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L 최초의 '트리플 크라운' 주인공, 기록의 사나이 '순수 청년' 김주성을 만나다

[바스켓코리아 = 편집부] KBL 최초 트리플 크라운의 주인공인 원주 동부의 포워드 김주성. 그는 원주 동부 뿐 만 아니라 KBL을 대표하는, 그리고 2000년대 한국 남자 농구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205cm이라는 훤칠한 신장을 지닌 김주성은 농구를 하기에 다소 가냘픈 몸매를 가지고 있지만, 풍부한 탄력과 탄탄한 기본기, 그리고 높은 BQ로 체격적인 열세를 만회하며 한국 농구를 대표하는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더 바스켓에서는 '연중 기획' 코너를 통해 김주성과 농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 KBL 데뷔, 그리고 13년
김주성은 부산 영남중학교와 동아고등학교를 거쳐 중앙대학교에 입학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농구를 시작한 '늦깎이' 였던 김주성은 중앙대로 진학하며 기량이 일취월장했다. 당시 중앙대를 지도하고 있던 정봉섭 감독의 특별 관리를 받았던 김주성은 모자란 하드웨어를 키우기 위해 우족을 몇 달 동안 고아 먹는 등, 정봉섭 전 감독의 극진한 관리를 받았다. 그리고 탁월한 기량을 장착하며 '향후 KBL을 책임져 줄 선수'라는 평가를 받으며 허재(전 KCC 감독)와 강동희(전 원주 동부 감독) 그리고 김유택(전 중앙대 감독)과 한기범(한기범 희망나눔재단 대표)이 만들었던 중앙대 1차 전성기 이후 두 번째 중앙대 전성기를 이끌었던 주인공이 되었다.
그렇게 김주성은 많은 관심과 함께 2002년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당시 원주 TG 삼보 엑서스 유니폼을 입게 되었고, 이후 팀이 TG와 동부로 이름을 바꾸는 가운데도 정규리그 우승 4회, 플레이오프 3회 우승이라는 대단한 역사를 이룩하는 데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그렇게 2014-15 시즌까지 13년 동안 김주성은 '꾸준함'을 키워드로 KBL을 누비고 있다.
입단 후 김주성은 창원 LG 전(2002년 10월 26일 창원 실내체육관)을 통해 프로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당시 김주성은 프로 첫 게임 임에도 불구하고 19점 11리바운드로 더블더블을 기록하며 팀이 77-75, 2점차 승리를 거두는 데 일등 공신이 되었다. 개막전 승리를 거둔 TG는 이후 승승장구하며 리그를 관통했고, 김주성은 팀이 정규리그 3위에 오르는 데 자신의 역할을 더했다.
당시를 회상해 달라는 질문에 김주성은 "데뷔 첫해 첫 게임이 창원 LG와 원정 경기였죠, 1쿼터 중 후반이었던 걸로 기억이 되요. 터닝슛이었는데, 손에서 좀 빠졌어요, 근데 골로 연결이 되었죠. 그 골로 데뷔 첫 게임이라는 긴장감이 풀렸던 것 같아요, 하지만 계속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죠"라며 프로 첫 경험에 대해 털어놓았다. 그러나 정신없이 보냈다고 하기에 더블더블은 신인에게 큰 기록이었고, 당시 게임에서 수훈 선수로 선정되면서 화려하게 프로에 이름을 알린 김주성이었다.
▶ 프로 데뷔 13년, 그리고 꾸준함
지난 13년 동안 김주성은 '꾸준함'이 자신의 브랜드였다. 데뷔 원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13년 동안 김주성은 소속팀과 국가 대표를 오가며 '성적'이라는 단어에서 책임감을 다했다.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을 시작으로 지난 인천 아시안 게임까지 12년 동안 아시아선수권 대회와 아시안 게임 등 크고 작은 국제 대회에 자신을 내던졌다. 그리고 지난 13년 동안 소속 팀이었던 동부에서도 아주 오랫동안 팀을 이탈한 적이 없을 정도로 김주성을 대표하는 브랜드인 '꾸준함' 만큼은 따라올 선수가 없을 정도이다. 현재 전주 KCC 감독 대행을 맡고 있는 추승균 코치 정도가 김주성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고 볼 수 있다.
