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 중개수수료? '반값' 딱지 붙여서 우롱하네
지난해 11월 국토교통부는 17개 시도에 '주택 중개보수 체계 개선 권고안'을 제시했다. 일명 '반값 중개수수료'로 불리는 부동산 중개수수료 상한요율(상한요율의 범위 안에서 소비자와 중개자가 협의를 통해 수수료를 정한다) 개정안은 주택 매매가 6억∼9억원 구간을 기존 0.9% 이내에서 0.5% 이내로 낮추고, 전·월세 임대차 거래 3억∼6억원 구간을 기존 0.8% 이내에서 0.4% 이내로 낮추는 내용이 골자다. 주택 매매, 전·월세 중개수수료 구간은 거래 금액별로 다섯 단계로 나뉘는데, 이렇게 신설된 구간 이외의 가격대 거래는 종전의 중개수수료율이 그대로 적용된다.
2000년 당시 정부는 서민이 거주하는 주택의 중개수수료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부동산 중개보수 체계를 마련했다. 소득세법에 따라 고가 주택으로 분류된 임대차 3억원 이상, 매매 6억원 이상 주택을 대상으로 임대차 상한요율 0.8% 이내, 매매 상한요율 0.9% 이내로 정했다. 하지만 15년이 지난 현재, 부동산 시장은 상황이 많이 변했다.
정부는 주택 가격이 상승한 현실을 반영해 고가 주택의 기준을 바꿨다. 국토교통부가 제시한 '서민이 거주하는 주택'의 범위를 소득세법에 따라 임대차 3억∼6억원, 매매 6억∼9억원 구간으로 설정했다. 이에 따라 해당 구간에 대한 중개수수료 상한요율을 절반 수준으로 낮춘 것이다. 현재 소득세법에는 매매 9억원 이상, 임대차 6억원 이상을 고가 주택으로 분류한다.
하지만 정부가 제시한 중개수수료율은 실제 부동산 업계에서는 이미 반영하던 수치다. 개정안대로라면 전세 3억원 계약 시 중개수수료가 기존 240만원(0.8% 적용)에서 절반가인 120만원(0.4%)으로 떨어져야 한다. 하지만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소비자와의 협의를 통해 이미 0.4∼0.6%의 수수료를 받아왔다. 실제로 지난해 서울시 서대문구에 위치한 아파트에 3억원을 주고 전세로 들어간 김 아무개씨(33)는 중개보수로 100만원(0.3%)을 냈다. 정부가 큰 시혜인 양 강조하는 '반값 중개수수료'가 지금까지 내온 수수료의 절반만 내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지난 2월 강원도를 시작으로 경기도, 인천, 대구와 경상북도에서 이런 정부 권고를 큰 저항 없이 받아들였다. 소도시에서는 '반값 중개수수료'에 따른 영향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경상북도에서는 6억원 이상 주택이 매매되는 사례가 거의 없는 편이다. 인천의 경우, 시청 인근 9000가구에 달하는 대단지 아파트에서도 6억원이 넘는 매물이 거래된 사례가 없다. 구도심 아파트 대부분의 사정이 다르지 않다. 인천시에서 개정 조례의 적용을 받는 곳은 송도, 청라 일부 등 1% 미만 가구에 불과하다.
반면 서울시는 상황이 복잡하다. 서울시는 평균 주택거래금액이 다른 중소 지역보다 월등히 높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2015년 3월 현재, 전국 주택의 매매 평균가격은 2억3300만원인데, 서울의 경우 4억4300만원이다. 전세가는 전국 주택의 평균가격이 1억4400만원이고, 서울은 2억5900만원이다. 단독주택·다가구·다주택 등을 뺀 서울 지역 아파트로만 치면, 전세가 평균이 3억1700만원에 달한다. 서울 지역에서 개정안에 포함된 비율은 매매 6억∼9억원 구간이 16.6%, 전세 3억∼6억원 구간이 25.4%에 달한다. 매매는 여섯 가구당 한 가구, 전세는 네 가구당 한 가구가 이 구간의 적용을 받는 셈이다.
서울에서 매매 6억∼9억원 구간 거래량은 2012년 7656건에서 지난해 1만4085건으로 급증했다. 2012년 3만7662건이던 3억∼6억원 전·월세 거래량은 지난해 5만5738건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에 따르면, 전국 공인중개소 8만2000개 가운데 26.2%가 서울에 위치해 있다.
매매 수수료가 전세 수수료보다 싸다?
이해 당사자들이 많은 데다 거래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상한요율을 절반으로 줄이려다 보니, 부동산 업계의 반발이 컸다. 김학환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고문은 '중개보수는 결과보수 체계여서 계약이 성사되지 않으면 한 푼도 못 받는다. 중개사도 전문가인 만큼 일한 대가를 인정해줘야 한다. 고정요율제를 적용해 중개사와 소비자 간 분쟁을 최소화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서울시의회는 공청회를 열어 부동산 업계와 시민단체의 의견을 조율한 뒤 4월10일, 가까스로 '주택의 중개수수료 등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일각에서는 3억원 미만 임대차에 대해 '반값 수수료'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민과 저소득층의 수요가 많은 3억원 이하 전·월세에 대한 수수료율의 변동이 없다는 데 비판 목소리가 높은 것이다. 서울시가 내놓은 '2014 주택매매, 전·월세 연도별 거래량'을 보면 주택에 관한 중개보수 가운데, 가장 거래가 많은 구간은 임대차 1억∼3억원(38.53%), 매매 2억∼6억원(59.9%)이다. 전·월세 3억원 미만 거래량 84%(35만2709건)와 6억원 이상 구간(2.35%, 9871건)을 제외하면, 주택 임대차 거래량 13.53%(5만6738건)만 반값 수수료 혜택을 받게 된다. 6억원 미만 매매 거래량은 83.91%(12만834건)에 이르지만 이에 대한 중개수수료는 변동이 없다. 9억원 이상 구간(6.30%, 9075건)을 제외하면, 6억∼9억원 구간은 9.78%(1만4085건)에서만 중개수수료가 낮아진다.
'역전 현상' 문제는 남은 과제로 꼽힌다. 주택 매매가와 전세가가 비슷한 구간에서는 매매 수수료보다 전세 수수료를 더 많이 지불하는 일이 발생한다. 임대차 6억원 이상의 경우, 중개보수는 상한요율 0.8%에 따라 480만원인데 매매 6억∼9억원 구간에서 중개보수(0.5%)는 300만∼450만원 선이다. 중개수수료 모든 구간에서 매매수수료를 전·월세 수수료보다 더 높게 책정하는 원칙이 무시된 셈이다. 심지어 전세는 계약 기간 2년이 끝나 이사할 때마다 수수료를 내야 한다.
국토부가 내놓은 '반값 중개수수료' 권고안은 국민을 현혹시킨 측면이 있다. '반값 중개수수료'라는 표현이 합당하기 위해서는 전 구간에서 매매와 전·월세 거래의 중개수수료율이 절반으로 줄었어야 한다. 이에 대해 이형찬 국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정부안에 포함되지 못한 저가 구간에 대한 요율에 대해선 새로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이번 권고안은 부동산 시장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택이다'라고 말했다.
송지혜 기자 / so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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