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3주년 특집-특별좌담 한국경제 과제>"수출·제조업 붕괴 중.. 2~3년내 위기 넘어 한계 올 수도"
참석자 : 김종석 홍익대 경영대학장 / 김도훈 산업연구원장 /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진행 : 오승훈 경제산업부 부장대우
한국경제가 '미래'를 잃어버렸다. 고도성장의 시대는 오래전에 옛말이 됐고, 3%대의 경제성장률로 저성장의 블랙홀 앞에서 근근이 버티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에 포위된 채 산업 생산위축, 기업투자 감소로 잠재성장 기반까지 흔들리고 있다. 경제위기론이 상시화된 시대다. 이에 문화일보는 창간 23주년을 맞아 특별좌담 '미래가 있는 한국경제의 과제'를 주제로 특별좌담을 마련했다. 지난 23일 서울 중구 충정로 문화일보에서 진행된 특별좌담에는 김종석 홍익대 경영대학장, 김도훈 산업연구원장,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이 참석했다. 이들은 지난 3월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제1차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사회, 발제 등을 맡아 현재 한국경제의 걸림돌들을 날카롭게 지적해 세인들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이들은 특별좌담에서 "한국경제를 지키는 방파제였던 경상수지 흑자, 내수, 재정 건전성 등 3가지가 모두 취약하다"면서 "2~3년 내에 한국 경제가 위기를 넘어 한계 상황에 부딪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이들은 한국경제가 잃어버린 미래를 되찾기 위한 과제로 "총수요가 아닌 총공급을 늘리는 경제정책 기조의 전환과 이를 통한 투자 활성화로 산업 다각화를 통해 잠재성장률을 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장기적인 경제사회, 정치구조의 개혁을 수반해야 해결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 현재 한국경제의 상황에 대해 진단해 달라.
김 원장 = 대내외적인 경제여건이 안 좋다는 게 우선 문제다. '4중고'다. 첫 번째 글로벌 경기 침체가 대단히 심각하다. 미국을 제외하면 대부분 후퇴하고 있는 기조다. 일본도 반짝하더니 지금은 좋지 않다. 중국도 브레이크가 걸렸고, 유럽에선 독일마저도 힘들다. 두 번째 환율문제가 우리 경제에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과거보다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덜하지만 달러 강세와 엔화 약세가 결코 유리한 흐름이 아니다.
내부적으로도 두 가지 어려움이 있다. 먼저 인구구조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일본은 생산활동 가능 인구가 1996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했다. 한국은 2017년부터 감소한다. 총인구는 2030년부터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것이 수요나 공급 면에서 우리 경제에 상당히 질곡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애로는 투자감소다. 투자할 여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투자할 곳이 없어서다.
이 부회장 = 지난 50년간 한국경제를 이끌어온 기관차 역할을 한 것은 수출, 제조업, 대기업이다. 심지어 1998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 때도 대기업 등이 활약해 성장을 일궈냈다. 야구로 말하면 선발투수들인데, 그게 무너지고 있다. 경제성장률을 보면 서비스업과 내수는 아직 괜찮다. 수출과 제조업이 어렵다. 이런 위기 상황은 과거 50년간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다. 내수가 위기라면 돈을 풀고 금리를 내리면 된다. 서비스업도 여러 처방이 있다. 하지만 대기업, 제조업, 수출은 정부가 쉽게 대책을 마련할 수 없다. 선발투수가 무너지면 중간계투와 마무리 투수라도 튼튼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이를 어떻게 풀 것인지가 중요한 화두다. 단순히 과거 50년간 해오던 정책으로는 쉽지 않다고 본다.
김 학장 = 한국경제가 처한 어려움은 2000년대 들어와 추세적으로 고착된 성장잠재력 저하의 연장선상이다. 이 문제가 가시화될 것이라는 지적은 국내외 경제전문가들 사이에 10여 년 전부터 있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10~20년 내 '잠재성장률 제로(0)'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의 문제로 꼽히는 가계부채, 청년실업, 복지재정 부족 등의 뿌리는 모두 성장잠재력이 4%를 넘지 못하는 저질 경제 체력에 있다. 따라서 현재의 위기를 경기순환의 관점에서 단기적인 불경기로 보는 것은 상당한 착시다.
