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복시리즈]더 좋은 한우를 만드는 사람들, 경북 축산기술연구소 한우연구실

2015. 6. 3.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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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축산기술연구소 한우연구실 정대진 박사(왼쪽)가 이준구 박사와 함께 씨수소의 정액을 스트로에 담고 있다.사진=윤경현 기자

경상북도 축산기술연구소 한우연구실 정대진 박사(왼쪽)가 당대검정을 진행 중인 수소에게 먹이를 준 후 건강상태 등을 확인하고 있다.사진=윤경현 기자

경상북도 축산기술연구소 한우연구실 정대진 박사(왼쪽)가 당대검정을 진행 중인 수소의 키와 너비 등 신체 사이즈를 측정하고 있다.사진=윤경현 기자

【 영주(경북)=윤경현 기자】"우리나라에 300만마리에 가까운 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소의 아버지는 수백마리에 불과합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얘기를 듣고는 놀란다. 하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소는 임신 280여일 만에 새끼를 낳는다. 보통 암소는 24개월부터 출산하고, 15∼20년 동안 사니까 일생 동안 대략 15마리 안팎을 낳게 된다.

특히 소는 부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래서 축산농가의 99%가 뛰어난 씨수소를 골라 인공수정을 한다. 자연교배 시 브루셀라 등 질병관리가 잘 안 되는 것도 축산농가들이 인공수정을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다. 유전적으로 우수한 씨수소의 선발은 축산농가의 수익을 높이고, 소비자에게는 질 좋은 축산물을 공급하는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단계다.

'KPN(Korean Proven Bull No)'은 능력검정 결과에 따라 선발된 씨수소에 부여되는 고유번호다. 씨수소의 여러가지 능력 가운데 유전능력만을 계산해 후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예상유전전달능력'을 평가한다. 이렇게 선발된 씨수소를 '보증 씨수소'라고 하며, 보증 씨수소의 정액을 채취해 인공수정용 정액을 생산하게 된다.

지난 달 28일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자체 씨수소 개발을 시작한 경북 영주시 안정면 소재 경상북도 축산기술연구소를 찾아 씨수소가 어떻게 길러지는 지를 들여다봤다.

■보증 씨수소가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5.5년

5월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더운 날씨였다. 오전 시간이었음에도 온도계는 이미 섭씨 30도 턱밑까지 도달해 있었다. 사방이 산과 나무로 둘러싸인 한적한 시골이어서 바람도 불고 시원할 거라 예상했지만 순진한 착각이었다.

'구제역'이 전국을 휩쓸고 간 후라 축산기술연구소로 들어가는 길은 꽤나 까다로웠다. 입구에서 내려 개인소독을 실시하고, 자동차도 한차례 소독액을 뒤집어써야 했다. 잠시 후 소들이 일용할 양식을 기르는 푸른 초원이 시원스레 기자를 맞아줬다. 풀밭 위에는 비닐로 꽁꽁 싸맨 건초더미들이 도처에 널려있었다.

수송아지들이 자라고 있는 축사로 들어가니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코를 잡고 얼굴을 찡그린 사람은 기자뿐, 연구소 관계자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들이었다. 등이 어른 배꼽에 닿을 만큼 자란 송아지들이 방(우리) 하나씩을 차지한 채 맑은 눈을 껌벅거리고 있었다.

8년째 이 곳에서 소들과 씨름하고 있는 한우연구실 정대진 박사(38)가 사료와 건초를 나눠주고는 일일이 상태를 점검했다. 그 다음으로 송아지의 체중을 재고, 자를 이용해 키와 너비를 꼼꼼하게 기록했다. 날뛰는 송아지를 진정시키기 위해 한참이나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보증 씨수소 선발과정은 당대검정과 후대검정으로 나뉜다. 경북 축산기술연구소, 농협 등에서 2년 4개월에 걸쳐 뽑은 후보 씨수소(당대검정)를 모두 농협 한우개량사업소로 보내 3년 2개월 동안 후대검정을 실시한다.

