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니까..작가들이 추천하는 추리소설

2015. 7. 23.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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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여름휴가 특집-추리소설과 친구 하기

●나를 찾아줘

(길리언 플린) ●나오미와 가나코(오쿠다 히데오) 아내가 달라 보일 으스스한 부부 이야기

어느 영화에서 한 얼빵한 남자가 이렇게 말한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그 대사를 듣는 순간, 나는 틀림없이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작가가 남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남자는 자기 세계에 빠져 여자의 마음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어찌 보면 애초부터 여자의 마음을 알아채는 더듬이가 없는 것 같다. 결혼을 하고 함께 산다고 해도 이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문제는 그럼에도 남자는 자신이 아내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착각 속에 산다는 점이다. 지금 소개할 동서양의 소설에 등장하는 남편들 역시 살해당하거나 끔찍한 음모에 빠진 뒤에야 비로소 자기 아내가 얼마나 무서운 여자인지 눈치챘다.

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만들어 줄 동서양의 팜 파탈, 두 명의 무서운 아내를 소개한다.

먼저 길리언 플린의 추리소설 <나를 찾아줘>(푸른숲)에 나오는 아내, 에이미. 그녀는 아름답고 똑똑하고 매혹적이며 뉴욕에서 세련된 생활을 하던 여자다. 그녀가 뉴욕을 버리고 남편 닉을 따라 시골에 온 이유는 오로지 하나, 남편을 사랑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편이 점점 게을러지고 나태해지는 것도 모자라 어린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것을 알게 되자 남편에게 특별한 결혼기념일 선물을 준비한다. 남편은 아내를 죽인 살인자로 만들고, 자신은 죽은 사람이 되어 전혀 새로운 곳으로 떠나 자유롭게 새 인생을 살기 위해 계획을 세운 것이다. 계획이 얼마나 완벽했던지, 아내의 실종과 살인 의혹이 드러나자, 닉은 동네뿐 아니라 전국에서 죽일 놈이라는 비난을 받게 된다.

한편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나오미와 가나코>(예담)에 등장하는 아내 가나코는 자신의 실종 대신 남편의 실종 계획을 세운다. 물론 실종을 가장한 살인 계획이다. 그녀는 혼자가 아니다. 함께 남편을 죽이고 실종으로 완전범죄를 만들어줄 든든한 조력자 친구가 있다. 처음 남편을 없애자고 했던 건 친구였지만 어느새 가나코는 자신이 얼마나 남편의 손아귀로부터 빠져나오고 싶었는지 절실히 깨닫고 이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남편에게 살인자의 누명을 씌워 평생 감옥에서 살게 할 음모를 꾸민 아내, 남편을 실종한 것으로 위장하고 살해하는 아내. 과연 어느 쪽이 더 무서운 아내일까? 남편을 죽인 아내가 더 무서울 것이라고? 두 권 다 읽기 전에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힌트를 주자면 확실히 남자는 여자를 잘 모른다!

서미애 추리소설 작가

'남편을 죽이는 서른가지 방법'으로 데뷔했다. 첫 장편 <인형의 정원>으로 한국추리문학 대상을 받았고, 신작으로 <아린의 시선>이 있다.

●라일락 붉게 피던 집

(송시우) ●검은 수련(미셸 뷔시) 이웃의 비밀이냐 지적인 미스터리냐

여름휴가를 떠나기 전날 밤, 맨 마지막으로 배낭에 챙겨 넣으면 좋은 게 있다. 여름엔 아무래도 추리소설 아닌가! 쏟아지는 영미와 일본 미스터리에 살짝 질린 독자라면 '낯설지 않은' 한국 작품이나 '고급진' 프랑스 작품을 챙기는 것은 어떨지.

송시우의 <라일락 붉게 피던 집>(시공사)은 1980년대 서울의 한 다가구 주택을, 프랑스 '대세' 추리작가로 떠오르는 미셸 뷔시의 <검은 수련>(달콤한책)은 인상파 화가 모네가 말년에 머물렀던 전원마을을 배경으로 여운이 남는 이야기를 선사한다. 추리소설에서 살인사건 자체보다 사건의 장소가 서사를 지배하는 경우가 있는데 두 작품 모두 그렇다.

