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하고 공략하며 한국문학의 경계를 넓혀온 20년

2015. 7. 2. 19:5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 한겨레문학상 20주년 대담

한겨레신문사가 주관하는 장편소설 공모인 한겨레문학상이 올해로 20년을 맞았다. 오는 10일 저녁 7시 한겨레신문사에서 열리는 20회 한겨레문학상 시상식을 기념해 역대 수상자와 심사위원 네 사람이 대담을 나누었다. 올해 수상자인 한은형과 2008년 13회 수상자 윤고은, 2009년 14회 수상자 주원규 그리고 가장 많은 심사를 맡았던 작가 박범신이 지난달 22일 오후 한겨레신문사 회의실에 마주 앉았다.

윤고은(이하 윤)

이 자리는 한겨레문학상 20주년을 기념해 역대 수상 작가들과 심사위원 '대표'로 박범신 선생님이 함께 대담을 나누는 자리입니다. 외람되게도 제가 사회를 겸하게 되었습니다. 본격 대담에 들어가기 앞서 참석하신 분들의 근황을 먼저 들었으면 합니다. 먼저 박범신 선생님은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박범신(이하 박)

'5촌2도'랄까요, 일주일에 닷새는 논산에서 지내고 이틀은 서울에 와 있습니다. 지금 문학동네 인터넷 카페에 '꽃잎보다 붉던'이라는 장편을 연재하고 있는데, 늙은 남녀 주인공의 치매와 죽음을 그리자니 쓰는 저까지 쇠약해지는 느낌이네요. 7월 초쯤 마무리할 예정입니다.

주원규(이하 주)

저는 비교적 무탈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제가 목사잖아요? 종교 경전 읽고, 교세도 좀 확장해서 지금은 한 20명 정도 모입니다.(웃음) 소설도 꾸준히 쓰고 있고요. 최근에는 테러리즘에 관심을 갖고, 어떻게 소설로 승화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한은형(이하 한)

저는 당선작 원고 마무리해서 출판사에 보내 놓고 지금은 일상적으로 써야 하는 산문 원고 쓰고, 밀린 책들 읽고 있습니다. 가을호 잡지에 단편 둘을 마감해야 하는데 무얼 쓸지 궁리하는 중입니다. 그러느라 그저 동네를 걷고만 있네요.

저는 <세계의 문학> 여름호에 '모두의 고백'이라는 장편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거짓말을 경매하는 이야기라서 머리가 굉장히 복잡해요. 집 근처 스타벅스 커피숍에서 글을 쓰고 뒤뚱뒤뚱 요가도 하고 그렇습니다. 이제 '한겨레문학상과 나'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 볼까요? 먼저 주원규씨에게는 한겨레문학상이 어떤 의미였나요?

저에게는 생계 측면에서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내 생각과 문제의식을 말할 수 있는 채널이 간절했는데, 한겨레문학상이 그 채널이 되어 주었죠. 또 저는 문학 전공이 아니라서 문학적 전문성이 부족했는데, 문학상 수상이 그 점에서도 용기를 주고 도움도 되었습니다.

저야말로 한겨레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본명 '고은주' 대신 필명 '윤고은'을 쓰면서 새롭게 시작한 셈입니다. 프로 작가라는 인식을 지니게 되기도 했고요. 문학상 수상 전에도 등단은 했지만 책 한 권 없는 어정쩡한 상태였는데, 처음 쓴 장편이 책으로도 나오니까 어떤 '문'을 통과한 느낌이 들었어요.

저는 2012년에 등단한 뒤 2년 반 만에 첫 소설집이 나왔는데, 바로 그 다음날 수상 소식을 들었어요. 결국 한 달 반 사이에 책이 두 권이나 나오게 된 거죠. 그 전에는 가끔 강연 가서도 민망할 때가 많았는데, 책이라는 실물이 생기니까 이제야 비로소 시작한다는 느낌이 듭니다.

내가 한겨레문학상을 처음 인식한 건 3회(1998년) 당선작인 한창훈의 <홍합>을 읽으면서였어요. 신선하고 마음에 들더군요. 심사를 처음 한 건 8회(2003년) 수상작인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때였어요. 뛰어난 소설이었지요. 한겨레문학상 당선작들은 의외로 다양합니다. 매우 전위적인 것도 있고 보수적인 작품도 있어요. '한겨레' 하면 낡은 운동권이라는 선입견이 있는데, 문학상만큼은 그렇지 않아요. 새로운 세대 문화 창달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고액 공모 문학상이 많지만 한겨레문학상만큼 안정적인 상은 드물어요. 심사위원으로서나 독자로서도 유능한 작가들을 많이 만나게 한 게 한겨레문학상입니다.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은 거의 다 사서 읽었습니다. 10회(2005년) 수상작인 <도모유키>(조두진)는 강력한 힘이 느껴지는 작품이었습니다. <싸이코가 뜬다>(권리, 2004년 제9회)는 아방가르드적인 느낌이었는데, 읽으면서 '이런 작품이 수상작이 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제게는 <나의 아름다운 정원>(심윤경, 2002년 제7회)이 처음 한겨레문학상에 대한 인상을 준 작품이에요. 최진영의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2010년 제15회)을 읽고는 깜짝 놀랐어요. 왠지 작가가 무서울 것 같기도 했고요.(웃음) 한겨레문학상은 해마다 새로운 느낌을 주는 것 같아요.

