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ㅣ국립공원대피소 예약] 가을 성수기 국립공원대피소 이용은 로또?

글·손수원 기자 2014. 10. 22.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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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대피소 여름 성수기 이어 가을 성수기에도 추첨제 실시
특정 산악회 예약 독점 해소 기대.. 대피소 이용 위한 노력 무시하는 처사 의견 대립

↑ [월간산]지리산의 연하천대피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등산객들. 국립공원대피소는 종주꾼들이 꼭 들러야 하는 중간 기지다.

지리산이나 설악산, 덕유산처럼 큰 명산을 종주하기 위해서는 산에서 하루, 이틀 정도 묵어야 한다. 이 산들에 있는 국립공원대피소는 1인당 8,000원 정도의 저렴한 비용으로 숙박을 해결할 수 있어 종주산행의 필수다. 더구나 대피소 이용자 외에는 비박을 불허하고 하산을 종용하는 현실에서 대피소를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은 당일 산행이나 불법으로 비박하는 것 외에는 없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지리산, 설악산, 덕유산국립공원에 총 15개의 대피소가 있다. 이 중 인터넷 예약을 받고 있는 곳은 지리산 6개 대피소(장터목 165, 세석 190, 벽소령 120, 로터리 35, 연하천 60, 노고단 82)에 650명, 설악산 5개 대피소(중청 120, 희운각 30, 수렴동 18, 소청 81, 양폭 10)에 259명, 덕유산 1개 대피소(삿갓재) 46명 총 12개소 955명이다. 예약 '하늘의 별 따기'… 일부 안내산악회 편법 동원

하지만 등산인구가 급증하면서 이 대피소들을 예약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워졌다. 지리산 치밭목, 피아골대피소, 덕유산 향적봉대피소를 제외한 곳은 인터넷 예약으로만 신청을 받기 때문에 신청 기간만 되면 홈페이지 서버가 마비되는 것은 다반사였다. 종주를 하고자 해도 대피소를 구하지 못하면 산행을 포기해야만 한다. 때문에 '종주도 운빨'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오죽했으면 등산관련 인터넷 산악회 등에는 '국립공원대피소 예약 요령'이라고 해서 '머무를 날짜 2주 전 오전 9시 50분경 인터넷이 빠른 PC방에서 로그인해서 미리 예약창을 띄워 놓은 다음 정확히 9시 59분 59초에 새로 고침을 클릭해 4명 예약을 한다' 등의 설명글이 올라와 있을 정도다.

이런 와중에 특정 산악회가 지리산과 설악산 등 유명 국립공원대피소를 독점적으로 예약해 이를 판매까지 했던 것으로 밝혀져 공분을 샀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주영순(새누리당) 의원이 국립공원관리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특정 5개의 번호로만 2,891건이 대피소 예약을 신청했다.

지난 8월만 하더라도 지리산과 설악산 등 유명 산 대피소의 최대 44.2%를 특정 산악회가 예약 독점했고, 8월 15일을 전후해서는 지리산 연하천대피소 40%, 지리산 세석대피소 21.1%, 지리산 벽소령대피소 43.3%, 설악산 희운각대피소 26.7%, 설악산 소청대피소 34.6%, 설악산 중청대피소 23.3%를 이 산악회들이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번호들은 안내산악회 대표나 직원 번호였는데, 이런 식으로 대피소를 대량으로 예약하고 탐방객을 모집해 영업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 등산인은 "개인적으로 지리산 종주를 위해 대피소 예약을 알아보던 중 한 안내산악회에 지리산 1박2일 상품이 올라왔기에 예약을 문의한 적이 있다"며 "내 이름으로 산악회 직원들이 예약을 시도하고 성공하면 예약이 확정되는 것이고, 실패하면 예약이 취소된다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이 이야기만 들어서는 안내산악회도 100% 선착순 예약을 성공시키는 루트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 맹점이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선착순 예약 시스템을 운용하면서 한 아이디당 월 4회로 이용 제한을 두었지만, 이 산악회들은 다수의 아이디를 만들어 예약하는 방법을 취했다. 이들 중 한 곳은 자동예약 매크로프로그램(컴퓨터가 자동으로 특정 행동을 반복해서 시도하는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편법으로 대피소를 예약해 왔던 증거까지 포착되었다.

↑ [월간산]단풍시즌을 앞두고 설악산 중청대피소에서 국립공원 직원들이 월동용 생수와 라면 등 등산객의 생필품들을 적치하고 있다.

