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관경매에서 나도 심봤다~



[한겨레] 지난 9일 오후 3시 인천공항 여객터미널 지하 1층. '체화창고'(Customs Warehouse)란 푯말이 새겨진 사무실의 철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이곳엔 세관이 공항 면세구역에서 습득한 분실물이나 입국장에서 통관되지 못한 물품들이 보관돼 있다. 이 물품들은 소유자가 일정기간(통상 한두달) 이상 찾아가지 않아 '세관공매'로 나온 것들이다. '똑똑똑' 인기척을 알리는 두드림이 있자 직원이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세관공매 매각물품 공람하러 왔습니다." 인천공항세관은 다음날인 10일 올해 제1차 4회째 공매를 열 예정이었다. 입찰 예정자들은 공매 전날 오후 1~5시 체화창고를 방문해 물품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200㎡ 남짓한 공간에 화장품, 술, 가방, 향수, 면도기, 선글라스, 식료품, 담배 등 온갖 종류의 물품이 가득했다. 6열로 나란히 정렬된 3단 철제 선반 공간도 모자라 바닥 여기저기엔 새 주인을 기다리는 물품이 널려 있었다. 체화창고 관리인은 "인천공항은 하루 비행기 340편에 4만명이 입국한다. 한편당 습득물 한건만 나와도 꽤 많은 양이다. 어른 한두명 들어갈 만한 상자 4개가 한달에 한번씩 공매물품으로 이곳에 들어온다"고 말했다.
물품 공매가격은 전문 감정인이 감정한 가격에 세금을 붙여 정해진다. 공매 횟수가 한차례 늘어날 때마다 첫 공매가의 10%씩 가격이 낮아진다. 공매는 1년에 5차(각 차마다 일주일 간격으로 6회 공매)까지 있다. 차수가 바뀔 때마다 공매물품은 달라진다. 예컨대 1차 1회 공매가격이 1만원인 물품은 1차 2회에선 9000원, 1차 3회에선 8000원으로 1000원씩 싸진다.
세관공매는 이처럼 세관을 방문하는 일반입찰도 있고 인터넷을 통한 전자입찰도 가능하다. 전자입찰은 2005년 12월부터 유치물품을 효과적으로 처리하려는 취지에서 도입됐으나 일반입찰에 비해 물품이 적다. 인천공항세관의 한 관계자는 "전자입찰은 일반인 편의를 위해 도입했다. 굳이 직접 물품 상태를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품명과 규격이 정해진 것만 내놓는다"고 말했다. 관세청이 운영하는 '유니패스'(portal.customs.go.kr)에서 입찰할 수 있다.
이날 체화창고를 찾은 이유는 공매물품 항목 가운데 입찰해보기로 한 니콘 카메라(D3200)와 카메라렌즈(18-55㎜)의 물품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공매물품은 공매 2주일 전 해당 세관의 인터넷 누리집 공매공고에서 볼 수 있다. 공람을 하려면 공람 전날 체화창고(032-740-4135)에 전화해 미리 협조를 구하면 된다. 올해 1차 공매에는 모두 56점이 나왔다.
물품을 직접 확인해보니 흠집도 없고 포장 상태도 좋았다. 문제는 가격. 니콘 카메라의 1차 1회 공매가격은 29만7000원, 카메라렌즈는 8만3160원이었다. 이번 횟수는 1차 4회였기 때문에 각각 17만8200원, 4만9896원까지 값이 떨어졌다. 인터넷 가격비교 사이트를 찾아보니 시중 최저가는 각각 41만1560원, 8만2450원이었다. 이날 공람대장을 보니 체화창고를 찾은 사람은 한명뿐이었다. 입찰 경쟁자가 적은 듯했고, 앞으로 2회 더 남아 있었기 때문에 가격이 최저점일 때인 1차 6회 공매 예정일(3월24일)을 노리기로 하고 이번 공매에는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체화창고에서 1차 공매 물품을 확인하다, 그 옆에 잔뜩 놓인 양주들이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왔다. 발렌타인 30년산 3병을 선두로, 글렌피딕 21년, 조니워커 골드라벨 등 내로라하는 양주들이 즐비했다. 관리인에게 "언제 공매하느냐"고 묻자, "앞으로 2주 후에 진행될 예정이고 공매 예정가는 정해지지 않았다"는 답변을 듣고 2주 뒤를 기약했다.
