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손으로 피운 꽃골목 눈부시도다

2015. 4. 2.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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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매거진 esc] 여행

창원 마산 원도심 골목길 여행…예술향기 가득한 만초집, 문신미술관도 놓치지 말아야

노래방·술집 즐비한 거리 지나 작은 뒷골목으로 들어서자, 우아한 고전음악 선율이 골목에 가득하다. 눈 지그시 감은 할아버지 한 분이 담배를 물고 나와 앉은, 허름한 가게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선율이다. 간판 밑을 보니 '술과 소리가 있소이다. 그냥 갈랑겨'란 글씨가 눈에 확 들어온다.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 뒷골목의 '고전음악 술집' 만초집이다.

"이 자리서만 25년이 넘었으이께네, 한 45년은 한갑소."(만초집 주인 조남륭씨·80)

차림표도 가격표도 없는 술집, 아침술도 팔고 낮술도 파는 술집, 새벽에도 문 두드려 들어와 마시고 간다는 술집이다. 귀청아 찢어져라 고전음악만 줄기차게 틀어대는 술집이면서, 두부든 오뎅이든 멸치든 안주인이 내주는 대로 먹고 마신 뒤 내고 싶은 만큼 내고 가는 이 술집을 예술깨나 한다는 마산 출신 술꾼들은 모르는 이가 없단다. 작곡가 조두남도, 연극인 정진업도, 시인 구상도, '창동 허새비(허수아비)'로 유명한 이선관 시인도, 군복무 중이던 이성복 시인도 조남륭씨의 고전음악 술집을 드나들었다고 한다.

그렇다. 예나 지금이나 마산의 예술가들이 모여 일하고 먹고 술 마시는 곳이 마산의 원도심 창동·오동동 골목이다. 낡은 골목들이 꼬불꼬불 이어지는 창동 일대엔 만초집처럼 수십년째 문을 열고 있는 식당·술집·책방 들이 즐비하다. 이른바 '창동예술촌'이다.

창원시는 지난 2010년 마산시·창원시·진해시가 합쳐지며 탄생한 인구 100여만명의 광역시급 대도시다. '진해 군항제'의 도시 창원엔 지금 벚꽃이 한창이지만, 벚꽃이 아니더라도 보고 즐길 것들이 풍성한 고장이다. 마산의 원도심 일대도 그런 곳들 중 하나다. 진해 벚꽃 즐기기 전후로 한나절 짬을 내 거닐기 좋은 골목들이다. 마산어시장에서 창동예술촌 거쳐 문신미술관까지, 보고 만나고 듣고 체험하는 도보여행을 즐겨볼 만하다.

쇠락하던 창동 골목 '예술촌'으로 재도약

마산 원도심의 창동은 조선 영조 때 한양으로 보낼 세곡을 거둬 보관하던 창고(조창)가 있던 곳이다. 조창이 생기며 마을이 형성됐고 100여년 전부터는 객주들이 모여들고 어시장이 생기며 "돈이 넘쳐나던 동네"였다고 한다. 광복 뒤엔 더욱 번성해, 경남 일대에서도 유행의 첨단을 달리는 '명동거리'이자 문화예술의 핵심이며 상권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1980~90년대까지도 다방 천국, 극장 천국으로 불리던 곳이다. 마산 시민들의 '3·15 부정선거 항거' '부마항쟁' 함성이 울려퍼진 중심거리도 창동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면서 인구 감소와 경기 불황, 상권 이전으로 급속히 쇠퇴하기 시작해, 창동은 빈집·빈가게 즐비한 우중충하고 후미진 뒷골목으로 추락했다. 이랬던 창동 골목이 통합 창원시 출범 뒤, 예술인들과 상인들을 지원해 입주시키는 도심재생사업을 거쳐 '창동예술촌'으로 거듭난 게 3년 전이다.

