으로 속력을 내면 곧 각산 입구가 나온다. 점심을 먹고 고속도로에서 두세 번 내려 팔 다리 좀 쭉쭉 뻗어주고 차도 한 잔 마시고 어쩌고 하면 6시간 쯤을 고속도로 위에 있게 된다. 그러므로 오전 9시에서 10시쯤에는 출발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렇게 해서 4시쯤 각산 입구에 도착해서 등산을 시작한다. 문화예술회관, 대방사, 실안마을, 모충사에서 시작되는 어느 코스를 선택해도 짧으면 1시간, 길어봤자 1시간 30분이면 정상인 ‘각산봉화대’에 도착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낙조 풍경을 보여주는 ‘실안 낙조’를 보기 위해 이곳까지 달려왔다.

삼천포항
각산은 해발 408m의 아담한 산이지만 역사적으로는 꽤나 날카로운 각을 세우며 오랜 세월을 지켜온 조상산이다. 전망이 뛰어난 이곳에서 21세기의 여행자는 평화롭게 풍경 타령이나 하고 있지만 백제와 고려 때는 전쟁을 위한 중요한 시설로 활용되었다. 각산산성이 그 유물이다. 백제 무왕 때 건설된 것으로 추정되는 산성은 백제가 가야를 탐내 그곳으로 진출하기 위한 거점이었다. 백제 군사들이 섬진강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와 이곳 산성에 올라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고려 때는 삼별초의 난을 평정할 때 이 산성이 주요 기지로 활용되었고, 공민왕 때 왜구의 엄청난 약탈이 있었을 때도 사천 주민들이 이곳 산성에 모여 반격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각산산성에만 올라도 한려수도의 미도, 신도, 창선도, 남해 망운산 등이 눈에 잡힌다. 산성에서 10분쯤 더 올라가면 이윽고 ‘봉화대’가 나타난다. 각산 정상이다. 이곳에 오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설쳐 시동을 켠 것이다.

각산 봉화대는 실안 낙조를 광활하게 만날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다. 실안 낙조가 유난히 아름다운 것은 한려해상국립공원의 그림 같은 섬들이 기꺼이 배경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그냥 바다로 떨어져도 형형한 붉은 색으로 세상을 채색하거늘 섬산이 켜켜이 음영을 만들어 주니 그 색을 무어라 표현할 길이 없다. 누구도 말할 수 없고 탄성조차 삼켜야 하는 순간이다. 그저 잠깐이거늘, 그저 찰나인 것을 무어 그리 할 말이 많았으며 왜 굵은 핏발을 세우며 대립했었는지, 모든 것이 허무할 뿐이다. 실안 낙조는 뜨거운 여름을 달려온 여행자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 주는 듯하다. 날은 금새 어두워졌다. 하산길, 낙조의 여운은 새로운 시간을 생각하게 한다. 미움이 용서로, 이기심이 공존으로, 탐욕이 나눔으로 이동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내일 서울로 올라갔을 때 모든 게 다시 미움과 이기심과 탐욕으로 돌아가 있으면 또 어떠랴. 조금씩 깨닫고 조금씩 전진하면 될 일이다.

삼천포 대교, 비토섬 일몰
실안 낙조를 더 가까이에서 보는 방법

각산 봉화대에서 본 낙조 풍경이 신선 뷰라면 바닷가에서 만나는 낙조는 어부의 눈이다. 실안 앞 바다에는 전통 어업인 죽방렴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죽방렴은 물살이 드나드는 좁은 바다 물목에 대나무발 그물을 세워 물고기를 잡는 원시어업으로, 오랜 옛날부터 이 바다에서 그 어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그렇게 고기를 잡았다고 전해진다. 사육하는 물고기가 지천에 널려 있고 어선 타고 조금만 나가도 물고기가 펑펑 올라오는 세상에 죽방렴이라니! 그것 하나만으로도 실안 어부들의 진솔한 삶이 느껴진다.

이곳에서 오랜 세월 죽방렴이 가능했던 것은 실안 해안이 조수 간만의 차가 크고 물살이 세기 때문이란다. 실안 어부들은 수심이 얕은 갯벌에 참나무 말뚝을 V자로 박고 대나무로 그물을 엮어 놓는다. 인간이 쳐놓은 덫의 실체를 모르는 물고기는 그저 파도가 가자는 곳으로 넘실넘실 들어가고, 그러다 보면 V자 끝에 설치된 불룩한 임통에 갇혀 빠져나가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미안하지만 할 수 없다. 세상 살이가 그런 것이니…. 어부는 하루에 세 번 목선을 타고 죽방렴에 들어가 갇힌 물고기를 뜰채로 떠오면 그만이다. 그렇게 육지로 올라온 녀석들은 그물에 걸린 것도 아니고, 낚싯바늘을 씹어먹은 것도 아니니 온몸에 상처 하나 없는 상태로 인간의 입으로 들어가고야 만다.

그러므로 죽방렴은 관광객을 위한 무엇도 아닌, 전통 계승을 위한 무엇도 아닌, 그저 바다에서 태어나 바다에서 먹고 살아가는 어부들의 오늘이고 내일이다. 그 죽방렴 위로 펼쳐지는 붉은 기운은 그저 흔한 빛이 아니다. 물감 그대로다. 검붉은 물감이 실안의 바다, 집, 어부의 온몸 구석까지 스며드는 순간이다. 이곳은 도로지만 달리는 차는 없다. 모두들 차를 세우고 말없이, 말없는 바다를 바라본다. 실안 노을길은 각산 아래와 실안 사이에 있는 길로 바다, 섬, 삼천포대교, 죽방렴, 등대 등 자연과 세상이 주는 극강의 풍경 속을 달리는 6km의 도로다. 후딱 끝나는 게 아쉽다면 ‘실안 노을길’을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실안 노을길은 모충공원에서 특도휴게소까지 이어지는 약 8km의 2시간30분 코스로 실안 낙조와 마도, 신도 등 바다 멀리 보이는 섬, 그리고 사천의 최대 명물인 삼천포대교와 초양도, 늑도까지 들어가는 환상의 바닷길이다.

