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최고 광대 슬라바 폴루닌의 '스노우쇼'

2015. 4. 30.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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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지만 즐거운 몸짓 삶의 의미와 행복 일깨워1톤 분량 인공눈 뿌려..14일부터 LG아트센터

모든 것을 다 잃은 듯 슬픈 눈동자였다. 우스꽝스러운 빨간 코에 노란 포대자루를 걸친 광대는 편지 위에 눈물을 떨군다. 그 편지가 눈송이가 되어 소용돌이친다. 광대는 비틀거리면서도 두 팔을 활짝 벌린다. 거센 눈보라는 이내 객석으로 휘몰아친다. 엄청난 눈이 관객을 뒤덮는다.

이 시대 최고 광대로 불리는 러시아 슬라바 폴루닌(65)이 5월 공연장에 '스노우쇼'를 선물하러 온다. 물론 진짜 눈송이는 아니다. 일명 '할리우드액션' 스노우쇼다. 비닐과 은박, 얇은 종이를 잘라 만들었다. 14~30일 서울 LG아트센터에 트럭 1t 분량의 인공 눈을 뿌린다. 대구 수성아트피아(지난달 29~2일)와 부산 영화의전당(5~10일) 무대를 하얗게 만든 후 서울 관객과 만난다.

광대 8명이 대사 없이 느릿느릿 바보 같은 몸짓으로 꾸며가는 이 공연은 현대인들에게 '천천히 가라'고 일깨워준다. 좀 어리석게 살아도 문제될 게 없다고. 눈과 입술 가장자리를 하얗게 칠한 광대들은 청소하다가 거미줄을 뒤집어써도 괜찮다. 오히려 대형 거미줄을 객석으로 보내 관객들을 즐겁게 만든다. 비눗방울놀이를 하다 물방울에 갇혀도 묵묵히 걷는다. 힘겹지만 포기하지 않고 거대한 눈덩이를 굴린다.

인생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는 그들의 몸짓에 전 세계가 감동했다. 1993년 러시아에서 초연된 후 20여 년간 전 세계 100여 개 도시 관객들을 만나 왔다. 영국 로런스 올리비에상과 러시아 골든마스크 등 세계 각국의 권위 있는 연극상들을 휩쓸었다. 현란한 언어와 첨단 기술 없이 따뜻한 아날로그 감성으로 가득 찬 이 작품을 관통하는 정서는 추억과 향수. 폴루닌은 눈 덮인 러시아 고향과 유년 시절을 떠올리며 이 작품을 만들었다.

그는 "어린 시절의 꿈과 기대에 흠뻑 젖어보고 싶었다"며 "그때 느꼈던 알록달록한 세상, 솔직한 감정, 작지만 소중한 세계를 재현했다"며 제작 동기를 설명했다. 그 덕분에 관객도 아득한 유년 시절로 여행을 떠난다. 눈덩이와 비눗방울놀이를 보면서 잊힌 기억을 끄집어낸다. 폴루닌은 "관객이 공연을 보면서 각자의 이야기를 떠올렸으면 한다"며 "연기자와 관객들 사이 미묘한 교감이 극장에 마법을 일으킨다"고 했다.

무대 밖에서도 그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한다. 쓸데없이 심각하고 허영심이 가득한 세상을 거부하는 '바보들의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지 아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가 서로한테 배우는 곳이에요. 현대인들은 돈과 직장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삶의 즐거움을 망각하죠. 꽃 향기를 맡고, 새들의 노래를 듣고, 여름날 잔디밭에 누워서 별들을 감상하는 법을 잊어버린 겁니다. 아카데미의 가장 큰 목적이 바로 소소한 일들이 우리 삶에서 잊히지 않게 만드는 거죠." 광대가 행복할수록 관객들도 행복해진다고 믿는 그는 행복한 사람들만 팀원으로 뽑는다. 그래서 공연에 웃음이 넘친다. 화살 맞은 광대가 객석으로 뛰어들기도 하고, 관객들과 어울려 눈싸움과 공놀이를 하고 초대형 풍선을 날린다. 매일 새로운 관객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새로운 공연이 만들어진다.

폴루닌은 모든 작품에서 대사를 쓰지 않는 이유에 대해 "우스꽝스럽고 환상적인 세계를 좋아하는 반면 '입으로 내뱉어진 말'들을 믿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광대가 되기로 했다"고 답했다. (02)2005-0114 [전지현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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