실제로 이 산악회들 중 한 곳에서 대피소 예약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한 대학생은 "산악회에서 주는 다수의 아이디로 접속해 예약시도를 한다"며 "성공 건당 돈을 받았는데 4장 예약에 성공하면 수고비로 3만 원 정도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렇게 특정 산악회가 거의 독점적으로 대피소 예약을 하고 서버가 폭주하는 등 선착순 예약 방식의 단점이 커지자 공단 측은 지난여름 성수기에 12곳의 대피소에 한해 선착순 예약제가 아닌 추첨제를 도입했다. 이는 대피소 신청을 모두 받은 후 추첨해서 당첨자를 뽑는 방식이다. 또한 공정성 시비를 없애기 위해 공단은 민원인 3명과 담당경찰 1명, 추첨을 진행하는 해당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관계자 등을 참석시켰다.

특정 아이디를 가진 회원이 계속 접근해서 예약하는 비정상적 방법을 사용하면 그 아이디의 예약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방법도 도입했다. 이런 추첨제 방식에 대해 공단은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내며 가을단풍 시즌인 오는 10월 16일~11월 16일의 대피소 이용에 대해서도 추첨제 방식으로 대피소 예약을 받기로 했다.

예약 방식이 추첨제로 바뀐 것에 대해 등산객들의 반응은 극명하게 나뉘었다. "선착순 때는 예약은커녕 홈페이지에 들어가는 것조차 어려웠는데 이제는 여유롭게 신청하고 운에 맡기면 되니 오히려 확률이 높아진 셈"이라는 긍정적인 의견이 있는 반면, "남들보다 발 빠르게 움직여 대피소 예약을 하는 것도 노력의 결과인데, 이제는 순전히 운에 맡겨야 할 판", "예전에는 4명 이상이 종주를 계획할 경우 몇 명이 동시에 예약을 시도하면 거의 모두 갈 수 있었지만 이제는 추첨제라 몇 명이 붙어도 확률만 높아질 뿐 100% 성공을 확신할 수 없어 애매하게 됐다"는 다소 부정적인 의견도 있었다. 전자는 주로 인터넷 사용에 서툰 노년층에서 많이 나왔고, 후자는 인터넷 사용에 익숙한 청장년층에서 많이 나왔다.

또한 "추첨제라 하더라도 산악회에서 아이디를 많이 만들어 신청하면 그만큼 산악회가 뽑힐 확률도 많은 것이므로 여전히 개인 신청자는 대피소 예약이 힘들 수밖에 없다"는 비관적인 의견도 있다.

이렇듯 대피소 신청 방법까지 바꿨음에도 불구하고 대피소 예약을 좀더 쉽고 간편한 방법으로 누구에게나 불만이 없도록 실시할 대안은 현재 특별히 없는 실정이다. 인터넷 예약이 아닌 현장이나 전화 예약을 받는 대피소는 상황이 더욱 나쁜 편이다. 대피소 예약은 주말의 경우 30대 1, 성수기는 100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인다. 대피소 예약과 관련된 민원은 지난 2년간 277건에 달했다.

등산객, 대피소 부근 제한적 비박 허용 주장

↑ [월간산]가을 성수기 대피소 추첨 예약제를 실시한다는 공지가 뜬 국립공원관리공단 예약통합시스템 홈페이지.

추첨 시즌 때마다 민원이 폭주하는 국립공원관리공단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공정하게 추첨을 한다'는 것 외에는 별 달리 안내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산악회가 다수의 아이디로 신청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법적으로 제재할 방법은 없다. 더구나 일부에서는 "어차피 개인이 예약하기 번거로우니 산악회에서 미리 확보한 것을 수고비조로 조금 웃돈을 주고 쓰는 것이 편하다"는 의견도 심심치 않게 있다.

"이렇게라도 대피소를 이용해 산행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공단에서는 근본적인 해결책도 없으면서 왜 나쁜 것으로만 치부하느냐"는 볼멘 목소리도 있다. 대피소 예약을 하지 않으면 밤중에라도 무조건 내려 보내는 권위주의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대피소 부근에서 제한적으로 비박을 허용하는 등 융통성을 발휘하면 대피소 예약 문제도 조금은 해결될 수 있을 거란 주장이다.

한 안내산악회의 대장은 "공단이 진정으로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대피소를 제한적으로 운영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등산로를 다 없애고 대피소도 없애는 것이 편이 낫다"며 "그것이 아니라면 등산객을 위해 철저히 대피소만 이용해야 한다는 원칙에서 한 걸음 물러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대피소 근처에서 비박을 허용하되 정해진 장소 이외에서 쓰레기를 버리거나 취사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엄하게 처벌하는 규정을 두면 걱정하는 만큼 자연훼손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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