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혈 국가대표 강수일, 발모제에 날아간 꿈

2015. 6. 17.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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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일은 지난해 포항 스틸러스에 임대돼 축구인생의 전환기를 맞았다. 황선홍 감독의 지도 아래 6골·3도움을 기록하며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제주 유나이티드로 복귀한 올해는 14경기를 뛰면서 5골·2도움의 성적을 올리며 뛰어난 활약을 펼쳐 태극전사로 뽑혔다.

트레이닝복 차림의 한 남자가 터벅터벅 걸었다. 이내 자신을 향하는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지자 한숨을 내쉬었다. 간절히 바랐던 국가대표의 꿈을 이루기 직전 금지약물 양성 반응으로 말레이시아에서 귀국길에 올랐던 혼혈 축구선수 강수일(28·제주 유나이티드)이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그는 6월 12일 인천공항에서 취재진을 만난 자리에서 “힘들게 간 위치에서 이런 실수로 상황이 이렇게 돼 너무 슬프다”며 “나 자신에게 실망스럽다”고 고개를 떨궜다.

평가전 직전 출전선수 명단에서 제외

강수일은 이틀 사이에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이틀 전인 10일 오전만 해도 강수일은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훈련 내내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는 그에게 울리 슈틸리케 축구대표팀 감독(61)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축구에 대한 이해력도 좋은 선수다. 소속팀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고 있고 측면과 중앙을 오갈 수 있는 멀티 능력들도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서귀포 전지훈련에서 국가대표로 뽑히고도 정작 경기는 뛰지 못했던 아픔을 이번엔 달랠 수 있을 듯했다. 그도 당당한 한국 축구의 국가대표 골잡이였다.

그러나 강수일의 운명은 불과 하루 만에 롤러코스터처럼 추락했다. 강수일은 UAE전이 열린 말레이시아 샤알람의 샤알람 스타디움을 향한 버스에 타지 않고, 숙소에 머물라는 지시를 받았다. 경기 직전 배포된 출전 선수 명단에서도 제외됐다.

취재진이 대한축구협회 관계자에게 질문하자 돌아온 답은 충격적이었다. 강수일이 지난달 5일 울산 현대와의 K리그 클래식 경기 후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에 의뢰해 실시한 불시 도핑테스트에서 양성 반응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협회는 10일 밤 늦게 프로축구연맹에서 연락을 받았고, 이를 다시 슈틸리케 감독에게 통보하면서 출전이 불발됐다.

프로축구연맹은 “강수일이 도핑테스트 A샘플 분석 결과 스테로이드의 일종인 메틸테스토스테론이 검출됐다”며 “남성호르몬인 메틸테스토스테론은 상시 금지약물에 해당된다”고 설명했다. 국제축구연맹(FIFA) 규정상 도핑 양성 반응이 나온 선수는 즉시 해당 협회가 주관하는 모든 일정에 참여할 수 없다. 결국 강수일은 팀 동료들이 미얀마와의 러시아 월드컵 2차예선 1차전을 위해 태국으로 건너갈 때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했다.

강수일은 경기도 동두천 미군부대에서 근무하던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다문화가정 출신으로 잘 알려진 선수다. 어릴 때 ‘마이콜’(만화 둘리에 나오는 가수 지망생)로 불리던 불량학생에서 축구선수로, 꿈을 꾸는 아마추어 선수에서 프로 축구선수로 성장하면서 다문화가정 청소년들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축구계 첫 금지약물 파동에 당혹

그는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프로 무대에 데뷔했던 2007년만 해도 유연한 몸놀림과 화려한 발재간과 달리 부족한 골 결정력이 약점으로 꼽혔다. 그러나 지난해 포항 스틸러스에 임대돼 축구인생의 전환기를 맞았다. 황선홍 감독의 지도 아래 6골·3도움을 기록하며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제주 유나이티드로 복귀한 올해는 14경기를 뛰면서 5골·2도움의 성적을 올리며 득점 8위에 오르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쳐 태극전사로 뽑혔다.

강수일은 지난 9일 말레이시아 현지에서 만난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부족한 실력에도 대표선수가 돼 어느 정도 꿈을 이뤘다고 할 수도 있지만 태극마크를 달고 나서 다시 새로운 꿈을 만들었다”고 기뻐했지만 금지약물에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지난달 제출한 A샘플에서 양성 반응이 나온 강수일은 규정에 따라 오는 19일까지 B샘플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제출할 수 있다. B샘플에서도 양성 반응이 나오면 강수일은 청문회 절차를 걸쳐 징계를 받게 된다.

프로축구연맹은 “축구계에서 금지약물 문제가 터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일단 강수일은 B샘플 결과가 나올 때까진 경기에 나오지 못한다. 만약 B샘플 결과에서도 양성 반응이 나온다면 규정에 따라 15경기 출전 정지 징계가 내려진다”고 밝혔다.

콧수염 때문에 바른 발모제서 남성호르몬 검출

강수일에게 기다리고 있는 징계는 프로축구연맹 징계가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 금지약물과 관련돼 명문화된 규정은 없지만 대한축구협회에서 추가 징계를 내릴 수도 있다. 최근 강수일처럼 도핑테스트에서 스테로이드 성분이 검출된 수영스타 박태환(26)은 국제수영연맹에서 18개월 자격 정지 징계를 받았고, 대한체육회에서 3년간 국가대표 자격 정지 징계를 받았다.

강수일의 추락이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가 발모제를 잘못 사용해 꿈을 잃어버렸다는 데 있다. 프로축구연맹의 설명에 따르면 강수일은 도핑테스트 당시 “콧수염이 나지 않아 선물 받은 발모제를 안면 부위에 발랐는데 혹시 문제가 되느냐”고 질의했다. 제주 유나이티드 관계자는 “혼혈선수로 외모에 대해 예민한 강수일이 수염이 나지 않아 여러모로 콤플렉스가 있었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불가능한 얘기도 아니다. 이종하 경희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발모제 중에는 남성호르몬이 포함된 제품이 있다. 현재 국내에선 사용이 금지됐지만, 구하는 게 어렵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해당 제품은 인터넷 쇼핑몰과 남대문시장 등에서 암암리에 판매되고 있다.

발모제를 잘못 발랐다가 도핑테스트에서 적발된 선수가 강수일이 처음도 아니다. 지난 2011년 KADA가 발간한 도핑 방지 교재에 따르면 2010년 한 사이클 선수는 얼굴에 생긴 흉터를 가리려고 발모제를 발랐다가 도핑테스트에 적발됐다. 이종하 교수는 “해당 발모제를 바를 경우 도핑테스트에서 메틸테스토스테론 성분이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강수일 개인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금지약물에서 예외는 없다”고 말했다.

강수일도 착잡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강수일은 “앞으로 처해지는 조치에 대해서는 구단과 협의해 대처하겠다”며 “쓰러지지 않고 다시 일어서서 좋은 모습을 보여 드리겠다”고 말했다.

<황민국 경향신문 스포츠부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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