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오의 우리 신화이야기]집과 집터는 부부관계
국립민속박물관 마당에 있는 장승의 모습. |
그러나 차사가 황우양의 집에 들어서자 업왕(業王·집안에서 재수를 맡아 도와준다는 신)이 막아섰다. 난처한 지경이 된 차사. “내일 아침에 황우양이 갑옷과 투구를 벗어놓고 뒷간에 갈 때 재주껏 잡아가도록 하시오.” 평소 황우양 내외를 괘씸하게 여기고 있던 조왕신의 충고였다. 꼼짝없이 잡힌 황우양. 천하궁이 아버지의 땅이고, 지하궁이 어머니의 땅이라고 위세를 부려봤지만 소용없었다.
사정하여 3일간의 말미를 겨우 얻은 황우양. 식사도 못 하고 잠도 못 이루다가 부인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여보, 대장부가 그만한 일로 근심하십니까? 어서 진지도 잡수시고, 잠도 달게 주무십시오.” 부인은 황우양을 잠들게 하고는 하룻밤 만에 자귀 톱 등 각종 도구와 연장을 장만하였다. 그러고는 이튿날 먼 길 떠나는 황우양을, 약간의 잔소리와 함께, 배웅하였다. “가시는 도중에 어른이건 아이이건 누가 무엇을 묻더라도 대꾸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이 뜰 저 뜰 지나 소진뜰에 당도한 황우양, 마침 지하궁에 돌성을 쌓으러 갔다 오는 소진랑과 대꾸하게 되고, 옷과 말까지 서로 맞바꾸고 말았다. 소진랑은 황우양과 옷 바꿈, 말 바꿈까지 한 김에 그 부인도 겁탈할 작정으로 붕어눈을 부릅뜨고 우레 같은 소리를 지르면서 황산뜰로 들이닥쳤다. 황우양의 부인은 그물에 걸린 물고기 신세가 된 자신의 처지에 기가 막혔다.
“그대 부인이 남을 섬기게 되었다는 꿈이오.” 뒤숭숭한 꿈을 꾼 황우양, 점쟁이의 해몽에 일을 서둘러 끝내고서 황산뜰로 내려왔다. “살아서 오시거든 소진뜰로 오시고, 죽어서 오시거든 저승에서 만납시다.” 주춧돌 밑에 숨겨둔 부인의 혈서였다. 황우양은 곧장 소진뜰로 가서 부인과 상봉하였다. “그동안을 못 참아서 남을 섬기고 있었구려.” “여자의 말을 우습게 여기다가 이런 고통을 받게 되었으니 누구를 원망하겠습니까? 그놈과는 오늘까지 상관없이 피하여 왔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의심 끝, 복수 시작. 그러나 소진랑을 죽이려니 손에 피 칠하기가 싫었다. 황우양은 소진랑을 오가는 사람들의 눈총이나 받으라고 장승으로, 그 처를 오가는 사람들의 침이나 얻어먹으라고 서낭의 졸개로, 그 자식들을 포수의 사냥감이나 되라고 노루 사슴 등 산짐승으로 만들어버렸다.
“나는 성주 되고, 그대는 터주(집터를 관장하는 신) 되어 인연 닿은 가정에 들어가 집도 지어주고 부귀공명, 자손창성을 만대로 시켜 주면 보람 있는 일이 아니겠소?” 이렇게 하여 황우양 부부는 각기 성주와 터주가 되어 가가호호 숭앙받고 대접받는 가신(家神)이 되었다. 성주는 가신 중에 가장 중요한 신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그 성주를 떠받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터주다. 터주(집터, 아내)가 없으면 성주(집, 남편)도 없는 법이니 온전한 부부라야 온갖 복의 근원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최원오 광주교육대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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