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알듯 모를 듯 약값의 비밀?..'3.5배 차'가 틀렸던 이유

심영구 기자 2015. 3. 24.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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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선 2,000원, 어디선 7,000원…3배 넘게 차이나는 약값?

'트라스트 패취'라는 의약품이 있다. 붙이는 관절염 치료제인데, 의사 처방 없이도 약국에 가면 살 수 있는 일반의약품이다. 이 약을, 작년 하반기에 서울 강동구의 한 약국에선 3매가 들어있는 1팩을 2,000원에 팔았는데 동대문, 동작, 양천, 종로구에 있는 어떤 약국들에선 4,000원에 팔았다고 조사됐다. 같은 약인데, 지역 최저가와 최고가가 2배나 차이나는 것이다. 서울 약국의 평균가격은 3,000원 정도였다.

그런데 강원도와 대전의 어떤 약국은 이 약을 6,000원에 팔았다. 인천의 한 약국은 6,500원, 그리고 전북 진안군의 한 약국에선 무려 7,000원에 판매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전국 최저가 2,000원과 비교하면 무려 3.5배나 비쌌다. '하벤허브캡슐'이라는 감기약은, 최저가 1,200원, 최고가 4,000원으로 3.3배 차이가 났고 펜잘큐정은 2.8배, 제놀쿨카타플라스마(파스)는 2.7배 차이가 났다.

이런 내용이 담긴 보건복지부의 '2014년 다소비 일반의약품 가격조사' 자료 를 바탕으로 연합뉴스에서 가장 먼저 기사를 썼다. 자료를 찾아 검토해보니 내용이 맞고 의미도 있어 추가 취재해 "천차만별 약값…섬·시골은 더 비싸"라는 제목의 기사 를 썼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나, 약이 많이 팔리고 경쟁이 치열한 서울 등 대도시 약값이 대체로 싸고 의료취약 지역은 오히려 약값이 비싼 경향을 보인다는 내용으로 중심으로, 개선이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 약사회 "3.5배가 아니다, 폭리도 아니다"

기사가 나간 뒤 취약지역 약사들이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식의 비판이 제기됐다. 이틀이 지나 대한약사회에서 '일반의약품 가격 3.5배 차이는 조사 오류'라는 제목의 자료를 냈다. 여러 언론에서 쓴 '약값 차이 3.5배'는 사실이 아니며, 조사에 오류가 있었다는 주장이었다.

약사회의 설명은 이러했다. 문제의 '트라스트 패취'는 3매들이 1팩과 7매들이 1팩이 있는데 최고가 7,000원에 팔았던 전북 진안 약국의 경우엔, 7매들이 1팩 제품 값이었다는 것, 이 약국엔 3매들이는 없고 7매들이만 들여놓고 판매한다는 것이었다. 주로 노인들이 구매자인데 한꺼번에 많이 사놓고 쓰는 걸 선호해, 많이 든 제품만 가져다놓는다고 했다. 약가조사원이 작년 하반기 이 약국에서 해당 약을 조사할 때도, 조사대상이었던 3매들이가 아니라 7매들이였고 그래서 7,000원이었는데 이를 3매들이 가격인 것처럼 잘못 입력했다는 설명이다. 약사회는 보통 1매에 1,000원 꼴로 보면 되기에 전북 진안 외에도 6,000원대 최고가가 나온 지역은 같은 오류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입장이다. 약사회 설명대로라면 '트라스트 패취'의 최고가는 7,000원이 아니라 5,500원, 최저-최고가는 2천원-5천 5백원, 2.75배 차이가 된다.

'하벤허브캡슐'도 비슷한 조사 오류가 발생했다고 약사회는 주장했다. 최저가 1,200원, 최고가 4,000원으로 최대 3.3배 차이 나는 걸로 조사됐는데 최고가로 판매했다는 충남 홍성의 약국을 다시 확인했더니 이 약국의 판매가는 2,000원이었다고 했다. 2,000원을 4,000원으로 잘못 입력한 것으로 추정되며, 그외 지역의 최고가는 3,000원이기에, 최저가-최고가 차이는 3.3배가 아니라 2.5배라는 것이다.

결국 약사회의 해명은, 약사들이 최저-최고가 차이가 3.5배나 3.3배가 날 정도로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비판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최저-최고가 차이는 2.75배나 2.5배 정도였다. 이렇게 비판하면 표면적으론 부당하지 않은 셈이다. 약사회는 그러나 약값을 이런 식으로 단순 비교해 약값이 상대적으로 비싼 지역에서 더 많은 이득을 보고 있다는 주장은 말이 안된다고 한다. 약국 위치가 어디에 있는지, 의약품을 얼마나 많이 주문하는지에 따라 임대료와 인건비 차이가 나고 제약사 공급가격이 달라지기 때문에 등가 비교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지금과 같은 약값 결정 방식에서는 지역별로 약값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만큼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게 약사회의 주장이다.

