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간의 탄생' 낸 다중지성의 정원 조정환 대표 "위대한 예술은 제도의 흐름 위반할 때 나타나"

백승찬 기자 2015. 2. 1. 21: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예술가는 누구일까. 미술관에 작품이 걸려 있고, 커다란 무대 위에 오르며, 도서관이 그의 책을 구입하는 사람일까.

조정환 다중지성의 정원 대표(59)는 4년 만에 낸 단독 저서 <예술인간의 탄생>(갈무리)에서 '예술가'와 '예술인간'을 구분한다. '예술가'는 예술대학 졸업장, 수상 실적에 의해 자격을 얻지만, '예술인간'은 저마다의 삶에 내재한 에너지를 끄집어낸 즉시 태어난다. 그는 우파의 전유물처럼 들리는 '자기계발'이란 말을 쓰는 것도 꺼리지 않았다. 다만 체중 관리, 영어점수 향상 등 자본이 원하는 방식의 자기계발이 아니라 삶에 충실한 자기계발이어야 한다. 조 대표를 지난달 30일 서울 마포에 있는 다중지성의 정원에서 만났다.

조정환 다중지성의 정원 대표는 지난달 30일 그의 집무실을 찾은 기자에게 삶에 충실한 예술을 강조했다. 그는 "삶 자체가 예술의 원료이자 에너지"라며 "자기를 제약하는 모든 조건과 싸울 때 나오는 예술의지가 위대한 예술을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 예술은 삶을 풍족하게 하는 기술촛불집회도 예술 의지의 발현세월호 가족처럼 진실 추구해야

- 당신은 2008년 광화문 촛불집회, 2010년 아랍의 봄, 2011년 월가 점령 시위를 '위대한 예술작품'으로 평가한다. '예술'이 무엇인가.

"삶을 풍족하게 만드는 기술이다. 삶 자체가 예술의 원료이며, 에너지다. 현대 사회가 경험하고 있는 제도적 예술가는 역사 속에서 보면 오히려 예외적 존재다."

- 당신은 책에서 가라타니 고진, 아서 단토 등의 예술종말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뒤 안토니오 네그리, 질 들뢰즈, 조르조 아감벤의 미학을 예술진화론으로 위치시킨다. 예술은 사라지지 않는가.

"인류가 종말을 맞는다면 예술은 사라지겠지만, 인류가 지속되는 한 예술이라는 활동양식이 사라질 수는 없다. 네그리는 다중이 호흡하고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매 순간을 예술이라는 관점에서 조명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범상하거나 모자라는 사람에게도 '예술의지'가 약동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미생>의 장그래를 보라. 회사에서 이런저런 압력을 받은 장그래는 옥상에 올라가 산다는 것, 일한다는 것이 뭔지를 생각한다. 이런 순간 예술의지가 밀려오지만, 결국 회사의 방파제에 부딪혀 맥을 못 추곤 한다. 지금 다중의 예술의지는 자본주의의 돈벌이에 접합돼 끌려가는 상태다. 이 접합을 끊은 뒤 자신의 생명을 돌보고, 삶을 배려하는 기술을 회복할 수 있을지가 예술 진화의 핵심 문제다."

- 촛불집회는 예술의지가 발현된 사례인가.

"촛불집회는 경제인간으로 접합됐던 사람들이 저항의 방식으로 탈주하는 순간을 보여줬다. 유모차를 끌고 집회에 나온 주부를 떠올려보자. 주부는 가정에서 남편, 사회의 명령을 받았다. '오늘 저녁 된장찌개를 끓여놓으라.' 이 명령에 꼼짝 못하고 묶여있던 개인들이 혁명의 순간을 맞이했다. 자기를 제약하는 모든 조건과 싸웠다. 지금까지 잠식되고, 감추어지고, 불완전연소된 예술의지가 그 순간 나타났다. 이는 위대한 예술가가 대단한 작품을 만들어낸 순간과 다를 바 없다."

- 개인이 이처럼 드물게 찾아오는 격변의 순간을 기다리기는 쉽지 않다.

"지난해 세월호 사건에서 가족대책위의 움직임에 주목했다. 한국에서 가족은 항상 보수적, 반동적이었다. 1980년대에도 가족들이 나타나 '파업 깨고 돌아오라'고 말하면 깨졌다. 그때 가족은 경찰보다 더 경찰 역할을 했다. 세월호의 가족은 달랐다. 죽은 304명 앞에서 가족들이 보여준 감수성, 정직성, 그에 충실하려는 노력, 이것을 사회에 알린 전파력…. 지금까지 '진실'은 상투화된 말이었다. 그러나 가족대책위가 '진실을 알고 싶다'고 말하면서, '진실'은 반짝이는 말로 닦였다. 이제 '진실'은 수많은 생명과 합쳐져 천근만근의 무게를 가진 말이 됐다. 물론 촛불집회, 세월호는 드물게 일어나는 사건이다. 그사이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삶에 충실하고, 그 정직성에 직면해야 한다. 많은 경우 우리는 삶을 양보한다. 부모가 시키는 대로 하고, 국가의 명령에 따른다. 하지만 시스템에 복종하지 말고, 끈덕지게 삶을 추구해야 한다. 그때 일상 속에 촛불이 빛나고, '진실'이 드러날 것이다."

- 제도 예술은 어떻게 보나.

"제도 예술에도 드물게 삶에 충실한 작품이 있다. 백남준, 민중예술, 발자크, 톨스토이, 1930년대의 아방가르드, 황석영, 박노해…. 이렇게 드물기 때문에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다. 위대한 예술은 제도가 요구하는 흐름을 위반할 때 나타난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예술가'는 특권과 자격의 이름이다. 우리는 '예술가'라는 특수 집단에 '예술인간'으로서의 잠재력을 양도하고 있다. 사람 모두에게 정치능력이 있다고 본다. 이 세상을 진단하고,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책을 찾아서 실행하는 능력. 그러나 투표를 통해 정치인에게 그 능력을 양도한 뒤 4~5년간 꼼짝 못하고 살아간다. 우리가 정말 못해서 못하는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난 못해'라고 말하는 사람 속에는 지금 예술가라 불리는 사람보다 더 활기찬 에너지가 잠재해 있다고 왜 말하지 못하겠는가."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