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BUCKET LIST] 살아 있는 소수민족의 박물관, 베트남 사파

2014. 11. 14.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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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북서부에 자리한 사파는 살아 있는 소수민족의 박물관으로 불리는 도시다.

신비로운 자연 풍경과 그 속에 자리 잡은 흐몽족, 레드 자오족 등 다양한 소수민족을 만나볼 수 있어 최근 베트남 최고의 여행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글·사진 최갑수 여행작가

트레킹으로 만나는 소수민족들

해발 약 1600m의 아름다운 계곡에 자리한 도시 사파(Sapa). 1922년에 세워진 오래된 고원도시(hill station)로 베트남과 중국 국경 도시인 라오까이에서 서쪽으로 30km 떨어져 있다. 타이족, 자오족, 흐몽족 등 다양한 산악 부족들이 그들의 독특한 문화를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다. 예전에는 하노이에서 사파를 찾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열악한 도로 상태 때문이었다. 툭하면 산사태가 나기 일쑤였고 이 때문에 여행자들은 고립되곤 했다.

사파가 다시 부활할 수 있었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사파가 그동안 철저히 잊혔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베트남을 지배했던 프랑스 식민정부에 맞서는 게릴라들이 사파를 중심으로 활동했고, 이후에도 베트남은 미국과 오랜 전쟁을 치러야만 했다. 관광객은 사파에 들어올 엄두를 내지 못했다. 게다가 1979년에는 중국과 국경 충돌도 있었다. 사파 주변은 한때 민간인 통제구역으로 대규모 군사시설이 들어서기도 했는데 이 기간 프랑스인들이 건설했던 호텔들은 황폐해졌다. 사파는 거의 잊힌 도시가 됐다. 10년 전만 해도 사파를 찾으려는 여행자들은 하노이에서 오토바이를 빌려 꼬박 이틀 걸리는 길을 힘들게 달려야만 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부터 사파는 베트남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행지로 급부상하게 된다. 마을 주변에 형성된 신비롭고 스펙터클한 자연경관이 입소문을 통해 외국 여행자들에게 알려지면서부터다. 또 형편없던 주변 도로가 업그레이드되고, 프렌치 스타일의 옛날 호텔들이 개보수를 거쳐 새롭게 단장해 외국 여행자들을 끌어들이는 데 큰 몫을 했다. 사파 주변의 고원에는 수많은 프랑스식 건물들이 세워져 있는데, 대부분 식민시대 프랑스 관리들의 별장이나 저택으로 사용되던 것들이다. 오늘날에는 프랑스인을 비롯한 유럽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 고급 호텔과 프렌치 레스토랑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사파를 찾은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산악마을을 따라 트레킹을 즐기기 위해 이 먼 곳까지 찾아온다. 트레킹을 통해 독특하고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감상하고, 소수민족들이 모여 사는 마을들을 방문한다. 마을마다 지닌 독특한 문화와 소수민족들의 다채로운 삶의 방식들을 직접 보고 체험해볼 수 있다는 점은 베트남의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는 장점이다. 짙은 안갯속에서 질퍽한 시골길을 걷다가도 서너 명 무리를 지어 전통의상을 입고 지나가는 소수민족들을 마주치면 눈웃음치며 인사를 나누는 그들의 모습에 절로 미소가 나온다.

사파 다운타운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은 라오 차이 마을이다. 오토바이를 타고 20분 정도면 닿을 수 있다. 블랙 흐몽족이 살고 있다. 흐몽족은 중국, 베트남, 태국, 라오스 등 여러 나라에 분산돼 거주하고 있는데 베트남에서 가장 큰 소수민족 중 하나다. 이들은 고산지대에 살면서 과일이나 약초 등을 재배하고 소나 돼지, 닭과 같은 가축을 기르며 생계를 유지한다. 흐몽족에는 블랙, 화이트, 레드, 그린, 플라워 등으로 명명된 여러 그룹이 있는데, 이들은 서로 미묘한 차이를 보이며 각기 다른 관습과 문화를 지니고 있다. 이들 중에서 특히 블랙 흐몽족이 일반인들의 눈에 가장 쉽게 식별된다. 이 그룹의 여성들은 원통 모양의 모자를 쓰고, 각반과 같은 정강이받이를 다리에 착용하고 있으며, 남색으로 염색된 아마포 의상을 즐겨 입는다. 또한 이들은 다른 종족보다 더 큰 크기의 은장신구를 몸에 많이 치장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라오 차이에서 다시 오토바이로 1시간여를 가면 지앙 타 차이 마을이 있다. 레드 자오족이 살고 있는 곳이다. 약 47만 명으로 추정되는 자오족도 55만 명인 흐몽족과 함께 베트남에서 가장 큰 소수민족 중 하나로 분류되며, 이 지역 일대에 거주하고 있다. 베트남뿐 아니라 중국과 라오스 국경 일대에도 넓게 분포하는 자오족은 전통적인 중국 의학술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리고 중국 문자와 비슷한 모양의 놈다오(Nom Dao) 문자를 독자적으로 지니고 있기도 하다. 레드 자오족은 붉은 모자를 쓴다. 이들 소수민족은 대다수가 매우 가난하지만, 최근 관광객들을 상대로 비즈니스 하는 방법을 터득하면서 생계를 그럭저럭 꾸려나가고 있다. 이들 종족의 생계는 여성이 꾸려나간다. 거리에서 관광객들을 상대로 민예품이나 작은 인형, 액세서리를 파는 이들은 대부분 여성이거나 어린 여자아이들이다.

