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수꾼' 출간 한달..그레고리 펙 주연의 '앵무새 죽이기' 다시 찍을판?

2015. 8. 13.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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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앵무새 죽이기'와 전혀 다른 면모

'제3의 소설' 가능성도 나와

등장인물 관계…누나? 오빠? 호칭 불일치도

하퍼 리(89)의 소설 <파수꾼>이 미국과 한국 등지에서 동시 출판된 지 꼭 한달이 되었다. <앵무새 죽이기>(1960)의 작가가 쓴 또 다른 소설이 있으며 그 작품이 <앵무새 죽이기>의 20년 뒤 이야기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미국은 물론 한국 독자들 사이에서도 뜨거운 반응이 일었다. 초판 200만부를 찍은 미국에서는 발간 첫주에만 110만부 넘게 팔려 나갔다. 한국에서도 출판사 열린책들은 이 책의 초판을 이례적으로 10만부로 책정했으며 그 뒤 추가로 3만부를 더 찍었다. 올 여름 최고 화제작으로 떠오른 <파수꾼>의 파장과 이면을 짚어 본다.

애티커스 핀치-양심과 위선 사이에서

<파수꾼>을 읽은 이들이 가장 당혹스러워하는 것은 <앵무새 죽이기>에서 양심과 정의의 수호자로 그려졌던 애티커스 핀치 변호사가 흑백 차별을 옹호하는 인종주의자로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주인공 진 루이즈는 집안에서 흑인을 흑사병에 견준 책자를 발견하고 경악한 데 이어 아버지 애티커스와 약혼자 헨리가 인종주의 집회에 참석한 모습을 보며 환멸을 느낀다. 그런 아버지에 대한 진 루이즈의 반발과 각성이 <파수꾼>의 핵심 서사를 이루는데, <앵무새 죽이기>와 <파수꾼>에서 이렇듯 상반되게 그려지는 애티커스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둘러싸고 벌써부터 열띤 토론이 나온다.

<앵무새 죽이기>나 <파수꾼>이나 어디까지나 소설인 만큼 두 작품의 애티커스 핀치를 반드시 동일인으로 볼 필요는 없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여러 정황상 두 애티커스를 동일인으로 보는 것이 역시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두 애티커스 사이의 불일치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앵무새 죽이기>의 화자 스카웃(진 루이즈)이 여섯살 소녀였던 데 비해 <파수꾼>은 스물여섯살 진 루이즈의 시점을 택했다는 사실을 우선 들 수 있다. 어린아이의 순수한 눈으로는 볼 수 없었던 세계의 어두운 진실이 <파수꾼>에서 비로소 드러났다는 것이다. <앵무새 죽이기>에서 '완벽한' 것처럼 그려진 애티커스에게서도 <파수꾼>에서 만나게 되는 인종주의자의 면모를 암시하는 대목을 찾을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애티커스가 아들 젬으로 하여금 인종적 편견이 극심한 듀보스 부인에게 한달 동안 책을 읽어 드리라고 강요하거나, 억울하게 죄를 덮어쓰고 수감된 흑인 청년 로빈슨을 보호하고자 애티커스가 감옥 앞에서 지키고 있을 때 로빈슨에게 사형(私刑)을 가하기 위해 무장을 한 채 나타난 백인 무리의 지도자 커닝햄을 가리켜 "바탕이 좋으신 분"이라며 옹호하는 것이 그 예이다. 흑인 여성 작가 토니 모리슨이 <앵무새 죽이기>를 두고 '백인 구세주' 이야기라 폄하하는 것이 그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어쨌든 <파수꾼> 출간은 애티커스 핀치라는 인물은 물론 <앵무새 죽이기>라는 소설 자체에 대한 적극적인 재평가의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레고리 펙 주연으로 1962년에 만들어져 흥행에 성공한 영화 <앵무새 죽이기>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오는 형편이다.