김주성은 "적어도 40살 까지는 현역 생활을 이어가고 싶어요(웃음). 큰 부상을 당해 쉰 적이 있긴 하지만, 꾸준히 많은 게임에 나서고 싶어요. 어린 선수들과 한 게임이라도 더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조금 있다가 체력이 떨어지면 어차피 뛰고 싶어도 뛸 수 없잖아요. 지금부터라도 최선을 다해 열심히 뛰고, 힘이 부친다 싶으면 은퇴 해야죠"라고 말했다.
갑자기 '은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김주성은 한국 나이로 36세. 은퇴를 생각해 볼 나이가 되긴 되었다. "체력이 떨어지면 미련 없이 선수를 그만 둘 생각이죠. 하지만 농구가 하면 할수록 재미있어요. 전술이나 기타 등등 농구는 단순하면서 어려운 운동인 것 같기 때문이죠. 더 알고 싶다는 이유가 존재하죠. 여러 가지로 알고 싶은 게 많아요. 순간적인, 즉흥적인 부분들에 대한 것들이 많아요. 기록을 남기려고 하는 건 아주 일부에 지나지 않아요"라며 은퇴에 대한 철학을 이야기했다.

김주성은 데뷔 이후 꾸준함과 함께 '성장'이라는 단어와 괘를 같이 했다. 데뷔 시즌이었던 2002-03 시즌 평균 17.04점, 8.7리바운드, 2.2어시스트를 기록했고, 이듬해 평균 18.35점, 8.9리바운드, 2.4어시스트를 만들었다. 이후 매 시즌 평균 15점에 가까운 득점에 6개의 리바운드, 그리고 3개에 가까운 어시스트를 만들며 동부의 중심이 되어 주었다.
데뷔 두 번째 시즌이었던 2003-04 시즌 이후 조금씩 스탯이 떨어졌던 김주성은 보이지 않는 공헌도는 훨씬 높아졌다. 수비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능력과 경기를 운영하는 능력, 그리고 선수단 중심을 잡아주는 이타적이고 센스 있는, 또 조용한 카리스마가 넘치는 선수로 계속 진화(進化)했던 것이다.
그렇게 한 해가 다르게 진화를` 통해 자신의 내공을 키운 김주성은 같은 학교 후배인 윤호영, 그리고 지난해까지 울산 모비스에서 활약했던 로드 벤슨이라는 센터와 함께 KBL 시즌 최다승 기록(44승 10패)라는 기록으로 정규리그 우승을 거머쥐었던 2011-12 시즌 '동부산성'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고, 30대 중반을 넘어선 올해까지 동부산성의 중심으로 활약을 펼치고 있다.
김주성은 그렇게 성장과 발전이라는 단어에 자신을 포함시키며 지금에 이르렀다. 그는 이에 대해 "매 시즌 '새롭게'라는 단어가 생각났죠. 발전에 대한 압박이 있어 심리적으로 부담이 존재했죠. 하지만 저 뿐 만 아니라 모든 선배들과 선수들이 그랬을 것 같아요. 그래서 그저 열심히 한 것이 주변 분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게 되었다고 생각해요"라고 몸을 낮췄다.
그리고 그의 1차 키워드인 '꾸준함'에 대한 이야기가 더해졌다. 그는 "사실 잔부상이 많았어요. 데뷔 이후 계속 플레이오프에 참가하다 보니 체력적인 부담이 적지 않긴 했죠. 사실 쉬고 싶은 마음이 없진 않았어요(웃음). 하지만 국가대표도 소집이 되었으니 '가야한다'고 생각했죠. 시즌이 끝나고 멍하니 있다가 태릉이나 진천 선수촌에 들어가곤 했어요. 그리고 태극 마크의 자부심을 가지고 나름 열심히 했다고 생각해요. 저 같은 경우는 코트 안에서는 부러지거나, 정말 못 뛰는 거 아니면 경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죠"라며 꾸준함에 대한 원천이 '정신자세'라는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언제부터 그런 가냘픈 몸매에 강인한 군인 같은 정신 자세가 생겼는지 궁금했다. "언제부터 인지 정말 모르겠어요. 그냥 못 뛸 정도가 되면 쉬는 게 맞다고 생각하죠.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열심히 그냥 '무념'으로 해야 하는 상황에 충실히 했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들을 해주는 것 같아요"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김주성은 그냥 열심히 하는 재미없는 선수였고, 그 재미없이 열심히 했던 김주성은 KBL에서 '꾸준함'으로 대표되는 선수가 되었던 것이다.
