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터기행 | 천안 병천오일장 + 태조산] "사람으로 가득 찼던 병천오일장, 지금은 추억으로 가득 찼네"

글·손수원 기자 2015. 4. 2.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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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만세운동 펼친 병천오일장과 천안의 진산 태조산 9km
오일장 주변 병천순대 별미..산책하듯 태조산 올라 천안시내 조망

↑ [월간산]현대식 지붕 대신 천막이 설치된 병천오일장의 풍경. 사람도 풍경도 옛날로 돌아간 느낌이다.

"와, 진짜 옛날 오일장이다!"

병천읍내에 들어서 도로를 따라 죽 늘어선 오일장 좌판들을 보고 가장 먼저 외쳤던 말이다. 요즘은 오일장이라고 해도 가지런히 정비된 아케이드 건물에 줄을 맞춰 그럴듯한 좌판을 펼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병천오일장이 열리는 장소에도 상가가 들어선 것은 매 한가지다. 하지만 시장 입구로 들어서는 순간, 공간이 분리된 듯 그려지는 장터 풍경은 '그 시절 그 때'로 타임머신을 타고 잠시 추억여행을 떠나게 만든다.

우선 지나가던 아낙들 '애 떨어지게' 만들었던 뻥튀기 기계의 우렁찬 '뻥' 소리가 옛날 그대로다. 요즘은 뻥튀기 기계의 소리도 줄인다는데 병천장의 기계는 이에 아랑곳없이 목구멍을 최대로 크게 벌려 "뻥뻥" 댔다. 이 시장에 처음 온 사람들은 "요즘엔 뻥 소리도 작던 걸" 하고 방심하다가 지축을 흔드는 뻥 소리에 기어코 "엄마야!"를 외치고 만다. 그 모습이 작은 환영 이벤트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독립운동이 펼쳐졌던 역사 깊은 장터

병천오일장은 1·6장이다. 아우내장터로 부르기도 한다. '아우내'는 '두 줄기의 강물이 한 목으로 모여 어우러지는 곳'이란 뜻이다. 이를 한자로 표현하면 '병천(竝川)'이다. 아우내장터는 1919년 4월 1일 유관순 열사가 만세운동을 한 곳으로 어릴 때부터 교과서에서 늘 접하던 곳이다. 지금도 장터 근처엔 유관순 열사와 조병옥 박사의 생가가 있지만 요즘 사람들에겐 독립운동의 흔적보다는 '병천순대골목'이 있는 곳으로 더 유명하다. 병천순대는 이 근처에 서양식 햄 공장이 있었던 덕에 그 부산물로 순대를 만들어 먹으면서부터 유명해졌다.

순대골목은 장터 입구 맞은편 도로를 따라 죽 늘어서 있다. 역사가 오래된 작은 가게부터 넓은 주차장이 딸린 대규모 가게까지, 병천순대는 이곳에서는 아주 흔한 음식이다. 병천순대는 양배추와 선지가 꽉 차게 들어가 고소하다. 뽀얀 국물의 순대국밥과 빨간 국물의 얼큰순대국은 술 마신 다음날 해장으로 그만이다.

늦은 아침으로 순댓국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장터로 들어섰다. 뻥튀기의 고소한 냄새에 엿장수의 흥겨운 엿가락 리듬이 장날 분위기를 돋운다. 길 양쪽으로 식당이며 가게가 줄을 맞춰 들어서 있지만 장날엔 가게보다 상인들의 난전이 '갑'이다.

↑ [월간산]병천오일장 지도

각자의 자리에 좌판을 펼치고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주로 전국 오일장을 돌아다니는 '장돌뱅이' 상인들이다. 그 사이사이 빈자리는 채소며 산나물을 직접 보따리에 들고 나온 노인들이 차지했다.

오전 10시. 찬바람에 옷을 꽁꽁 싸맨 사람들이 장바구니를 들고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설날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아직 제수용품을 사기에는 이른 때라 사람들은 과일보다는 무, 배추, 생선 등 저녁 반찬거리에 더 관심이 많다.