암소가 연구소로 들어오는 것부터 쉽지 않다. '뼈대 있는 가문 출신'이라는 자격조건 탓이다. 그래서 한우육종농가 등에서 엄선한 우량 암소를 들여온다. 이 암소를 보증 씨수소와 인공수정시켜 송아지를 낳게 된다.

송아지가 나오면 혈액을 채취해 족보에 나와 있는 부모가 '진짜' 부모인지 혈통을 대조하고 외모검사와 질병검사 등을 실시한다. 정 박사는 "송아지라지만 몇 달만 지나면 200∼300㎏이 나가기 때문에 채혈작업이 여간 힘든게 아니다"며 "소와 씨름하다 무릎이나 발목을 채이는 바람에 인대가 늘어나 고생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살아있는 동물을 다루는 일은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는 것과 달라 마음대로 안 된다"면서 "송아지들은 자주 아프기도 하고, 자다가 새벽에도 새끼가 나온다고 연락이 오면 달려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초 40㎏짜리 새끼를 출산한 적이 있어요. 보통은 30㎏이 넘어가면 크다고 하는데 말이죠. 새벽 2시에 4명이 가서 잡아당겼는 데도 걸려서 안 나오는 거에요. 결국 외부 수의사를 불러 출산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암소는 자궁이 찢어져 하는 수 없이 다음 날 도축하러 내보냈어요. 가만두면 죽으니까요. 새끼는 초유를 먹이다가 다른 암소에게 입양을 보냈습니다."

경북 축산기술연구소는 1년에 상·하반기 각각 100마리씩 교배시켜 약 160마리의 송아지를 얻는다. 이 가운데 절반가량은 암소다. 정 박사는 "나머지 80마리 중에서 체중과 외모 등을 봐서 40마리를 골라내는데 최소한 350㎏은 돼야 뽑힐 가능성이 있다"며 "그리고 6개월 동안 똑같이 먹인 후 '얼마나 잘 크나'를 검정해서 후보씨수소 1∼2마리를 선발하게 된다"고 말했다.

곁에 있던 김병기 한우연구실장(53)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체중이 아니라 혈통 등을 감안한 유전적 체중을 따진다"면서 "전국적으로도 1차로 700마리의 수송아지를 선발하고, 6개월 후 후보씨수소가 되는 것은 55마리 안팎에 불과하다"고 거들었다.

체중과 사료 섭취량을 비교해 효율성을 따진다. 적게 먹고, 살은 많이 찌는 소가 좋은 평가를 받는다. 정액심사도 빼놓을 수 없다. 사정량이나 정자의 활력, 정자 수 등이 평가대상이다. 또 암소를 대신해 사정을 돕는 '의빈대'에 잘 올라타는 지도 봐야 한다. 아무리 좋은 정자를 가졌다 하더라고 배출할 수 없으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당대검정이라는 1차 관문을 통과해야 소들은 비로소 'KPN1234'와 같은 이름을 얻을 수 있다.

농협 한우개량사업소에서 진행되는 후대검정은 더욱 가혹하다. 정 박사는 "후보 씨수소(55마리)를 3200마리의 우량 암소와 교배시켜 수송아지 500마리를 얻고, 이를 거세 비육해 육질 등을 검정한 후 보증 씨수소를 최종적으로 뽑게 된다"고 설명했다.

보증 씨수소로 선발되는 소는 한 해에 20∼22마리에 불과하다. 1년에 전국에서 태어나는 수송아지가 70만마리 정도라는 점을 고려하면 자그마치 3만5000대 1의 경쟁을 이겨내야 가질 수 있는 타이틀이 '보증 씨수소'다.