▶ 정규리그 4회 우승, 3회의 챔피언의 경험
위에서 언급한 대로 김주성은 동부라는 팀에 처음 우승을 안긴 인물이고, 이후 2번의 챔피언 트로피와 4회의 정규리그 우승에 모두 관여했다. 첫 우승 당시 동부는 대한민국 농구의 레전드인 허재(전 KCC 감독)를 비롯해 신기성(현 부천 하나외환 코치)과 양경민(은퇴)이라는 포지션 별 리그 탑 플레이어가 존재했고, 데이비드 잭슨이라는 슈터, 그리고 데릭 존슨이라는 하드웨어가 좋은 센터에 김주성이라는 마지막 퍼즐이 맞춰지며 우승을 차지했다.
2002-03 시즌 KBL에 데뷔했던 김주성은 첫 해부터 플레이오프 우승이라는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당시 감회를 말해달라는 질문에 김주성은 "정규리그 3위로 챔피언 전에 올라갔고, 4승 2패로 오리온스를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했어요. 정말 기분이 좋았고, 프로 선수로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김주성은 "하지만 제가 큰 역할을 못했어요. 그저 기여만 했을 뿐이죠" 라고 말했다.

동부는 위에서 언급한 대로 정규리그에서 4번 챔피언, 플레이오프에서 3번 우승을 차지했다. 2003-04 시즌 첫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한 것을 비롯해 이듬해인 2004-05 시즌에도 정규리그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그리고 2년 동안 절치부심한 동부는 2007-08 시즌 다시 정규리그 타이틀을 획득한 후, 2011-12 시즌 정규리그 최다승(40승 11패) 기록을 갈아치우며 4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플레이오프는 김주성이 신인이었던 2002-03 시즌 정규리그 3위를 차지한 후, 대구 오리온스(현 고양 오리온스)와 플레이오프를 펼쳐 4-3으로 물리치며 첫 플레이오프 정상을 밟았다. 그리고 1년을 쉬어 간 동부는 2004-05 시즌 전주 KCC를 4-2로 꺾고 두 번째 트로피를 거머쥐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세 번째 우승은 정규리그 정상에 올랐던 2007-08시즌이다. '독주'라는 단어와 함께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동부는 챔프전에서 서울 삼성을 4-1로 가볍게 물리치고 세 번째 정상에 올랐다.
▶ 김주성, 그리고 대표팀
대학 시절부터 대표팀에 소집되었던 김주성은 지난 인천 아시안 게임까지 무려 17년 동안 태극 마크를 가슴에 달았다.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을 시작으로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 그리고 2006년 도하 아시안 게임과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 마지막으로 2014년 인천 아시안 게임과 ABC(아시아선수권대회)대회에 참가했다. 또한 지난해 스페인에서 벌어졌던 농구 월드컵에 참가했다. 결국 두 번의 금메달(2002년 부산, 2014년 인천)을 따는 데 공헌했고, 두 번의 은메달(1998년 방콕, 2010년 광저우)에 동참했다.
김주성은 "두 번의 금메달은 대단한 일이죠. 앞으로도 없을 것 같아요. 2002년에는 결승전에서 19점을 넣었죠. 정말 기분이 좋았어요. 그리고 연장전 끝에 우승을 해서 더욱 기뻤던 것 같아요. 당시 중국은 야오밍, 왕즈즈, 후웨이동 등 전력이 막강했죠. 사실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선수는 거의 없었어요(웃음) 그런데 계속 경기가 10점 차 정도로 유지가 되었죠. 그래서 선수단 모두가 '4쿼터 승부를 걸어보자'라는 의지가 생겼고, 4쿼터에서 (김)승현이 형이 정말 대단한 스틸을 해냈고, 득점으로 연결했죠. 그리고 연장전으로 갔고, 중국을 물리치며 우승을 했죠. 정말 감격적인 순간이었어요"라고 이야기했다.