각산 주변 가볼만한 곳

▶다솔사

실안에서 40분 거리에 있는 절이다. 야생차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풍경으로만 보자면 절집 초입의 솔 숲길을 첫손가락으로 꼽을 만하다. 지난 2001년 대양루 큰 북에 전설 속의 꽃 우담바라가 피었다고 해서 세인들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다솔사 야생차밭은 적멸보궁 뒤편에 있다. 200~300년 묵었다는 차나무들이 곧추 선 편백나무 아래 오종종 모여 있다. 보성의 차밭처럼 가지런한 모습이 아닌 제멋대로 자란 야생 차나무와 1960년대 다솔사 주지 효당 스님이 새로 심은 차나무들이 얼기설기 이어져 있는 모양새다. 이처럼 역사가 오래되니 ‘차 좀 마셔 봤다’는 사람들이 순례 삼아 다솔사에 들르는 것은 일상이다.

위치 경남 사천시 곤명면 다솔사길 417

문의 055-853-0283

▶진양호 캐리비안온천

실안에서 40분 거리에 있는 온천 테마파크다. 여름이 아쉽다면 살짝 들려볼 만한 곳이다. 지하 800m에서 올라오는 온천은 11가지 성분, 특히 중산나트륨 함유량이 높아 물의 질감이 엄청 부드럽다. 한두 시간 놀고 나면 당분간 도자기 피부가 유지될 정도다. 아이들을 위한 야외 물놀이 시설, 테마 찜질방, 가족탕, 약수온천 등 온천욕도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피트니스 센터와 각종 음식점 및 편의시설도 갖추고 있어 온 가족이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위치 경남 사천시 곤명면 신흥리

문의 055-853-7500~2, www.jinyanghocaribbean.com

▶용두공원

멋들어진 편백 삼림욕장. 이곳에 가면 오직 편백나무로만 조성된 산책로를 걸을 수 있다. 와룡산 등산객은 물론 트래킹을 즐기는 사람들도 필수코스다. 멀리 와룡산 새섬바위와 상사바위, 민재봉이 한눈에 들어와 경치가 그만이다. 아침나절에 가면 안개 낀 와룡저수지의 운치를 감상할 수 있다. 또 실개천을 따라 난 공원 길을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며 걷는 동안 편안한 마음의 정화를 맛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위치 경남 사천시 용강동 337-2

문의 055-931-3413

각산 먹거리

실안과 붙어있는 삼천포항과 삼천포수산시장이 있다. 항구에 바로 수산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삼천포항은 하루 종일 들락거리는 고깃배들로 정신이 없을 정도다. 그렇게 잡아온 생선들은 즉석 활어시장에 풀리는데, 그곳에서 사다 식당으로 들어가면 상차림비만 받고 뚝딱 음식을 마련해 준다.

▶자연산횟집

자연산치고는 가격이 적당한 게 이 집의 최강 장점. 양도 만만치 않게 많이 준다. 기본 반찬으로 생굴회, 가리비회, 전복회, 모자반나물, 김무침, 대구알무침, 생선구이 등이 올라오니 사실 할말이 없어진다. 기본 반찬으로 내놓는 홍합미역국도 깔끔한 맛이 일품이다. 삼천포시장 입구에 있는 23년 맛집인데, 봄에는 도다리쑥국으로 여행자들에게 또 다른 행복을 준다. 삼식이쑥국, 여름 장어탕, 겨울 대구탕, 물메기탕 등 철마다 히트 메뉴가 등장한다.

위치 경남 사천시 어시장길 7 문의 055-832-2228

▶삼천포원조물횟집

도다리쑥국과 물회로 2대째 45년 동안 문을 열고 있는 집이다. 해삼물회 등 개운한 물회로 술꾼들 출입도 잦은 편이다. 물회에는 갖가지 채소와 제철 생선이 들어간다. 얼음 동동 시원한 육수의 새콤하면서도 달큼한 맛이 혀를 감싼다. 멍게덮밥, 물메기탕, 대구탕 등 다른 집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이 집만의 메뉴도 별미다.

위치 경남 사천시 서금동 144-12

문의 055-833-8231

숙박

▶일마레 황토펜션

실안 낙조를 온몸으로 받는 황토집이다. 낙조 때면 집 색깔이 완전히 붉어진다. 객실은 온돌방과 황토방으로 나눠져 있고 입구 ‘일마레’에서 커피, 식사를 즐길 수도 있다. 성수기가 지난 요즘 숙박비는 9만원에서 23만원이다.

위치 경남 사천시 해안관광로 331-35

문의 055-832-1114 http://ilmarepension.co.kr

▶모인썬펜션

바다에 거의 붙어있는 펜션이다. 실안 바다와 한려수도가 방안으로 들어온다. 바비큐, 수상스포츠 등 먹고 놀 거리들도 많다. 침대와 온돌방이 있으며 비수기 기준 요금은 8만원에서 27만원이다.

위치 경남 사천시 해안관광로 303-11

문의 010-9142-5272

▶실안 교통편

승용차 대전통영고속도로 진주JC – 남해고속도로 사천IC – 3번 국도 – 각산터널 – 실안

버스 서울남부터미널 – 삼천포시외버스터미널

[글 이영근(여행작가) 사진 사천시청, 이영근]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494호 (15.09.0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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