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시수(sisu)

2014. 12. 16.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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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에서 정부기관 관계자를 만난 적이 있다. 당시 노키아도 몰락하고 핀란드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는데 그 사람은 상당히 낙관적이었다. 낙관론의 근거는 정부가 적극적인 창업 지원 프로그램을 펼쳐 노키아 위주의 경제 구조가 바뀌고 있다는 데 있었다. 창업 지원이야 우리도 하는데 뭘.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이야기를 계속 듣다 보니 명칭은 같아도 판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핀란드 고용경제부 산하 기술청(Tekes)이 엄청난 규모의 창업과 연구개발 자금을 지원하고 있었다. 기업·학교·연구소 등이 서류만 갖춰 신청하면 전문가들이 심사해서 필요한 자금을 전폭 지원하는 방식이다. '앵그리버드'로 성공한 로비오사, 요즘 세계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1위를 달리는 '클래시 오브 클랜'이라는 게임을 만든 슈퍼셀도 이 지원을 받고 성공한 케이스다. 특히 슈퍼셀은 창업 3년 만에 기업가치 3조원, 연매출 8000억원의 세계적 기업으로 우뚝 섰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우리 정부도 핀란드만큼 연구개발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핀란드보다 더 투자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 투입 비율은 2012년 기준으로 4.36%로 세계 1위다. 뒤를 이어 이스라엘이 2위, 핀란드가 3위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연구개발 투자가 사업화에 성공한 사례를 찾아보긴 쉽지 않다. 왜일까. 필자는 사회적 신뢰 수준에서 그 차이를 생각해 봤다. 핀란드 기술청은 자금 지원 과정에서 통제나 관리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그보다 어떻게 해당 사업의 질적 우수성을 향상시킬 수 있을지에 초점을 맞춘다. 심지어 사업 평가에서 부족하다고 평가되는 경우 개선점도 제시한다. 컨설팅 업체와도 같다.

반면 우리나라는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다. 믿고 기다리기보다는 신청서에 제시한 목표치를 달성했는지 못 했는지를 따져 책임을 묻는 평가 절차를 거쳐야 한다. 실패했다 하더라도 그 결과가 '정직한 실패'라면 그간의 노력을 인정해주고 독려해줄 법도 한데 말이다.

핀란드어로 시수(sisu)라는 단어가 있다. 인내와 장기적 시각을 의미하는데 우리나라의 정(情)처럼 핀란드에서는 하나의 문화다. 요즘 우리 젊은이들이 왜 도전하지 않는가를 묻기 전에 과연 우리가 그들을 기다려주고 믿어주고 있는지 자문(自問)이 필요해 보인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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