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신' '은밀한 유혹'의 안타까움 [시네토크]

유진모 2015. 6. 2.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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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올해 한국 극장가는 외화의 강세가 지속적이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파죽지세를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와 ‘스파이’가 그대로 이어받았고 ‘악의 연대기’가 그나마 선전하고 있는 가운데 ‘차이나타운’ ‘간신’ ‘무뢰한’ 등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투모로우랜드’가 견제세력으로 딴죽을 걸고 ‘샌 안드레아스’가 ‘못 먹는 감 찔러보기’ 작전으로 끼어들었으며 곧 ‘매드 맥스4’를 넘볼 대작 ‘쥬라기 월드’가 판도를 뒤흔들 전망이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매드맥스4’는 1일 6만 4000여명(누적 관객 수 301만 600여명)을 동원해 1위를 지켰으며, ‘스파이’는 5만 6800여명(누적 관객 수 161만 4500여명)을 불러 모아 그 뒤를 이었다.

‘간신’은 2만 5300여명의 관객을 끌어들이며 3계단 오른 3위를 기록했다. 누적 관객 수 90만 6900여명. 그 뒤는 2만 4100여명의 ‘무뢰한’이다. 누적 관객 수 29만 6100여명.

하지만 두 작품은 모두 사실상 흥행실패다. ‘간신’은 지난달 21일에, ‘무뢰한’은 27일에 각각 개봉됐다. 비슷한 동원관객 수로 봐 6일 일찍 개봉된 ‘간신’의 최종관객 수가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순제작비만 60억 원이니 실제 총제작비를 70여억 원으로 추정할 때 최소 손익분기점인 200만 관객 동원은 쉽지 않아 보인다. 지금의 추세대로라면 앞으로 1달 반 이상 스크린 수를 유지하며 극장을 지켜야 하는데 그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증거는 지난달 14일 개봉된 뒤 첫 주 박스오피스 1위를 내달렸던 ‘악의 연대기’가 지난 1일 2만 100여명(누적 관객 수 206만 1700여명)의 관객으로 5위에 턱걸이하며 이제 흥행세가 현저하게 꺾인 데서 찾아볼 수 있다. ‘악의 연대기’같은 흥행작도 실질적인 ‘유통기한’이 1달여다. 그나마 개봉 초 하루 평균 7만 명 이상을 동원해야 그 수치가 가능하다.

‘무뢰한’ 역시 전도연과 김남길의 열연과 작품성의 탄탄함을 평단과 언론으로부터 인정받아 웬만큼은 관객을 끌어 모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와 비장미가 관객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1980년대 중후반 ‘영웅본색’ ‘첩혈쌍웅’ 등의 홍콩 누아르가 국내 극장가를 휩쓸 때만 하더라도 민주화 바람과 경제성장 덕에 누아르 특유의 어둠침침한 톤을 즐길 여유가 있었지만 ‘3포’를 넘어 ‘9포’까지 거론되는 현재의 극도의 열악한 경제상황 하에서 열패감만 더욱 자극할 누아르는 무리였다. 이는 ‘무뢰한’ 이상으로 평단의 호평을 이끌어낸 ‘차이나타운’이 손익분기점을 간신히 넘어 국내흥행만으로 약간의 수익을 올린 데 그친 것과 맞닿아 있다.

‘간신’은 ‘내 아내의 모든 것’의 훌륭한 작가 겸 감독 민규동의 회심의 첫 사극이라는 점에서 엄청난 기대감을 증폭시켰지만 ‘먹을 것 별로인 소문난 잔치’에 그쳤다. 흥행의 요소는 충분했다. 연산군 역을 맡은 김강우의 일생일대의 열연부터 ‘떠오르는 새별’ 임지연의 아끼지 않는 노출연기, 그리고 화려한 색감과 미장센부터 판소리를 도입한 세밀한 연출의 테크닉까지 꽤 신선한 시도가 돋보였다.

특히 단희 역의 임지연과 설중매 역의 이유영이 목숨을 놓고 동성애에 몰두하는 베드신은 한국영화사에 남을 만한 명장면이었기에 많은 관객의 선택이 기대됐다.

하지만 드라마와 영화 속에서 수없이 다뤄지고 변주돼 케케묵은 연산군의 폭군 캐릭터와 나름대로 공을 들였다는 끈끈한 에로티시즘 등은 인터넷이나 휴대전화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무한 야동의 세계’가 일상인 작금의 디지털 환경 속에서 변별성이 되지 못 했다. 관객이 이 영화를 찾거나 기억하는 것은 임지연의 매력과 김강우의 연기다. 그것뿐이다.

