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과 눈 맞은 인간 수컷, 최혁준

2014. 12. 26.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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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고3 공부와 맞바꾼 책 '국내 동물원 평가보고서' 펴내

[한겨레21]

충북 청주 세광고등학교 3학년 최혁준군의 집에는 인간 암컷과 수컷 외에 이구아나와 거북이, 앵무새가 산다. 녹색이구아나의 이름은 정치(암컷), 아프리카민며느리발톱거북의 이름은 사하라(수컷), 왕관앵무의 이름은 띵똥(수컷)이다. 이구아나는 1m를 넘고, 처음 데려올 때 책 크기만 하던 거북이는 2배로 커졌다. "이구아나나 거북이나 먹이고 싼 걸 치우는 게 장난이 아닙니다. 사막에서 마른 풀만 먹을 때와 달리 집에서 기르면 영양분이 풍부하니까 야생보다 2배는 빨리 자랍니다. 이구아나는 배설 훈련이 가능한데 거북은 어렵더라고요." 파충류에게 배설 훈련을 시키는 것도 신기한데 거북이가 느려터진 것에는 웃음보가 터진다. "둘 다 욕조에 데려다놓으면 이구아나는 금방 싸고 마는데 거북은 2~3시간은 걸려요. 싸야 된다는 상황이 주어져서 싸게 되는 데 그렇게 걸리는 것 같아요."

이 평가를 보고도 이 동물원이 최고냐

참, 고3 남자애가 눈을 반짝이는 모습을 보는 일은 신기한 일이다. 어쨌든 파충류는 감정뇌가 없지 않나? "아니에요. 만질 때 달라요. 병원 진료하러 갈 때 제 품을 찾아서 올라와요." 얌전하던 눈이 펄쩍 뛰는데 조용히 반박한다. 이구아나식이다. 그리고 덧붙인다. "이구아나는 우리나라에 많이 보급돼 있어요. 한 해 수만 마리씩 수입된대요. 그런데 다 어디서 기르는지 알 수가 없어요. 수명은 15~20년인데, 3~4년 키우고 마는 것 같아요. 키우다 버거우니까 야생 방사를 하거나 동물원에 주는 거죠." 최군이 '爬蟲'(파충·http://blog.naver.com/96spore)에 남기고 있는 세 마리 동물의 양육기를 보면 그 고생이 장난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이구아나와 눈 맞은 인간 수컷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고3을 <한겨레21> 사무실에 앉힌 것은 최근 이 고3이 <국내 동물원 평가보고서>(책공장더불어 펴냄, 1만6천원)라는 책을 내서다. 사진 컷이 800장 들어가고 총 400쪽에 이르는 대작이다. 책은 서울동물원을 비롯한 전국 9개 동물원을 종보전, 동물복지, 개선과 발전, 교육과 전시 등의 분야로 나눠 평가했다. 평가 대상 선정 이유를 설명하며 그는 "이 평가를 보고도 여러분이 운영하는 동물원이 과연 대한민국에서 주요 동물원으로 꼽혔다고 좋아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라는 역설적인 메시지를 동물원 운영 측에 전달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초등학교 4학년 겨울방학(책에는 5학년이라고 했는데 4학년이라고 최군은 정정했다)에 네덜란드 동물원을 간 것이 계기가 되었다. "동물들이 갇혀 있는 느낌이 없어요. 관람로를 활보하는 동물을 만나기도 하고요. 대부분의 나라가 우리나라보다는 잘돼 있어요. 책을 쓰면서 우리나라 동물원만 다니다보니 관대해지곤 하는데, 그럴 때면 외국 동물원 사이트를 보면서 '냉수마찰'을 합니다."

최혁준군이 대부분의 사진을 찍었지만 조력자도 있었다. 용소중학교 2학년 김민주, 배재고등학교 1학년 이우진, 비산중학교 2학년 양성민군이 정보원 역할, 평가 진행에 대한 의견 개진, 필요한 사진의 수급 역할을 해주었다. 최군은 가족 휴가지는 무조건 동물원으로 정하며 지난 3년을 보냈다. "엄청나게 많이 간 곳이 있고 1번 간 곳도 있어요. 계절이 영향을 미치기도 하는데, 겨울에 동물들이 우울해 보였던 곳은 보충해서 가기도 했습니다. 쓰는 동안 바뀐 것도 있어서 다른 친구를 보내거나 후기를 보고 반영하기도 했습니다."

'야생'에서 보낸 어린 시절

대전 오월드 주랜드의 서퍼크레스티드코카투가 자신의 깃털을 손상시키는 행동장애를 보이는 것을 발견한 뒤 "이 상태는 3년 동안 개선이 없었다"라고 평가할 수 있는 거나, "에버랜드의 보르네오오랑우탄 제니는 2008년부터 공연에 등장한 후 현재까지 다른 오랑우탄과 사회화되지 않고 쇼 동물로 살고 있다"는 설명 등은 이런 오랜 관찰에서 나왔다.

책공장더불어의 김보경 대표는 "동물원 관련 책을 여러 권 내고 한국의 동물원에 관한 책을 내고 싶어서 필자를 찾고 있다가 동물원을 통해 소개받았습니다. 최혁준군이 관심도 많고 야생의 동물 상태도 잘 알아서 동물원 책 저자로는 최고였습니다"라고 최군을 평가했다.

동물원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동물을 좋아한다. 어린시절 지금은 청주로 통합된 청원군에 살았다. 아파트에 살았지만 주변에 산과 개천이 있었다. 해가 있는 때면 동물과 새를 보러 다녔다. 친구 엄마·아빠들은 혁준이와는 놀지 말라고 하곤 했다. 어린 시절 그와 함께 나갔다 오면 흙도 묻고 옷도 찢어져 있으니. "미호천에서 꿩을 봤어요. 전형적인 모습 그대로 한발 다가가면 조금 늦게 도망가더라고요. 세상에 한 마리 남은 꿩을 본 것처럼 행복했어요." 그런 소년을 위해 부모는 4학년 때 이사를 포기하고 6학년까지 기다렸다.

"학위는 당연히 없고 뜻밖에도 수능 생물영역 점수도 별로 좋지 않은 고등학생은 고군분투했다." 머리말의 자신에 대한 소개는 수시 뒤 덧붙였을 겉장의 저자 소개로 이어진다. "이 책과 블로그 활동 등의 비교과 활동을 모아 2015년도 대학입시에서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수의예과, 생물학과, 동물자원과학과 등에 지원하였으나 전부 1차 서류전형에서 탈락하여 학위를 가진 진짜 전문가로 거듭나는 데는 시간이 좀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의욕이 넘치던 최군은 책이 나온 뒤 의기소침해졌다. 그래도 여전히 욕심은 이글거린다.

"책은 우선적으로는 관람객에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동물원에서 몰라서 안 바꾸는 건 아닐 테니까요. 동물복지 단체가 요구하는 일을 관람객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게 우선일 것 같아요. 요구하면 바뀌잖아요. 전주동물원에서 최근 동물원 개선을 위해 관련 인사를 불렀던데 전 안 불렀더라고요." 2015년 1월10일(토요일) 최혁준군의 안내로 서울동물원을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돼 있다(문의 및 신청 http://blog.naver.com/animalbook).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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