● 약값 조사는 왜 하는 걸까

현재 일반 의약품 값은 약사가 정한다. 1999년 3월부터 '의약품판매자가격표시제'가 시행되면서 판매자인 약사가 알아서 약값을 표시하도록 했다. 제약사 공급가격에 중간도매상이 유통비용과 이윤을 붙이고 다시 약국에서 여기에 얼마를 붙여 최종 판매가를 결정하는 식이다. 제도 시행 뒤, 보건복지부는 국민 다소비 의약품에 대해 가격 조사를 해서 공개했다. 첫 조사는 1999년 3분기에, 전문의약품을 제외하고 생산실적 1~100위까지 판매가격을 조사해 발표했다.

당시 가격조사와 발표의 취지는 "...소비자를 보호하고 약국간의 자율적인 경쟁을 유도하기 위하여.."였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났고 2014년 하반기에도 다소비 일반의약품 50개 품목을 선정해 약국 판매가격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초기엔 서울과 부산 등 광역자치단체 위주로 조사했는데 이제는 시군구 단위로까지 확대됐다. 이렇게 약값을 공개함으로써 최고가와 최저가의 격차를 줄여 소비자들에게 더 저렴하게 약이 전달될 수 있게 하자는 게 조사의 취지라는 듯하다.

하지만 매년 많은 비용과 수고를 들여 조사를 하는데도 소비자들은 잘 모른다. 관심이 없어서만이 아니다. 복지부는 이를 적극적으로 알리려 노력하지 않는다.

이번 조사 결과만 찾아보려해도 복지부 홈페이지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은 좀 헤매야 한다.(홈페이지 첫화면에서 맨 위에 있는 '정보'를 클릭한 뒤 여기에 있는 17개 항목 중 위에서 14번째에 있는 현황/통계를 클릭해 들어가면 2월 27일자로 올라와 있는 '2014 다소비 일반의약품 가격조사 결과'를 찾을 수 있다. 이 액셀 파일이 이때쯤 올라오겠거니 아는 이가 아니면 바로 찾기도 어렵다. 기자들이 기사쓴 시점은, 자료가 올라온지 18일 뒤부터였다. 기자들도 몰랐기 때문이다. 때때로는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보도나 해명자료를 내는 복지부가 어찌된 영문인지 "이전부터 보도자료는 내지 않았다"면서 의약품 가격 조사 결과는 그저 홈페이지에 올려놓기만 하고 있다.

● 조사 결과를 봐도…필요한 정보는 없다

자료를 열면 1번부터 50번까지 제품 이름이 나와 있고 효능과 규격, 포장단위, 회사명 다음에 각 시군구 조사결과부터 나온다. 50개 품목별로 평균가, 최저가, 최고가, 이렇게 200여 개 시군구별로 따로 나오고 광역자치단체별 집계가 중간중간에 껴 있다. 이 자료를 검토해 최저가와 최고가 차이가 가장 많이 나는 '트라스트 패취'를 찾아내기 위해 액셀 파일을 부분부분 재구성해 비교 분석해봐야 했다. 하벤허브캡슐이나 펜잘큐정, 베아제정 등도 마찬가지 과정을 거쳤다.

기사를 쓰기 위해 분석과 검토를 해야 하는 기자도 이렇게 해서야 비로소 비교가 가능했는데 그냥 약값 정보를 직접 알고 싶었던 소비자, 시민은 어땠을까. 다시 말해 그 흔한 보도자료(보도자료는 기자들에게만 제공하는 게 아니다. 시차는 있으나 홈페이지에 전부 공개된다.) 하나 내지 않는 이유가 참 궁금하다.

어느 소비자가 이런 과정을 거쳐 한 의약품의 가격정보를 찾아봤다고 치자. 이 소비자가 알 수 있는 정보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판매되는 약값의 최고가, 최저가, 평균가 정도다. 어떤 약국에서 그렇게 파는지도, 어디를 가야 싸게 살 수 있는지, 아니면 자신이 가던 약국이 비싸게 팔고 있었는지 등등 정작 알고 싶은 내용은 자료에 없다.

즉, 이렇게 수고스럽게 조사해 정리한 자료는, 복지부 홈페이지에, 좀 과장되게 말하면 꼭꼭 숨겨져 있고, 그나마 어렵게 찾아내도 한눈에 정보가 들어오지도 않게 돼 있고, 그나마도 필요한 정보는 없거나 적다. 그나마도 결정적인 오류마저 있었다. 이런 조사를 왜 하고 있는 걸까? 예산을 소진해야 해서가 아니라면 적어도 소비자를 위한 조사가 아닌 것 같다.

약사들이 불만을 갖는 것도 제 나름대로 타당한 면이 있다. 약값이 '이렇게 차이가 난다'는 정보 말고는 전달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오류가 없어서 '트라스트 패취' 약값이 지역별로 최대 3.5배나 차이가 난다고 해서 정부가 시정하라고 권고할 것도 아니고, 소비자들이 그 약국을 안 가는 식으로 응징할 것도 아니다. 남는 건 왜 그런지, 어떻게 하면 개선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 없이 "그렇게 받는 약국은 나쁜 약국"만 남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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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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