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아무리 재주 좋은 농부라도.. 추운 날에 씨앗 싹트고 작물 자라게는 못해"

최보식 선임기자 2015. 3. 31.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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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텃밭이 없는데도, 최근 출간된 '텃밭 가꾸기 대백과'를 잡는 순간 공부하듯 읽었다. 576쪽의 두꺼운 분량이다.

서문(序文)은 이러했다.

"작물을 심고 가꾸는 것은 농부지만, 농사는 하늘과 함께하는 작업이다. 나는 농사를 지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걸 알았다."

저자 조두진(48)씨는 '대구도시농부학교 교감'으로 되어 있었다. 다년간의 텃밭 농사 경험으로 도시 농부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이런 텃밭 찬양도 직업적으로 가능할 것이다.

"옛사람들은 섭생(攝生)의 시작으로 몸을 수고롭게 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라고 말했다. 그렇게 하는데 텃밭 농사만 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의 본업은 매일신문 문학 담당 기자이고 소설가였다. 작품집이 9권이나 된다.

볕 좋은 봄날에 대구로 내려가니, 그는 땀을 흘리며 자신이 운영하는 도시농부학교의 텃밭으로 안내했다.

"3년 전 대구시교육감이 저녁 먹는 자리에서 '요즘 대구자연과학고(옛 대구농고) 학생들은 벼농사 실습을 안 하려고 해 논이 남아돈다'고 말했다. 순간 내가 '텃밭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게 맡겨주면 한번 해보겠다'고 나섰다. 쇠뿔도 단김에 빼야지, 자리가 파한 뒤 한밤중에 교육감과 함께 여기로 와봤다."

학교 농지 1000평이 일반인에게 10평(33㎡)씩 텃밭으로 임대 분양됐다. 그는 무급(無給)의 도시농부학교 교감을 맡았다. 처음 호미를 잡은 이들을 대상으로 실전 강의를 해왔다고 한다.

"신문사 다니면서 10년 전부터 텃밭 농사를 지었다. 주말마다 풀을 뽑고 물을 주는 노동을 했다. 밭에만 있으면 잡념이 없어졌다. 그 과정에서 농사 관련 서적도 30권쯤 독파했다."

―시간이 남으면 소설 작품을 계속 쓸 일이지, 농사서(書)까지 내는 것은 과하지 않나?

"주말 하루 도시농부학교에서 강의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이미 다 해줬던 얘기인데 다음에 또 묻는다. 한창 농사철이면 하루에 문의 전화만 30통씩이나 온다. 이런 몹쓸 질문들에 성가셨다. 내 생업도 아니고, 그래서 책을 썼다. '궁금한 것 여기에 다 들어 있다'며 우리 도시 농부들에게 나눠줬다."

―이런 책을 쓸 만한 전문성을 갖춘 게 맞나? 평생 농부들이 보고 웃지 않겠나?

"처음 호미와 물뿌리개를 든 도시 텃밭 농부가 대상이지, 특수작물 재배에 관한 전문적인 내용이 아니다. 다만 내 나름의 방식이라면 '세파(世波)농법'이다. 작물을 세파에 시달리게 하며 키우자는 것이다."

―왜 작물을 세파 속에서 힘들게 하는가(웃음)?

"비닐하우스나 '비닐 멀칭(검정 비닐 등으로 밭을 덮어주는 것)'으로 비료를 주고 키우면 크고 윤기 나지만 싱겁다. 노지(露地)에서 천천히 느리게 키운 채소는 그만큼 햇볕을 받는 시간이 늘어난다. 작지만 단단하고 고유의 맛을 낸다. 마트에서 구입한 토마토가 왜 맛이 형편없는지 아나? 익기 전인 새파랄 때 따기 때문이다."

―그렇게 안 하면 유통 기간 때문에 물러터진다.

"텃밭에서 햇볕을 충분히 받아 빨갛게 익은 토마토를 따먹으면 정말 맛있다. 햇볕에 오래 노출되느냐는 중요하다. 맛과 영양에서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 작물에 원산지를 표시하는 것처럼, 햇볕을 얼마나 많이 받았는지 일조량(日照量)도 표기해야 한다. 밭에 오래 있었으면 그만큼 경제적 투자도 많았으니 가격을 더 받아야 하는 것이다."

―토마토가 나온 김에, 몇 년 전 아파트 베란다에서 심어봤으나 실패했다.

"토마토는 햇볕이 많이 필요하다. 일조량이 적은 베란다에는 상추나 생강을 심어야 한다. 상추가 병해충이 적고 금방 자란다."

―그때 고추 또한 잘 자라지 않았다.

"재배가 어려운 작물이 고추다. 병해충에 약하기 때문이다. 장마가 오고 나면 탄저병·고추씨마름병 등 온갖 병균이 다 달라붙는다. 고추는 농약을 한 번도 안 치겠다면 수확을 포기해야 한다."

―병충해를 줄이려면 연작(連作)을 피해야 한다고 들었다.

"같은 과(科) 작물을 연작하면 땅속에 낳은 유충이 이듬해에 올라오기 때문이다. 참고로 고추·토마토·가지·감자 등은 같은 가짓과다. 다른 과 작물을 심으면 괜찮다."

―벌레 먹고 못생긴 채소가 더 몸에 좋다고들 하는데.

"건강에 민감한 도시인들이 그렇게 오해한다. 벌레는 부드럽고 고소한 채소를 골라 먹는다. 질소 비료를 많이 주면 그렇게 된다. 사실 구멍이 숭숭 난 채소에는 벌레 알과 분비물, 세균이 묻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기형적으로 생긴 채소는 영양 부족이나 불균형을 말한다."

