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세상] 물·전기·화장실.. '文明' 끊어진 광장서 시민 5만명 노숙
네팔 수도 카트만두는 고립된 섬으로 변해가고 있다.
28일 새벽에도 여진이 발생해 카트만두 시민을 깨웠다. 시내 중심 클라만스 광장은 이미 거대한 텐트촌이 됐다. 건물 붕괴의 공포 때문에 이곳에서만 시민 5만여명이 집을 버리고 노숙을 선택한 것이다. 27일 밤 카트만두에선 '블랙 아웃(대규모 정전)'을 연상시키는 풍경이 연출됐다. 전기가 끊기고, 태양광 축전지로 연명하던 전등마저 꺼지면서 도시 전체가 암흑으로 변한 것이다. 자체 발전기를 가동하는 건물 정도만 불을 밝혔다. 수도꼭지에선 나흘째 물이 나오지 않고, 단전 때문에 지하수를 끌어쓰지도 못한다. 수세식 화장실은 무용지물이 됐다. 통신마저 불안해 휴대전화를 5번 걸면 1번 정도 연결된다.
카트만두의 우리 교민 650여명은 현재 전기·수도 등 문명이 끊긴 생활을 하고 있다. 작은 호텔을 운영하는 이구 한인산악회장은 이날 "손님이 찾아오시면 전기와 수도가 없다는 것부터 알려준다"고 말했다. 방과 계단에는 촛불을 켰고, 양치와 세수는 생수로 간단히 해결한다. 한 병에 30루피(약 300원)이던 생수 가격은 지진 직후 두 배로 뛰었다. 그나마 문을 닫은 상점이 많아 구하기가 어렵다. 음식 재료 가격은 최고 세 배까지 올랐지만 금방 동난다. 카트만두의 한국 식당 10여곳은 대부분 문을 닫은 상태다.
이 회장은 "27일 밤까지 집이 계속 흔들려 텐트 생활을 한 교민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현지 매체도 여진이 잦아들 때까지 집을 떠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집을 비운 뒤에는 좀도둑 걱정으로 밤새 집 주위를 배회하는 교민도 있다. 가장 곤란한 문제는 화장실이다. 텐트에서 밤을 보낸 한 교민은 "텐트촌 한구석에 임시 화장실 공간이 있지만, 현지 주민들조차 '너무 지저분하다'고 말하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정전으로 휴대전화를 제때 충전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네팔 한국인산악회 관계자는 "히말라야 트레킹을 떠난 한국인 가운데 아직 20여명 이상 돌아오지 않았다"며 "차량 지원 등을 요청해올 가능성이 큰데 휴대전화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휴대전화 배터리 잔량을 보며 가슴 졸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것이다.
진앙과 가까운 랑탕 계곡을 트레킹하다가 중상을 입은 김모(60)씨는 "지진 당시 한국인 3~4개 팀이 랑탕 계곡에 있었다"며 "이들이 무사한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돌 사태에 머리가 찢기고 어깨와 엉덩이뼈가 부러져 헬리콥터로 후송됐다. 네팔 한국 대사관은 "지금까지 한국인 부상자는 3명"이라며 "지진 피해 지역을 빠져나오지 못한 한국인 관광객의 정확한 규모는 확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현재 카트만두 항공사와 여행사에는 '탈출 항공권'을 확보하려는 한국인 관광객의 문의가 쏟아지고 있지만, 카트만두 공항이 혼잡해 네팔 탈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네팔 정부는 육군 병력의 90%인 10만명을 수색과 구조 작업에 동원한다고 발표했다. 이날 네팔 군대와 인도 구조팀이 무너진 3층 건물에서 생존자 7명을 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인력과 물자가 크게 부족해 구조 작업은 큰 진전이 없다. 오히려 확인된 사망자 숫자만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네팔 구조당국은 "28일 현재 사망자는 5057명, 부상자는 1만915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유엔은 이번 지진으로 네팔 인구의 26%에 해당하는 800만명의 주민이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했다. 수실 코이랄라 네팔 총리는 이날 "지진 사망자가 1만명에 이를 수 있다"고 밝혔다. 시민 불만도 폭발하고 있다. 카트만두에 거주하는 아닐 기리는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정부는 우리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우리가 직접 맨손으로 잔해를 치워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지진 발생 후 사흘 동안 100여 차례 일어났던 여진이 잦아들긴 했지만, 28일 진원지에서 멀지 않은 시골의 한 마을에 여진에 따른 산사태가 발생해 250여명이 실종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지진 발생 후 '골든 타임'(생존 가능 추정 시간)인 72시간이 경과되면서 생존자들을 구출할 가능성도 점차 불투명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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