"자, 쥐약 있어요. 두더지 싹 잡아요. 가스로 두더지 다 잡아요. 효과 없으면 다음 장날 가져와요. 대한민국에서 이걸로 못 잡으면 아무도 못 잡아요. 이 약 하나면 두더지가 땅으로 다 기어 나와서 죽어요. 두더지, 쥐 잡아요."

쥐약장수 김정근씨의 좌판 앞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가스로 죽이는 두더지 약을 설명하는 김씨의 말솜씨가 청산유수다.

"이걸로도 안 죽으면 워쪄?"

"두더지 댕기는 구녕에 숟가락 하나만큼만 딱 놓고 일주일만 냅둬유. 숨 막혀 죽는 놈, 기어 나오다가 밟혀서 죽는 놈, 이리저리 용써 봐도 일주일 만에 싹 죽어유. 장사 오늘 하루만 하고 여기 뜨는 거 아니니께 효과 없으면 다음 장날 가지고 오면 돈 돌려 줘유."

↑ [월간산]

30대부터 장터만 돌아다닌 지 20년째. 김정근씨는 달변가가 되었다. 하지만 1개 1만 원, 3개 2만 원이라는 '파격특가'에도 불구하고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는 이들은 드물다. 김씨는 "설명만 오지게 듣고 도무지 사가들 안 혀. 아이고, 입만 아프네"라며 한숨을 쉬었다.

"아, 요즘 장사가 문제가 아니라 굶어 죽게 생겼슈. 아무리 겨울이라서 두더지, 쥐들이 안 보인다고 해도 그렇지, 요즘은 돈 구경이 하늘에 별 구경 하는 것보다 더 어렵슈."

그렇게 20여 분 동안 설명만 열심히 하던 김씨는 첫 개시로 두더지약 3개를 2만 원에 팔고 나서야 "에이, 추워 짬뽕이나 먹고 와야긋네"라며 자리를 떴다. 물론 좌판은 그 자리 그대로 두고. "주인 없어도 살 사람은 사고, 훔쳐갈 놈은 훔쳐간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한양과 경상도를 잇던 교통의 요지

겨울은 곧 끝날 것 같았지만 예상치 못한 한파에 놀란 사람들은 속옷가게 앞으로 몰려들었다. 털이 복슬복슬한 방한털신은 '할매'들에게 최고 인기 품목이다. 주먹만 한 방울이 달린 귀마개는 '할배'들에게 인기가 좋다.

"귀마개가 커야 따시지. 주먹만 한 이걸 이렇게 딱 쓰면 귀가 안 하나도 시려. 근데 귀도 잘 안 들려. 그게 영 안 좋아."

↑ [월간산]1 고단한 삶 속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장터의 상인들. 2 "젊은 총각이 생선 하나는 잘 만지네." 장터를 찾는 할머니들에겐 단골 상인은 아들과 같다.

목천읍에서 온 김복석 할아버지는 설날 서울 아들네에 갈 때 쓰려고 귀마개를 새로 사러 왔다고 했다. 지금이야 버스는 물론이고 천안에서 서울까지 전철도 오가는 시대가 되어 서울이 멀지 않은 곳이 되었지만 그래도 설날은 설날인 모양이다.

떡볶이와 순대, 족발을 파는 포장마차엔 낮술이 한창이다. 장날을 핑계 삼아 친구를 만난 사람, 친구를 핑계 삼아 일부러 장에 나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한 잔 술에 주거니 받거니 하는 대화들은 소소한 일상에 관한 것들이다. 심각하지 않되 적당히 술맛을 돋우게 하는 그 대화들은 분주한 장터에서 섬처럼 떨어진 한가로움이다.

엄마 손을 잡고 장 구경을 나온 아이들 손에는 꼬치어묵이 하나씩 들려 있다. 차가운 입에 뜨거운 어묵이 들어가니 연신 콜록콜록 기침을 하면서도 어묵에서 입을 떼지 못했다.

