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물을 '이상적인' 물로 바꾸는 7개의 기계연못.. 山이 할 일 떠맡아

한국일보 2015. 7. 12.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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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메테우스 만물상] <12> 강북아리수정수장

1L에 5mg 이상 용존산소, 칼슘 3~37mg, 칼륨 1~5mg…

집집마다 수도꼭지서 나오게 단계마다 화학물질 황금비율로 섞어

펌프 9개가 하루 100만톤 물을 배수지로 보내 가정으로 배달 준비

PAC라는 응집제를 넣어 부유물을 가라앉히자 꽤 맑은 물이 됐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이영준 계원예술대교수 제공

사람들은 물을 참 쉽게 생각한다. '물 흐르듯'이란 말은 어떤 일이 힘들이지 않고 자연스레 풀려갈 때 쓰는 말이다. '맹물 같은 사람'이란 말은 특색도 없고 강단도 없어서 맥아리가 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물이라는 게 그렇게 힘도 없고 내용도 없는 무의미한 것일까? 경기도 남양주시 삼패동에 있는 강북아리수정수장에 가보면 물을 얻는다는 게 그리 간단치도, 쉽지도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산이 할 일을 대신 하는 곳

자연에서 맑은 물을 얻으려면 산 하나가 필요하다. 산에 있는 나무와 돌과 흙들이 힘을 합쳐야 맑은 물을 만들 수 있다. 산이 가까이 있지 않은 요즘 이 일을 인공적으로 하려면 많은 시설과 자원이 필요하다. 강북아리수정수장에는 산 하나가 할 일을 떠맡는 많은 장치들이 있다. 수돗물을 만든다고 하면 강물을 퍼다가 염소 등 약품을 섞고 휘저으면 된다고 알고 있었는데 직접 정수장을 방문해서 보니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맑은 물'이 뭐냐고 하면 상식적으로 불순물이 없이 맑고 투명한 물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완전히 맑은 물, 즉 증류수는 인간이 마시기에 적합하지 않다. 우리가 마실 수 있는 이상적인 물은 용존산소가 1리터에 5㎎ 이상, 칼슘은 3~37㎎, 칼륨은 1~5㎎, 마그네슘 1~6㎎, 나트륨 3~30㎎ 등의 미네랄이 녹아있는 것을 말한다. 강북아리수정수장에서는 이런 이상적인 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기계들이 쉼 없이 돌아간다. 아리수는 생수맛과 별로 차이가 없는, 먹기 좋은 물이다.

하지만 수돗물이 마냥 영광의 역사만 가진 것은 아니다. 1980년대 중반 쯤에 주한미군들이 한국의 상수도 물을 먹지 않고 미국에서 가지고 온 병에 들은 물을 먹는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사람들은 분개했었다. 우방인 한국을 후진국으로 생각하기에 수돗물을 먹지 않는다는 생각에 많은 사람들의 반미감정이 커졌다. 당시는 많은 사람들이 수돗물을 직접 마셨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이 병에 든 물을 사먹는다. 세월이 흐르면서 물에 대한 생각도 바뀐 것이다. 그러나 서울시는 지난 10년간 수돗물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1조원의 돈을 썼고, 강북아리수정수장에는 1,500억원을 들여 만든 최신의 고도정수처리장이 이상적인 물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제는 다시 수돗물을 마셔도 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아리수의 원료라 할 수 있는, 막 퍼올린 한강물. 좀 탁해 보이지만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맑고 깨끗한 물이 된다. 이영준 계원예술대 교수 제공

강물, 맑은 물로 재탄생하다

수돗물의 원료는 팔당댐에서 7.5㎞ 아래 취수장에서 퍼 올린 한강물이다. 이곳은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물걱정이 없는 곳이다. 취수장에서 퍼 올린 물은 4㎞ 아래 쪽에 있는 정수장에서 수돗물로 가공된다. 아니면 재탄생이라고 하는 것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물은 원래 맑은 상태로 있다가 인간의 세계를 거치면서 더러워진 것이니 정수장이란 그것을 자연의 상태로 되돌려 재탄생시키는 곳이라 할 수 있다. 강물을 퍼다가 처리해서 팔아먹으니 봉이 김선달 아닌가? 그러나 물은 공짜가 아니었다. 강물의 수질을 관리하는 곳은 한국수자원공사(K-Water)다. 강북아리수정수장은 한강물을 쓰는 댓가로 한국수자원공사에 물 1톤당 53원의 물값을 지급하고 있다. 1년에 2억8,000톤 정도의 물을 쓰니 물값으로 1,500억원 정도 쓰는 셈이다.

그 비싼 강물은 직경 2,400㎜의 큰 강철관을 통해 정수장으로 옮겨진다. 취수장에서 끌어올린 강물은 혼화지, 응집침전지, 여과지, 정수지, 배수지, 오존접촉지, 활성탄흡착지 등 수 많은 지(池) 즉 연못들을 지나면서 맑은 물이 된다. 그러고 보니 연못은 전설의 장소가 아니던가. 금도끼, 은도끼의 전설도 그렇고, 태백시의 황지와 제주도에 있는 혼인지 등 전설을 지닌 연못들도 있다. 그렇다면 강북아리수정수장의 연못들에는 어떤 전설이 있을까. 그것은 화학과 유체역학과 환경공학이 합쳐서 만들어낸 물관리기술의 전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래로 불순물을 걸러내는 여과지. 이영준 계원예술대 교수 제공