저는 심윤경과 박민규 선배 작품을 재밌게 읽었습니다. 심윤경 선배의 작품에서는 선하고 투명한 소녀의 정서가 느껴졌어요. 박민규 선배의 소설은 나로서는 쓸 수 없는 내용과 언어, 한국 문학에서 들을 수 없는 목소리여서 신선했습니다.

심사를 할 때는 장점보다는 결점을 먼저 보게 되는데, 몇년이 지나서 지금 수상작 명단을 보니 장점이 더 생각나네요. 하나하나가 새롭고 독자적이고, 한국 문학의 협소성과 고정성을 넘어서려는 시도가 많았어요. <굿바이 동물원>(강태식, 2012년 제17회)과 <표백>(장강명, 2011년 제16회)은 독특한 접근이 좋았고, 최진영의 소설은 고전적이면서도 새로운 매력이 있었어요. <여우야 여우야 뭐 하니>(조영아, 2006년 제11회)나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서진, 2007년 제12회) 모두 독특했어요. 다만, 내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자극적이고 내적 개연성이 부족한 작품보다는 큰 틀 안에서 문학적 아우라를 지닌 쪽이 더 좋더군요.

2000년대는 다중매체가 지배하는 시대인데 그 흐름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그러니까 문학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다중매체와 유기적 관련성을 지니는 작품들이 많다는 게 한겨레문학상의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상작 목록을 보면 어떤 규칙을 찾기 힘들어요. '젊음'이라는 느낌이 우선 다가옵니다. 이전에 있었던 것을 부정하고 틈새를 공략하거나 더 큰 보자기로 덮어 버리는 게 한겨레문학상 당선작들의 특징이 아닌가 싶어요.

저는 조금 생각이 다릅니다. 문학예술은 발전이나 진보하는 게 아니고 시대 구분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각각의 작품은 개별적인 의미가 있을 뿐입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늙은 소설이 가장 젊은 소설이 아닐까요?

화제를 조금 바꿔 볼까요? 한겨레문학상 수상자들은 7월에는 문학상 시상식에 오고 12월에는 한겨레출판 송년회에 참석하게 됩니다. 그렇게 1년에 두번씩은 만나다 보니, 약간 친척 같다는 느낌도 있어요.(웃음) 언젠가는 심윤경 선배가 수상 작가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열기도 했죠.

한겨레문학상 수상자들이 패거리를 이룰 필요는 없겠지만, 가끔 만나서 술 한잔 마실 기회가 있다면 좋겠지요. 글 쓰는 건 외로운 일이니까. 최다 횟수 심사위원으로서 저도 옵서버로 끼워 주면 고맙고요.(웃음) 아울러서, 새로 당선작이 나오면 역대 수상 작가들이 '독후 모임' 같은 걸 마련하면 어떨까 싶어요. 두세 사람이 발제를 맡고 나머지 사람들은 토론자로 참여하는 거죠. 다 모일 필요까지는 없고, 한 열명 정도만 모여도 좋지 않을까? 새로운 멤버에 대한 환영식도 겸해서 말이에요.

좋은 생각입니다. 당장 올해부터 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윤고은 작가가 회장을 맡아 모임을 이끌면 제가 총무로서 열심히 뒷바라지하겠습니다.(웃음)

저는 사실 문단 모임에 잘 안 나가는 편인데, 오늘 이렇게 선배들과 이야기를 나눠 보니 편안하고 좋네요. 막내로서 독후 모임에는 대찬성입니다. 사실 무관심보다는 비난이 낫지 않나요?(웃음) 한 작품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 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다 보니 팔자에도 없는 감투를 쓰게 될 모양입니다.(웃음) 한겨레문학상 20년을 돌이켜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제가 상을 받았던 7년 전 일이 새삼 떠오르기도 합니다. 메르스니 표절이니 뒤숭숭한 시국에 먼 길 마다 않고 오셔서 열성껏 대담에 참여해 주신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우리 모두 좋은 작품으로 계속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오늘 대담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정리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박근혜 대통령의 자승자박…'경우의 수'는 더는 없다김태호 "콩가루" 김학용 "xx야"…새누리 최고위 '난장판'"아버지, 저 소방관 됐어요"…끝내 전하지 못한 합격 소식[화보] 누구나 운전은 초보였다…'황당' 교통사고[포토] "나는 LGBT"…커밍아웃한 유명인사들

공식 SNS [통하니][트위터][미투데이]| 구독신청 [한겨레신문][한겨레21]

Copyrights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