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규의 미스터리 산책]증거 남기지 않는 치명적 살인무기, 전염병

2015. 6. 17.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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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추리소설에서 소재로 쓰이는 세균은 현실을 반영한다. 개인적 범죄보다 생물학 테러 쪽에 사용된다는 것이다. 의학 미스터리로 유명한 로빈 쿡은 <바이러스>에서 아프리카의 치명적 질병 에볼라 바이러스, <벡터>에서는 탄저균 등을 이용한 테러를 다루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들어본 적 없는 ‘메르스’라는 전염병 때문에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사람 많은 곳에 나가는 것도 꺼려지고, 누구를 만나는 것마저 어쩐지 찜찜한 느낌이 들어 사회생활이 위축되는 기분이다.

옛날 우리나라 어린이들을 공포에 빠지게 만들었던 ‘호환 마마’, 즉 호랑이로 대표되는 야수와 천연두로 대표되는 전염병은 과거에 비해 대단히 줄어들어 말 그대로 옛이야기처럼 되어버렸다. 외국의 자연보호구역에 가지 않는 이상 맹수에게 공격당할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유아기 때부터의 예방접종 덕택으로 사람들은 꽤 많은 질병에 면역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번 메르스 파문처럼 전염병은 여전히 인간을 위협하고 있다. 과학과 문화가 발전했지만, 어디선가 치료약이 없는 변종 전염병이 등장한다. 또 세계적인 교류가 빈번해짐에 따라 먼 외국에서 발생한 병이 어느 순간 우리나라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의학 미스터리 작가 로빈 쿡

식중독 세균 배양 이웃살해 계획

치명적 전염병이라는 살인 무기는 추리소설가도 가끔 사용하는 소재이다. 총이나 칼, 폭탄이나 독약과는 달리 일종의 자연물질인 세균은 범행의 증거가 남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머리 좋은 범죄자들은 치료약이 없는 전염병으로 사람을 공격하곤 한다.

프랜시스 아일스 <살인> 표지
명탐정 셜록 홈즈 역시 그러한 위험에 빠지기도 했다. 단편 <죽어가는 탐정>에서 홈즈는 어떤 사건을 조사하다가 갑작스럽게 심각한 열병으로 몸져눕고 만다. 친구이자 의사이기도 한 왓슨은 그를 치료하려 하지만, 홈즈는 그것을 거절하고 의사가 아닌 동양의 질병 전문가인 컬버튼 스미스라는 사람을 불러달라고 요청한다. 이 이야기는 당연히 홈즈가 살인 음모를 해결하고 범인을 잡으면서 끝난다. 범인이 사용한 동양의 병균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설명이 없다. 찔린 상처로 감염되어 발병 며칠 만에 사망할 수 있는 치명적인 질병이지만, 범인이 병에 걸린 홈즈의 옆에 거리낌 없이 접근하는 것을 보면 공기 중으로 쉽게 전염되는 병은 아닌 것 같다. 레슬리 클링어의 <주석 달린 셜록 홈즈>를 보면, 많은 홈즈 연구자들이 이에 대해 다양한 주장을 하고 있으나 모두 추측에 불과할 뿐이다. 코난 도일의 상상 속 세균일 수도 있다.

프랜시스 아일스는 <살의(殺意)>에서 세균 살인을 노리는 인물을 등장시킨다. 시골 의사 비클리는 사회적 지위의 상승을 노리고 8살 연상의 여성과 결혼했다. 10년을 살아오면서 성격차로 사이가 벌어진다. 이웃에 이사 온 여성들에게 마음이 끌린 비클리는 아내에게 이혼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교묘한 방법으로 아내를 살해한다. 이웃 여성들마저 그에게서 멀어지자 그는 질투심으로 식중독을 일으키는 세균을 배양해 살해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다.

위에 언급한 작품에 나오는 범죄자들은 모두 개인적인 세균 배양실을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들이 목표로 삼은 피해자 이외에는 전염될 가능성이 적은 병균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약간이라도 양심을 가지고 있다고나 해야 할까.