병천오일장은 1700년대부터 시작되어 3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경상도와 한양 땅을 이어주는 길목인 천안이라는 지역의 특성상 교통수단이 발달하기 전에는 병천장이 열리면 발 디딜 틈도 없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과거 병천장은 소를 사고파는 곳으로 유명했다. 청주, 진천, 조치원 등 인근 지역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영·호남의 소 장사꾼들도 이곳으로 모였다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이곳에서 만세운동이 벌어진 것도 이 부근에 가장 사람이 많이 모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규모가 상당히 줄었다. 장터 입구에서 끝까지의 거리가 150m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옆길로도 좌판이 펼쳐지긴 했지만 예전의 명성에 비하면 상당히 줄어든 셈이다.

장터 중앙, 작은 사거리 왼편에는 백발의 서문애 할머니가 떡을 팔고 있다. 한눈에 보기에도 이 장터 내에서 가장 나이가 많음을 알 수 있다. 인절미를 칼로 반듯하게 잘라 집게로 하나하나 집어 비닐봉지에 담는 모습은 별것 아닌데도 마음이 짠해진다.

↑ [월간산]1 장터의 상인들은 굳이 비싼 물건을 권하지 않는다. 다만 좋은 물건을 권할 뿐이다. 2 "뻥이요~!" 소리를 들어도 놀라긴 마찬가지다. 병천오일장에선 옛날 오일장의 풍경이 오롯이 묻어난다. 3 일찍이 장을 다보고 버스를 기다리는 할머니들. 그들에게 장터는 물건만 사는 곳이 아닌 사람을 만나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 할머니가 우리 시장에서 최고 오래됐어. 그래서 여기저기서 사진도 많이 찍어가. 할매는 좋것슈. 인기 많아서 하하."

할머니 좌판 주변의 상인들은 사진에 찍히는 할머니의 모습이 대수롭지 않은 듯 할머니를 칭찬했다. 서 할머니 또한 사진 찍히는 일에 익숙한지 "할머니 여기요~" 하면 카메라를 보고 빙그레 웃어 주었다.

"아이고 할머니 고만이요, 됐어요. 고만 넣어도 돼요. 이렇게 많이 주면 다른 사람한테는 뭘 팔아요."

목천읍에 사는 최미경씨가 인절미 3,000원 어치를 달라고 했더니 할머니는 덤으로 서너 개, 아쉬워서 또 서너 개, 비닐봉지가 다 차지 않아서 또 서너 개, 그렇게 계속 덤을 주고 있었다.

"어릴 때 어머니를 따라 병천장에 올 때부터 이 할머니께 떡을 샀어요. 항상 이렇게 많이 주세요. 떡을 사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 그래도 늘 할머니를 찾게 돼요. 떡도 맛있고, 그냥 할머니가 떡을 넣어 주시는 모습이 좋아요. 친할머니나 다름없어요."

할머니는 과거 병천장의 모습에 대해 그저 "사람이 엄청 많았지"라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하기야 68년 동안 할머니의 청춘과 함께 변한 장터의 모습을 할머니 또한 쉬이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 [월간산]"쥐 잡아요, 숨어 있는 두더지 싹 잡아요."

사람 구경하는 재미, 흥정하는 재미

오후 1시가 되자 장터가 사람들로 붐볐다. 점심식사를 한 사람들이 일시에 모여든 것이다. 개중에는 일부러 병천순대를 먹으러 왔다가 장 구경을 하는 도시 사람들도 보였다. 딱히 살 것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 구경을 하러 오는 것이다. 물건을 사면서 흥정을 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바코드에 입력된 가격만 딱딱 나오는 할인매장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것이다.

"젊은 서울 사람들 깍쟁이라 글더마, 정말 독혀요."

등산복을 파는 한 상인은 "요즘 젊은 사람들이 낭비가 심하다고 하는데, 시장에 와서 1,000원이라도 깎으려고 애쓰는 걸 보면 그래도 나라가 잘 돌아가겠다는 생각도 들고, 또 한편으론 정말 돈이 없어서 그럴까 안쓰럽기도 해서 이왕이면 조금이라도 더 깎아주려 한다"고 말했다.

이른 아침부터 장에 나왔다가 이제 집에 들어가는 버스를 기다린다는 두 할머니는 "다음 장날엔 서울서 오는 아들·손주 먹일 과일이며 떡을 사야 한다"며 웃었다. 두 할머니 얼굴에 드는 볕에 봄 냄새가 묻어났다. 서울과 경상도를 잇던 천안 병천장에 곧 봄이 오려나 싶었다.

