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스트림 MTB | 네팔 안나푸르나] 대지진 직후 공포의 도가니 히말라야를 탈출하다

글·사진 | 염동우 영상미디어 기자 2015. 7. 8.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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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야크 MTB팀, 안나푸르나 라운딩 중 대지진 겪어

↑ [월간산]지진이 일어나기 전 MTB로 안나푸르나 토롱라(5,416m)를 넘은 블랙야크 대원들. 대원들 뒤로 거대한 안나푸르나3봉(7,555m)이 보인다.

두두두! 두두두두! 어디서 헬기가 다가오고 있나?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갑자기 로지 창문이 심하게 떨린다. 한데 창밖의 빨래는 미동도 없지 않은가. 순간 앞 테이블에서 차를 마시던 서양인과 눈이 마주쳤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건물 밖으로 뛰었다. 지진이었다. 2층에서 내려가 1층 로비를 지나는데 건물 천장에서 콘크리트 가루가 떨어졌다. 거리에는 진동에 놀라 건물 밖으로 뛰쳐나온 시민들이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놀라 소리를 질렀다. 언덕에서는 트랙터가 굴러 내려오고 있다.

좀솜(Jom Som·2,720m)공항 마을 뒤편에선 산이 무너지면서 굉음이 울렸다. 흙먼지가 마을을 뒤덮었다. 한 아이가 더 작은 아이의 손을 잡고 흙먼지를 피해 뛰어간다. 어른은 아이를 안고 높은 산으로 뛰었다. 마을 지형을 모르는 우리 일행은 그들을 지켜볼 뿐 두 발이 굳어버린 채 공황상태가 됐다. 안나푸르나 인근 좀솜마을에서 4월 25일 벌어진 일이다.

지진 전 우리의 일정은 순조로웠다. 모든 일정을 마쳤기 때문에 좀솜공항에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포카라로 이동하기 위해 편안한 마음으로 대기 중이었다.

네팔에는 지난 4월 17일 들어왔다. MTB(산악자전거)를 타고 해발 5,416m의 안나푸르나 토롱라(Thorong-La) 패스를 넘는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우리가 계획한 코스는 일명 안나푸르나 서킷(241km)으로 불린다.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 코스 중 가장 높은 고개인 토롱라를 개인적으로 MTB를 타고 넘은 사람은 여럿 있다. 하지만 전문서적과 매스컴엔 국내에서 팀을 결성해 이곳을 넘었다는 기록은 없었다. 산악인과 트레커들이 많이 찾지만 고도가 높아 고산병 증세가 심해 등반이 쉽지만은 않다. 전문가와의 동행이 꼭 필요한 곳이다.

대원은 나를 포함해 최난익(52), 전철종(48), 박운범(44) 4명. 국내 등산아웃도어브랜드 블랙야크에서 활동하는 셰르파들로 대단한 체력을 자랑하는 라이더들이다. 하지만 고산등반이 처음인 대원들이라 고산등반 경험이 많은 내가 취재 겸 가이드를 맡았다.

↑ [월간산]1 마낭을 지나 토롱패디로 가는 길.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된다.

일정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고산 적응도 좋았다. 18일 카트만두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해 베시샤하르(820m)에서 다시 지프로 갈아타고 11시간을 달려 참체(1,385m)에 도착했다. 중간에 지프로 갈아탄 것은 길이 좁고 험하기 때문이었다. 30km 속도를 넘지 않는 지프. 가파른 언덕과 불규칙한 돌길을 덜컹덜컹 달리고 까마득한 낭떠러지를 지난다. 달렸다기보다 거친 길을 돌파했다는 게 맞을 것이다.

숨 가쁘게 끌고, 메고, 달리고둘째 날, 참체부터는 MTB로 운행했다. 본격적인 히말라야 첫 라이딩이다. 다나큐(2,450m)를 지나 차메(2,710m)까지는 넓은 임도다. 약간의 오르막길을 가벼운 속도로 올랐다. 간혹 짧은 거리의 내리막길도 나와 MTB 타는 맛이 났다.

고산병 증상이 적은 고도 3,000m를 넘지 않은 선에서 적당히 힘을 써도 된다고 했더니 최난익 대원은 오르막도 쉬지 않고 넘었다. 나머지 대원들도 이에 질세라 따라가느라 헐떡였다. 하루 만에 고도 1,325m를 높이고 27km를 8시간이 걸려서 왔다.

차메를 출발, 어퍼피상(3,310m)까지는 고도 600m의 차이를 보인다. 드디어 3,000m 이상에서 라이딩이다.

