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방울이라도..

엄진아 2015. 6. 29.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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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6.25 때 이렇게 가물었어요. 그래서 그 시절이 또 돌아온 것 같아요."

<인터뷰> "하늘을 우러러 단비를 갈구하오니..."

<인터뷰> "이거 하루종일 했는데 물이 안 나와!"

국내 최대 규모의 이 소양강댐은 약 29억 톤의 물을 담아둘 수 있는데요.

지금 저수량은 약 4분의 1... 7억 톤 정도에 불과합니다.

지난 1973년 준공 이후 역대 최저 수위에 근접했습니다.

물이 없다보니 발전 방류량도 평소의 20% 수준으로 줄였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가뭄 때문인데요.

그 실태를 취재했습니다.

소양호 안에 있는 사찰, 청평사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산허리마다 황톳빛 맨 살이 드러납니다.

그렇게 10여 분, 배가 멈춥니다.

청평사는 아직 멀었지만 물이 말라 더 갈 수가 없습니다.

<녹취> "자. 조심해서 나오십시오."

울퉁불퉁 정비되지 않은 호수바닥, 흙길입니다.

노끈으로 대충 매어 놓은 길을 따라 걷습니다.

<녹취> "아유. 더워..."

보이는 거라곤 메마른 돌맹이와 흙, 무성한 잡초 뿐입니다.

<인터뷰> 조현아(관광객) : "사막 같기도 하고. 우리나라 같지 않다는 느낌?!"

그렇게 300여 미터를 걸어가자 콘크리트로 만든 길이 보입니다.

불과 석 달 전만해도 배가 들고나던 선착장이 있던 자리입니다.

<인터뷰> 박충선(소양호 유람선 직원) : "(물이) 많이 빠진 편이죠. 예년보다 (수위가) 4~5미터 정도 더 빠진 거예요."

큰 물줄기를 따라 상류로 좀 더 올라가봤습니다.

작은 배를 빌려타고 5km.

넓은 벌판과 만납니다.

물에 잠겨있던 강바닥입니다.

쩍쩍 갈라진 땅으로 걸어 들어가니, 폐그물을 뒤집어 쓴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습니다.

42년 전, 마을이 수몰되기 전 주민들이 기도를 드리던 성황 나무입니다.

<인터뷰> 이광배(지역 주민) : "아무리 갈수기라고 해도 이래본 적은 없었어요. (나무) 바닥까지 싹 드러나보긴 이번이 처음이예요."

상류로 더 상류로.

물길은 아예 끊겼고, 물이 빠진 자리에 작은 배들만 덩그러니 놓여 있습니다.

물고기를 잡아 가두던 어장과 그물, 어선엔 흙먼지가 쌓였습니다.

<녹취> "(이게 원래 물 위에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그렇죠. 물 위에 있어야죠."

강에서 고기를 잡던 어민들은 막노동으로, 공공근로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종태(인제 남면 내수면어촌계장) : "일거리라도 있어야 공납금이고 뭐고 내고 그러는데 일거리도 없지. 소득이 없잖아요. 그래서 봄에 (군청에) 얘기해 가지고 한 게 공공근로 사업."

우리나라 서쪽 끝 민통선 이북 지역.

갈라진 논바닥이 바싹 타들어가고 있습니다.

애써 심어놓은 모는 지푸라기처럼 말랐습니다.

<녹취> "이정도는 뭐 이미 끝난거고. 이건 다 끝났잖아."

물을 대도 그 때 뿐, 더이상 방도가 없어 아예 올해 농사를 포기한 논도 부지기수입니다.

<인터뷰> 김주동(인천 강화군 농민) : "아 비 좀 왔으면 얼마나 좋겠나. 이렇게 딱 비구름이 올 때 빗방울이 쭉쭉 내려줬으면 좋겠다."

비를 기다리며 비워둔 밭.

더이상 늦출 수 없어 마른 땅에 콩을 심습니다.

수확을 장담할 순 없습니다.

<인터뷰> 배봉림(인천 강화군 농민) : "먹든 못 먹든 심어놔야 해요. 어떡해. 심어야지. 이렇게 이렇게 말랐으니 이거이거."

올해 들어 중북부 지역에 내린 비의 양은 평년의 절반 정도에 불과합니다.

인천과 경기, 강원, 경북, 충북, 전국 5개 시도가 가뭄 극심. 또는 가뭄 발생 지역으로 분류됐고, 농경지 73제곱킬로미터가 물마름과 시들음 등 피해를 입었습니다.

여의도 면적의 25배 입니다.

옥수수와 감자, 배추 등 밭작물의 30%는 아예 모종을 심지 못했고, 애써 심어놓았어도 수확도 하기 전에 밭에 물을 대느라 쓴 돈 때문에 적자 계산부터 해야 할 판입니다.

<인터뷰> 김시갑(강릉 고랭지배추생산자협의회장) : "열하루를 꼬박 물을 줬어요. (그럼 비용이 들잖아요?) 비용이 한 천 만 원? 비가 정상 수준으로 와줬다면 사실 그 돈은 들어가지 않는 돈인데."

래프팅 등 강과 연계된 관광산업과 한우와 돼지, 양계 등 축산 농가도 가뭄 피해를 피해갈 수는 없습니다.

<인터뷰> 이웅재(양계 농민) : "물을 못 마시면 질병이 오고 집단폐사의 가능성이 높죠."

사람이 먹고 쓸 물도 부족합니다.

<녹취> "실례합니다."

지하수를 사용하는 이 마을은 60여 가구 중 절반 정도가 물이 부족해 불편을 겪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복순(인천 강화군) : "조금 받아놓고 쓰고 화장실도 밤에는 받아놓은 물 갖고 쓰고, 낮에는 밖에 (재래식) 화장실로 다녀."