―유기농을 고집하지 말고 농약을 쳐줘야 한다는 건가?

"농약을 거부한다는 것이 손 놓고 있겠다는 말이 돼서는 안 된다. 직접 벌레를 잡거나 천연 농약을 만드는 수고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간단한 천연 농약은?

"상한 우유와 요구르트를 물에 섞어 분무기로 잎에 뿌려주면 점성(粘性) 때문에 진딧물이 붙어서 말라죽는다. 사나흘 뒤 물을 뿌려 잎을 씻어주면 된다."

―비료나 영양제도 줘야 하지 않나?

"전업농은 수익 극대화를 위해 최대한 빨리, 크게 키우는 것이 목표다. 하지만 텃밭 농부는 작물 고유의 성장 속도에 맞춰 타고난 크기 정도로 키우면 된다."

―어떻게 하라는 소리인가?

"잡풀을 뽑고 병든 잎을 뜯어주라. 비 오거나 물 주고 난 뒤 마르면 땅이 코팅되듯 딱딱해져 뿌리로 산소가 못 들어가면, 호미로 땅거죽을 슬슬 긁어주라. 자주 밭에 들르는 게 비싼 영양제보다 낫다. '작물은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다."

―바쁜 일상에서 텃밭에만 매일 수가 있나?

"텃밭의 조건에서 우선은 집이나 직장에서 얼마나 가까운가 하는 것이다. 자주 들르면 돌밭도 옥토가 되지만 멀리 있으면 옥답도 금방 쑥대밭이 되고 만다."

―텃밭 농사를 짓는 이유가 직접 기른 유기농 채소를 먹기 위함인가?

"그런 목표로만 텃밭을 하겠다면 바보짓이다. 거기에 투자할 시간과 비용으로 마트에 가서 유기농 채소를 사는 게 훨씬 낫다."

―식탁에 올릴 채소가 목적이 아니라면?

"밭에 나가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스스로 한가해지고, 햇볕을 온몸으로 받다 보면 자신의 삶이 달라질 수 있다. 나는 이걸 최고로 친다. 물론 가족이 넉넉하게 먹고 이웃에게 나눠줄 만큼 수확은 해야 한다. 농사를 망치고는 텃밭을 계속 하기는 어렵다."

―무엇이 농사를 망치게 하나?

"처음 하는 사람들은 무엇이든 많이 심고, 빨리 심고, 최고로 잘 키우려고 한다. 과도한 열망 때문에 종종 실수를 저지른다."

―가장 흔한 실수는?

"농사는 하늘과 함께하는 작업이다. 아무리 재주 좋은 농부라도 추운 날씨에 씨앗을 싹트게 하거나 작물을 자라게 할 수 없다. 날씨가 충분히 따뜻하지 않았는데 초보자들은 급한 마음에 일찍 모종을 심는다. 대부분 냉해(冷害)를 입게 된다."

―이미 모종이 나와 있는데.

"아직은 느긋하게 기다려야 한다."

―요즘처럼 따뜻한 날이면 적기(適期)가 아닌가?

"사람은 대기 온도에 민감하지만 식물은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 대지(大地) 온도에 영향을 받는다. 아직 대지는 따뜻하게 데워지지 않았다. 지역 편차가 있지만 고추, 가지, 토마토, 오이 등의 모종은 5월 중순에 심는 게 낫다. 하지만 씨앗의 경우에는 뿌리는 데 너무 이른 시기란 없다. 씨앗은 땅속에서 때가 됐다 싶으면 나오니까."

―좋은 모종을 어떻게 구별하나?

"떡잎이 건강하게 붙어 있고 줄기가 비교적 굵으며 마디 사이의 간격은 짧은 게 좋다."

―모종을 심는 데도 기술이 있나?

"원래 모종 포트(pot)에 박혀 있던 깊이만큼 심는다. 초보 농부는 모종을 깊게 심는 경향이 있다. 이러면 뿌리 내림이 나쁘고 줄기가 흙에 묻혀 땅속 병균에 오염될 수 있다. 깊게 심는 편보다는 얕게 심는 편이 낫다."

텃밭에 남아 있는 봄동 두 포기를 뽑아 그의 단골 식당으로 갔다. 술잔을 비우고는 쌈장에 찍은 봄동을 입속으로 집어넣었다.

―봄은 왔는데, 지금 텃밭에서 무얼 해야 하나?

"아무 땅에 심기만 하면 작물이 자라는 게 아니다. 뿌리가 쉽게 내릴 수 있도록 푸석푸석하게 밭을 갈아줘야 한다. 흙을 깊게 뒤집어주는 게 좋다."

―밭갈이를 마친 뒤에는?

"농사를 오래 지어 산성화된 밭에는 석회를 넣어줘야 한다. 열흘쯤 지나 밑거름을 넣어 흙과 잘 섞어준다. 이때 발생하는 가스는 작물에 해롭다. 모종 심기 2주 전에 작업을 끝내야 한다. 물 빠짐이 좋도록 두둑과 고랑도 만들어야 한다. 이런 노동의 수고를 즐기는 게 텃밭 농사다."

―부인과 함께 텃밭을 하나?

"이런 일을 싫어한다. 텃밭에서 수확한 작물은 바깥에서 모두 다듬어서 들어간다. 마치 마트에서 장 봐서 가는 것처럼. 아내가 도시 사람이라서."

―어느 도시이기에?

"대구(그는 경남 합천 출신)."

봄날의 이날 인터뷰는 텃밭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기초 상식' 수준이었을지 모르겠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 특별난 게 없이 그렇고 그런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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