10년 넘게 고착된 구조적인 문제를 고치려면 그에 못지 않은 기간 동안 경제주체들의 뼈를 깎는 노력과 각오가 있어야 한다. 글로벌 경제위기의 징후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경제의 성장잠재력이 저하되는 것은 경제위기로 갈 가능성을 의미한다.
2년 전 매킨지 보고서는 한국경제를 '끓는 물 속의 개구리'로 묘사한 바 있다. 이전엔 물이 뜨거워지는지 모르다가 요즘 들어 자각증상을 느끼고 있다. 경제성장의 엔진 역할을 했던 주요 기업들이 어려운 게 가시적으로 나타나니 '이제 올 것이 왔구나'라고 생각하고 있다. 재분배나 복지환상에서 빠져나올 때가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부회장 = 우리의 6대 수출 주력품목은 휴대전화, TV·디스플레이,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반도체다. 이 중 올 상반기까지 4개 부문의 매출 증가율이 마이너스다. 자동차는 1.5% 증가했으니 사실상 정체다. 반도체만 그나마 선전하고 있다.
― 대체로 성장잠재력 저하가 현재 한국경제의 가장 큰 위기 요인으로 꼽히는데 정부의 정책 방향은 다소 어긋나 있는 것 같다.
김 원장 = 이 부회장이 주력부문을 선발투수에 비유했는데, 우리 산업은 기껏 키워놨던 선발투수(류현진 선수)가 해외로 나가서 활약해버리는 꼴이다. 중국, 미국, 베트남 등 빅리그서 뛰느라 국내에선 매출도 떨어지고, 해외 수출도 정체 상태로 접어들게 된 것이다. 선발투수에 지나치게 의존하던 한국 야구가 그 투수들이 해외로 나가 버려 기근 현상에 시달리고 있다.
김 학장 = 기본적으로 한국의 경제 생산성이 많이 떨어져 있다. 노동력이나 자본의 투입을 늘려서 성장할 수 있는데, 지금은 이것들을 투입해도 생산성이 한계 상황이다. 고비용, 저효율의 고착화로 볼 수 있다. 투자를 통해 누적되는 자본(인적, 물적, 기술)이 생겨야 하지만 투자의 주체인 기업들은 투자의욕을 잃었고, 근로자 역시 근로 의욕이 없다 보니 경제가 무기력증에 빠진 것이다. 한국 경제는 지금 만성적 피로증후군, 복합증후군을 앓고 있다. 보약 몇 첩을 써서 될 일이 아니다. 오랫동안 꾸준히 경제사회, 정치구조의 개혁을 수반해야 해결할 수 있다.
이 부회장 = 수요와 공급이 만나야 경제의 균형점이 생긴다. 경기가 안 좋으면 수요가 부족해서 그렇다고 생각들을 하지만 실제론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수요는 가계·기업·정부에서 발생하는데, 한국은행 통계 2분기 기준 가계부채는 1241조 원이고 가계자산은 8200조 원이다. 가계부채 비율이 자산의 15% 남짓이다. 정부 부채 비율도 비교적 건전한 편이다. 기업부채 비율도 외국에 비해선 나쁘지 않다. 모두가 돈을 쓸 여력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수요가 부족하다고 진단하고, 수요 진작만 강조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 재고해봐야 한다.
오히려 현재 경기침체의 원인은 공급부족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손을 대지 않는 산업이 대단히 많다. 외국에는 있지만 국내에는 없는 직업과 상품도 엄청나게 많다.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개발해야 하는데 모두가 안 하고 있지 않으냐. 소비자에게 "소비하세요"라고 권하는 것보다 기업에 "이것을 해봅시다"라고 제안을 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국토의 60%가 산인데도 산지관광이 없다. 전 세계 100조 원의 자동차 개조시장이 있는데 우리는 없다. 전 세계에 있는 항공기 정비시장도 한국엔 없다.
미국엔 3만 개, 일본엔 2만 개가 있는 직업도 한국엔 1만 개밖에 없다. 잃어버린 1만~2만 개 직업은 도대체 어디 있는가. 잃어버린 직업, 없는 상품, 하지 않는 산업을 발굴해서 공급능력을 키워 잠재성장률을 올리면 수요를 충분히 충족시킬 수 있다.
