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진 흑인의 영웅? 착한 백인이었을 뿐

박해현 문학전문기자 2015. 7. 1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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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 작가 하퍼 리 55년 만에 흑인 변호 인물 뒤집은 후편 '파수꾼' 출간

소설 '앵무새 죽이기'의 작가 하퍼 리(89)가 14일 55년 만에 새 소설 '파수꾼'을 전 세계 10개국에서 동시에 냈다. 미국과 영국에서 원본을 내는 것에 맞춰 한국을 비롯해 스페인, 독일, 브라질, 스웨덴, 네덜란드, 카탈로니아, 덴마크에서 번역본이 나왔다. 미국에서만 초판 200만부를 찍었다. 한국어판 '파수꾼'(공진호 옮김)을 낸 열린책들 출판사는 "초판 10만부를 찍었다"고 밝혔다.

하퍼 리가 1960년에 낸 소설 '앵무새 죽이기'는 미국에서 인종차별을 비판하는 문학의 대표작으로 꼽혀왔다. 전 세계 40개 언어로 번역돼 지금껏 4000만부 넘게 팔렸다. 한국어판도 2003년 정식 저작권 계약 이후에만 30만부 나갔다. 하퍼 리는 '앵무새 죽이기'가 예상치 못한 대성공을 거두자 부담감 때문에 그 이후 신작을 발표하지 않았다. 그녀는 나이가 들면서 외부와의 접촉도 삼간 채 은둔 생활을 해왔다.

이번에 나온 '파수꾼'은 '앵무새 죽이기'의 밑거름이 된 작품이다. 하퍼 리가 1958년 '파수꾼' 원고를 출판사에 넘긴 뒤 편집자의 주문에 따라 내용을 고쳐 나온 소설이 '앵무새 죽이기'였기 때문이다. '파수꾼' 원고는 안전 금고에 보관된 채 잊혔다가 지난해 작가의 변호사가 발견해 철저한 보안 끝에 책으로 펴냈다.

'앵무새 죽이기'는 여섯 살 소녀 스카우트의 시선으로 미국 남부의 인종차별과 빈부 격차를 그린 소설이다. 흑인 인권운동이 활발해진 1950년대 미국 사회의 분위기를 반영한 작품이기도 하다. 소녀의 아버지는 누명을 쓴 흑인을 법정에서 변호하는 변호사 애티커스. 그는 허구의 인물이지만, 오랫동안 미국에선 정의와 양심을 대변하는 영웅으로 꼽혔다.

그러나 '파수꾼'은 애티커스의 이면(裏面)을 그려냈다. 애티커스가 과거에 백인우월주의단체 KKK에 입단한 적이 있고, "여기 니그로들은 하나의 종족으로서는 아직도 유아기에 있다"고 흑인을 비하하기 때문이다. '앵무새 죽이기'는 소녀의 시선으로 인종차별에 맞서는 영웅 아버지를 그렸다. 반면 '파수꾼'은 성인이 된 그녀가 아버지의 실상을 깨닫고 실망하는 과정을 담았다. 그러나 '파수꾼'의 마무리는 딸이 서서히 아버지의 진심과 결점을 두루 이해하는 것으로 꾸며졌다. 아버지가 복면을 쓴 KKK단의 정체를 알아내려고 집회에 한 번 참석했을 뿐임을 알게 된다. 아버지는 오로지 법과 질서를 삶의 척도로 삼았기에 죄 없는 흑인을 변호했을 뿐이다.

그러나 일흔 살이 넘은 아버지는 "백인은 백인이고, 흑인은 흑인"이라며 백인우월주의를 버리지 못한다. 그는 딸의 비난을 듣기만 한다. 그는 딸이 스스로 우상을 파괴하기를 바란 것이다. 결국 딸은 "아빠에게 이길 수가 없고, 아빠와 한편이 될 수도 없다"며 부친을 사랑하되 동조하진 않는다. 흑인을 보는 백인 사회의 세대 차이를 반영한 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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