지앙 타 차이 마을에 들어서자 어린이들이 몰려와 목걸이와 팔찌를 내밀어 보인다. 프랑스어로 매우 예쁘다는 뜻의 "트레 졸리(Tres Jolie)"를 연신 말하며 관광객들을 끈질기게 따라붙는다. 때로는 마약 성분의 약초를 재배하는 이들이 가끔 행상인으로 나서서 성냥갑 속에 아편을 숨긴 채 다가와 판매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엄청나게 몰려드는 관광객들의 영향으로 이곳 소수민족들이 고유문화를 잊고 이들이 접촉한 제3세계의 문화를 동경해 고향을 떠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이러한 문화적 피해(cultural demage)는 이미 일부 소수민족 사이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베트남 북서부의 장엄한 자연을 느끼다

사파에는 호앙리엔 산맥이 있는데 베트남의 최고봉인 3143m의 판시판도 이 산맥에 있다. 정상은 연중 내내 접근할 수 있다. 적절한 등산장비를 갖춘 여행자라면 누구나 오를 수 있는데, 등산 코스마다 물기가 많아 미끄럼에 주의해야 하고, 추위에도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짧은 거리에도 불구하고 정상에 오르고 돌아오는 여정은 3~5일 정도 소요된다. 산을 오르는 동안 원숭이, 산양, 산새 등 이 산에서 서식하는 희귀동물들을 만날 수 있다. 특별한 등반기술이나 전문 장비는 필요하지 않다. 단 반드시 경력 많은 현지인 가이드와 동행해야 하고, 포터를 동반하는 것도 체력을 위해선 현명한 선택이 된다.

등산이 힘들다면 반 타이 드라이브에 도전해보자. 라이 카우를 거쳐 반 보 마을을 지나 반 타이 마을까지 약 100km의 거리. 호앙리엔 산맥을 넘어가는데 트람톤 패스(Tram Ton Pass)라고 불리는 이 길은 해발 1900m의 고갯길로 베트남에서 가장 높다. 시원하게 뻥 뚫린 장엄한 경관에 압도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시시각각 변하는 기후변화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사파 지역은 춥고 구름이 많이 끼지만 고갯길을 넘어 라이카우로 내려오면 급격하게 따뜻해지고 날씨가 맑아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사파에서 하노이로 돌아갈 때 열차를 탈 수 있는 라오까이까지 대부분의 여행자는 미니버스를 타고 간다. 하지만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사파에서 라오까이까지의 풍경도 제대로 볼 수 있고 따 핀 마을도 방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파에서 약 50km 떨어진 따 핀 마을은 레드 자오족이 살고 있다. 이들은 '홍'이라고 불리는 붉은 천으로 된 모자를 쓰고 있다. 이들은 자수 전문가들로 손꼽히는데, 전통적으로 비단실만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스카프나 치마 등에 새겨진 문양은 원숭이 손에서 배추 등 다양하다. 마을을 방문하면 레드 자오족 여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자수를 놓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카메라를 들이대거나 눈을 마주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득달같이 달려와 그들이 만든 민예품을 사라고 조른다.

따 핀 마을을 돌아보고 라오까이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달렸다. 라오까이까지 가는 길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풍경을 보여주었다. 길은 산을 넘고 또 넘었다. 산모퉁이를 돌 때마다 황금빛에 물든 계단식 논이 펼쳐졌다. 산등성이를 깎아 만든 거대한 계단식 논.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경이로운 광경이다.

가이드를 맡은 베트남 청년 호이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구간을 미니버스로 넘어와요. 오토바이로 넘는 사람은 5%도 안 돼요. 당신은 운이 좋아요. 이렇게 아름다운 광경을 질리도록 볼 수 있으니까요."