전설과도 같은 정수의 기술

전설의 발단은 화학에서 시작한다. 강물에는 부유물이 있는데 이것들을 한데 뭉쳐 가라앉혀야 한다. 이 전설이 이루어지는 연못이 혼화지이다. 여기서 강물에 응집제를 섞는다. 응집제가 물에 들어 있는 불순물들을 응집시켜 가라앉도록 만들어주는 화학물질이다. 응집제로는 PAC 즉 폴리염화알루미늄을 쓴다. 이는 [Al2(OH)nCl6-n]n의 조성을 갖고 있는 염기성 중합알루미늄이다. 이 복잡한 분자식이 어떻게 응집작용을 일으키는지는 화학전문가가 아니고서는 알 수 없으므로 전설로 남겨두기로 하자. 분명한 것은 응집제를 섞은 물은 개념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더 이상 강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색이 탁하고 부유물들이 떠돌던 강물은 응집침전지를 거치면서 대폭 맑아지고 색은 푸르러진다. 느낌상 반쯤은 수돗물이 된 것 같다.

물론 응집제를 섞었다고 해서 바로 수돗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소독약인 염소를 투입해야 수돗물이 된다. 수영장 냄새가 나는 바로 그 물질이 염소다. 염소는 대부분의 세균을 죽이는 역할을 한다. 염소투입의 전설은 그 양에 있다. 가정의 수도꼭지에서도 어느 정도의 염소가 검출돼야 끝까지 살균작용을 한다. 왜냐면 긴 수도관을 통해 전달되는 과정에서 세균이 유입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수장에서는 염소의 양을 잘 맞춰야 한다. 수도꼭지에서 너무 많은 염소가 나와도 안 되고 너무 적은 염소가 나와도 안 된다. 40ppm 정도의 염소가 나와야 한다. 하루에 100만톤의 물을 처리하는데 수많은 사용자들의 수도꼭지에서 항상 적정량의 염소가 나오게 농도를 조절하는 기술이 전설이 아니고 무엇인가?

고도정수처리장에 있는 오존발생장치. 이영준 계원예술대 교수 제공

고도정수처리장에 있는 오존투입장치. 이영준 계원예술대교수 제공

염소만으로 살균이 될까? 보다 확실한 살균을 위해 반쯤 완성된 수돗물은 고도정수처리장을 거친다. 작년에 완공된 이 시설에는 두 가지 연못이 있다. 하나는 오존접촉지이고 또 하나는 활성탄흡착지이다. 오존접촉지는 오존을 발생시켜 물 속에 섞어 넣는 시설이다. 50ppm의 오존에 사람이 30분간 노출되면 사망할 수 있는 독성이 있으므로(오존의 대기환경기준은 1시간 평균 0.1ppm 이하) 오존접촉지는 안전관리가 철저한 곳이다. 앞에서 본 혼화지, 여과지, 응집침전지 등의 연못들이 개방되고 노출돼 있었던 것과는 달리, 오존접촉지는 완전히 폐쇄돼 있어서 볼 수가 없다. 이제 연못은 볼 수 없는 탱크 속에 쌓여서 완전히 비밀의 장소가 된다.

활성탄 흡착지. 양쪽 벽 속에 들어 있는 탱크 속에서 활성탄이 최종적으로 불순물을 걸러낸다. 이영준 계원예술대교수 제공

집으로 배달: 수돗물의 완성

오존발생장치도 그렇고, 오존투입장치도 그렇고 앞서의 시설들과는 안전기준도, 설계방식도, 이미지도 완전히 다르다. 앞서 본 연못들이 20세기에 만들어진 시설들인데 반해, 고도정수처리장은 21세기의 시설다운 특징들과 느낌을 강하게 풍긴다. 소위 말하는, 기계의 포스가 아주 강한 곳이다. 수돗물을 만드는 곳이라기보다 핵발전소를 연상시키는 이곳은 대단히 정밀하고 철저하게 설계되고 시공된 느낌이 든다. 강북아리수정수장의 모든 시설에는 센서가 있어서 중앙제어실에서 모든 상황을 볼 수 있지만, 고도정수처리장의 센서들은 생김새가 부리부리한 것이 더 예리해 보인다. 20세기가 생산의 시대라면 21세기는 모니터링의 시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오존처리와 활성탄흡착을 거치면 비로소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수돗물이 된다. 이곳에서는 모두 폐쇄된 상태에서 처리되기 때문에 물을 볼 수 없다. 전설은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깊고 어두운 곳에서 완성되고 있었다. 이제 먹을 수 없는 탁한 한강물은 이곳에서 먹을 수 있는 맑은 물로 다시 태어난다.

완성된 물을 총 1만8천 마력의 힘으로 배수지로 보내는 펌프. 이영준 계원예술대교수 제공

전설의 발단이 화학이었다면 그 끝은 모터의 힘이다. 아무리 좋은 물건을 만들어도 사용자에게 배송이 돼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완성된 수돗물은 송수펌프실에 있는 강력한 펌프에 의해 각 지역에 있는 배수지로 옮겨진다. 시간당 7,000톤의 물을 퍼낼 수 있는 2,300마력짜리 모터 펌프 7대, 시간당 4,000톤의 물을 퍼낼 수 있는 1,200마력짜리 모터 펌프 2대가 쉼 없이 물을 퍼서 배수지로 보낸다. 디젤기관차의 힘이 3,000마력이니 2,300마력의 모터라면 대단한 힘이다. 그 모터들이 굉음을 내며 하루에 100만톤의 물을 배수지로 보낸다. 배수지에 모인 물이 각 가정으로 전달되면 수돗물의 전설은 완성된다. 우리는 매일 전설의 물을 먹고 있는 것이었다.

이영준 계원예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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