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1분1초와의 '사투'

정채희 기자 2015. 6. 22. 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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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광속 전쟁' / 르포-택배기사의 하루

34.9도. 107년 만에 6월 상순 최고 기온을 기록한 지난 11일, 서울시 영등포구에 위치한 'CJ대한통운 영등포 사업장(터미널)'을 찾았다. 전날 취재를 위해 접선(?)한 택배기사는 푹푹 찌는 날씨에 자신의 화물차량 짐칸에 앉아 운송장 분류작업에 한창이었다. 배송 전 고객과의 통화에 열중인 그에게 말을 걸자 그와 그의 동료들이 한목소리를 냈다. "남자분이 오셨어야지. 오늘 일도 많은데…."

우스갯소리였지만 진심이 담겼다. 초보자인 기자가 그곳에 서 있는 일, 취재 차 질문을 던지는 일까지 '민폐'로 여겨질 만큼 단 1초도 허투루 쓸 시간이 없었다.

/사진=머니위크 DB

◆259개의 짐… 1초가 아깝다

오전 11시30분. 보통의 직장인이라면 오전업무를 마치고 점심시간에 들뜰 시간이지만 이들의 시계는 달랐다. 오전 7시부터 시작된 하차작업(전국 각지에서 모인 택배물량을 각자 맡은 권역에 따라 차량에 싣는 일)이 끝나고 본격적인 택배 업무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택배기사들은 이미 오전 10시 먼지가 날리는 터미널 바닥에 박스를 깔고 앉아 10분 만에 아침 겸 점심을 때웠다. 그들은 "무거운 걸 들어야 하기 때문에 밥을 먹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다"고 말했다.

동승을 허락받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일일 보조가 되는 것을 자처했지만 배송 한건당 수수료를 받는 그들의 업무 특성상 초보자가 끼어드는 것이 피해를 줄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하차작업을 완료하고 터미널에서 이제 막 출발하려던 7년차 박창현씨의 차량에 올라탔다. 박씨는 영등포구 양평동3가 일대의 번지(주택·상가 등 아파트 이외 권역) 3곳과 아파트 16개동을 담당한다. 그가 맡은 오늘의 물량은 총 259개. 어제는 360개를 처리하느라 밤 10시에 귀가했다고 말했다.

"화·수요일 물량이 제일 많아요. 주말 동안 각지에서 모인 물건들을 월요일에 집하하면 사실상 화요일부터 배송이 시작되기 때문이죠. 특히 요즘에는 사회적 이슈(메르스) 때문에 물량이 많이 늘었어요."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된 오후 12시20분. 터미널을 출발한 박씨의 차량이 첫 배송지 OO중학교에 도착했다. 6개, 10개, 7개…. 번지 3곳을 모두 돌았지만 그의 등 뒤(차량 뒷칸)에 실린 짐은 좀처럼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번지 3곳을 돌고 아파트로 넘어가기 전 잠깐 휴식을 취해요. 아파트로 가면 정말 쉴 틈이 없어요." 흘러내리는 땀이 다 식기도 전, 짧은 휴식을 끝으로 근처 아파트로 이동했다. 총 9개동으로 770세대가 거주하는 25층의 고층 아파트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배달 물건을 분류하는 작업이 진행된다. 오전 하차작업에서 배송지 순서대로 짐을 실어놨지만 동별, 경비실의 위치에 따라 분류작업을 다시 한다.

"이동카트에 제 키만큼 물건을 쌓을 거예요. 6동을 한꺼번에 해야 시간을 아낄 수 있어요. 어릴 때도 안했던 테트리스 게임를 택배하면서 하고 있죠. 많은 물건을 무너지지 않게 쌓으려면 어쩔 수 없어요."

효율적인 이동을 위해 배송 순서는 물론 물건의 크기와 무게 등을 고려한다. 그의 키보다도 높게 물건이 쌓였지만 이동 중에 택배상자가 떨어지는 일은 흔치 않다.