베트남 소수민족 최대의 재래시장

라오까이역에서 박하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다. 베트남 최대의 소수민족 재래시장이 있는 곳이다. 매주 일요일마다 박하일요시장이 열리는데 시간이 된다면 꼭 한 번 가보기를 권한다. 박하 주변의 고원지대는 해발 900m 정도. 자오·자이·한·싸팡·눙·푸라·투라오족 등 소수민족이 살고 있다. 일요시장에는 주로 플라워 흐몽족이 모인다. 꽃을 수놓은 화려한 치마를 입은 여성들이 물소와 돼지, 말, 닭 등을 판다. 그들이 직접 만든 수공예품도 살 수 있다.

버스에서 내리면 화려한 전통의상을 입은 여인들이 줄지어 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들의 뒤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시장에 닿는다. 시장은 발 디딜 틈 없이 복잡하다. 노천 이발관에서는 아저씨가 이발을 하고 있고 시장 한편에서는 흐몽족이 순대와 국수를 먹고 있는 모습도 눈에 띈다. 수공예품을 파는 거리를 지나면 각종 채소와 술을 파는 노점이 이어지고 다시 고기를 파는 곳으로도 이어진다. 이들이 시장에서 팔기 위해 내놓은 물건들은 집에서 만든 빗자루와 땔감 등 소박하다. 시장 아래쪽에는 우시장도 벌어진다. 커다란 뿔을 단 물소들이 팔려나가길 기다리고 있다.

시장의 모습이 우리네 5일장과 너무나 비슷하다. 물건 값을 흥정하는 여인들도,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웃음꽃을 활짝 피우는 사람들도 있다.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고 있는 코흘리개 아이들이 있고 주막에서는 남자들이 왁자지껄한 술판을 벌이기도 한다. 마치 이들은 물건을 팔기 위해 시장에 가는 것이 아니라 시장 자체를 즐기기 위해 시장을 찾아온 것 같다. 축제 분위기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어도 별 제지를 받지 않는다. 박하의 플라워 흐몽족은 사진 찍히는 데 별로 거부감이 없다. 사파 일대의 다른 소수민족이 사진에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반면 플라워 흐몽족은 호의적이다. 일부러 포즈를 취해주기도 한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박하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마을인 반 퍼 마을로 트레킹을 다녀와도 된다. 반 퍼는 몽호아족들이 사는 곳으로 3km 거리에 있다. 박하에서 싸오 마이 호텔을 지나 왼쪽 길을 따라 작은 산을 돌아가면 보이는 마을로 산 위로 향하는 길이 이어져 있다. 매우 단순한 생활을 하는 고산족 마을로 외국인들에게 상당히 친절한 편이며 가이드 없이 갔다올 만한 거리에 있다.

박하일요시장은 아침 9시 무렵부터 시작돼 12시 무렵이면 파장이다. 장에 온 이들은 밤새도록 가파른 고개를 넘어가야 하기 때문에 정오에 출발해도 자정 무렵에야 집에 도착할 수 있다.

Plus Info.

하노이~사파는 라오까이를 거쳐야 한다. 하노이에서 라오까이까지 매일 주간과 야간에 각각 한 편씩 열차가 운행된다. 버스도 운행하지만 대다수의 여행자들은 열차를 선호한다. 야간열차를 탈 경우 침대칸을 이용하는 것이 편하다. 라오까이역 앞에는 사파로 가는 승객을 태우려는 호객꾼들로 붐빈다. 오베르주 호텔(Auberge Hotel), 퀸 호텔(Queen Hotel), 그린 뱀부 호텔(Green Bamboo Hotel), 캣캣 게스트하우스(Cat Cat Guesthouse) 등 호텔이 많다. 방을 먼저 확인하고 체크인 하는 것이 좋다. 빅토리아 사파 호텔(Victoria Sapa Hotel)은 사파의 최고급 호텔. 피트니스센터와 수영장 등을 갖추고 있다. 마운틴 뷰 호텔은 사파 최초의 여성 트레킹 가이드인 주안 홍 여사가 운영한다. 코너에 가지고 있는 방들은 전망이 정말 멋지다. 사파 계곡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사파 대부분의 호텔에서 트레킹 프로그램을 알선해준다. 트레킹은 하루 일정부터 길게는 7~10일 프로그램도 있다. 마운틴 뷰 호텔(Mountain View Hotel)을 비롯한 현지 호텔에서 트레킹 프로그램에 대해 알아볼 수 있다. 1인당 45~60달러. 오토바이 투어의 경우 가이드를 포함해 1일 20달러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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