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팡이가 빚어낸 달콤함의 극치

2014. 10. 9.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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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헝가리 소도시 여행

당도 높은 황금빛 포도주 '토커이 와인' 생산지 토커이 와이너리 탐방

토커이. '헝가리의 금광' '헝가리의 자부심'으로 불리는, 토커이 와인을 생산하는 마을이다.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동북쪽 200㎞ 떨어진 곳에 토커이가 있다. 와인 맛 안다는 이들이 '토커이 와인' 말만 들어도 달콤한 맛에 젖어든다는 당도 높은 황금빛 와인의 본거지다. 보르쇼드어버우이젬플렌 주에 속한다. 무한정 펼쳐진 시든 옥수수밭과 해바라기밭들을 지나자 초록빛으로 덮인 언덕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토커이에 가까워진 것이다. 빗살무늬 무수히 그어진 초록 언덕들. 토커이 와인의 재료가 익어가는, 아니 곰팡이가 슬어가는 포도밭들이다.

이 지역 포도는 일반 포도 수확철보다 늦게 수확한다. 수확하지 않고 두면 포도알이 곰팡이균에 감염(귀부병)돼 쪼그라든다. 이 과정을 거치며 포도의 당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곰팡이야말로 달콤한 '토커이 와인'이 만들어지는 뿌리요 줄기다.

토커이 지역의 포도 재배 역사는 12~13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현재의 토커이 와인 생산 방식이 정착되고 이름을 얻게 된 건 16세기 무렵이다. 오스만튀르크 군의 침입 때문에 수확철을 놓쳤던 포도를 뒤늦게 수확하면서 만들어진 당도 높은 와인이 토커이 와인의 시작이라고 전해온다. 토커이 일대는 해발 450m의 낮은 산지(토커이 산)로 계곡이 많고, 보드로크 강과 티서 강이 만나는 곳이어서 습도가 높은 곳이라고 한다. 곰팡이가 번식하기 좋은 조건들이 토커이 와인 태동의 배경인 셈이다.

토커이 와인 지구의 28개 마을 중 한 곳의 그로프 데겐펠트 농장을 찾았다. 와인 생산시설을 안내하던 가이드가 곰팡이로 쪼그라든 포도송이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곰팡이에 감염된 포도를 따서 일반 포도와 섞어 12~36시간 보관했다가 즙을 짜낸다. 오크통에 담아 섭씨 12도의 동굴 저장고에서 18개월 숙성시키면 달콤한 와인이 완성된다."

이렇게 생산된 와인이 일반 와인보다 당도가 2배가량 높은 '토커이 어수 와인'이다. 프랑스 왕 루이 14세가 '와인의 왕, 왕의 와인'으로 평하며 즐겼다는 그 와인이다. 토커이 와인의 당도는 '어수 3~6' 등 4등급의 숫자로 표시하는데 숫자가 높을수록 당도가 높다. '어수'란 '곰팡이가 작용한 포도'를 뜻한다. '토커이 어수 6푸톤(푸토뇨시: 포도 바구니를 뜻한다)'(1972년 산)은 1996년 미국 와인 대회에서 1등을 차지해 그 진가를 인정받았다고 한다.

졸참나무 포도주통 즐비한 동굴 저장고를 들여다보니, 좌우 벽면도 곰팡이로 덮여 있다. 곰팡이가 벽면을 감싸면서 습도(90%)를 유지·조절해 주기 때문에 일부러 번식시킨다고 한다.

토커이에서 재배하는 품종은 하르슐레벨뤼·무슈코타이·푸르민트 등 6개의 헝가리 토종 청포도다. 토커이 마을을 포함한 토커이 지구 28개 마을 5300㏊의 포도밭에서 재배하는데, 청포도가 99% 이상으로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와인 농장이나 마을 와인 상점 등에서 시음을 할 수 있다.

토커이 와인 지구의 역사·문화·경관은 200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여기엔 1만3000여㏊에 이르는 포도밭과 마을, 바위를 뚫어 만든 미로처럼 얽힌 와인 저장고 및 300년간 엄격하게 관리·유지돼온 생산·저장 방식이 포함돼 있다.

일찍이 토커이 와인이 유명해지면서, 근대 들어 프랑스·이탈리아 등 주변국들에서도 토커이란 상표로 와인을 생산해 다툼이 일어 왔다. 하지만 2004년 헝가리가 유럽연합에 가입한 뒤 프랑스와의 소송에서 승리하는 등 최근엔 헝가리의 토커이 와인 상표만 인정받는 추세다.

