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도 두손 든 전세난..굿바이 전세시대
전세를 영어로 하면 뭘까. 흔히 리스(lease), 렌트(rent)라고 생각하지만, 전세는 발음 그대로 'Jeonse'다. 전세 제도는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제도다.
전세난(亂)이 가중되면서 우리나라 주거형태의 한 축인 전세 제도가 존폐의 갈림길에 서 있다. 정부는 사실상 전세시대의 종언(終焉)을 고했다.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은 전날 '서민 주거비 부담 완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전세의 월세전환 흐름은 정부가 직접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부동산 정책의 주무부처인 국토부 스스로 현재의 전세난을 해결할 능력이 없음을 자인한 셈이다. 이 때문에 정부가 지난 30일 발표한 부동산 대책도 전세난을 직접 해결하기보다는 월세시대 준비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럼 전세 제도의 위상이 흔들린 이유는 뭘까.
◆ 수요와 공급의 미스매치
국토부가 지난 22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9월 기준 전체 전월세시장에서의 월세비중은 39.2%다. 10건이 거래됐다면 6건은 전세, 4건은 월세였다는 뜻이다. 참고로 3년 전인 2011년 9월 당시 월세 비중은 34%였고 3년 만에 5.2%P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전세난은 이사철을 맞아 전세 수요는 급증하는 데 비해 전세 물량이 부족해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월세 비중이 커진 임대차 시장 구조 변화, 집값 하락에 따른 잠재적 '깡통 전세' 우려, 정부의 정책 실기 등도 전세난을 부추겼다.
또 저금리 기조로 집주인들이 은행 이자보다 높은 월세를 선호하는 탓에, 어지간한 집주인들이 재계약할 떼 전세금을 올리는 대신 그만큼 월세로 받는 반(半)전세가 급증했다.
◆ '목돈 안드는 전세' 등 황당 정책 남발
정부도 전세난 완화대책을 발표하긴 했다. 그러나 매번 '효과 없음'으로 판명 났다.
지난해 발표한 8·28전월세 대책에는 주택 취득세율을 영구적으로 1~3% 차등 인하해 매매비용을 줄이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국민주택기금을 1%대 저리로 대출해 전셋값 정도면 주택을 살 수 있는 새 주택구입 모기지 제도를 도입했다. 전월세 대책이라기보다는 매매활성화 대책이었다.
설익은 대책을 남발한 것도 문제다. 박근혜 정부의 야심작이었던 '목돈 안드는 전세' 제도는 현실성이 극히 떨어져 집주인과 임차인으로부터 외면받았다. 결국 전세난민, 미친 전세 등 신조어만 생겨났다.
정부는 또 급등하는 전셋값을 대출로 메워주기 위해 저리(低利)의 전세자금 대출을 확대했다. 저리의 전세자금 대출 탓에 매매 수요까지 전세시장으로 몰리면서 정부의 대책은 되레 전셋값 오름세를 부추기는 결과만 가져오고 말았다.
최근엔 월세로 전환을 부추기는 정책도 내놨다. 지난 30일 발표한 '서민 주거비 부담 완화 방안'은 전세보다 월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기초생활수급자는 2년간 최대 720만원까지 연 2% 저리로 월세를 빌릴 수 있도록 월세 장려 정책까지 마련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연구위원 "전세가 내집마련의 징검다리 역할을 했는데 '월세 시대'로 전환되면 이런 부분이 다 무너지게 된다"며 "월세 시대를 늦추기 위해 집주인을 전세 시장으로 유인할 인센티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전세난 계속될 듯…깡통 전세 우려도
주택 구매 여력이 있어도 당분간 전세 살기를 희망하는 자발적 전세 가수요가 증가한 것도 전세난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집값이 오르지 않으니 집을 살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과거 상당수 세입자가 전세보증금이 급등할 경우 소형주택 구매로 갈아타려는 매매 전환 수요도 나타났다. 최근에는 집값이 오르지 않을 것이란 심리가 팽배해지면서 자발적 전세를 선호하는 경향이 늘었다. 부동산 업계 한 관계자는 "수도권 주택의 경우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격 비율)이 60~70% 정도면 임대차 수요가 매매수요로 전환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추가하락에 대한 우려로 여전히 전세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전세가율이 올라가면서 '깡통 전세'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깡통 전세는 집값은 하락한 데 비해 전세 보증금이 오르면서, 주택담보 대출금과 임대보증금의 합이 집값에 육박하거나 심지어 이를 넘어선 것을 말한다. 근저당 순위에서 은행보다 후순위인 전세 세입자가 자칫 이런 깡통 전세로 들어갈 경우 보증금을 떼일 수도 있다.
최근 이사를 한 직장인 하모씨(36세)는 "최근 깡통전세 등으로 전세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이 있어 월세로 이사했다"며 "주변에서 전세금을 받지 못하거나 곤란해 겪었던 경우를 많이 봐서 차라리 속 편하게 월세로 들어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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