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에선 선수 모두가 메달리스트였다

2014. 10. 6.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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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하늘이 열렸다는 의미의 개천절(3일) 이른 아침은 날씨 또한 쾌청했다. 다소 쌀쌀한 기운은 있었지만 완연한 가을 기운이 느껴졌다.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을 하루 앞둔 이날 오전 9시, 16명의 마라톤 선수들이 42.195km 트랙에 몸을 맡겼다.16명의 출전 선수 중에서는 이색적인 경력을 가진 선수들이 꽤 있었다. 한국 선수인 심정섭(23, 한국전력)과 노시완(22, 건국대)을 비롯해 '공무원 마라토너'라고 불리는 일본의 가와우치 유키(27, 일본)가 눈에 띄었다.

3일 오전 9시 정각, 16명의 마라토너들이 힘차게 긴 여정을 시작했다.

가와우치 유키는 사이타마 현립 가스카베 고등학교의 사무직으로 근무 중인데, 근무 이외 시간에 틈틈이 훈련을 하며 체력과 실력을 비축해 아시안게임에 참여했다. 올 한해에만 5번이나 대회에 출전할 정도로 마라톤을 사랑하는 선수이기도 하다.

선수들이 스타트를 한 그 시각, 약 2시간 10분 후 선수들을 맞게 될 인천 아시아드주경기장은 벌써부터 취재열기로 달아오르고 있었다. 일본 방송사 TBS에서도 나와 일본인 선수들을 집중 조명하며 중계에 열을 올렸고, 시민들도 마라톤 선수들을 응원하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주경기장으로 하나둘 몰려들었다.

일본 TBS 방송사에서 나와 일찌감치 자국 선수들을 집중 보도하고 있었다.

필자도 마라톤 선수들이 최초로 들어오는 주경기장 입구 근처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진을 찍고 있던 중 어떤 중년남성 한 분이 "스큐즈 미. 포토, 포토, 플리즈"라며 필자의 옷깃을 잡았다. 관람석에는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사진을 찍어드리고 간단히 대화를 건네려고 하는데, 갑자기 일본어가 쉴새없이 쏟아져 나왔다. 마라톤 관람을 위해 서둘러 현장에 나온 일본인 관람객 누마타 카네유키씨와 카토 유시씨였다.

누마타씨는 CIA(Certified Internal Auditor), 즉 국제공인내부감사사로 일하는 분이었고, 카토씨는 스포츠음료회사에 근무하는 스포츠과학 박사(Ph.D. Sport Science)였다. 카토씨는 이번 인천아시안게임의 공식 스포츠 음료로 지정된 회사의 업무 차 잠시 한국에 왔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즉석 인터뷰를 한 일본인 관람객 누마타씨와 유시씨가 건네준 명함

일본 선수들을 응원하기 위해 일찌감치 나왔다는 누마타씨와 함께 국기를 들고 기념촬영을 했다.

이번 인천아시안게임에 어떻게 오게됐냐는 필자의 질문에 누마타씨는 "즐기러 왔다."며 매우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가장 즐거웠던 경기가 무엇이었냐는 질문에는 "다 재밌었지만, 나는 아시아의 뉴스타를 찾고 추구하는 데 중점을 뒀다."며 단지 보는 것만으로 끝내지 않고 스포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자세를 엿볼 수 있었다.

이들은 "마라톤에 일본인 선수가 세 명이나 참가한다."며 "결과가 어떻게 될지 무척 기대된다."고 말했다. 한국인 선수가 두 명 출전한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한국인 선수들이 끝까지 잘 뛰어주기를 기원했다.

한편, 대회 기간 내내 인천시의 도로 위에는 '분홍색 선'이 그어진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알고보니 바로 마라톤 코스의 안내선이었다. 실제로 이날 마라톤 선수들은 송도에서 시작되는 분홍색 선을 밟으며 인천 아시아드주경기장까지 뛰었다.

인천시 도로 위에는 대회 기간 내내 마라톤을 위해 표시된 분홍색 선이 그어져 있었다.

선수들은 분홍색 선을 따라 뛰며 주경기장으로 향했다.

전광판의 시간이 조금씩 지날수록 마라톤 순위도 점차 조정되기 시작했다. 경기 초반에는 한국의 노시완 선수가 1등을 기록하며 순항하는 모습이었다. 페이스 조절과 선수의 표정 또한 나쁘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마라톤은 42.195km의 긴 여정이다. 순위가 어떻게 바뀔지 모르고, 각종 변수가 있다는 점에서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벌어졌다. 노시완 선수가 다리 위를 달리는 도중 그만 선수들과 뒤엉켜 넘어져버린 것. 긴 거리를 달리다가 페이스를 잃고 넘어진 노 선수는 좌절하고 괴로워할 법도 한데 이를 악물고 다시 일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인천 아시아드주경기장에 있던 관객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박수를 치며 노 선수의 끈기와 열정을 응원했다.

경기 초반, 노시완 선수가 선전하고 있는 모습

중간에 넘어지는 아픔을 겪었지만 노시완 선수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42.195km를 완주했다.