'3·15 의거' 55돌 맞아시민들 315명한테 지원받아화분 315개로 골목담벽 장식꼬부랑길 골목에서 만나는어르신들 말씀도 흥미진진

지금 창동 골목은 볼거리·체험거리 가득한 말 그대로 예술인촌으로 바뀌었다. 조각·도자기·목공예·서예·자수·국악·만화 등에서부터 동양화·서양화 화실, 갤러리·헌책방·새책방까지 온갖 예술 분야를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60여명의 개별 예술인들이 입주해 작업도 하고 가르치기도 한다. 아직도 술집, 노래방, 게임장 즐비한 거리지만, 새단장한 예술촌 안으로 들어서면 인사동 뒷골목 같기도 하고, 동유럽 소도시의 뒷골목 같기도 한 낡고 좁고 정겨운 골목길들이 반짝이며 굽이친다. 물론, 골목 사람들이 '예술'만 하는 건 아니다. 밥맛 나고 술맛 나는 오래된 고깃집·분식집·술집들이 구석구석 포진해 있다.

이 골목길 일부가 얼마 전엔 화사한 '꽃 골목'으로 새단장했다. '창동 아지매'로 불리는 김경년(52)씨가 '3·15 의거' 55돌을 맞아, 시민 315명으로부터 지원을 받은 꽃화분 315개로 골목 담벽을 장식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잊혀가는 '3·15 의거' 정신을 되새기자는 취지로 페이스북을 통해 1인 1만원씩 모금을 했는데, 일주일 만에 마감됐다"며 "시민의 힘으로 이곳을 환한 '꽃 골목'으로 만들게 돼 뿌듯하다"고 했다. 김씨는 창동 골목(문신예술골목)에서 방문객 쉼터인 '창동사랑방'을 운영하며 골목길 안내도 해준다.

창동예술촌은 마산 출신의 세계적인 조각가이자 화가인 문신(1923~1995)을 기리는 '문신 예술 골목'과 '마산예술 흔적 골목' '에꼴드 창동 골목' 세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나뉘어 있지만, 골목 입구마다 안내간판과 지도 등이 설치돼 있어 쉽게 찾아들어갈 수 있다. 창동예술촌 관광안내소는 '마산예술 흔적 골목'의 창동아트센터에 있다. 해설사가 대기한다.

보고 느낄거리 많은 마산어시장과 꼬부랑길

창동예술촌 탐방길에 놓칠 수 없는 볼거리들이 마산어시장과 '가고파 꼬부랑길' 그리고 문신미술관 등이다. 마산어시장은 국내 5대 어시장으로 불리는 대규모 수산물 시장이다. 본디 바다였지만, 매립을 거쳐 형성된 시장이다. 대풍산업 공장이 있던 데서 유래한 대풍횟집골목, 60년대 멀리 진동에서 물건을 이고 지고 온 할머니들이 좌판을 벌인 데서 출발했다는 진동골목, 그리고 돼지고기의 모든 것을 파는 돼지골목 등 볼거리·먹을거리·이야깃거리가 가득하다. 옛날부터 "뭐든 들고나오기만 하면 다 팔려나간다"는 곳이다.

창동예술촌에서 잠시 언덕을 향해 오르면, 낡고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산동네가 나타난다. 정 많고 친절하고 따뜻한 분들이 많이 사는 아기자기한 벽화마을이다. 빈집이 늘며 슬럼화되던 성호동·추산동의 산동네 일부를 거닐 만한 벽화마을로 만들어 '가고파 꼬부랑길'이란 이름을 붙였다. 30여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산동네 비탈길 450여m를 오르내리며 만나는 담벽 그림도 재미있지만, 골목이나 경로당 등에서 마주치는 어르신들 말씀을 듣는 것도 흥미롭다.

꼬부랑길 입구 도로변에 앉아, 망치로 전기밥솥을 때려부숴 "돈 쪼매 되는 구리 전깃줄"을 뽑아내고 있던 한경도(81) 어르신에게 길을 묻자, 다짜고짜 옆에 있던 소주병을 집어들고 한잔 권하며 이야기를 풀어내셨다. "나가 스물여섯에 여 와가 56년째 이래 해가 묵고 사는 기라. 여가 공기 좋고 차암 좋은데, 돈 한푼 벌어먹을 데가 없다카이. 아도 없고 젊은이도 없는 동네라, 여가." 자리를 털고 일어서자 할아버지가 옆에 세워진 고색창연한 오토바이를 가리키며 "고놈 쫌 팔아 주소" 하신다. "에, 서기 1975년도에 아는 사람이 부속품을 쭈워다 맹긴 오도바인데, 20년 전 나한테 타라캐가 가져온 기요. 족보도 없으이, 팔 수가 있나."