<라일락 붉게 피던 집>은 성공적인 대중문화평론가로 활동 중인 여성이 1980년대를 회상하는 칼럼을 쓰면서 시작된다. 당시 그녀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다가구 주택에서 벌어진 연탄가스 중독 사고에 대한 글을 읽은 전직 경찰이 찾아와 30년 전 '그 사건'은 사고가 아닌 살인일지도 모른다고 하자, 그녀는 그 의문을 파헤치기로 한다. 선량한 사람들로만 알았던 옛 이웃들을 한 명 한 명 직접 만나면서, 어린 시절에는 깨닫지 못했던 어른들만의 비밀이 그녀의 눈앞에 나타난다. 인간 군상의 묘사 속에 무심히 뿌려놓은 듯한 복선과 드러나는 반전, 그리고 밝혀진 진실은 먹먹하다. 이 소설의 최고 장점은 1980년대 다가구 주택의 삶을 정교하게 복원했다는 것에 있다. 그때 그 시절 인기 드라마 <한 지붕 세 가족>의 향수를 느껴보시길.

<검은 수련>은 지적인 예술 미스터리다. 아름다운 마을에서, 아름다운 그림과, 아름다운 남녀가 엮어가는 이야기다. 살인사건조차 꿈결처럼 느껴질 정도로 몽환적인 이유는 모네의 연작 그림 '수련'의 풍경이 사건의 전반을 뒤덮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바람둥이 의사이자 모네 그림을 밀거래하려 했던 중년 남자가 살해당하자 마을의 평온이 깨진다. 사건의 배후에는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지닌 10대 소녀와 매혹적인 외모의 여교사, 그리고 늘 불만스럽게 동네를 배회하는 노파, 세 여자가 엮여 있다. 과연 범인은 누구이고 동기는 무엇일까? 그녀들의 은밀한 고백을 쫓다보면 뜻밖의 진실에 도달하게 된다.

<검은 수련>의 백미는 허를 찌르는 플롯이다. 과할 정도의 정교한 묘사가 왜 필요했는지는 결말에서 하나의 퍼즐로 완성되는 순간 이해하게 될 것이다. '모네의 마을'로 불리는 지베르니의 지도가 앞장에 붙어 있어 실제 위치를 확인해 가며 읽는 재미가 있다.

최혁곤 추리소설 작가

낮에는 직장을 다니고 밤에는 추리소설을 쓴다. 장편

,

과 최근에 출간된 <탐정이 아닌 두 남자의 밤>이 있다. 2013년

로 한국추리문학대상을 받았다.

●범인에게 고한다

(시즈쿠이 슈스케)

●블러드 워크

(마이클 코넬리)

중간에 책 덮는 자, 금연도 가뿐하리라

직장 근처에 연포탕 집이 있다. 평소에 낙지를 거의 먹지 않는데도 한번 들른 뒤 그 맛에 반해버렸다. 코미디 영화를 즐겨 보지 않는다. 하지만 주성치의 <서유기 선리기연>만은 일생의 영화로 남아 있다. 어느 분야든지 명품은 있다. 장르의 우열은 없다. 추리소설도 마찬가지다. 원래 본격 추리 쪽 작가를 추천하려 했었는데 생각을 바꿨다. 나를 다른 장르로 끌어들인, 내 취향을 이긴 작품들을 골라보았다. 입맛이 굳어가는 중년 남자를 움직일 정도라면 필시 다른 독자들의 마음에도 들지 않을까.

첫째는 시즈쿠이 슈스케의 <범인에게 고한다>(레드박스). 유괴범과 대결하는 형사의 이야기다. 원래 경찰소설을 좋아하지 않았다. 요코야마 히데오의 <64>조차 지루해서 중간을 건너뛰었다. 경찰이 수사하는 건 은행원이 돈 세는 것처럼 당연한 거 아닌가. 거기에 무슨 허구가 있고 재미가 있을까. 심지어 두껍기까지 한 이 책의 첫 장을 기대 없이 넘겼다. 그 순간 휘잉, 하고 바람이 불었다. 나를 경찰소설의 세계로 안내하는 돌개바람이었다.

연쇄 아동 유괴사건이 발생하고, 1년이 넘도록 단서를 잡지 못한 경찰은 최후의 승부수를 띄운다. 수사관이 직접 뉴스 프로에 나가서 수사과정을 모두 공개하고 범인에게 직접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사상 초유의 매스컴을 이용한 수사. 유괴범과의 심리 대결. 범인은 과연 반응해올 것인가. 동료와 다른 경쟁 프로그램은 어김없이 태클을 걸어 주인공의 발을 묶는데…. 이 책을 중간에 놓을 수 있다면 당신은 담배를 끊을 수 있다.