김주성의 말처럼 당시 중국은 NBA에서 활약하고 있는 센터 야오밍이라는 거목이 있었고, 왕즈즈라는 막기 힘든 파워 포워드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후웨이동이라는 아시아 정상급 스몰 포워드의 존재도 있었다. 단, 가드 진이 다소 약할 뿐이었고, 대표팀은 그 부분을 정확히 공략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또, 김주성은 지난 아시안 게임 금메달에 대한 느낌도 털어놓았다. "이란이 1994년 중국만큼 강하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어요. 하지만 '승리하기 힘들 것 같다'라는 느낌은 있었죠. 근데 (김)종규 등 후배들이 너무 잘해주었어요. 보셔서 아시겠지만, 4쿼터 후반은 정말 드라마였죠. 기분이 정말 짜릿했어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리고 그는 "이제 대표팀은 은퇴해야죠. 아마 다시 부를 일도 없을 거여요(웃음) 지난 대회를 통해서 후배들이 너무 잘 해주었기 때문에 저는 빠져도 될 것 같아요"라며 성격답게 조용히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AG와 관련한 아쉬움도 털어놓았다. "2006년 도하 아시안 게임은 정말 아쉬워요. 조금 더 준비를 했다면 분명히 5위라는 성적표를 받지 않아도 되었던 게임이죠. 그리고 2010년 광저우에서도 중국이 아닌 3국이었다면 분명히 저희가 이겼을 거 같아요. 정말 홈 콜이 심했죠. 아쉬움 가득한 두 대회였어요"라고 16년 동안 경험했던 아시안 게임 대표에 대해 이야기했다.

▶ 김주성이 바라는 은퇴 후 자신의 모습은?
많은 이슈를 뿌리고 선수 생활을 이어온 김주성에게 위에서 언급한 대로 어느덧 '은퇴'라는 단어를 생각할 나이가 되었다. 한국 나이로 36살인 그는 아직 원주 동부의 '기둥'으로서 존재감을 뽐내고 있지만, 나이가 주는 한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한다.
그럼 김주성은 어떤 선수로 남고 싶을까? 질문을 해봤다. 그는 "가장 좋은 건 농구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선수가 되면 좋죠(웃음) 하지만 언론에 많이 나오는 것처럼 '꾸준함'으로 기억되는 선수였던 것도 좋은 것 같아요. 그리고 만약에 은퇴를 한다면 농구계 쪽에 몸담고 싶어요. 미국으로 연수도 다녀오고 싶고요, 제가 제일 잘하고 좋아하는 게 농구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보다 먼저 은퇴하신 선배님들도 '되도록 농구계 쪽에 남아 있는 게 좋다. 그리고 선수 시절에 몸 관리 잘해서 조금이라도 더 하는 게 좋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저도 틀리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관리를 잘해서 할 만큼 하다가, 한계가 오면 미련 없이 은퇴를 하려고 생각하고 있어요"라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2007-08 시즌 KBL 역사 상 첫 트리플 크라운(올스타전 MVP, 정규리그 MVP, 플레이오프 MVP)를 차지했던 '순수 청년' 김주성의 인터뷰는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다.
김주성은 트리플 크라운 뿐 만 아니라 많은 기록을 써내려가고 있다. 2014-15 시즌을 통해 역대 8번째(단일 팀 2번째) 600경기 출장(주희정, 추승균(단일 팀 1위, 736경기), 서장훈, 신기성, 문경은, 임재현, 송영진)기록을 늘려가고 있고, 역대 2번째 3,900리바운드(서장훈, 5235개)도 달성했다. 또, 역대 4번째 통산 9,100점을 기록했고, 역대 17번째 1,700어시스트로 기록했다. 이제 KBL에서 '기록의 달인'으로 등극을 앞두고 있다. '순수 청년' 김주성의 건투를 기원해 본다.
글 = 김우석 기자, 사진 = 이솔 기자
[이 기사는 농구 전문 잡지로 2015년 1월 새롭게 창간한 더 바스켓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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