그 사이 ‘매드 맥스4’는 그야말로 화끈한 뒷심을 발휘하며 ‘로키 호러 픽처 쇼’처럼 영화사에 길이 남을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데 그 기세가 엄청나다. ‘어벤져스2’가 이미 빛의 속도로 1000만 관객을 돌파했음에도 불구하고 호불호가 확연하게 구분되는 것과는 달리 찬사 일색이라 돋보인다.

여기에 ‘스파이’가 복병이다. ‘소리 없이 강하다’는 광고 카피처럼 소리 소문 없이 관객몰이를 하며 실속을 챙기고 있다. 더구나 이 영화의 주인공은 섹시한 남자 주드 로도, 액션스타 제이슨 스태덤도 아닌, 뚱뚱하고 미모도 없는 ‘듣보잡’ 여자 배우라는 점에서 영화 자체의 저력이 무섭다.

한국영화의 위기는 이주에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4일 개봉될 범죄 멜로 ‘은밀한 유혹’에 대한 언론과 평단의 프리뷰가 부정적이다.

‘시크릿’의 윤재구 감독이 프랑스 작가 카트린 아를레의 범죄소설의 고전 ‘지푸라기 여자’를 각색하고 연출했는데 바꾼 결말이 관객의 뒤통수를 치기엔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다는 평가와 더불어 그 전까지의 진행이 환경만 바뀌었을 뿐 원작의 큰 범위에서 별로 달라진 게 없어 신선함이 부족하다는 게 중론이다.

<@1>특히 범죄멜로를 표방하면서 ‘신데렐라 신드롬’을 부각하지만 막상 내용상 범죄도 멜로도 중심을 잡지 못한데다 신데렐라 신드롬에 대한 메시지와 긴장감이 그다지 크지 않다는 게 결정적인 핸디캡이다.

자신을 아들로 인정하지 않는 마카오의 한국계 갑부 김 회장(이경영)에 대한 복수심과 그의 재산에 대한 욕심에 불타는 성열(유연석)이 김 회장의 전 재산을 가로챌 심산으로 절박한 위기에 처한 미모의 여자 지연(임수정)을 파트너로 끌어들여 사기결혼극을 펼친다는 게 기둥줄거리다.

하지만 지연은 괴팍하고 이기적이며 독선적인데다 사고로 죽은 전처에 대한 그리움을 떨쳐버리지 못해 세상과 담을 쌓고 폐쇄적으로 살아가는 김 회장을 단숨에 사로잡을 만큼 매력적이지 못하다. 더불어 지연이 빠른 속도로 성열에게 빠져드는 이유와 계기의 설명이 부족할뿐더러 피아노 하나 때문에 지연이 김 회장에게 인간미를 느끼고 갈등하는 복선 역시 설득력을 지니지 못 한다.

영화는 전반의 멜로와 후반의 범죄스릴러의 두 가지 챕터로 구분된다. 하지만 앞부분의 멜로는 치명적이지 못하고 뒷부분의 스릴러는 긴장감이 태부족하다.

신 스틸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조연은 영화의 재미의 주요 양념인 동시에 방점이다. 하지만 대표적인 신 스틸러인 박철민이 맡은 요트 선장은 작품의 메인 스토리의 주변을 겉돌 뿐 주연들을 살리거나 스토리의 받침대가 되지 못하고 슬며시 사라질 따름이다.

사실상 3번째 주역인 유미는 김 회장의 값비싼 양주나 훔쳐 마시는 철없는 소녀의 캐릭터에서 빙빙 돌아 오히려 몰입도를 방해할 뿐만 아니라 결정적인 장면에서 긴박한 변수로 작용하지 못한다. 이는 배역을 맡은 도희가 특유의 캐릭터 외엔 아직 변신의 표현력이 많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시나리오의 맹점 역시 크다.

결정적인 패착은 끝부분의 액션 신이다. 서스펜스나 스릴러에 대한 감독의 과한 집착 혹은 욕심이 과유불급의 진리를 간과했다.

오는 10일 ‘연평해전’이 있지만 다음날 개봉될 ‘쥬라기 월드’의 물량공세를 이겨낼 수 있을지 미지수다. 다만 18일의 박보영 주연의 미스터리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과 곽경택 감독, 김윤석 유해진 주연의 범죄드라마 ‘극비수사’가 그나마 반전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게 한국영화의 희망이다.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ybacchus@naver.com / 사진=‘은밀한 유혹’ ‘극비수사’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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