■구제역 직격탄…기르던 500마리 직접 살 처분

경북 축산기술연구소도 큰 위기를 겪었다. 지난 2011년 1월 구제역의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김 실장은 "당시 500여마리의 소를 기르고 있었는데 모두 살 처분했다"면서 "그것도 우리 손으로 직접…"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태어날 때부터 지켜봐왔던 소들이어서 더욱 가슴이 아팠다. 그중에는 분유를 사서 직접 먹이고 키운 송아지도 있었다. 정 박사는 "주사를 놓으면 송아지들은 2∼3초면 죽는다"며 "한창 분만시기여서 임신한 소들과 송아지들이 많아 가슴이 짠했다"고 소회했다.

경북 축산기술연구소가 배출한 최고의 보증 씨수소 'KPN586'도 은퇴한 후 이 곳에 머물다 구제역을 맞아 살처분됐다. 지난 2001년 9월에 태어나 2008년 12월 보증 씨수소로 뽑힌 KPN586은 생후 18개월 당시 체중이 508㎏이었고, 23개월 때는 무려 630㎏에 달했다.

KPN586은 보증 씨수소로 활약한 2년여 동안 무려 12만2241스트로의 정액을 생산해냈다. 그만큼 축산농가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는 얘기다. 김 실장은 "지금까지 국내에서 길러낸 1000여마리의 보증 씨수소 가운데 10위 안에 들 것"이라고 자랑했다.

KPN586의 능력은 후대축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후대축 2만1385마리 가운데 28.9%(6178마리)가 최고등급인 1++를 받았다. 1+등급까지 확대하면 57.9%(1만2390마리)나 된다. 1++등급의 출현이 2000마리를 넘는 보증 씨수소 가운데 단연 1위다. 3위인 'KPN507'의 1++등급 출현율(14.6%)과 비교하면 정확하게 두 배다.

김 실장에게 KPN586은 특별하다. 직접 길러낸 소인 데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기 때문이다. 김 실장은 "중앙정부가 지방자치단체의 씨수소개발 능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계기를 만든 것이 KPN586"이라고 했다. 그는 "차마 내 손으로 죽일 수가 없어 마지막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함께 산책을 한 후 외부 수의사에게 부탁했다"면서 "땅에 묻을 때는 눈물이 절로 나더라"고 했다.

살 처분이 끝난 뒤 김 실장과 정 박사의 발걸음이 바빠졌다. 우선 축사 내부를 처음 지은 것처럼 께끗하게 만드는 일이 급선무였다. 정 박사는 "물청소와 소독을 몇 번이나 반복하고, 사료도 모두 폐기처분했다"며 "연구소를 정상화하는 데만 2개월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김 실장은 "1년 내내 좋은 암소를 사기 위해 경남과 경북 일대를 돌아다녔다"면서 "좋은 소가 있다는 소식이 들리면 장소를 불문하고 한달음에 달려가곤 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암소만 300여마리를 사들였는데 가격도 30∼40%를 더 쳐주고 데려올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치열한 경쟁, 엄격한 심사를 거쳐 최종적으로 선정된 보증 씨수소의 경제적 가치는 어느 정도일까. 보증 씨수소 한 마리가 은퇴할 때까지 생산하는 정액은 대략 12만스트로에 이른다. 정 박사는 "씨수소 한 마리에서 정액을 한 번 추출하면 이를 희석해서 쓰기 때문에 한꺼번에 200∼300마리를 임신시킬 수 있는 양이 된다"며 "한 마리에서 너무 많이 추출해서 사용할 경우 근친도가 높아질 수 있어 12만스트로 수준에서 제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소비자인 축산농가의 선호도에 따라 정액의 가격은 스트로당 3000∼1만원 선으로 달라진다. 보증 씨수소 한 마리가 최대 12억원의 값어치를 하는 셈이다. 인기가 높은 최상위권 보증 씨수소의 정액은 추첨으로, 그것도 1인당 10스트로까지만 구입이 가능할 정도로 공급이 부족한 형편이다.

김 실장은 "지자체도 후대검정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며 "지자체에서 직접 정액을 생산·보급하면 근친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으나 지자체에서 선발된 보증 씨수소의 정액을 중앙정부와 타도에 5000∼1만개씩 할당 판매토록 하면 이를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blue73@fnnews.com 윤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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