김 학장 = 현재 '최경환 경제팀'의 정책 방향은 금리를 낮추고 돈을 푸는, 일본의 '아베노믹스'와 비슷한 전형적인 총수요 부양정책이다. 아무리 총수요를 늘려도 공급 측면에서 애로 요인이 있으면 가격이 올라가고 거품만 생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총수요 부양이 아니다. 공급의 애로 요인 해소가 선결되지 않으면 총수요를 자극해도 거품과 투기, 물가만 올라간다.
공급의 애로 요인은 지금의 일자리에도, 산업에도, 상품에도 고비용 구조가 고착화돼 있다는 것이다. 인건비, 생산요소, 규제 등의 비용이 큰 게 문제다. 유통산업만 해도 선진화하자고 외치면서, 정작 골목상권 보호를 명분으로 유통구조 개선을 제약하고 있지 않으냐. 대기업도 더 투자해보려고 하는데, 공장입지나 투자 규제에 묶여서 새로운 산업을 확장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총수요 확장정책은 공급 애로 요인을 해소하지 않으면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김 원장 = 제조업의 공급 능력을 키우려면 투자가 늘어나야 한다. 첨단 분야 공장이 많이 건설돼야 하는데, 국내에서 가장 유리한 곳인 수도권엔 신규투자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기업들은 인력 수급과 물류가 불편한 지방으로 갈지, 아니면 인건비가 싸고 시장도 큰 중국 등 해외로 갈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다.
수도권 규제가 문제다. 정부가 6대 유망서비스산업 육성방침을 밝혔지만 실제로는 다 막혀 있다. 호텔도 못 짓고, 외국 교육기관도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의료 분야도 마찬가지다. 해당 분야의 개방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일 사람들이 발목을 잡고 있다.
하지만 그 단계를 넘어서야 한다. 사회갈등으로 번질 수 있는 부문을 다독여주는 패키지를 마련해줘야 그 갈등 단계를 넘어설 수 있다. 갈등도 해소하면서 효율성을 추구해야 한다. 이런 고민이 없으면 그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구조가 규제를 더욱 강화시킬 것이다.
이 부회장 = 왜 공급능력이 부족한지를 따져보면 해법은 간단하다. 못하게 해서 못하는 게 있다면 그것을 할 수 있게 풀어줘야 한다. 몰라서 못하는 것은 알려줘야 한다. 할 수도 있고 알고도 있는데 의욕이 없어 하지 않은 것은 그것을 할 수 있도록 의욕을 북돋아 줘야 한다.
김 학장 = 애니멀 스피릿(animal spirit·행동에 나서려는 충동)의 상실이 큰 문제다. 현재는 총수요를 늘려봐야 생산능력이 살아날 리가 없다. 상인이든 기업인이든 뭔가를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우리가 어떻게 1970~1980년대에 고도성장을 할 수 있었는지 생각해보자. 중동이든 어디든 가서 뭔가를 하려는 애니멀 스피릿이 살아 있었다. 결국 그것이 경제성장의 기반이 된 것이다. 최경환 경제팀 출범 직후에는 뭔가 많은 정책을 내놓았다. 주가도 오르고, 부동산 시장도 돌아가며 뭔가 되는 것 같았다. 경제 심리가 조금 나아진 덕분이다. 하지만 심리는 거품이기 때문에 뭔가 뒤따르는 게 없으면 바로 꺼져버린다. 여기에는 국회에도 책임이 있다고 본다. 150일 동안 '불임 국회' '무법 국회'였다. 최경환 경제팀이 성공하려면 이제는 말보단 행동이 중요하다. 구체적인 입법과 개혁이 필요하다. 특히 연금, 규제, 공기업 등 3대 공공부문 개혁 여부가 앞으로 현 정부, 최경환 경제팀의 성패를 좌우할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본다.
― 미래가 있는 한국경제의 조건을 규제개혁의 측면에서 짚어본다면.
김 원장 = 규제가 정치적 이해관계로 변질되는 것을 근절해야 한다. 대통령이 규제개혁장관회의를 소집해서 7시간 동안이나 씨름하면 무엇하느냐. 정치적 이해타산이 가로막고 있다. 한국의 미래를 생각하는 투자, 미래의 산업을 열어가기 위한 것들이 모두 정치적인 이해타산에 빠져 있다. 그것 때문에 큰 규제들이 해소되지 못하고 새로운 산업 투자가 가로막히는 것을 보면 가슴이 답답하다. 이걸 극복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한국 산업에 미래는 없다.