진 루이즈의 성장

<파수꾼>은 순수의 세계에 머물던 진 루이즈의 환멸과 각성을 그렸다는 점에서 성장소설로 볼 수 있다. 인종주의자 아버지의 정체를 확인하고 분노와 슬픔에 사로잡힌 진 루이즈에게 삼촌 잭은 "너는 색맹이야"라고 말하는데, 이때의 '색맹'(color blind)에서는 복합적인 뉘앙스를 포착할 수 있다. 아버지 애티커스를 정의와 양심의 수호자라는 일방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았다는 뜻과 함께, 엄연히 피부색으로 갈린 고향 메이콤의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다는 질타의 뜻 역시 담은 것이다. 아버지에게 환멸한 진 루이즈는 어릴적 자신을 키워준 흑인 유모 캘퍼니아를 찾아갔다가 전과 다르게 냉랭한 태도에 당황한 나머지 "우리를 미워했어?"라고 묻는데, 이에 대해 캘퍼니아는 한동안 망설이다가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캘퍼니아의 답이 '예스'였다면 극적 긴장도 높이고 진 루이즈에 대한 각성 효과 역시 컸으리라는 아쉬움이 남는 설정이다.

제3의 소설?

하퍼 리의 대리인인 변호사 토냐 카터에 따르면 은행 금고에서 <파수꾼>(원제는 Go Set a Watchman) 원고를 발견한 뒤 하퍼 리에게 'Go Set the Watchman'이라는 원고를 찾았다고 보고하자 하퍼 리는 'the Watchman'이 아니라 'a Watchman'이라고 바로잡으면서 그것이 <앵무새 죽이기>의 '부모'(parent)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실제로 이 소설은 작가가 1957년에 완성한 작품인데, 어린아이의 시점으로 다시 쓰라는 편집자의 조언에 따라 새로 쓴 소설이 <앵무새 죽이기>였다. 그 결과 두 소설에는 거의 겹치는 서술이 여러 곳 나오는데, 메이콤 마을의 유래를 설명하는 대목(<파수꾼> 1장, <앵무새 죽이기> 28장)이라든가 코닝햄과 커닝햄 집안 사람들간 분쟁에 관한 이야기(<파수꾼> 4장, <앵무새 죽이기> 16장), 알렉산드라 고모의 코르셋에 관한 묘사(<파수꾼> 3장, <앵무새 죽이기> 13장) 등이 대표적이다.

한편 토냐 카터는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문에서 "상당 분량의 또 다른 타자 원고 더미 아래에서" <파수꾼> 원고를 발견했다고 밝혀 <앵무새 죽이기>나 <파수꾼>과 다른 '제3의 소설'의 존재 가능성에 대한 궁금증을 낳기도 했다. <앵무새 죽이기> 이후 하퍼 리는 '기나긴 작별'(The Long Goodbye)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쓰다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스카웃(진 루이즈)과 그토록 친밀했던 오빠 젬의 죽음에 대한 상세한 서술 등 <앵무새 죽이기>와 <파수꾼> 사이 공백을 메꿀 이야기가 그 작품에 포함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도 나온다.

한국어판 출간 전후

<파수꾼>의 번역자 공진호는 런던의 저작권 에이전트가 직접 들고 온 타자 원고 복사본을 가지고 작업을 했다. 에이전시쪽에서는 '보안각서'에 서명을 요구했고, 번역이 진행되는 동안 번역자와 담당 편집자 한사람 말고는 누구도 내용을 볼 수 없었다. 번역을 하는 동안은 작업실의 인터넷 연결도 끊어야 했다. 번역 과정에서 궁금한 사항은 토냐 카터에게 메일을 보냈고 그를 통해 원작자 하퍼 리의 답을 들었다고 했다. 진 루이즈의 고모 알렉산드라가 애티커스의 누나인지 동생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끝내 확인하지 못했다고 했는데, 그 결과 <앵무새 죽이기>(김욱동 옮김)에서는 알렉산드라가 애티커스를 '오빠'라 부르고 <파수꾼>에서는 거꾸로 애티커스가 알렉산드라를 '누나'로 부르는 불일치가 생겨났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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