꼬부랑길 들머리에서 왼쪽으로 고개 하나 넘어가면 '창원시립 문신미술관'이다. 문신 선생이 14년에 걸쳐 직접 설계하고 짓고 조성해 개관(1994년)한 미술관이다. 2개의 전시관과 야외전시장에서 아름다운 스테인리스 조각과 석고 조각 120여점과, 회화·스케치 작품 등을 감상할 수 있다. 말년까지 검소한 삶을 살던 그의 뜻에 따라 유족은 미술관과 작품을 시에 기증했다. 뒷산 묘소 앞 묘비에 적힌 묘비명이 인상적이다. '나는 노예처럼 작업하고, 나는 서민과 함께 생활하고, 나는 신처럼 창조한다.'

문신미술관 옆엔 창원시립 마산박물관도 있다. 마산어시장에서 문신미술관까지 쉬엄쉬엄 걸어서 4시간이면 둘러볼 수 있다. 마산어시장~남성동성당~조창터 표석~부림시장~부림시장 창작공예촌~창동예술촌~가고파꼬부랑길~문신미술관.

창원/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수도권에서 영동고속도로 여주분기점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 타고 직진, 내서분기점에서 남해고속도로 제1지선으로 갈아탄 뒤 서마산나들목에서 나간다.

마산 도심엔 복요리골목·아귀찜골목·장어골목·통술골목 등 먹자골목들이 곳곳에 있다. 통술집은 통에 술병을 얼음과 함께 담아 내오는 술 값만 내면 갖가지 안주가 순차적으로 푸짐하게 제공되는 술집이다. 오동동에 서호통술 등 14곳, 신마산에 17곳의 통술집이 있다. 가격은 술집에 따라, 인원에 따라 1만원짜리부터 6만~7만원짜리까지 다양하다. 서호통술·유정통술·홍시통술·수림통술 등. 복요리골목(복요리로)의 복국의 경우도 중국산 은복(대개 7천원)과 국내산 까치복(1만~2만원)·참복(2만~3만원) 등 다양하다. 남성식당(원조복집)·광포복집 등. 오동동의 고려횟집 등 비교적 저렴하고 깔끔한 회초밥·회비빔밥을 내는 초밥집들도 많다. 진해 속천항 속천집의 도다리쑥국, 마산 창동예술촌 버들국수의 잔치국수와 김밥도 먹을 만하다. 창동 부림시장 먹자골목의 떡볶이·꼬마김밥·잡채밥·비빔당면도 알아준다.

마산합포구 해안도로와 어시장 부근에 리베라호텔 등 호텔과 모텔들이 많다.

벚꽃축제인 제53회 진해군항제가 4월1~10일 진해구 중원로터리 등 도심 일대에서 열린다. 진해구 곳곳에 36만그루의 왕벚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물길 따라 벚나무들이 심어진 여좌천, 철길 따라 심어진 경화역 등 벚꽃 명소들이 즐비하다. 벚꽃은 이번주부터 절정을 이뤄 축제기간 내내 꽃비를 흩날릴 전망이다. 진해군항제의 백미인 '진해 군악의장페스티벌'은 4월3~5일 진해공설운동장 등에서 벌어진다. 육·해·공 3군과 해병대 의장대 등이 절도 있는 의장시범을 보여준다. 4월5일 진해공설운동장 상공에선 공군 특수비행전대인 '블랙이글스'가 곡예비행을 선보인다. 마산역~경화역(무정차)~진해역을 오가는 벚꽃 왕복열차도 운행된다. 바다에선 올해 처음으로 크루저요트 및 카약 체험장도 운영된다.

창원시청 관광과 (055)225-3703, 창원시티투어 (055)287-1212, 마산역 관광안내소 (055)253-3695, 진해군항제 축제위원회 (055)225-3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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