김 학장 = 정부 내에서 규제개혁이 진행되는 모습을 보면 과거의 실패를 답습할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규제를 없애는 차원이 아니라, 규제는 하나의 세금(비용)의 문제로 봐야 한다. 규제가 초래하는 각종 생산이나 영업활동에서의 비용 발생 요인을 줄여주거나 없애는 방식이 필요하다.
김 원장 = 사실 그동안 규제개혁 하면 대기업만 좋게 해주는 것이란 인식이 많았는데, 박 대통령의 '끝장 토론'을 통해 '규제를 풀면 서민들도 좋겠구나'라는 인식이 생겨난 것은 긍정적으로 본다. 그 동력이 힘을 잃어버린 것은 앞서도 지적했듯이 정치적 이해타산 때문이다. 수도권 규제 문제는 해결이 어렵다고 쳐도, 그 외의 부분은 한국의 미래를 위해 해결할 수 있도록 설득하고, 인식 전환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김 학장 = 규제 중에 성역화된 것들이 있다. 이른바 '착한 규제'라면서 이를 강화하라고 한다. 하지만 단언하건대 착한 규제란 없다. 목적이 착한 규제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목적이 좋으니 모든 수단이 정당화된다는 논리가 규제개혁의 최대 장애물이다. 목적이 착할수록 그 수단도 현실적이고 치밀해야 한다. 왜 가스가 터지고, 배가 뒤집어지고, 환풍구가 무너지느냐. 규제가 없어서가 아니다. 테크놀로지가 진화했고, 세상이 발전했는데도 그대로 남아 있는 규제가 많다. 그런 차원에서 규제는 과학이고, 엔지니어링이고, 시스템 디자인과 가깝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 정치적 수사가 자리 잡을 요인이 적어진다. 앞으로 규제개혁은 실사구시로 가는 게 좋다고 본다.
이 부회장 = 기업들의 가장 큰 불만은 할 수도 있고 의사도 있는데 규제 때문에 못하게 하는 것이다. 포천 500대 기업을 산업별로 분류하면 50개다. 이 가운데 우리나라 기업들은 10개 업종에 진출해 있다. 우리와 경제규모가 비슷한 10개국을 비교해보면 평균 17.5개 업종에 진출해 있다.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업종이 굉장히 단순하다는 뜻이다. 그러니 전기·전자, 중화학 등 일부 업종에 불황이 닥치면 나라 경제가 휘청거리는 것이다. 위험을 회피할 수 있는 다양한 산업 포트폴리오가 없다. 업종 전문화는 좋고, 업종 다각화는 나쁘다는 선입견을 심는 것이 문제다. 우리 산업의 다각화가 절실한데, 이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가 바로 규제다. 우리나라가 가장 취약한 업종이 제약, 엔터테인먼트, 헬스케어, 식약품 등이다. 한국의 우수집단이 의과대, 약학대로 가는데 그 분야가 지리멸렬하다는 게 말이 되느냐. 능력이 없는 게 아니라 못하게 하는 측면이 크다고 본다. 기업의 경제적 자유, 사업적 자유가 매우 제약되고 있다. 창조는 자유에서 시작되는데 자유가 없다.
김 학장 = 규제는 '지금까지 하던 대로 편하게 이대로'라는 의식을 고착화할 우려가 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정해 놓은 게 전형적으로 '지금 이대로 편하게'다. 이런 분위기에서 어떻게 벤처정신이 나오겠나. 이게 정치적인 영합주의와 붙어서 고착화되는 것이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깨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개방과 경쟁이다. 목소리가 큰 이익집단들은 개방 반대를 외친다. 이런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는 국민적 합의와 정치적 리더십이 한국 경제의 체질변화를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다.
― 미래가 있는 한국경제가 되려면 정치, 사회, 문화 등 비경제 부문도 받쳐 줘야 하는데.