서해 7개 섬과 강원 속초 등 일부 지역은 제한급수에 들어갔습니다.

급수차는 쉴 새없이 돌아다니지만, 갈증을 해소하기엔 역부족.

빈 논 바닥을 포크레인으로 파고, 관정을 연결해 지하수를 찾습니다.

가파른 산비탈, 계곡물도 긴 호스로 끌어 내립니다.

단 한 방울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찾아갑니다.

<인터뷰> 김상윤(주민) : "이 물로 이제 생활용수, 세탁기, 샤워, 설거지까지."

지난 주부터 제주와 전라 지역을 중심으로 장맛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이마저도 남부지역에 머물러, 가뭄 피해가 가장 심각한 중북부 지역 해갈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기상청은 다음달 말은 되어야 중북부지역에 100밀리미터 이상의 비가 본격적으로 내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현수(기상청 장기예보관) : "장마전선이 점차 북상함에 따라 중부지방에서도 7월 중순 이후에는 예년 수준의 비가 내릴 것으로 전망됩니다."

정부는 급수차와 굴착기 5천여 대, 2만 3천여 명의 인력을 투입해 급수 지원에 나섰습니다.

가뭄이 올해에만 특이하게 나타난 건 아닙니다. 전문가들은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있고, 현상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지난 2000년 이후, 모두 10차례 가뭄이 발생했습니다.

2~3년에 한번 꼴로 크고 작은 가뭄이 발생하다, 2010년 이후에는 거의 매년 기록되고 있습니다.

가뭄이 계속되다보니 지난해 7월 기준, 국내 주요 댐 저수율은 평균 33%로 떨어졌습니다.

지난 30년 간 평균 저수율 64%에 비하면 절반 수준입니다.

인천 강화지역 평균 저수율은 현재 6%에 불과합니다.

댐에 모아둔 물이 매년 줄어들다보니, 그 해, 또 그 다음해 비가 적게 오면 피해는 훨씬 심각해집니다.

<인터뷰> 배덕효(세종대 건설환경학과 교수) : "7월 초까지 비가 안 온다고 이렇게 예상들을 많이 하는데, 그러면 다목적댐에서 생활용수나 공업용수를 공급못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게되면 국가적으로 굉장히 심각한 상황까지 갈 수가 있는..."

6년 전 겨울, 강원도와 충청도, 전라도 등 중남부 지역은 극심한 가뭄에 시달렸습니다.

학교에서는 설거지 물을 아끼기 위해서 밥 대신 빵으로 식사를 대체했고, 마을 원로들은 기우제를 지냈습니다.

주민들은 계곡의 얼음물을 깨서 먹을 물을 구했습니다.

<인터뷰> 천순익(강원도 태백시(지난 2009년 2월)) : "겨울에 더 얼었을 떄는 도끼로 깨서 조그만하게...바가지도 안들어가는게 얼어가지고. 못살아요."

대통령까지 가뭄 현장을 둘러본 끝에,

<인터뷰> 이명박(前 대통령(지난 2009년 2월)) : "국민들이 물 부족 국가라고 해도 심각성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말만 물 부족 국가라고 했지. 이번에 실감하네."

정부는 근본 대안이 필요하다며 중장기 대책을 내놨습니다.

전국 13개 식수전용 저수지 개발과 상수전용 저수지 치수능력 증대, 노후 수도관 교체.개량 등 6개 사업 입니다.

지금, 이 대책은 어떻게 추진되고 있을까?

식수.상수전용 저수지는 개념조차 모호한 사업이 됐고,

<녹취> 농림부 관계자(음성변조) : "제가 알기론 없어요. 식수전용 저수지를 만드는 건 없어요. (그럼 상수전용 저수지라는 건있나요?) 꼭 저수지여야 하나요? 거기에다 포커스를 맞추는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상수도 급수체계 조정은 아예 시작도 못했습니다.

<녹취> 환경부 관계자(음성변조) : "저희가 신규 사업으로 추진했었는데 그게 신규 사업으로 반영이 안됐어요."

노후 수도관 교체.개량사업도 환경부가 해마다 예산을 올렸지만, 거의 대부분 삭감됐습니다.

<인터뷰> 황석태(환경부 수도정책과장) : "(상수도관 가운데) 30% 이상이 지금 20년 이상된 관입니다. 여기서 새는 부분의 양이 공식 통계만으로도 (연간) 6억 4천만 톤이 되거든요. 팔당호의 거의 3배에 육박하는 수준입니다. 이 새는 물을 우선 잡지 않으면 가뭄에 곤란을 겪을 수 있다는."

매년 장마가 와서 일시적으로 가뭄 관련 민원이 해결되면, 중장기 가뭄 대책이 국정 우선 순위에서 번번이 밀렸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이번에도 올 10월까지 가뭄 극복 중장기대책을 내놓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인터뷰> 배덕효(세종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 : "예를 들면 농촌지역이나 그 다음에 산간, 계곡 지역이나 또 해안 지역이 가뭄에 대해서 대비책이 다 달라야 할텐데 지금은 똑같거든요. 이런 것들을 지자체의 특성에 맞게끔 하나하나 세워줄 수 있는 그런 (가뭄)경감 센터를 만드는 것들이 중장기적으로 필요하다고 봅니다."

땅과 강이 마르고, 그 안에서 먹고살던 사람들이 시름하는 지금, 주기적으로 가뭄이 되풀이되는 상황에서 물을 충분히 확보할 기반 시설이 없다면, 악순환은 반복될 수 밖에 없습니다.

엄진아기자 (aza@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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