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홍사로 망한 연산과 박정희 그리고 박근혜 정부

2015. 5. 24.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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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식의 문화비빔밥] 영화 '간신'과 박정희 정권의 데자뷰…'채홍'은 눈과 귀를 막는 것

[미디어오늘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영화 '간신'은 사극의 소재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연산군을 다시 다루고 있다. 이 영화에서 다른 영화와 드라마와 달리 주목한 것은 채홍사(採紅使)였다. 채홍사는 말 그대로 예쁜 여성들을 뽑아 궁에 데려오는 관헌을 말했다. 연산군이 채홍사를 전국에 파견하여 미녀들을 한양으로 불러들였는데, 연산군의 패악을 지적할 때 단골로 언급되는 단어이며 그의 종말을 함축하는 말이기도 하다.

<조선왕조실록>, 연산군 11년(1505) 8월 10일의 기록에 따르면 "채홍준 체찰사(採紅駿 體察使) 이계동이 미녀 63인과 양마(良馬) 1백 50필을 바쳤는데, 연산군이 이를 보고 크게 기뻐하며 곧 내전(內殿)에 불러 술을 주고, 노비(奴婢) 10구(口)를 특별히 줬다."라고 기록했다. 8월 11일에는 "채홍준 체찰사 임숭재에게 이계동의 사례에 따라 노비 10구를 주었다"라고 했다. 연산군이 채홍사에 대한 관심을 담고 있는 기록이다.

영화 '간신'이 채홍사에 주목한 것은 간신이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미녀까지 바치고 쾌락에 연산군을 빠트렸던 점을 부각하기 위해서였다. 개봉 전부터 이 영화는 많은 선정성 논란이 있었고, 이렇게까지 했어야 했는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영화는 1만 여명에 이르는 미녀를 뽑았다고 하나, 이는 좀 과장된 면이 있다. <조선왕조실록>, 연산군 12년(1506) 9월 2일의 기록을 보면 궁궐에 필요한 다양한 여성들을 뽑아 들인 것이 1만여 명이라고 되어 있지만 그 채홍사가 연산군에만 그치지 않았던 점이다.

조선왕조실록에나 등장하는 채홍사라는 단어가 다시금 등장한 것은 조선시대가 아니라 박정희 정권 때였다. 1979년에 벌어진 10·26사태는 뜻밖에도 세간에 떠돌았던 채홍사의 존재를 다시금 알렸다. 박정희 대통령 살해 현장에는 두 명의 여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젊은 그녀들의 존재는 풍문으로 나돌았던 채홍의 행태를 그대로 증명했다. 대행사와 소행사로 불렸던 자리에 주변 가신들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항상 여성들을 데려왔던 것이다.

연산군 때와 몇 가지 비슷한 점이 있었다. 우선은 음악이다. <조선왕조실록>, 연산군 12년(1506) 2월 27일의 기록을 보면 채홍사가 여성들을 뽑아올 때 크게 고려해야할 점이 몇 가지 있었다. "제주는 육로와 달리 해로(海路)를 건너게 되므로, 처음에 뽑을 때 잘 선별해 뽑지 않으면 두 번 가기가 어렵다. 비록 자색이 있어도 음률을 모르면 안 된다. 비록 음률을 알아도 자색이 없으면 또한 마땅하지 않다. 그러니 자세히 잘 고르라." 자색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음악을 아는 여성이어야 채홍의 대상이 되었다.

연산군 11년(1505) 9월 18일의 기록을 보면 채홍사(採紅使) 임사홍(任士洪)이 연산군에게 보고를 하는데 여기에도 음율을 아는 여성에 대한 대목이 있다. "신이 평안·황해 두 도에서 홍녀(紅女) 20여 인을 뽑았습니다. 그런데 전에 내리신 유지(諭旨)에는 '자색(姿色), 음률(音律), 호기(豪氣), 이 세 가지를 겸한 자를 뽑아오라 하셨는데…한 사람도 음률을 아는 자가 없으니 그 뜻에 어긋나오니, 어찌하겠습니까?"

임사홍은 당대의 간신으로 간주되는 인물이고 영화에서도 아들과 함께 자신의 입신 영달을 위해 별짓이라도 다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물론 박정희 정권 때 벌어진 채홍사 임무는 자신들의 기득권과 입지를 위한 것이었다.

60~70년대 쇼비즈니스와 정치의 역학관계를 다룬 MBC 드라마 '빛과 그림자'에서는 채홍사이자 권력 추종의 화신 장철환(전광렬)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등장시킨다. 그야말로 자기이익을 위해 국정을 농단하고 최고 권력자에게 기생하는 간신 가운데에 간신일 것이다. 그는 빛나라 쇼단의 여성 단원 이정혜(남상미)를 궁정동 안가에 성은을 입을 수 있는 기회라며 참석을 반강제 한다.