이 부회장 = 50년 전에 우리가 했던 운동은 '잘 살아보세'다. 현재 우리 마음은 '이 정도면 됐다'는 마인드다. 그걸 '더 잘 살아보세'로 바꾸는 게 중요하다. 한국이 1인당 국민소득 80달러일 때 필리핀은 250달러였다. 그런데 지금 필리핀은 4배로 올라 1000달러다. 우리는 그 사이 2만 달러를 넘어섰다. 필리핀은 앞선 상태에서도 우리보다 가난한 나라가 된 것이다. '이 정도면 됐다'는 식은 없다. 남들이 올라가면 우리는 상대적으로 약소국, 빈국으로 간다. '이 정도면 됐다'는 정신으론 제자리조차 유지할 수 없다. 계속 나아가야 그나마 유지되는 것이다. 21세기판 '더 잘 살아보세' 운동을 해야 한다.
'더 잘 살아보세'는 물질적인 면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면, 문화적인 면까지도 포함한 것이다. 안전문제도 경제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수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문화의식이 높다는 것은 경제성장으로 가는 길에 매우 중요한 인프라다.
김 원장 = 우리 교육이 크게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경제의 역동성이 줄어든 것은 개인 차원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고 본다. 우수한 개인일수록 더 안정된 분야만 지향한다. 능력을 발휘할 새 분야를 찾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한마디로 삶에서도 기업가 정신, 벤처 정신이 사라진 것이다. 국민들이 역동적이지 않고, 모험심이 없으며, 안정만 추구하는 경향이 심해진 것은 교육에 달려 있다고 본다. 뭔가 잘하는 것에 대해 격려하는 문화를 교육에서 심어줬다면 좋았을 것이다.
우리 교육은 너무 실기 위기로, 평준화 쪽으로만 달려왔다고 생각한다. 개성을 죄다 죽여버렸다. 각각의 개성과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면 어떻게 새로운 창조와 역동성이 일어나겠는가. 온갖 종류의 동물들을 모아놓고 모두 풀만 먹으라고 하면 사자는 어떻게 사나. 우리 교육이 지금까지 추구해온 게 그런 식이었다. 풀만 먹는 방법을 획일적으로 가르쳐온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개인의 창의력을 키워내는 교육이 일어나지 않으면 한국경제의 미래에는 별로 기대할 게 없다고 본다.
김 학장 = 앞으로 2년을 놓고 보면 한국 경제의 추세적인 성장 잠재력의 저하와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이 강해지고, 국내적으론 정권교체기와 함께 동계올림픽이라는 대형 이벤트를 앞두게 된다. 자칫 국가 의사결정 구조와 능력이 무력화될 가능성이 있다. 한국경제의 하강속도를 제어하지 못하면 언젠가 한국경제가 경착륙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때까지 선거가 없는 '골든 타임'에 4대 연금, 규제, 공공부문 개혁 등 힘든 선택을 해야 한다. 눈앞의 갈등이나 저항이 두려워서 응당 해야 할 일을 제때 하지 못하면 2~3년 내에 한국 경제가 위기가 아니라 한계 상황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국가 의사결정 능력과 구조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한국경제를 지켜온 방파제가 경상수지 흑자, 내수, 재정 건전성인데 이 3가지가 모두 취약하다. 행여 중동발, 중국발, 유럽발 글로벌 쓰나미가 올 경우 한국 경제가 침몰하지 않을지 경계해야 한다.
김 원장 = 한국 경제는 지금 상태로 가면 세계 경제력 순위가 떨어진 가운데 그냥 유지하기에 바빠 근근이 생존하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지금까지 해 왔던 대로 더 올라가려고 노력하든지, 아니면 지금까지와는 달리 굉장히 어려운 길을 가겠다는 결단이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 정부는 개혁을 위해 결단을 해야 한다. 개인들도 자기 미래를 개척하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이 부회장 = 안정유지나 현상유지는 굉장히 어려운 거다. 지금까지 10년간 세계 경제 성장률보다 약간 낮았는데, 불과 6~7년 사이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11위에서 15위까지 내려갔다. 조금 있으면 16강도 탈락할 수도 있다. 현상유지 자체가 치열한 전쟁이다. 4%는 성장해야 현상유지인데, 2~3% 하면 되겠지 하는 순간 점점 떨어져서 필리핀 사례처럼 5~10년 지나면 32강, 즉 본선 진출까지 어려울 수 있다. 현상유지라도 하려면 정신 차려야 한다.
정리 = 최준영 기자 cjy324@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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