두번째는 마이클 코넬리의 <블러드 워크>(알에이치코리아). 미국 연방수사국(FBI) 수사관 매케일럽은 은퇴 후 심장이식수술을 받는다. 어느 날 미모의 여성이 찾아와 그 심장의 주인이 자기 언니라고 알린다. 그리고 언니를 죽인 범인을 찾아달라고 의뢰한다. 매케일럽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미모의 여성이니까. 연쇄살인이 일어나고, 매케일럽은 천신만고의 추격을 펼친다. 그리고 드러나는 놀라운 진상.

영미권 스릴러를 소 닭 보듯 하며 지냈었는데,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무언가 정서적인 거리를 느껴왔던 것 같다. 엘러리 퀸, 밴 다인이 만개시킨 본격추리를 버리고 스릴러의 길로 나아간 미국인이 원망스러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블러드 워크>를 읽고는 그들의 선택이 어느 정도 납득되었다. 이건…. 리얼리티가 난무하면서도 재밌지 않은가 말이다. 여름에는 역시 이런 소설이다. 하지만 바캉스 가방에 이 책으론 부족하다. 금방 읽어버릴 테니까.

도진기 추리소설 작가·판사

2010년 <선택>으로 한국추리작가협회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데뷔. 여러 작품이 중국에서 번역 출간됐으며, 2014년 <유다의 별>로 한국추리문학대상을 받았다.

●가족의 탄생

(도진기)

●스노우맨

(요 네스뵈)

'어둠의 변호사' 명탐정과 알코올중독 형사

국내와 해외 작품을 공평하게 하나씩 골랐다. 먼저 현역 판사와 작가를 겸하는 도진기의 <가족의 탄생>(시공사). 전공을 살린 존 그리셤류의 법정 스릴러를 예상하겠지만 그는 철저하게 1930~40년대 추리소설 황금기의 본격 추리소설을 지향한다. 독특한 개성을 지닌 명탐정이 밀실이나 알리바이 트릭 등의 불가능 범죄를 해결하는 애거사 크리스티 추리소설을 떠올리면 좋을 것이다.

현재까지 도진기가 선보인 명탐정은 '어둠의 변호사'라 불리는 법조계의 이방인 고진과 돈이 될 법한 일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법대 중퇴생 김진구, 두 명이다. <가족의 탄생>의 최대 흥미 포인트는 두 탐정이 살인으로 얼룩진 상속전쟁에서 각각 다른 이해 관계자의 의뢰를 받고 정면충돌하는 데 있다. 한 명이 웃으면 반드시 한 명은 울어야만 하는 상황이라 둘 중 하나를 응원하는 팬들은 승부의 결과에 가슴이 조마조마하리라. 기존의 도진기 추리소설이 완성도 높은 트릭을 강조하다 보니 조금 복잡한 면이 있었다면, 이 책은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마주치는 상속, 불륜 등이 주 소재라 술술 읽히는 장점이 크다. 왜, 상속으로 인해 가족 간에 얼굴 붉히는 일은 삼성, 씨제이 같은 대기업이나 전 재산이 달랑 아파트 한 채에 불과한 서민이나 별반 다를 게 없지 않은가.

해외 작품은 요즘 대세라는 북유럽에서 나와야 할 것 같다. 노르웨이 작가 요 네스뵈의 <스노우맨>(비채)을 추천한다. 전통적으로 북유럽 추리소설은 천재적인 명탐정의 활약보다 경찰 조직의 체계적인 수사와 수사팀의 협동 플레이에 중점을 두는 경찰소설이 꽉 잡고 있었다. 사실 팀워크를 강조하는 기존 경찰소설의 눈으로 보면 조직과 쉽게 융화되지 않는 알코올 중독 형사 해리 홀레의 단독 활약 자체가 말이 되지 않으며, 눈사람의 몸에 실제 사람의 머리를 올려놓는 사이코 연쇄살인마 '스노우맨'의 엽기적인 범행도 웃음거리에 그칠 뿐이다. 드넓은 영토에 500만명의 인구가 뚝뚝 떨어져 사는 노르웨이에 무슨 연쇄살인이란 말인가. 그러나 네스뵈는 고독한 반영웅 캐릭터, 영화적인 장면 전환, 몇 번이고 뒤집히는 반전과 애틋한 로맨스 등 미국식 스릴러의 기법을 적극적으로 차용해 북유럽은 물론 영미권에서도 사랑받는 작가가 됐으니,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바꾼 셈이다. 영화에 이어 소설마저 미국이 '글로벌 스탠더드'가 된 오늘날 국제적인 성공을 꿈꾸는 추리소설가라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나혁진 추리소설 작가

추리소설 편집자 출신으로, 영화화가 진행중인 장편 데뷔작 <브라더>를 2013년 출간했다. 지난해엔 두 번째 장편소설 <교도섬>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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