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보다 더 심각한 일본 '사채 세계'의 민낯

2015. 1. 24.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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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일본 드라마 ‘쩐의 전쟁’

한 남자가 날카롭게 자른 신용카드를 더 뾰족하게 갈고 있다. 그는 얼마 안 가 시신으로 발견된다. 자살 도구는 그 신용카드였다. 유서엔 단 두 문장이 적혀 있었다. “미안하다. 돈은 빌리지 마라.” 견실한 화학업체 사장이었던 시라이시 다카오(시가 고타로)는 공장 운영을 위해 사채에 손을 댔다가 순식간에 불어난 빚으로 극단의 선택을 했다. 문제는 그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다. 다카오의 연대보증인인 장남 도미오(구사나기 쓰요시)는 빚을 갚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결국 그 역시 나락으로 떨어진다.

이달 초부터 일본 후지티브이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쩐의 전쟁>(사진)의 내용이다. 2007년 국내에서 방영되며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동명의 드라마를 리메이크했다. 톱스타 박신양이 주연을 맡았던 원작은 음지의 세계인 사채업을 정면으로 다룬 최초의 드라마였다. 지상파 황금시간대 드라마로서는 큰 모험이었으나, 당시 유명 연예인들을 모델로 내세워 친근한 미소로 서민들의 일상 안으로 깊숙이 침투해오고 있던 대부업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불러왔다.

일본판 <쩐의 전쟁>의 경우 사채라는 소재 자체가 특이한 것은 아니다. 일본의 사채 문제는 국내보다 훨씬 심각하고 오래된 현상이기에 이미 대중문화가 자주 다뤄왔다. 국내에서도 영화로 만들어진 미야베 미유키의 베스트셀러 소설 <화차>는 그 심각성을 널리 알린 대표적 작품이고, 만화에서는 일찌감치 하나의 장르를 형성할 만큼 인기 소재로 자리잡았다.

그래서인지 일본판 <쩐의 전쟁>은 리메이크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코믹한 누아르 활극의 성격이 강했던 원작에 비해, 사채가 이미 일상이 된 세계를 진지하게 묘사하는 정극이다. 도쿄대 출신의 잘나가던 금융맨 도미오가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과정은 국내판 주인공 금나라의 아찔한 추락보다 자세히 그려지고, 아버지 공장 도산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된 직원들이나 위기에 빠지는 거래 업체처럼 사채빚의 파급 효과도 더 구체적으로 설명된다.

특히 도미오와 악연으로 엮이는 대부업자 아카마쓰 다이스케(와타베 아쓰로)에 대한 묘사가 인상적이다. 아카마쓰금융이라는 멀쩡한 간판을 내건 정식 대부업자이면서 뒤에서는 사람들의 절박한 상황을 교묘하게 이용해 사채의 길로 인도하는 그의 이중적 얼굴은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사채의 폐해를 더 실감 넘치게 전달한다.

하지만 이 작품이 제일 흥미로운 이유는 일본 상황보다 국내 대부업의 현실을 새삼 환기시킨다는 점에 있다. 현재 국내 대부업 시장은 2006년 고이즈미 정부 규제 이후 자국을 넘어 국내로 진줄한 일본 대부업계에 의해 거의 장악되다시피 한 상태다. 일본 자금은 국내 대부업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뒤 이제는 제2금융권까지 넘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해 금융당국은 ‘외국 자본을 차별할 수 없다’는 원칙만 내세우고 있으니 국내야말로 <쩐의 전쟁> 시즌2라도 만들어져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김선영 티브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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