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화장품 몰'이 된 명동.. 임대료는 세계 8위 수준

김형규 기자 2014. 12. 1.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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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우커 쇼핑 명소' 명동 르포
버거킹 자리에 생긴 매장은 월요일 궂은 날씨에도 긴 줄
가겟세는 2~3년 새 2배 올라.. '터줏대감' 업소들은 퇴출

1일 서울 명동역 인근 화장품 브랜드 '네이처리퍼블릭' 매장. 눈이 내리고 갑자기 쌀쌀해졌지만 손님들은 5~10분 단위로 끊이지 않았다. 대부분 요우커(중국인 관광객)였고, 가끔 일본이나 동남아인 관광객이 눈에 띄었다.

이곳 매니저인 이화씨(29·여)는 "보통 상가는 주말에 손님이 몰리고 월요일엔 한산하지만 명동의 경우 주말을 끼고 관광을 온 중국인들이 출국 직전 화장품을 사러 많이 오기 때문에 월요일도 바쁘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온 여자 간호사 후소옌(45)은 "매장이 지하철역과 가까워 찾기가 쉽다"고 말했다. 그는 알로에젤과 마스크팩 등 화장품 7만원어치를 구입했다.

이 매장을 나와 명동예술극장 방향으로 100m도 채 안되는 거리에는 아리따움·스킨푸드·미샤·잇츠스킨·에뛰드 등 화장품 매장이 20여곳에 이른다. 소상공인 상권정보시스템 자료를 보면 2012년 6월 명동에 있는 화장품 소매점 수는 38개였지만 2년5개월 뒤인 지난달에는 127개로 늘었다. 명동 상권이 요우커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중국인들의 필수 쇼핑 품목인 화장품 위주로 지도가 다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만남의 장소로 인기를 얻은 버거킹이 있던 서울 중구 명동 초입 건물에 들어선 화장품 브랜드 네이처리퍼블릭 앞을 1일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 김창길 기자

네이처리퍼블릭 매장이 있는 서울 중구 충무로 1가 24-2번지의 개별공시지가는 국내에서 가장 비싸다. 1㎡당 7700만원이다.

1~5층을 사용하는 이 업체는 월 임차료만 2억5000만원을 내고 있다. 네이처리퍼블릭 관계자는 "주말 기준 하루 5000여명의 손님이 찾는다"며 "임차료 부담이 크지만 유동인구가 하루 25만~30만명에 이르는 국내 최대 상권의 중심지에서 영업을 이어간다는 상징성을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명동성당 인근에서 10년 넘게 모자 노점을 운영해 온 윤모씨(51·여)는 "보시다시피 눈에 보이는 게 다 화장품 가게"라며 "최근 2~3년 동안 인근 1층 상가 임대료가 곱절로 뛴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부동산컨설팅사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C&W)에 따르면 올해 명동 상권의 1㎡당 월평균 임대료는 지난해 75만60원보다 17.6% 오른 88만2288원이다. 이는 세계 8위다.

이처럼 화장품 매장이 명동 거리를 잠식하는 동안 오랜 세월 상권을 지켜온 '터줏대감' 업체들은 하나둘 자취를 감췄다. 1985년 문을 열어 30여년간 명동에서 '만남의 광장' 역할을 해 온 버거킹 명동점은 10월15일 문을 닫았다. 외국인 관광객 위주의 상권으로 변했기에 햄버거 매장의 매출과 수익률이 떨어진 탓이다. 이 자리엔 또 다른 네이처리퍼블릭 매장이 들어섰다.

명동의 유일한 대형 서점이던 영풍문고 명동점도 개점 약 5년 만인 지난 10월31일 문을 닫았다. 건물주와 계약이 끝난 데다 중국인 관광객 비중이 점차 높아지는 최근 상황도 영향을 미쳤다는 게 영풍문고 설명이다.

한 화장품업계 관계자는 "과거 국내 트렌드를 감지하는 안테나 역할을 하던 명동 매장들이 최근엔 요우커 중심으로 타깃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곳 한 군데가 다른 상권 매장 4~5곳과 맞먹을 정도로 운영비가 많이 들지만 브랜드 이미지와 상징성, 중국시장 수출 효과 등을 감안하면 명동에서 경쟁을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형규 기자 fideli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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