아파트 현관에 도착하면 또 다시 분류작업이 시작된다. 많게는 아파트 한동당 10개 가까이에 달하는 물건을 현관 앞에 놓고, 호수별로 일일이 인터폰을 누른다. 응답 시 집으로, 무응답 시 경비실로 배달한다. "솔직히 이 시간이 제일 아까워요. 인터폰을 늦게 받는 분들도 있기 때문에 끊어질 때까지는 연결음을 듣고 있어야 하는데 한집당 거의 1분이 소요돼요."

초조하기는 엘리베이터 탑승 시에도 마찬가지. 힘을 덜어주지만 한번 놓치면 그의 퇴근시간은 갑절로 늘어난다. 인터폰으로 재중을 확인했어도 바로 열어주는 이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흉악한 범죄에 최근 메르스 이슈까지 고객 중 일부는 '문 앞에 두고 가세요'라고 말하거나 또 어떤 이들은 인터폰을 받고도 응답이 없다.

동별로 돌고 나면 경비실로 가야 할 택배들이 남는다. 경비실에 택배 대장을 적어놓고 그 안에 물건들을 보관하면 아파트 배송작업이 완료된다.

A아파트가 끝나면 B아파트로 넘어간다. 차량에서의 분류, 동별 분류, 응답별 분류…. 오전 7시부터 시작된 분류작업이 저녁 늦게까지 계속된다. 이 과정에서 물건을 들고 나르는 작업이 수도 없이 반복된다. 박씨의 입에서도 연신 앓는 소리가 터져 나온다.

"2년 전에 허리디스크 수술을 했어요. 2리터 생수 12개 묶음이 약 25kg인데 하루에도 수십번 들다 보니까 허리가 버티지를 못하더라고요. 저 말고도 대다수 택배기사들이 앓고 있는 직업병일거예요." 이날만 해도 생수와 쌀가마니, 도서세트 등 상당한 무게를 자랑하는 짐들이 259개 물량 곳곳에 숨어 있었다. 그는 "여름은 그나마 나은 편"이라며 "김장철이 오는 가을에는 절임배추와 속까지 채운 김장김치의 공습이 시작된다"고 덧붙였다.

/사진=머니위크 DB
/사진=머니위크 DB

"너무 힘들어서 여유가 없어요"

이날 오후 12시에 시작된 배송작업은 오후 7시45분이 돼서야 끝났다. 하지만 끝은 오지 않았다. 회사와 계약된 편의점에 들러 고객이 맡긴 택배를 찾고, 터미널에 다시 이 물건을 상차하는 과정이 남았다. 박씨와 그의 동료들은 집하한 물건을 전국으로 배송하기 위해 다시 시작지점으로 돌아갔다. 밥 때는 이미 한참 지나 있었다. 그는 보통 10시에 저녁을 먹는다고 말했다. 위장병은 당연한 듯 따라왔다.

회사는 최근 택배경쟁이 심화되면서 서비스를 강점으로 내세운 '감성택배'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산처럼 쌓여있는 물량과 무게에 짓눌릴 때면 미소짓는 것마저 쉽지 않은 순간이 온다.

"감성서비스요? 저희가 하기 싫은 게 아니라요. 물량에 치이다 보면 육체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여유가 없더라고요."

상차작업을 끝으로 13시간에 걸친 택배작업이 완료됐다. 그의 말 대로 업무 중간중간 쉬는 시간은 채 30분이 되지 않았다. 이 짧은 시간에도 고객의 전화가, 차를 빼달라는 주민의 요청이 쉴 새없이 밀려 들었다. 그럼에도 그는 고객에게 바라는 것이 있냐는 질문에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냥 웃는 얼굴로 물건 받아주시면 그것으로 족해요."

☞ 본 기사는 <머니위크>(

www.moneyweek.co.kr

) 제38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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