그러나 노 선수는 넘어지면서 허벅지에 무리가 왔는지 제대로 달리지 못하고 도중에 멈추는 일이 잦았다. 주변에서는 체력의 한계에 부딪힌 선수들이 기권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노 선수는 그런 흔들림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었다.

한편, 전날인 2일에는 여자 마라톤의 최보라 선수가 끝까지 투혼을 발휘해서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된 바 있다. 최 선수는 결승선을 통과한 후 실신해서 들것에 실려 이송될 만큼 자신의 모든 체력을 소진했다. 최 선수에게는 누리꾼들의 격려가 줄을 이었고, 최 선수도 응원의 메시지를 보고 페이스북에 감사의 글을 올리는 등 훈훈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그런 상황이어서 그런지 노 선수의 끈기와 열정은 더욱 안타깝게 다가오면서도 끝까지 응원의 끈을 놓지 않게 했다.

북한 응원단의 열띤 응원 모습

마라톤이 시작된 지 2시간이 지나고 주경기장에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선수는 케냐에서 태어나 바레인으로 귀화한 알리 하산 마흐부브(33)였다. 주경기장에 있던 많은 관객들은 일제히 박수갈채와 환호를 보내며 선수의 역주를 응원했다.결국 이 선수가 2시간 12분 38초로 결승선에 들어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뒤이어 일본의 마쓰무라 코헤이 선수가 2위(2시간 12분 39초), 일본의 공무원 마라토너인 가와구치 유키 선수가 3위(2시간 12분 42초)를 기록하며 각각 은, 동메달을 획득했다. 한국의 심정섭 선수는 11여분 후인 2시간 23분 11초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비록 메달권에 들지는 못했지만 심 선수가 경기장으로 진입해 트랙을 한 바퀴를 돌 때, 관객들은 큰 함성과 격려를 보내며 선수의 역주에 찬사를 보냈다.

경기 초반에는 관객들이 별로 없었짐나

마라톤이 끝나갈 무렵, 관객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약 8분 후, 마라톤 도중 넘어졌지만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며 완주를 펼친 노시완 선수가 결승선에 들어왔다. 노 선수의 힘들어하는 모습이 전광판에 등장하자 관객들은 탄식을 쏟아내며 안타까워했다. 이를 악물고 결승선에 들어오는 모습은 정말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선사했다. 노 선수는 들어오자마자 바닥에 쓰러져 들것에 이송됐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마라토너들.

마라톤 경기는 이렇게 마무리가 됐다. 시상식을 하기 전, 비가 온 여파로 자원봉사자들이 시상대의 물을 밖으로 빼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적인 노고가 없었다면 인천아시안게임이 제대로 빛을 발하지 못했을 것이다. 시상식과 꽃다발 수여, 바레인의 국가 연주가 이어지고 마라톤 경기는 완전히 끝났다.

끝까지 최선을 다한 노시완 선수

마라톤의 모든 장면을 함께 지켜봤던 필자의 아버지는 "마라톤은 순위가 없었으면 좋겠다. 저 힘든 거리를 홀로 완주하며 정신을 잃을 정도로 온 힘을 쏟아붓는데, 1등부터 3등까지만 메달을 주고 축하해주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원래 마라톤은 대회 막바지에 하는 것인 만큼 축제 분위기로 가서 모두가 즐거웠으면 좋겠다."며 노시완 선수와 심정섭 선수의 선전을 격려했다.

필자도 아버지의 말에 깊은 공감을 표했다. 피니시라인에 들어와서 쓰러지고 실신하고 괴로워하는 선수들의 모습을 지척에서 보니 '저들에게 큰 격려와 위로가 정말 필요하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 기권한 선수들을 제외한 모든 선수들이 인천 아시아드주경기장에 모습을 나타날 때마다 관객들이 큰 함성과 함께 박수갈채를 보내 선수들의 사기를 북돋워주는 장면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감동 그 자체였다.

마라톤은 자신의 모든 역량을 다해 홀로 싸워야 하는 매우 어려운 경기이다.

마라톤은 체력의 한계와 싸우는 종목이다. 메달을 획득하기도 어렵고, 훈련 강도도 만만치 않아 요즘 젊은 선수들이 꺼리는 종목이기라고 한다. 계속 얇아지고 있는 선수층을 보강하고, 한국의 마라톤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민들의 관심과 마라톤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이 계속해서 수반돼야 할 것이다. 손기정 옹, 황영조, 이봉주의 뒤를 잇는 한국 마라톤의 기대주가 꼭 탄생하기를 바라며, 특히 완주한 선수들에게는 따뜻한 격려와 관심을 아낌없이 보내야 할 것이다.

정책기자단

|전형 wjsgud2@naver.com한국어를 사랑하는 대학원생. 세계 많은 나라에 한국어 교육이 체계적으로 뿌리내렸으면 하는 소망을 갖고 있다. 한국어를 배우는 이들의 빛나는 눈망울 속에서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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