↑ [월간산]2 보기만 해도 아찔한 절벽을 타고 간다. 바위를 깎아 길을 냈다.

"여기서부터는 페달을 가볍게 돌리고 천천히 달려야 해요. 어제처럼 달리다간 고산병 걸려 하산할 수 있습니다."

출발에 앞서 우리의 가이드 밍마 셰르파가 경고했다. 어제와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는 길이다. 좀 다른 것이 있다면 언덕을 넘을 때마다 심장이 터질 것같이 맥박수가 빨라져 머리가 욱신댄다는 것.

"어~우, 심장이 이상해! 머리도 이상해!"

"운범아 그러게 천천히 좀 가, 저기 안나푸르나2봉을 좀 보라고."

↑ [월간산]3 하이캠프를 오르는 박운범 대원. 자전거를 짊어지고 올라야 할 정도로 가파른 고개다. 4 흐르는 강 옆으로 보이는 아담한 마을이 대원들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전철종 대원이 달리던 자전거를 멈춰 세운다. 머리에 만년설을 얹은 안나푸르나2봉과 그 밑으로 깎아지른 절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내일 아침도 6, 7, 8입니다."

어퍼피상에 도착해 밍마 셰르파가 기상과 밥을 먹고 출발하는 시간을 알린다. 그러면서 "늦으면 밥 없다!"고 농을 던진다. '6, 7, 8'은 6시 기상, 7시 식사, 8시 출발이란 의미다.

에베레스트 트레킹의 고소적응을 위한 중간기지격인 남체바자르가 있듯, 안나푸르나 트레킹에는 마낭(3,540m)마을이 있다. 보통 이곳에서 하루를 더 묵으며 고소적응을 한다. 블랙야크 MTB팀 대원들은 첫 히말라야 원정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밝은 표정과 컨디션을 보였다. 대원들은 쉬는 날 없이 다음날도 운행을 이어가 레다르(4,200m)에 닿았다.

↑ [월간산]5 대원들이 보기만 해도 시원한 폭포를 지난다.

그러나 계획에 없던 문제가 발생했다. 네팔 요리에 들어가는 향신료 '마살라'가 문제였다. 마살라향에 거부감을 느낀 박운범 대원은 음식을 전혀 먹지 못했다. 그러면서 한국요리를 찾아대는데, 다행히 가이드 밍마 셰르파가 그의 구세주로 등장했다. 다행히 그가 권하는 피자는 먹는 것이었다. 끼니마다 한국인에게 적합한 음식을 권했다. 하지만 대원들은 또 다른 문제에 봉착했다. 변비에 걸린 것. 거기에 난생처음 찾아온 불면증까지. 그동안 마시던 맥주를 거부하다니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라이딩 7일째, 더 큰 게 오고야 말았다. 고산병이다. 레다르에서 하이캠프(4,850m)를 오르는 길은 자전거 안장에 궁둥이를 댈 수조차 없이 경사가 가파르다. '끌바'(자전거를 끌고서 언덕을 오르는) 또는 '멜바'(자전거를 어깨에 메고 언덕을 오르는)가 답이었다. 사실 두 발로 고산을 걷는 것도 힘든 일인데 MTB를 타고 오르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전철종 대원은 그만 고산병이 찾아왔는지 걸음이 점점 느려졌다. 해발 4,500m부터는 눈이 쌓여 있었다. 하이캠프를 눈앞에 두고 가다 쉬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동료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 힘들다는 내색조차 하지 않았다. 다만 숨을 헐떡일 뿐이다.

4월 24일 새벽 4시 정상 밑 마지막 로지인 하이캠프를 출발해 토롱라(5,416m) 정상에 선 시간은 오전 8시. 손과 발이 꽁꽁 언 것이 영하 10℃는 되는 것 같다. 최난익 대장을 비롯한 전철종, 박운범 그리고 기자까지 블랙야크 MTB 대원들은 최종목적지인 토롱라 등정에 전원 성공했다.

산악자전거로 토롱라(5,416m)고개 넘어대원들은 두통을 호소하며 고소병과 탈진에 시달렸지만, 서로 격려하며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고도의 언덕 '토롱라'. 명실상부 히말라야 최고의 언덕이었다. 정상의 기쁨도 잠시, 오후가 되면 바람과 화이트아웃(눈이 많이 내린 뒤 눈 표면에 가스나 안개가 생기면서 주변의 모든 것이 하얗게 보이는 현상)이 심해지므로 하산을 서둘러야 한다.

