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젊음, 그 서글픈 초상

인현우 2015. 5. 2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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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공간 루프 '미칠 전'

패스트푸드점 쓰레기로 만든 알바생 등

2040 작가들 '쓸모없는 존재' 자조

커먼센터 '혼자 사는 법'

3포 세대 1인 가구로 살아가기

16개 팀 구체적인 돌파구 시도

'미칠 전'에 전시된 신민의 '근무 시간표'. 패스트푸드점에서 나온 쓰레기로 아르바이트생 인형을 만들어 근무 시간에 맞춰 배치했다. 버려지는 쓰레기 인생에 빗댔다. 대안공간 루프 제공

"왜 살아요?" 천안 버스터미널에서 한 인터뷰어가 20대로 보이는 청년들을 붙잡고 대뜸 질문을 던진다. "잘 몰라요." "음…, 먹으려고?" 머뭇거리다 간신히 내놓는 대답들이다. 묻는 이도 답하는 이도 하나같이 멋쩍은 웃음을 짓는다. 그냥 장난이라고 지나치기에는 삶의 방향을 잃은 오늘날 젊은 세대의 모습이 너무나 강렬하다.

12인조 영상제작팀 쿠쿠크루가 6월 14일까지 열리는 대안공간 루프(02-3141-1377)의 기획전 '미칠 전(癲)-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에서 내놓은 4분 분량의 영상 '왜 살아요'다. 쿠쿠크루는 친구의 얼굴에 염색약을 발라 얼굴을 얼룩덜룩하게 만들거나 잠든 사람을 일부러 30분마다 깨우는 등 이른바 '병맛' 개그 영상을 찍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인기 스타가 된 팀이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기획전에 참여한 20세에서 40세 사이 젊은 작가들이 바라본 오늘날 젊은 세대의 현실은 자조가 넘친다. 오랜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는 작가 신민은 패스트푸드점의 쓰레기를 모아 아르바이트생을 형상화했다. 프랜차이즈 기업의 비정규직으로 쓰이다 버려지는 처지를 쓰레기로 빗댄 것이다. 박카로의 작품은 더 노골적이다. 그는 오프닝 퍼포먼스에서 전시를 보러 온 사람들의 옷차림을 '모자를 썼다' '흰색 신발을 신었다'라고 일일이 종이에 적어 영상작품 앞에 붙인 후 '인간 쓰레기의 특징'이라고 제목을 달았다. 자신을 포함한 한국 사회의 모든 젊은이들이 쓸모 없는 존재로 전락했다는 의미다.

소목장 세미의 의자는 간편하게 조립하거나 벽걸이에 걸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1인 가구시대를 전망한 기획전 '혼자 사는 법'에 전시됐다. 인현우기자 inhyw@hk.co.kr

'미칠 전'이 젊은이들의 현실을 드러내는 데에 집중한 반면 서울 영등포동 커먼센터(070-7715-8232)의 '혼자 사는 법'은 돌파구를 모색했다.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 세대'가 대부분 1인 가구로 살아갈 것이라는 전제 위에 16개팀이 혼자서 어떻게 잘 살 수 있을지 그 대답을 내놓았다. 사회 관계가 단절된 닫힌 삶이 될 것이라는 극히 비관적인 응답부터 '혼자서도 잘 살아요' 식의 낙관적인 응답이 뒤섞였다.

한쪽 극단에 있는 것이 김재경의 '감옥의자'다. 의자 위에 의자를 얹은 모양의 이 철제 구조물 안에 앉으면 몸을 움직일 수 없다. 1인 가구 시대가 삶의 반경을 극도로 제약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은 것이다. 그 반대편에 길종상가의 '커먼센터 앤 커먼비엔비 앤 길종상가'가 있다. 방 하나에 다양한 가구를 배치해 이상적인 1인 생활 공간으로 꾸미고 인터넷 숙박 공유 사이트를 통해 대여, 실제 관객들이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벽에 걸 수도 있고 분해할 수도 있는 소목장 세미의 나무의자, 책상 위에 2층 침대를 얹고 장롱을 붙인 전산의 '일룸'은 이런 저런 평가에 앞서 일단 사고 싶을 정도로 실용적이다. 좁은 방 안에서 최대한 갖춰놓고 살겠다는 몸부림이 느껴진다. 전시품을 비롯해 1인 가구에 어울리는 미술작품과 생활용품들은 커먼센터에서 25일까지 열리는 '리빙아트페어 2015'에서 구매할 수 있다.

함영준 커먼센터 디렉터는 "젊은 작가들과 문화소비자들이 어려운 경제적 여건에 놓여있고 그에 따라 거주 여건도 불안정해진 상황을 반영한 전시"라면서 "현재 젊은 세대의 사회경제적 여건에 맞춰 소비 가능한 실용적이고 가벼운 미술작품을 내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행사 기간 커먼센터에서는 '아파트 게임'의 저자 박해천 동양대 교수, 아르코미술관에서'확률가족'을 전시했던 부동산연구팀 옵티컬레이스 등이 혼자서 어떻게 살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강연과 대담을 연다.

인현우기자 inhy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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