전국구 쥐약장수 김정근씨

↑ [월간산]68년 장터 지킨 떡장수 서문애 할머니

"쥐 잡아요, 숨어 있는 두더지 싹 잡아요."

병천오일장에서 가장 '입담 좋은' 상인을 꼽으라면 김정근씨는 세 손가락 안에 들 것이다. 열 올리지 않으면서 담담하게 지시봉을 들고 쥐약과 두더지 퇴치법을 설명하는 그의 말투는 자연히 사람들을 끌어 모은다. 그의 설명을 듣고 있자면 깊이 감추어 두었던 지갑에서 돈을 꺼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20년 동안 전국의 장터를 돌아다닌 그는 "경기가 살아야 시장도 살고 사람도 살 것 아니냐"며 한숨을 쉬었다. 다음날엔 원주오일장으로 간다는 김씨는 "그래도 쥐와 두더지가 본격적(?)으로 출몰하는 봄이 되면 지금보다는 장사가 좀 나아지지 않겠냐"며 사람 좋게 웃어 보였다.

68년 장터 지킨 떡장수 서문애 할머니

"스물한 살에 이리로 시집와 이제까지 장터에 나왔어. 그 세월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몰라 이젠."

서문애 할머니는 병천오일장의 터줏대감이다.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할머니가 기억하기론 68년 동안 장터에 나온 것 같다고 했다. 할머니는 이제 아흔 살이 다 되어 간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나라에서 배급으로 나온 수수로 지지미를 해서 장터에 내다팔기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이제는 자식들도 할아버지, 할머니 소리를 듣고 있는 나이인데도 서 할머니는 장터에 꼬박꼬박 나온다.

↑ [월간산]태조산 대머리바위에서 바라본 천안시내의 풍경. 낮은 산이지만 조망만큼은 그 이상의 것을 보여 준다.

"수십 년 단골이 많아서 계속 나와. 안 아파, 괜찮아. 계속 나와야지."

서 할머니는 카메라를 보고 활짝 웃으시면서 콩고물 가득 묻은 인절미를 손에 쥐어주셨다.

[천안 태조산]

산책하듯 천안시내 내려다보며 걷는 천안시민의 진산청송사~구름다리~성불사~태조산 정상~유왕골고개~각원사 약 9km

태조산(太祖山, 422m)과 성거산(聖居山, 579m)은 천안의 동쪽을 둘러싸고 있는 산줄기다. 태조산은 천안의 진산으로 불리며 천안시민들이 즐겨 오르는 '동네 뒷산' 같은 곳이다.

천안시청 문화관광과에서 나온 최미숙씨는 "실제로 사람들이 많이 오르는 코스는 청송사에서 출발해 태조봉에 오른 후 되돌아와 유왕골고개를 지나 각원사로 하산하는 길"이라고 알려 주었다. 이날 산행을 함께해 준 천안·아산산악회 회원 홍종탁(69)씨와 박대산(54)씨 또한 이에 동의했다. 그렇게 해서 이날 산행의 들머리는 청송사로 정해졌다. 이곳에서 구름다리까지의 구간은 천안시에서 만든 '태조산 솔바람길' 구간이기도 하다. 그만큼 등산이라기보다는 산책하는 기분으로 쉬엄쉬엄 오를 수 있다는 뜻이다.

↑ [월간산]1 성불사 대웅전 뒤편의 마애불. 학들이 부리로 쪼아 만들다가 날아갔다는 전설이 있다. 2 각원사의 청동아미타불상 무게가 60톤이나 나가는 거대한 불상으로 각원사의 규모를 짐작케 해준다.

태조 왕건이 군사들을 주둔시켰던 산

길은 푹신한 흙길이다. 둘레길을 연상시킬 만큼 걷기가 좋다. 곳곳에는 지압을 할 수 있는 자갈길과 운동기구들이 들어서 있다.

