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이 있는 '新 풍물기행'>카페의 속살거림·백화점의 활기.. 낭만과 욕망의 '앙상블'

기자 2014. 10. 10.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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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수필가 송기자가 본 용인 죽전

토요일, 집을 나서면서 이어폰으로 김동률의 '출발'을 듣는다. 조용한 신명이 어딘가로 가는 내게 흥을 돋운다. '아주 멀리까지 가보고 싶어… 아주 높이까지 오르고 싶어….' 노랫말과는 다르게 '멀리 높은 곳'은 아니지만 출발은 늘 새로움이어서 가볍다. 배낭에 노트북과 책, 필기구를 챙겨 넣고 주변에 있는 단국대 캠퍼스로 간다. 몇 해 전에 갔을 때 본 호젓한 분위기에 꽂힌 인연으로 마음이 산란하거나 혼자 놀고 싶을 때면 스스럼없이 찾아간다.

학교 입구에서 느껴지는 가파른 기운으로 올라가면 내가 정한 사색의 동산이 있다. 그곳에서 가만히 몸과 마음에 든 힘을 빼고 우두커니 있다 보면 꼬인 생각이 풀리고 시간에 쫓긴 강박감이 사라진다. 주말의 캠퍼스는 조용하다. 잘 정돈되고 운치 있는 가로수 길을 걸으며 이처럼, 더 이상 좋은 곳이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그래서 나는 이 캠퍼스에서 사색과 긴 산책을 하고 돌아 나올 때마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값을 치르지 않고 누리는 혜택이 가슴 가득 안겨드는 까닭에.

평일에 많이 소진된 에너지를 보충하는 것은 음식을 먹는 것도 한 방법이겠으나, 어느 한 공간에서 자신과의 데이트를 하는 것이다. 그 어떤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마음 가는 대로, 가고 싶은 대로 걸음을 옮길 수 있는 자유는 혼자일 때 가능하다. 그런 자유 속에서 온전히 나만을 바라보고 싶어 보정동 카페거리로 간다. 주말의 카페거리엔 사람들로 북적인다. 테라스까지 다 찬 걸 보며 우리가 왜 카페를 찾는가에 대해 생각해 본다. 사랑하는 남녀가 가장 화사한 마음으로 물들 때 눈을 맞추며 수 없는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는 공간이 아닐까.

다방 세대인 나로서는 부럽기도 하지만 그때로 돌아가고 싶진 않다. 다방 세대가 '내숭'이었다면, 카페 세대는 '드러냄'으로 자신을 개방한다. 어쨌든 달콤한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의 재재거림이 있어 카페는 언제나 호황을 누리는 것이리라.

보정동 카페거리는 대로변 뒤에 얼굴을 숨기고 있는 듯하여 예사로 지나치면 모를 수도 있다. 죽전역과 보정역 사이의 꽃메마을 입구에서 시작되지만 카페는 대로변에 있지 않다. 대로변의 상점 간판은 서로를 치열하게 알리고픈 욕망처럼 호객꾼이 되어 쭉쭉 뻗어 있다.

먹고 마시는 주제가 대부분인 그 상점들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현실적인 거리는 빠르고 우렁차고 동적이어서 요란스럽다. 소란스러움을 끼고 비슷한 건물 사이를 걷다보면 보정동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휘어나가는 길이 있다. 그 도로를 따라가다 다시 왼쪽을 바라보면 빌라단지 같은 카페거리가 보인다.

처음 카페거리가 형성됐을 때는 죽전 카페거리로 불리기도 했다. 길 하나의 간격으로 동네 이름이 다를 뿐, 생활권은 같은 길로 이어지기에 크게 묶어 명명했으리라. 보정동은 죽전동에 비해 유명세를 치를 만한 곳이 없어 인지도가 높지 않았는데 카페거리가 형성되고 그 틈새에 맛집이 늘어나면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작지만 실속형인 단아한 맛집이 꽤 있다. 드러나지 않는 골목 안에서 어머니가 차려 준 것 같은 수수한 밥상을 만난 적도 있다. 맛과 색이 조화된 퓨전 음식을 찾아 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내가 만난 보정동 사람들은 젊고 순하며 튀지 않으면서도 밝다.