세관 통과 못한 물품들 공개매각한달에 큰 상자 4개 분량 나와감정가에 세금 붙여 공매 시작안팔리면 10%씩 내려, 6회차엔 반값공매 2주 전 누리집서 물품 확인세관 방문 안하고 전자입찰도 가능6회차도 유찰되면 보훈공단으로고가품 많고, 물량도 많지 않아
다음날인 10일 오전 10시 인천공항 화물청사 2층 공매장. 이날 공매장에는 모두 4명의 입찰자가 나타났다. 통상 가격이 많이 떨어지는 5, 6회에 입찰자가 많다고 한다. 인천공항세관 통관지원과는 오전 10시까지 공매장에 들어온 사람에 한해 입찰 자격을 준다. 입찰서 제출이 마감되면 곧장 최고가를 써낸 입찰자에게 낙찰된다. 낙찰자는 대금을 납부한 뒤 물품반출증을 받아 체화창고에 가서 물품을 손에 쥐게 된다.
이날 낙찰물품은 총 3점. 낙찰물품을 보니 이게 웬일인가? 하필 점찍었던 니콘 카메라와 카메라렌즈가 포함돼 있었다. 니콘 카메라는 17만8200원, 카메라렌즈는 4만9900원에 다른 입찰자의 품에 안겼다. 눈치작전을 펴며 더 싸게 사려다 낭패를 본 셈이었다. 인내심과 결단력의 절제를 살리지 못한 '초보'의 작전 실패였다. 이날 다른 낙찰물품인 이어폰은 입찰자 2명이 나란히 입찰한 결과 가격을 높게 써낸 쪽이 가져갔다.
전국 세관에서 차수별로 마지막 6회 공매까지 유찰돼 새 주인을 찾지 못한 물품들은 모두 세관위탁물품 판매 지정기관인 보훈복지의료공단(www.bohunshop.or.kr)으로 넘어간다. 이곳에선 판매될 때까지 공매를 하게 된다. 공단은 사업자등록증을 가진 도소매상을 대상으로는 전자입찰로 경매를 진행하고, 일반인에게 팔 물품들은 진열판매(온라인 판매 병행)를 한다. 서울 강남구 학동로에 있는 세관위탁물품판매장(평일 오전 9시30분~오후 6시30분 운영)에서 진열판매 물품을 보고 살 수 있다. 공단의 전자입찰과 온라인 구매를 하려면 개인과 기업 회원 모두 인증절차를 거쳐 회원 가입을 해야 한다.
보훈복지의료공단의 연도별 위탁판매액을 보면, 2012년 56억원, 2013년 62억원, 2014년 72억원으로 늘고 있는 추세다.
공단은 세관에서 위탁물품이 들어온 첫날부터 한달이 지나면 가격을 10% 내리고 이후 열흘이 지날 때마다 10%씩 가격을 인하한다. 전국 각 세관의 공매에서 100원짜리 물품이 6회까지 유찰돼 가격이 50% 내린 50원으로 공단에 넘어오면, 한달 뒤엔 40원으로 값이 떨어지고 열흘이 지날 때마다 10원씩 값이 싸진다는 얘기다. 다만 물품마다 가격 인하 시점이 다르고 사양이 단종된 일부 품목은 예외적으로 값이 비싸기도 하다.
공단 위탁물품은 종류가 많지 않다 보니 솔깃하고 방문했다가 발걸음을 돌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실제 일반인을 상대로 한 공단의 세관물품 쇼핑몰을 살펴보면, 수백만원대의 고가 시계나 가방, 의류가 대부분이고 잡화류 등 관심을 가질 만한 중저가 물품은 많지 않았다. 공단 유통사업단의 한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물량 자체가 많지 않다. 각 입찰마다 물품이 20건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인천/김정필 기자 fermat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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