사실 전염병을 범죄 수단으로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작가가 꽤 연구를 해야만 신빙성 있는 작품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의학박사이자 일본의 추리소설가이기도 한 유라 사부로는 <미스터리를 과학하면>(1994)이라는 책에서 한 가지 에피소드를 적어놓았다. 1960년대에 그가 국립예방위생연구소에서 광견병 연구실장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 드라마 속의 광견병에 대한 의학적 고증을 위해 방송국 프로듀서와 각본가가 찾아와 새로운 작품의 줄거리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코난 도일 <죽어가는 탐정> 삽화

‘어느 교도소에서 탈옥한 두 명의 죄수가 들개에게 물린다. 한 사람은 그 자리에서 죽었지만 다른 사람은 산속으로 도망친다. 뒤를 쫓던 경찰의 조사 결과 두 사람을 문 들개는 광견병에 걸린 것으로 밝혀진다. 이제부터 사건은 단순한 도망자의 추적이 아닌 광견병 확산을 막아야 하는 중대한 문제가 된다. 그가 죽기 전 다른 사람을 물어뜯기라도 하면 광견병이 만연할 수도 있다. 이러한 우려는 기우가 아니라 실제로 벌어져 증세가 나타난 탈옥수는 사람들을 물어뜯으면서 광견병을 확산시키고 주변은 대공황에 빠지는데….’

마치 전형적인 흡혈귀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만든 듯한 내용인데, 이야기를 듣던 유라 사부로 박사는 ‘과학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제동을 건다. 우선 개가 광견병에 걸렸는지 확인하는 데는 4주 정도 걸리며(1960년대의 기술 수준이므로 지금과는 다를 수가 있다), 다음으로는 개에 물린 순간 병에 걸리는 것이 아니라 대략 2개월의 잠복기가 있으며 길면 1~2년 후에 발병할 수도 있다는 것. 마지막으로 개는 타액선을 통해 광견병 바이러스를 옮기지만 광견병에 감염된 사람은 타액선이 마비되기 때문에 침에 세균이 섞이지 않아 사람을 물어뜯는 것으로는 전염될 수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결국 방송국에서 찾아온 두 사람은 실망을 안고 떠났으며 드라마 기획 자체도 취소되었다고 한다.

영화 <안드로메다 스트레인>(1971)

해결 쉽지 않은 외계 바이러스요즘 추리소설에서 소재로 쓰이는 세균은 현실을 반영한다. 개인적 범죄보다 생물학 테러 쪽에 사용된다는 것이다. 의학 미스터리로 유명한 로빈 쿡은 <바이러스>에서 아프리카의 치명적 질병 에볼라 바이러스, <벡터>에서는 탄저균 등을 이용한 테러를 다루었다. 넬슨 드밀의 <플럼 아일랜드>에서는 플럼 아일랜드의 동물질병연구소에서 근무하던 과학자 부부가 살해된다. 이 연구소는 에볼라 바이러스, 탄저균 등을 비롯한 치명적 세균을 연구하는 곳이어서 혹시라도 이들이 유출되어 테러 목적으로 쓰이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 속에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나마 지구상에 존재했던 세균이라면 어떻게든 막아보겠지만, 그렇지 않은 세균이나 다른 것이라면 더욱 해결에 어려움을 겪는다.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마이클 크라이튼은 <안드로메다 스트레인>에서 외계의 바이러스를 등장시켰다. <먹이>에서는 공격성을 가진 극 미세 로봇 ‘나노스웜’을 등장시켜 사람들을 감염(?)시키게 만든다.

앞에 소개한 작품들은 소규모 감염, 혹은 일부 지역 감염 수준에 그쳤다. 이보다 대규모로 병이 창궐하는 주제를 다룬 작품은 추리소설보다 조금 더 큰 방향으로 흘러가 단순한 사건 해결보다 인간 군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슈퍼독감이 창궐한 스티븐 킹의 <스탠드>, 인간과 개 사이에 전염되는 괴질이 발생한 정유정의 <28> 등의 작품이 대표적이다.

소설은 긴박할수록 재미있지만, 현실에서의 전염병 창궐과 긴박한 분위기는 결코 달갑지 않다. 한시바삐 진정국면으로 접어들길 바랄 따름이다.

<박광규 추리소설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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