"태조산과 성거산 모두 고려 태조 왕건과 관련이 있어요. 태조산은 왕건이 이 산에 군사들을 주둔시켰다는 설에서 유래해요. 서기 930년 태조가 후백제의 신검과 맞서고 있을 때였죠. 지금도 태조가 산신제를 지냈다는 제단 터가 남아 있어요. 성거산도 마찬가지예요."

최미숙씨는 "왕건이 직산면 수헐원을 지날 때 동쪽의 산을 보고 신령스럽다 해서 제사를 지내게 하고 '성거산'이라 부르게 했다"며 두 산의 이름을 설명해 주었다.

출발해서 670m쯤 지나니 팔각정이 나왔다. 정자에 올라서자 정면으로 천안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아래쪽에 안개가 껴 시야가 선명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넉살 좋은 홍씨가 "이제 겨우 제1전망대인걸요. 조금 더 올라가면 더 전망이 좋은 곳이 있으니 실망들 하지 말라고요"라며 일행의 기운을 북돋웠다.

걷기 좋은 길은 계속 이어진다. 팔각정에서 400m 즈음 떨어진 곳에 정말 전망이 좋은 곳이 나왔다. 해맞이 광장이다. 이곳에선 매년 1월 1일 아침에 시민들이 모여 새해 첫 일출을 바라본다.

↑ [월간산]태조산의 명물 구름다리. 중간쯤 가면 다리가 위아래로 출렁거려 아찔하다.

해맞이 광장에서 850m쯤 걸으면 구름다리가 나온다. 그렇게 높지는 않지만 바닥에 구멍이 송송 뚫리고 중간쯤부터는 발을 딛을 때마다 다리가 아래위로 출렁거려 소소한 스릴을 즐길 수 있다.

구름다리와 대머리바위 중간지점에 성불사 가는 샛길이 있다. 내려갔다가 다시 되돌아와야 하는 수고스러움이 있지만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노릇. 잠시 '알바 아닌 알바'를 하기로 한다.

"이룰 성(成)자에 불은 어떤 한자를 쓸까요? 흔히 '부처 불(佛)'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고 '아니 불(不)'자를 썼답니다."

최미숙씨는 성불사란 이름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왕건은 왕위에 오른 후 도선국사에게 전국에 사찰을 짓게 했다. 도선국사가 이곳에 와보니 백학 세 마리가 부리로 바위를 쪼아 불상을 새기다가 인기척에 놀라 날아가 버렸다고 한다. 이러한 연유로 처음에는 '성불사(成不寺)'로 불렀다가 현재는 '성불사(成佛寺)'로 부른다. 성불사 대웅전엔 부처상이 따로 없다. 대신 정면의 벽에 창을 내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을 모신다.

날아간 백학들은 다시 마애불 만들 곳을 찾다가 성거산에 있는 한 사찰의 바위에 앉아 불상을 조각했다. 하지만 마애불을 완성하기 전에 해가 저물어 날아가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그 사찰의 이름을 '해가 저물었다'는 뜻에서 만일사(晩日寺)로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성불사에서 나와 다시 능선에 올라 조금 가파른 길을 걸어 대머리바위에 섰다. 340m의 낮은 지점이지만 천안시내의 전망이 한눈에 들어왔다. 남쪽으로는 광덕산이, 그 뒤로는 계룡산까지 보인다고 한다.

↑ [월간산]

대머리바위를 지나 조금만 가면 정자삼거리다. 여기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 태조산 정상으로 간다. 20분 정도 걸려 도착한 태조산 정상엔 작은 정상석과 팔각정이 있다. 특별한 볼거리는 없는 편으로 잠시 앉아 간식을 먹고 다시 정자삼거리로 되돌아간다.

정자삼거리에서 유왕골고개 방향으로 간다. 이 길은 성거산으로 향하는 금북정맥 능선이다. 하지만 성거산까지 코스를 굳이 이을 필요는 없다. 길의 분위기나 전망이 대동소이하기 때문이다.

"우리 같으면 벌써 성거산 찍고 여기까지 왔겠구먼. 영 발걸음들이 느리시네~ 하하."

