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기행]최고의 와인 산지 '북위 45도의 비밀'

2014. 12. 10.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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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위 45도는 북극과 적도의 중간에 위치해 각기 상이한 자연환경이 융합되어 균형과 중용을 갖춘 최고품질의 와인을 생산할 수 있는 지구상의 최적의 와인생산지라는 것이다.

보르도 그라브 지역은 페삭, 레오냥의 레드 와인과 함께 일찍이 12세기부터 소테른, 바르삭의 스위트 와인으로 세계에 알려져 왔다. 이곳의 스위트 와인은 메독 와인과 함께 1855년에 이미 그랑크뤼 등급으로 분류되었다. 지금도 소테른 와인을 대표하는 샤토 디켐(Chateau d'Yquem)은 그 이름만 들어도 와인 애호가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19세기 열렬한 공화정 지지자였던 소테른 1등급 그랑크뤼 '샤토 기로'의 소박한 풍경.

1981년, 세기의 결혼식이었던 영국 황태자 찰스와 다이애나의 결혼식 공식 디저트 와인이기도 하였다. 필자는 특1등급(Premier Cru)인 샤토 디켐과 한때 자웅을 겨뤘던 1등급(1st Cru) 소테른 와인인 샤토 기로(Chateau Guiraud)를 방문하기 위해 보르도 시에서 남동쪽으로 약 40㎞ 떨어져 있는 소테른으로 향했다. 하늘을 찌를 듯한 가로수가 늘어서 있는 정문에 들어서니 수확하느라 분주한 농부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소테른와인 중 유일한 특1등급인 전설적인'샤토 디켐'의 고색창연한 모습.

소테른의 포도는 한 번의 수확과정을 거치는 대부분의 테이블 와인과 달리 여러 차례에 걸쳐 일일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만큼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다. 그것은 귀부병에 걸려 잘 숙성된 포도알만을 골라 일일이 손으로 수확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고상하게 부패한 귀부 포도는 '보트리티스 시네레아'(Botrytis cinerea)라는 일종의 곰팡이가 포도알 표면에 활착하여 포도알 속에 있는 수분을 흡수하는데, 마치 건포도처럼 껍질이 쭈글쭈글해지고 당도가 농축되어 독특한 풍미를 발현하게 한다.

귀부병은 습도가 높은 밤이나 안개가 많은 아침처럼 습한 기후조건이 필요하지만 낮에는 날씨가 화창하고 건조해 귀부병의 활동을 멈추게 해야 하는 까다로운 생육조건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귀부병 걸린 포도는 부패하여 와인으로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계적인 귀부병 와인생산지는 강이나 호숫가에 위치해 있다.

미국인 사업가 로버트 윌머스가 소유하고 있는 레오냥의 대표적인 그랑크뤼 '샤토 오 바이'. 정원에 있는 조각은 유명한 '베르나르 브네' 작품이다.

포도나무 한 그루에서 겨우 한 잔 만들어

소테른도 시롱이라는 작은 강줄기의 언덕에 위치해 있어 밤낮으로 습한 날씨와 건조한 날씨가 교차되는 천혜의 자연조건에 위치해 있다. 포도나무 한 그루에서 겨우 한 잔의 소테른 와인을 생산할 수 있으니 가히 황금의 액체라 할 수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값 비싼 포도라고 할 수 있다.

소테른에 버금가는 귀부 와인으로는 헝가리의 '토카이'가 있다. 대외홍보담당인 캐롤라인 데그몽트 여사의 안내로 셀러를 돌아본 후 1층 시음실에서 드라이타입의 2013년 화이트 와인 '지 드 기로'와 스위트 와인 '프티 기로 2012', 1등급인 '샤토 기로 2002' 빈티지를 시음하였다.

샤토 기로 2002년산은 흰꽃, 살구, 달콤한 시트러스, 송로버섯향의 복합적인 풍미와 섬세하고 균형 잡힌 밸런스가 좋았다. 12년이 지났는데도 신선함을 잃지 않고 있었으며 앞으로 25년 이상 숙성이 가능하다고 하였다. 포도품종은 세미용과 소비뇽이며 소테른 그랑크뤼 중 2011년 최초로 유기농 인증서를 가지고 있다.

소테른 1등급 그랑크뤼 '샤토 기로'에서 시음한 와인들. 가운데가 '샤토 기로 2002'년 빈티지다.