카페거리의 간판들은 직유보다는 은유적이다. 외국의 예술과 낭만적 이미지를 모방하려는 듯이 외래어가 대부분이다. 먼저 본 대로변과는 차별화된 모습으로 로맨틱한 분위기가 있다. 아무 곳에나 들어가서 차를 마시고 싶은 끌림이 있다.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한 번쯤,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었던가 라는 생각에까지 도달하면서. 현실보다는 이상향을 그리게 하는 그런 들뜬 설렘이 내 걸음에 실린다.

순례하듯 찾아낸 곳, 덜 번잡한 카페로 들어갔다. 바깥 풍경이 내다보이는 의자에 앉아 침묵 속으로 날아간다. 자연속의 길과 여기까지 온 내 생의 길이 겹쳐진다. 이 길과 저 길의 차이는 자신이 만들어간다. 길은 우리에게 뭔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냥 걷고 싶은 대로 지나가 주기를 바랄 뿐이다.

카페거리 골목에서 건너편을 바라보면 시야에 꽉 차게 들어오는 것은 이마트와 신세계백화점이다. 죽전역과 연결돼 있는 백화점은 전철에서 내린 사람들이 백화점을 거쳐 갈 수 있게 영업시간을 조절한다. 퇴근길의 고객을 위한 배려인지, 영업 차원의 목적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저녁 10시까지 문을 연다. 이는 주로 서울로 출퇴근을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라니 눈치 빠른 백화점이다. 죽전은 백화점이 중심 상권을 주도하면서 그 주변이 활기차며 교통수단도 늘어나서 거리가 혼잡하다. 이는 침체된 경기 속에서도 많은 유동인구를 불러들이는 계기로 상가 주변에 생기를 불어 넣어준다.

죽전의 한 부분이 된 패션타운이 그렇다. 유난히 유명 브랜드를 선호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잘 읽고 그것을 퍼뜨리며 선뜻 주머니를 열게 하는 비법을 그곳에 가면 알 수 있다. '백화점 세일에 한 번 더'라는 문구가 더 착한 가격으로 모시겠다는 다짐처럼 혼동되기도 하면서.

이런저런 별의별 브랜드를 눈으로 읽다가 잠시 놀라는 것은, 무엇을 사고 싶은 욕구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혹되지 않는다는 것은 나이 듦의 쓸쓸한 퇴장 분위기인지, 아니면 나이듦의 지혜로 해석될 수 있을까. 아무튼 그랬다. 무엇보다 나는 거리에서 패션을 보는 것보다는 문화를 만나는 것을 더 반가워한다.

지금의 죽전은 과거와 달리 역동적이면서 다양한 문화 이벤트가 펼쳐지는 곳이다. 그것은 백화점 건너편에 있는 '포은아트홀'이 개관하면서부터다. 아트홀은 문화예술 공연에 목마른 이곳 사람들에게 샘물과 같은 역할을 해 왔을 것이다.

나는 포은아트홀과 포은대로를 지날 때마다 생각을 한다. 왜 정몽주 선생의 호를 아트홀과 도로의 명칭으로 사용했을까. 포은이면 고려시대의 충신이자 성리학의 기초를 세운 분으로 선죽교에서 죽음을 맞은 분이 아닌가. 알아보니 구전으로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태종 6년, 개성에 가매장돼 있던 선생의 묘를 고향인 경북 영천으로 이장하라는 명이 떨어져 개성에서부터 천장 행렬이 이어졌다. 내려오는 도중 지금의 수지구 풍덕천동쯤에서 잠시 쉴 때, 회오리바람이 일면서 관직과 이름을 적은 명정(銘旌)이 날아가 모현면 능원리에 꽂혀 움직이지 않았다고 한다. 사람들이 그것을 하늘의 뜻으로 알고 그 장소에 묘를 만들어 포은의 정신을 기려왔다는 것이다.

포은대로가 내려다보이는 아르피아타워 전망대에서 하루를 맺으며 생각한다. 시작은 출발로부터 나아가는 것, 출발은 또 다른 꿈을 위한 자기다짐이라는 것, 인생이라는 여정에서도 시작하지 않으면 항상 제자리걸음이라는 것도…. 김동률은 여전히 노래 속에서 이 말을 남겨 준다. '언젠가는 나도 알게 되겠지, 이 길이 곧 나에게 가르쳐 줄 테니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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