줄곧 앞서 걷던 홍종탁씨와 박대산씨가 자신만만하게 최미숙씨와 기자를 놀렸다. 그러면서 성거산 대신 훨씬 멋진 비밀 코스를 알려 주겠노라고 했다.

홍씨가 말한 비밀 코스는 유왕골고개에서 약간 우회전한 후 오른쪽으로 보이는 전나무 숲이었다. 반듯반듯 줄을 맞춰 자라는 모습을 보니 조림한 숲인 듯했다. 전나무 숲에 서서 잠시 숨을 고른 후 희미한 길을 따라 유왕골약수터로 내려왔다.

여럿이 함께 걸으면 더 좋은 산

↑ [월간산]병천순대국밥.

약수터에서 김밥으로 늦은 점심식사를 한 후 각원사로 하산한다. 각원사를 꼭 둘러보려는 이유는 청동좌불상 때문이다. 각원사 청동아미타불상은 이 좌불상은 1977년 만들었으며 높이 12m, 둘레 30m, 무게 60t에 달해 과거에는 동양 최대의 청동좌불상으로 손꼽혔다.

각원사는 1977년 세워져 오래된 사찰은 아니지만 경주 불국사(佛國寺) 이래 최대 규모의 사찰로 알려져 있다. 특히 1996년 지은 대웅전은 목조 건물로는 국내 최대 규모다.

"좌불상 앞에 203개 계단이 있어요. 왜 203개냐 하면 108번뇌와 관세음보살의 32화신, 그리고 아미타불의 48소원과 12인연, 3보(寶) 등을 합친 숫자예요."

각원사를 나오면서 산행도 끝났다. 준족 홍씨와 박씨는 9km 정도의 코스로는 성에 차지 않는 듯 기운이 펄펄했다.

"사람들하고 이야기하면서 천천히 오르는 것도 재미있네요. 그런 면에서 태조산은 혼자나 한둘이 오르기보다는 여럿이서 오기 참 좋은 산이죠."

태조산은 '걷기에 딱 좋은 산'이다. 아이들과 걸어도, 연인과 김밥 한 줄, 물 한 병 들고 걸어도 좋을 '모두의 산'이다.

산행가이드

태조산은 산이 완만하고 길이 잘 정비되어 있어 가족 단위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만큼 등산로도 많다. 그중 대표적인 곳은 청송사로 올라 팔각정~구름다리~대머리바위~성불사~정자삼거리에서 유왕골고개를 지나 각원사로 내려오는 코스다. 정자삼거리에서 태조산 정상을 다녀올 수도 있다. 이 경우 약 9km에 3시간쯤 걸린다. 두 번째 코스는 태조산공원에서 올라 오룡정~태조산 정상을 다녀오는 코스다. 가장 짧은 산책코스로 1.8km, 50분쯤 소요된다. 백석대학교에서 올라 유왕골고개에서 태조봉 정상으로 올라 되돌아오는 코스도 즐겨 이용한다.

교통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경부고속도로 천안나들목으로 나와 1번국도를 타고 잠시 가면 오른쪽에 청송사 이정표가 보인다. 이정표를 따라 우회전해서 조금 들어가면 작은 주차장이 있다. 이곳에 차를 대고 산행을 시작하면 된다. 각원사 가는 길은 천안나들목을 나와 1번국도변 이정표가 있다.

천안종합터미널에서 시내버스를 이용하면 각원사나 유량동까지 가는 데 15분 정도 걸린다. 각원사까지 가는 버스는 102번이고, 유량동까지 가는 버스는 102-2번이다.

숙식(지역번호 041)천안 시내에 숙박시설이 많다. 병천오일장이 열리는 병천면에는 무인텔이 있다. 드라이브인무인텔(622-5802), 무지개무인텔(558-9000). 가족끼리 묵기에는 다소 불편하므로 가족여행이라면 천안종합휴양지 내의 숙소를 이용하는 편이 낫다. 테딘패밀리리조트(906-7000).

병천순대골목에 순대식당이 즐비하다. 병천할매순대(561-0177), 쌍둥이네순대(567-8777), 아우내고향순대(561-3405) 등. 순대국밥 6,000원 선, 모둠순대 6,000~1만 원. 포장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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