↑ [월간산]1 "산이 무너진다. 어서 피해!" 가이드 밍마 셰르파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안나푸르나 좀솜 공항 뒤편의 산이 지진에 무너지고 있다.

토롱라는 이번 지진 여파인 눈폭풍으로 17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5,334m)보다 높은 고도다. 지난해 10월 사이클론(폭풍설)이 몰아쳐 토롱라 패스에서 40여 명의 사망자와 20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대참사가 발생한 적도 있다. 오전 10시경이면 어김없이 강풍이 불어대는 곳으로 대개 새벽 4시쯤 출발해 넘는 게 보통이다. 그것이 하산의 이유다.

안정된 날씨 속에 해발 4,500m까지 내려왔다. 그리고 MTB를 타고 달려 묵티나트(3,800m)를 지나 2,720m 고도에 자리한 좀솜에 도착했다. 너무나 좋았던 날씨가 갑자기 오후 들어 구름이 끼고 비가 내린다. 기상 사이클이 하향곡선으로 돌아선 것이다. 한동안 날씨가 좋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다. 다음날부터 한없이 포카라행 비행기를 기다릴 판이다. 그러다 지진을 만난 것이다.

끝난 것일까. 진동이 멈춘 것을 보면. 정신을 차려보니 지진은 불과 1분 남짓이었다. 내가 있던 2층 로지로 올라가 짐을 챙겼다. 마음을 안정시키고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이게 무슨 일인가 생각하려 할 때 누군가가 내 목을 잡고 마구 흔들어대는 느낌이 또 닥쳤다. 2차 지진이었다. 흔들리는 건물을 빠져나왔는데 처음보다는 짧은 진동이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지진에 대해 아는 것도, 배운 기억도 나지 않는다. 처음 겪는 일이기도 했지만 로지 안으로 다시 들어갈 생각을 하다니 어처구니없는 짓이었다. 같이 있던 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좀솜의 피해 규모는 그리 커 보이지 않았다. 무너진 건물은 보이지 않았고 다친 사람도 눈에 띄지 않았다.

누군가 뒷목 잡고 흔들어대는 듯우리 원정대의 상황은 긴박해졌다. 뉴스 속보에서는 카트만두가 큰 피해를 입었으며 교통이 마비되고 육로가 끊겼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물론 공항도 폐쇄돼 좀솜공항에 여객기가 들어오지 않는단다. 휴대폰은 먹통이 돼 연락이 어려워졌다. 방법을 찾다 내린 결론은 '지프를 타고 육로를 달려 포카라에 진입해 카트만두행 비행기에 오른다'였다. 카트만두공항에서 4월 27일 예약된 대한항공편을 타기 위해서다. 하지만 말이 쉽지 포카라까지는 비포장길을 7시간이나 달려야 한다. 도로가 유실됐을 수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둬야 했다.

↑ [월간산]2 큰 바위에 맞아 벼랑에 떨어지기 직전의 위태로운 트럭. 3 지진을 피해 안전한 곳으로 대피 중인 대원과 시민들.

4월 26일, 웃돈을 주고 지프를 구했다. 5인승 지프에 우리 대원과 가이드 밍마 셰르파, 운전사까지 6명이 탔다. 막상 비포장길을 달려 보니 예상했던 7시간이 9시간으로 늘었다. 길 곳곳에는 굴러 떨어진 바위와 무너진 절벽이 보였다. 심지어 엄청나게 큰 바위를 맞아 벼랑으로 떨어지기 직전의 위태로운 대형 트럭도 보였다. 하지만 쓰러진 가옥은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이 단층으로 지어진 집이라 피해가 없다는 것이 가이드 밍마 셰르파의 설명이다. 그러나 카트만두는 오래된 도시이고 3~4층 높이의 건물들이 즐비하며 전통가옥이라 피해가 크단다.

포카라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8시. 비포장길을 타고 오느라 온몸이 누군가에게 두들겨 맞은 것같이 아프다. 이곳에 오면서 우리의 계획은 바뀌었다. 카트만두공항에서 여객기와 헬기를 포카라공항으로 보내줄 수 없다는 연락을 받았다. 군용기들이 구호용품 수송과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 구조를 펼치느라 활주로가 꽉 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포카라에서 카트만두공항까지는 차로 6시간. 밤을 새워 달린다면 내일 대한항공 오후 1시30분 비행기를 탈 수 있겠다는 가정을 세웠다. 현지 사정에 능통한 원주민 밍마 셰르파가 알아본 정보 덕분이다.