궁정동 연회 참석이후 무명의 배우였던 이정혜는 유명영화배우가 되었다는 세간의 비아냥에 시달리게 된다. 뒤를 봐주는 장철환은 어르신의 여자라는 이정혜를 자신의 여성으로 삼으려는 욕망을 뿜어 댄다. 겉으로는 충성하는 듯 하지만 속으로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배신까지도 생각하기 때문에 장철환은 간신 중에 간신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박정희 정권이 무너진 것은 문란한 사생활이 정신적인 황폐함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곧잘 제기되어 왔다. 젊은 여성들과의 복잡한 사적 관계는 육영수 여사와 사이를 좋지 않게 만들었는데, 그나마 육영수 여사는 무절제한 생활의 유일한 제어장치였다. 하지만 육영수 여사 사망 이후 더욱 더 박정희 대통령의 사생활은 무너지고, 그것이 국정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 많다.

물론 채홍사 역할을 한 주변 심복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속화된 측면이 있다. 언제나 여성을 공급하는 것이 그들의 중요한 임무였고, 이에 항상 박정희 대통령이 좋아하는 여성들을 불러들이는데 혈안이 되었다. 연산군의 경우에도 이러한 주지육림의 행태가 그를 황폐하게 만들고 국정을 붕괴시켰다는 지적이 있었고, 영화 '간신'은 이를 극대화하여 보여주고 있다. 그러한 간신들이 없었다면 그렇게 일찍 붕괴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을 드러내는 셈이다.

박정희 정권 때 채홍사의 임무는 본래 박종규 대통령 경호실장이 담담하던 것이었는데, 1970년대 초에는 중앙정보부 의전과장 박선호가 담당하게 된다. 말하자면 간신들 간의 다툼 때문에 이런 변동이 있었다. 중앙정보부에서 담당했으니 좀 더 은밀하게 진행되었다.

그런데 채홍사 역할을 했던 박선호는 10.26당시 김재규의 박정희 살해를 도왔던 인물이다. 이러한 점은 공교롭게도 영화 '간신'에서도 등장한다. 임숭재(주지훈)는 임사홍(천호진)의 아들로 아버지와 함께 천하의 간신으로 등장하는데, 채홍사 제도를 기획하고 본격적으로 운영한다. 그러나 그는 반정군을 도와 연산군을 몰아내는데 크게 기여한 인물로 그려진다. 연산은 자신에게 팔도 미녀들을 뽑아 공급하던 충복에게 크게 당한 셈이 되었다. 물론 임숭재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했을 뿐이다.

이러한 점은 간신이라는 존재가 언제든지 주군이라는 존재를 배신할 수 있음을 단적으로 상징하기도 했다. 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임사홍도 막판에 그렇게 복종했던 연산을 잡아 반정군에게 돌아서려 했다. 영화 '간신'의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자막은 중종반정을 일으킨 신하들이 간신이 된 점을 지적했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할 수밖에 없고, 권력자에 영합하여 자신들이 이익을 챙기는 간신들은 들끓을 수밖에 없다.

영화 '간신'은 채홍사라는 제도를 통해서 간신들의 존재를 부각했지만, 과도한 성적 장면들을 무리하게 배치한 감이 많다. 대중적인 호기심과 관음증을 유발하기 위한 장치들로 활용한 것이다. 간신이라는 존재가 권력자의 성적인 쾌락만을 구가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영화 '간신'의 단희(임지연)의 말대로 최고 권력자의 눈과 귀를 가리고 권력을 뜯어먹고 사는 이들, 간신들이 있다. 진실을 직언하지 않는 이들이 많은 권력일수록 절대 좋은 결말을 맺을 수 없다.

이러한 점은 박근혜 정권도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국정원 선거 개입이나 세월호 참사 그리고 성완종 리스트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진실됨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것은 대통령의 눈과 귀를 막고,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는 간신들이 주변과 그 밑에 포진하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채홍(採紅)이란 반드시 미녀들을 갖다 바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당장에 듣기 좋은 말만, 그리고 편협 된 세계관을 강화시켜주는 미혹의 말만 잔뜩 갖다 바치는 것도 해당된다. 올바른 판단과 선택을 못하게 만드는 모든 것이 채홍사 간신들이 하는 짓이다. 역사에 반추할 때, 그런 채홍사 간신들은 결국 파멸적인 결말로 치닫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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