토커이는 인구 1만명이 채 안 되는 소도시다. 주민들의 절반가량이 포도 농장이나 생산·유통, 와인 상점·식당 등 와인 관련 일에 종사한다. 아담하고 깔끔하면서도 고색창연한 분위기가 남아 있는 골목들을 탐방해볼 만하다. 100년 넘은 성당과 그리스정교회 건물, 1900년대 초반 대규모로 와인 유통을 하던 그리스인의 상점, 와인 가게들과 카페들을 만날 수 있다. 주택들의 벽과 창살 무늬도 포도 덩굴 모양으로 장식한 곳이 많다. 마을 한복판, 1826년에 건축된 마을회관(옛 유대교 회당) 부근엔 작은 장승공원이 있다. 이 지역에서 포도를 처음 재배한 부족을 기려 포도 농장에서 일하는 모습을 새겨 세운 장승들이다.

토커이 오가는 길에 토커이에서 서북쪽으로 한시간 거리에 있는, 헝가리의 세번째 큰 도시 미슈콜츠도 가볼 만한 곳이다. 유서 깊은 동굴온천이 있고, 15세기 건축된 디오슈죄르 성과 내외부 장식이 아름다운 옛 성당들, 700만년 전 살았던 아름드리 사이프러스 나무 밑동들이 전시된 자연사박물관(판논 시 뮤지엄)도 있다. 동굴온천(미슈콜츠터폴처 케이브 바스)은 13세기부터 개발되기 시작해 17~18세기에 대중온천탕으로 자리잡았다. 섭씨 30도로 솟는 온천수를 이용해 자연 동굴 속에 조성한 온천탕이다. 물을 데워 쓰는 열탕도 갖췄다.

토커이(헝가리)/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인천공항~헝가리 부다페스트 직항편은 없다. 카타르항공은 인천공항에서 도하를 경유해 부다페스트로 가는 항공편을 매일 1회(새벽 1시 안팎 출발) 운항한다. 인천~도하 약 10시간, 도하~부다페스트 약 5시간30분 소요. 도하공항 대기시간은 2시간 정도다. 인천~부다페스트(도하 경유) 이코노미석 왕복 130만원부터.

부다페스트 중앙역에서 토커이까지 열차로 2시간30분 걸린다. 베스프렘까지는 열차로 1시간30분 소요. 부다페스트에서 베스프렘까지 하루 4회 왕복하는 버스도 있다. 2시간20분 소요. 베스프렘~지르츠는 열차(4시간 간격)로 30분 소요. 베스프렘~쉬메그는 버스(하루 2회)로 1시간40분 소요. 베스프렘~티허니는 열차(30분 간격)로 40분 소요. 모두 둘러보려면 부다페스트나 베스프렘에서 렌터카를 이용하는 게 좋겠다.

시차는 한국보다 7시간 늦다. 헝가리의 가을 날씨는 한국의 가을과 비슷하다. 통화는 헝가리 포린트(HUF). 1포린트는 약 4.40원. 외환은행 본점이나 인천공항 외환은행 지점에서 포린트로 환전할 수 있다. 미국 달러로 환전해 간 뒤 헝가리 공항이나 은행에서 환전하는 이도 많다. 헝가리 대도시 호텔이나 상점에선 미국 달러, 유로도 통용된다. 전압은 220V. 플러그가 우리와 비슷하지만, 잘 맞지 않는 경우도 있어 멀티탭을 준비하는 게 좋다.

헝가리엔 한국인 입맛에 맞는 음식들이 꽤 있다. 대표적인 것이 '굴라시'로, 유목민들이 먹던 음식에서 유래한 얼큰한 수프다. 감자와 당근, 쇠고기 등 육류를 썰어 넣고, 매운 파프리카로 맛을 낸 국물이 많은 수프다. 우리의 감자탕이나 육개장 비슷한 맛이 난다. '후슐레베시'라는 헝가리의 전통 수프는 일종의 꿩고기 국수다. 당근 등 야채와 꿩고기, 파프리카 등으로 맛을 낸 육수에 소면이 들어간다.

헝가리 여행 문의 (02)2265-2235. 카타르항공 (02)3772-9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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