늦은 저녁식사를 하며 한국 여행사와 통화를 했다. 포카라에서 헬기를 준비해 줄 테니 다음날 아침에 타고서 카트만두에 오면 된다고 한다. 하지만 대원들은 육로를 주장했다. 현장에 있지 않은 여행사 직원들의 판단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이드 신분인 밍마 셰르파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소속된 여행사의 의견을 따르자고 했다. 너무 피곤했던 탓일까. 대원들도 여행사를 믿어보자는 의견으로 좁혀졌고 숙소를 얻었다.

출국일이 되었다. 이른 아침 숙소 밖에는 검은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한국에 돌아간다는 꿈이 무너졌다.

↑ [월간산]4 어퍼피상까지는 약간의 오르막과 평탄한 길이 이어져 즐겁게 라이딩할 수 있다.

"어제 그냥 차를 타고 갔어야 됐다고."

"현장에 없는 사람들 말을 들어서는 안 됐어."

대원들은 하나같이 원망을 쏟아낸다. 헬기가 뜨기에는 날씨가 도와주질 않았다. 게다가 에베레스트 사고 수습으로 헬기를 빼줄 수 없단다. 이번에 못 가더라도 다음 비행기 편으로 한국에 들어가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한데 무역업을 하는 전철종 대원이 "나는 꼭 가야 해. 중국에서 바이어가 오기로 되어 있어. 큰 액수란 말이야. 도장을 찍어야 한다고"며 우겼다. 이번에 가지 못하면 네팔의 현재 상황으로는 언제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보장이 없을 것 같았다.

대원들은 머리를 맞대고 다시 방법을 찾았다. 차로 이동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포카라공항으로 갔다. 웃돈을 주면 국내선 여객기를 탈 수 있을까 싶어 공항 관계자를 만났다. "한 명만 보내 줄 수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제 왔더라면 탑승할 수 있었던 국내선 비행기표가 있었다. "이 표를 오늘 사용해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가능하다"고 한다.

↑ [월간산]5 안나푸르나 2, 3, 4봉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마낭마을. 보통 이곳에서 하루를 더 묵으며 고소 적응을 한다.

오전 11시, 비가 그쳤다. 첫 비행기가 활주로에 들어온 시간은 오후 1시가 다 돼서였다. 포카라에 두 번째로 들어온 예티항공 비행기를 타고 카트만두에 들어선 것은 오후 2시. 이미 대한항공 탑승시간을 넘겨 버렸다. 하지만 세계 곳곳에서 날아온 비행기로 공항이 거의 마비된 상황을 감안하면 대한항공도 늦게 도착했을 확률이 크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어서 오십시오. 대한항공입니다"20㎏이 넘는 카고백을 들고 300m 거리의 국제선 출국장이 보이는 곳으로 뛰었다. 엄청난 사람들로 가득 찬 공항은 이미 몇 번의 원정으로 익숙하다. 바로 대한항공 카운터로 향했다. 수화물 칸에 여권을 내밀었다. 난처한 표정의 네팔 직원. 이미 우리 표를 다른 사람에게 팔아 입장시킨 것이다. 직원과 협의하는 사이 3명의 대원은 공항을 빠져나가 자전거 분해를 시작했다. 트럭에 실어 공항에 미리 보내놓은 것인데 지금 가져가지 않으면 분실될 것이 뻔하기 때문에 기를 쓰고 자전거를 분해했다. 다들 몇 백만 원을 호가하는 자전거들이다.

"야, 자전거 버려, 이미 문 닫았어. 빨리 가야 한다고."

다급한 나머지 한 대원이 소리친다.

↑ [월간산]1 흰 산을 보며 라이딩하는 즐거움에 눈은 호강을 하지만 언덕이 나오면 숨을 헐떡이기 바쁘다. 2 많은 눈으로 자전거를 질질 끌고 넘어야 하는 토롱라.

간신히 포장한 자전거를 수화물로 넘겼다. 출국장으로 가는 길은 엄청난 인파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지진을 피해 빠져나가는 사람들인 것 같았다. 공항 직원을 붙잡고 "시간이 없다"고 애원하자 모든 출국 과정을 생략해 줬다. 출국장의 바리케이드를 뛰어넘으니 대한항공 승무원들이 보인다.

"어서 오십시오. 대한항공입니다."

반가운 인사에 온몸의 힘이 빠졌다. 이내 이륙한 비행기는 지진의 현장, 네팔을 떠나고 있었다.

