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기 힘들어진 '검은머리, 파뿌리..'
주례로 용돈 벌던 중장년층 울상
[동아일보]
신광훈(가명·62) 씨는 한때 잘나가던 대형 은행 지점장이었다. 10년 전 구조조정으로 회사를 그만둔 신 씨는 용돈이라도 벌기 위해 결혼식 주례를 서기 시작했다. 사회 경험을 재미있게 반영한 주례사 덕분에 섭외가 밀려들어 한 달에 70만 원 이상을 벌기도 했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신 씨는 결혼식장에 서지 않는다. 그 대신 지난해부터 택시를 몰고 있다. 마이크 대신 운전대를 잡은 이유에 대해 신 씨는 "주례를 찾는 사람이 확 줄면서 벌이가 예전만 못해 어쩔 수 없이 택시 운전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중장년층에 인기가 높던 이른바 '주례 알바' 시장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주례를 서겠다는 고령층은 늘고 있지만 찾는 고객은 줄었기 때문이다. 결혼식 자체가 줄어든 탓도 있지만 젊은 예비부부들이 '주례 없는 결혼식'을 선호하는 이유도 한몫했다. 1월 말 결혼한 이정민 씨(34)는 "10년 넘게 연락도 없던 은사를 찾아가 주례를 부탁하기도 민망하고, 모르는 분 앞에서 혼인 선언을 하는 것도 불편해 주례를 생략했다"고 말했다.
주례 없는 결혼은 이제 흔한 풍경이다. 이 씨가 결혼한 웨딩홀의 경우 지난 주말에 열린 24차례 결혼식 가운데 주례가 있는 경우는 13차례에 불과했다. 웨딩홀 매니저는 "주례사 대신 양가 아버님이 성혼선언과 덕담을 해주는 게 요즘 유행이다. 결혼식의 분위기도 훨씬 좋고, 하객들의 집중도와 만족도도 높다"고 설명했다.
주례의 빈자리는 전문 사회자들이 대신하고 있다. '결혼식은 경건해야 한다'는 편견이 깨지면서 요즘 식장은 공연장이 되기도 한다. 5년째 전문 사회자로 활동 중인 하연(예명·36) 씨는 "그냥 진행만 하는 게 아니라 신랑 신부의 연애담을 바탕으로 토크쇼 뮤지컬로 선보여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일부는 "엄숙하고 경건해야 할 혼례가 너무 산만해진다"며 혀를 차지만 긍정적인 평가도 많다. 하연 씨는 "주례사를 생략하면 신랑 신부가 하객과 마주 보는 시간이 많아진다. 축제 본연의 의미에 더 맞다"고 설명했다.
은퇴 후 '생계형 주례'로 용돈을 벌던 실버세대의 고충은 커졌다. 회원 수 100여 명의 결혼주례협회 이상덕 대표(68)는 "3년 전에는 섭외가 연간 4000건이 넘었지만 지난해는 3000회로 크게 줄어드는 등 불황을 체감한다"고 말했다. 중간수수료가 커져 실제 사례비는 더 줄고 있다. 예비부부가 주례비로 10만 원을 지급하면 웨딩컨설팅업체가 수수료 30%를 챙긴다. 남은 금액의 절반도 주례업체 몫이다. 정작 주례 당사자에게는 교통비 명목으로 3만∼4만 원만 돌아갈 뿐이다.
자구책 마련도 쉽지 않다. 홍보를 하려면 포털사이트 검색 광고에 의존을 해야 하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주례 경력 25년 차인 이모 씨(63)는 "의뢰인이 홈페이지를 검색해 한 번 클릭할 때마다 1500원씩 포털사이트에 주고 있다. 우리 사이트에 100회 방문해도 실제 성사되는 경우는 3, 4회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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