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발과 땀으로 그린 대한민국 노동지도

2015. 4. 30.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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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노동여지도박점규 지음/알마·1만6800원

삼성전자, 삼성전기, 삼성전자서비스, 삼성에스디아이(SDI), 삼성엘이디(LED) 등 삼성 계열사가 모여 있는 경기도 수원은 '삼성의 도시'다. 국내 최고의 대기업에 다니는 '삼성맨'들은 행복할까.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에 입사한 황유미씨는 1년8개월 만에 백혈병에 걸려 스물두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설치·수리 기사인 최종범씨는 돌을 앞둔 딸을 두고 2013년 10월31일 목숨을 끊었다.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와 최종범씨의 동료들은 묻는다. "삼성맨 여러분, 안녕들 하십니까?"

현대차·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1987년 노동자대투쟁, 1996~97년 총파업에 앞장섰던 까닭에 울산은 '노동 1번지'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뒤 정리해고라는 태풍이 지나간 자리는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채웠고, 해고 불안 탓에 정규직은 비정규직을 외면했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조를 만들어 현대차의 정규직임을 인정하는 법원 판결까지 얻어냈다. 그러나 울산의 노동자는 중대형 아파트에 사는 정규직, 소형 임대주택에 사는 비정규직, 떠돌이 생활을 하는 아르바이트 노동자로 산산이 갈라졌다.

10명 중 4명이 노동자인 한국 사회. 광주, 부산, 서울, 인천 등 전국 곳곳에서 그들은 어제, 오늘, 내일 어떤 노동을 그리고 있을까.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집행위원이 154년 전 김정호가 그러했듯 1년2개월간 전국 28개 지역을 돌아다니며 두 발과 땀으로 대한민국 노동지도를 그렸다. 1996~1997년 노동법 개정 반대 총파업에서 희망을 보고 1998년 민주노총에서 일하며 노동운동을 시작했던 그는 쌍용차 정리해고, 기륭전자·삼성전자서비스·현대차 비정규직 투쟁 등 우리 사회에서 가장 절박했던 노동자들과 17년을 함께했다. 그런 경험이 바탕이 된 덕에 <노동여지도>는 송경동 시인의 추천사처럼 "대한민국을 지탱하고 있는 노동이라는 뼈마디와 장기와 근육과 핏줄이 어떤 상태인지를 선명하게 알 수 있"는 책으로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노조탄압이 할퀴고 간 한국의 노동지도는 처참했다.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 김학종씨는 2013년 광주 기아차 공장 앞에서 '사내하청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시너를 뿌리고 분신했다. 구미 스타케미칼이 문을 닫으면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차광호씨는 공장 안 굴뚝에서 300일 넘게 고공농성 중이다.

그러나 절망스러운 노동의 현실을 기록하는 지은이의 눈과 펜은 희망을 놓치지 않았다. 현대케피코 군포공장은 비정규직 신규채용에 반대한 노조 덕에 연구원부터 지게차 운전기사가 모두 정규직이다. 군산의 타타대우상용차도 노사 합의로 2003년부터 매년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있다. 책이 보여주는 '비정규직 없는 공장'들 속에서 '비정규직 없는 세상'의 희망을 읽을 수 있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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