토롱라패스는?해발 5,416m에 위치한 고개다. 바람이 심하기로 유명하기 때문에 마지막 캠프인 하이캠프(4,850m) 로지에서 보통 새벽 4시 정상으로 출발한다. 해발 4,500m를 지나면서부터는 눈이 상당히 쌓여 있다. 오전 10시를 넘기면서 눈이 녹기 때문에 정상에 되도록 이른 시간에 도착해야 한다. 발목이 긴 등산화를 추천한다. 5월 중순 이후로 또는 10월 전까지는 눈이 녹아 등산로가 드러나며 가벼운 트레킹화로도 오를 수 있다.

↑ [월간산]3 최난익, 전철종, 박운범 대원이 토롱라(5,416m) 정상에 올랐다.

안나푸르나 라운드 서킷 여행정보출발점인 베시사하르에서의 토롱라패스를 넘고 좀솜을 지나 푼힐을 거쳐 나야풀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말한다. 이 코스를 모두 통과하는 데는 약 12일이 걸린다. 그러나 MTB로는 따또바니까지만 가는 것이 좋다. 도로를 만나는 따또바니부터는 상당히 큰 차량들이 운행하기 때문에 위험하다. 따또바니에서 지프에 MTB를 싣고 이동하면 된다. 차량으로 이동하는 포카라까지 약 10일이 걸린다. 반면 카투만두에서 좀솜공항에 내려 이곳을 출발점으로 묵티나트를 거쳐 토롱라패스를 역으로 넘어도 된다. 베시사하르까지는 약 8일이 걸리지만 해발 2,720m인 좀솜의 고도에 몸이 적응이 덜된 상태라 고산병에 주의해야 한다. 좀솜 위의 자르콧(3,550m)에서 하루 쉬며 고소적응을 하고 다음날 출발하면 된다.

안나푸르나 라운딩 서킷 코스카트만두 - 베시사하르 - 참체(버스 이동) - 다라파니 - 티망 - 차메 - 어퍼피상 - 갸루 - 마낭 - 토롱패디 - 하이캠프 - 토롱라패스 - 묵티나트 - 자르콧 - 좀솜 - 칼로바니 - 따또바니

MTB 팁자전거는 가벼운 하드테일의 크로스컨트리 또는 다운에 능한 풀샥의 트레일 바이크를 준비한다. 올마운틴처럼 자전거가 너무 무거우면 업힐에서 버리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라이딩 코스에는 날카로운 돌들이 많다. 너무 얇지 않은 돌기가 어느 정도 있는 타이어를 선택한다.

토롱라패스를 넘으면 오르막 없이 하루 종일 내려간다고 봐도 된다. 브레이크가 열을 받기 때문에 가끔 점검해야 한다. 불규칙한 노면에서 진동에 의해 볼트가 풀릴 수 있다. 사전에 록타이트를 발라 주는 것이 좋다.

↑ [월간산]

해발 2,500m를 넘으면서 산소 농도가 지상의 70% 이하로 감소한다. 물통은 2개를 준비해 수분 보충을 충분히 해준다. 그래야 고산병에 걸리지 않는다. 머리 보호에 필수인 헬멧과 간식, 공구, 겉옷을 넣을 배낭(20~30리터) 그리고 팔꿈치, 무릎 보호대가 있으면 안전한 라이딩이 된다.

운반 시 패킹은 자전거 파손이 생기지 않도록 하드케이스나 자전거용으로 나온 담브라박스를 사용한다. 현지인들은 자전거에 대한 상식이 전혀 없기 때문에 대충 포장을 했다가는 고가의 자전거가 중고로 전락한다.

[미니인터뷰]

가이드 밍마 셰르파한국에서 3년간 생활한 경험으로 한국어가 능통하다. 어떨 때 보면 '한국인 아닌가?' 란 착각이 들 정도다. 에베레스트 팍딩 지역에서 태어난 밍마는 한국 산악인들과 인연이 깊다. 블랙야크의 후원으로 히말라야 8,000m급 14개봉우리를 돌며 화폭에 담아낸 곽원주 화백을 도왔으며, 탤런트 조인성씨가 광고 촬영차 방문했을 때도 가이드를 맡았었다.

히운출리 북벽 원정 도중 사고를 당한 고 박종성, 민준영 대원의 추모탑을 찾아 매년 방문하는 충북연맹의 박연수 사무처장 또한 항상 가이드 했다. 고산에 대한 전문 지식으로 안전한 산행을 책임지고 네팔 전역을 돌며 한국인 대상 전문 가이드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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