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삶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영화 '슬로우 비디오'

손정빈 2014. 10. 2.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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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손정빈 기자 = 여장부(차태현)는 뛰어난 동체시력 때문에 선글라스를 쓰고 생활해야 한다. 괴물이라는 아이들의 놀림에 학교에 다닐 수 없게 된 그는 집에 처박힌 채 TV를 벗삼아 오랜 시간을 보낸다. 더는 집에만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한 여장부는 CCTV 관제센터에서 일하게 되고 CCTV 화면을 통해 조금씩 세상에 발을 내딛는다.

김영탁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슬로우 비디오'의 소재는 참신하다. 동체시력은 움직이는 물체를 볼 때의 시력이다. 흔히 야구 선수 등 운동선수에게 필요한 능력이다. 김영탁 감독은 이 신체 능력을 휴먼드라마라는 장르 안에 품는다. 요약하자면 타고난 동체시력 때문에 모든 움직이는 사물을 슬로우 비디오처럼 볼 수 있는 한 남자를 통해 느리게 사는 삶을 예찬한다.

김 감독은 동체시력에 한 가지 아이템을 더 보탠다. CCTV다. 허다한 영화가 CCTV를 스릴러 장르 안으로 가져와 범인을 잡는 단서나 감시자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과 달리 '슬로우 비디오'는 이 CCTV를 이웃을 지켜봐 주는 눈으로 쓴다. CCTV는 '항상 당신을 돌보는 사람이 있다'는 격려와 같다.

동체시력 덕분에 CCTV를 슬로우 비디오로 볼 수 있는 남자가 주인공이라는 설정을 들으면 감이 온다. '슬로우 비디오'는 괴물로 오해받았던 남자가 세상에 온기를 불어넣어 주는 이야기다. 그 덕분에 조금이나마 삶의 행복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는다. 김영탁 감독은 이 이야기에 첫사랑의 순애보를 첨가한다.

영화는 따뜻하다. 뮤지컬 배우가 꿈인 봉수미(남상미), 박사 과정을 마친 나이 많은 공익근무요원 병수(오달수), 여장부를 자식처럼 대하는 안과의사 석 의사(고창석), CCTV 관제센터의 노처녀 직원 심(진경), 버스 운전기사 상만(김강현) 등 영화 속 인물은 모두 모나지 않고 정이 많다. 잠시 등장하는 범죄자조차도 어설픈 인물로 그려지는 것은 김영탁 감독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무엇을 보려고 하는지 알려준다. 결국 '슬로우 비디오'는 세상과 삶이 동화 같기를 바라는 감독의 영화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CCTV 앞을 수레를 끌며 지나가는 아이를 주목하거나, 술에 취해 길에서 잠이 든 사람을 CCTV로 발견하고 "저 아저씨 아직도 자고 있네"라고 말하는 대사, CCTV와 CCTV 사이에서 사라진 사람을 걱정하는 관제센터 직원의 모습이 자주 등장하는 건 김영탁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슬로우 비디오'가 철저하게 극화된 인물과 공간을 그린 것은 충분히 의도된 설정이겠지만 극의 리얼리티를 지나치게 떨어뜨려 지루하기도 하다. (물론 이것 또한 김영탁 감독의 의도일 수 있다. 이 영화의 제목이 '슬로우 비디오'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가장 긴 시간을 할애한 여장부와 봉수미의 로맨스에 선뜻 공감하기 힘든 게 이 영화의 큰 단점이다. 참신한 소재로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상상력이 부족한 멜로드라마로 귀결한 것은 아쉬움을 남긴다. 쉽게 예측 가능한 여장부의 반전(작은 반전)은 극의 감동을 떨어뜨린다.

차태현을 중심으로 한 출연 배우는 모두 제 몫을 다했다.

'슬로우 비디오'는 '제보자' '마담뺑덕' '나의 사랑 나의 신부' '맨홀'과의 가을 영화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슬로우 비디오'는 경쟁을 통해 꼭 살아남아야 하는가 의문을 던진다.

jb@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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