시민의 자유를 늘 지지했던 샤토 기로

시음이 끝날 때쯤 공동 소유주 4명 중 한 사람이며 와이너리 책임자인 자비에 플랑티 이사가 합석하여 필자와 별도로 대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이 자리에서 그동안 필자가 궁금했던 가격과 품질면에서 이웃인 샤토 디켐과 큰 차이가 나는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직접적인 원인은 2차 세계대전 때 이곳은 독일군의 병영으로 징발되어 포도원이 완전히 피폐된 반면에 샤토 디켐은 그 명성 때문인지 독일 점령기간에도 전혀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소테른 지역은 대부분 가톨릭 신자로 보수적 성향을 띠며 대부분 왕정파였다. 물론 귀족의 상징인 샤토 디켐이 왕정파의 중심이었고 시민을 상징하는 샤토 기로는 외롭게 이 지역 공화파를 지지하며 항상 자유의 깃발을 계양하였다고 한다. 이웃이지만 양 가문은 끝내 화해하지 못하고 등을 돌렸는데, 두 샤토 사이에 나무숲으로 울타리를 만들어 서로를 볼 수 없게 하였다고 한다.

'북위 45도 마술'의 전도사인 그랑크뤼 '도멘 드 슈발리에'의 소유주인 '베르나르'가 테이스팅을 위해 그의 2013년 와인을 배럴에서 직접 뽑이내고 있다.

대부분의 귀족들이 19세기 중반 루이 16세와 마리 앙트아네트의 죽음을 애도하는 표시로 검은 나무액자 안에 왕의 문장을 장식하였는데, 기로 가문은 프랑스 시민혁명의 상징인 나폴레옹 1세를 애도하는 뜻으로 황금색의 문장을 검은나무 액자 위에 새겼다고 한다. 이것이 자유의 상징인 샤토 기로가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는 와인 레이블이다. 필자는 이 재미있는 일화를 듣고 와인 MBA 시절 방문한 적이 있는 샤토 디켐에 들렀다.

가장 높은 언덕에 위치한 샤토 디켐에서도 여전히 샤토 기로는 볼 수 없었다. 샤토의 건물양식도 신교도 교회 스타일의 소박한 기로에 비해 디켐은 장중하고 화려한 귀족풍임을 느낄 수 있었다.

소테른 방문을 끝내고 필자는 보르도 그랑크뤼 연합 회장이며 일찍이 와인산업에서 '45위도의 마술'(The Magic of the 45th Parallel)을 주장해 온 샤토 기로의 공동 소유자이자, 레오냥의 그랑크뤼 와인인 '도멘 드 슈발리에'(Domaine de Chevalier)의 오너인 올리비에 베르나르 회장을 만나기 위해 다시 레오냥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레오냥의 가장 대표적인 그랑크뤼의 하나인 '샤토 오 바이'에 들렀는데 아담한 샤토 건물 앞 정원에 있는 베르나르 브네의 조각작품이 인상적이었다.

셀러에는 중국 작가의 작품들이 전시 중이었는데, 이곳에서도 최근 와인업계의 큰손으로 급부상한 중국인의 위상을 느낄 수 있었다. 미국에서 온 홍보담당 다이나 포랭 덕분에 유창한 영어로 설명을 들으며 편하게 셀러를 구경하고 와인 시음을 하였다. 샤토 오 바이는 4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1998년부터 미국인 사업가 로버트 윌머스의 소유가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귀부병 걸린 포도송이. 짙게 숙성된 포도알만 골라 일일이 손으로 수확한다.

균형과 중용을 갖춘 최고의 와인 생산

점심시간에 '도멘 드 슈발리에'에 도착하니 올리비에 베르나르 회장과 홍콩에서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광활한 포도원과 소나무 숲을 배경으로 거대하고 현대적인 와이너리 건물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이곳의 첫인상이었다. 입구가 마치 나파 밸리에 있는 '오퍼스 원'과 흡사했는데 보르도의 일반적인 샤토 모습과는 판이하였다.

1763년에 설립된 이 와이너리는 여러 소유주들을 거쳐 1983년 네고시앙이었던 베르나르 가문의 소유가 되었으며 과거 소유자들이 한때 유행처럼 사용하였던 샤토라는 명칭 대신 여전히 도멘이란 이름을 하나의 유산으로 유지해오고 있다.

한창 익어가고 있는 2013년 레드 와인의 배럴 테이스팅을 마치자 필자가 묻기도 전에 그의 저서에 친필 서명 해주며 '북위 45도의 마술'을 설명하였다. 지면관계상 그 내용을 상세히 소개할 수 없지만, 요약하면 로마네 콩티, 슈발 블랑, 오 브리옹, 라투르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의 유명 와인, 캘리포니아 최고 와인산지는 모두 북위 45도를 중심으로 40도와 50도 사이에 걸쳐 있다는 것이다.

45도는 북극과 적도의 중간에 위치해 각기 상이한 자연환경이 융합되어 균형과 중용을 갖춘 최고 품질의 와인을 생산할 수 있는 지구상 최적의 와인생산지라는 것이다. 즉, 테루아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이론이다. 필자는 귀국 후 그의 책을 읽으면서 지구의 온난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지금, '위도 45의 마술'이 미래에도 계속될 수 있을 것인가가 궁금해졌다.

<글·사진 송점종 우리자산관리 대표·Wine MBA j-j-s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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