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연재ㅣ산노래도 등산 문화다(1)] '산악인의 애환이 담긴 꾼들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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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산] |
산꾼들 사이에 즐겨 부르는 '산노래'라고 한다. 산을 오르며 힘겨움을 달래고 산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노래들이다. 산꾼들의 정서와 애환, 전통, 도전의지 등이 그대로 담겨 있는 산노래는 등산문화의 일맥을 이루는 중요한 자산이다. 이런 노래를 통해 예전부터 산에 다니는 사람들은 동료의식과 단결심을 높였다.
산노래는 우리나라에서 등산 활동이 시작됨과 거의 동시에 생겨났다고 볼 수 있다. 초창기의 작자 미상곡부터 일본 개사곡 및 외국곡, 동요, 군가, 대중가요, 요들송에 이르기까지 산과 조금만 연관이 있으면 산에서 즐겨 불리며 자연히 산노래라고 굳어졌다. 이러한 노래들이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요즘 들어서도 소수의 마니아들이 새롭게 만든 산노래를 발표하고 있다.
우리나라 산꾼들이 언제부터 '산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지 정확한 시기는 알 수는 없다. 원로 산악인들의 기억에 따르면, 광복 전 1세대 산악인들이 활동할 때부터 불러왔던 것이 분명하다. 한국 최초의 산노래는 '개나리고개'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일제강점기에 발표된 민요풍의 노래로 김정태 선생(1917~1988)이 애창하며 산악계에 퍼졌다고 전해진다. 김 선생은 '산, 산, 산'이라는 노래를 만들기도 했다. 이후 경기고 산악부인 라테르네 출신으로 음악을 전공한 양천종씨가 여러 편의 창작 산노래를 내놨다. 그는 '산으로, 또 산으로'와 '스키어의 노래' 등을 작곡했다.
산노래의 전성기는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후반까지로, 산악운동이 한창 열기를 띠었던 시기와 일치한다. 이즈음 한국 산노래 2세대라 할 수 있는 이들이 여럿 등장한다. 대표적인 인물이 백경호, 김태호, 이정훈씨다. 1960년대 고려대 산악부 출신인 백경호씨는 '숨은벽 찬가'와 '아득한 산정' 등을 만들었고, 김태호씨는 '설악아, 잘 있거라'를 발표해 인기를 끌었다. 얼마 전 타계한 이정훈씨는 지금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설악가', '즐거운 산행길' 등을 만든 주인공이다.
산악운동과 산노래는 함께 시작해 발전
당시 산에 다닌 사람들은 '산 아가씨', '산사나이', '산악인의 노래', '그리운 산정', '저 높은 산', '즐거운 산행길', '산의 나그네', '자일의 정', '에델바이스', '베르네 산골', '아름다운 스위스 아가씨', '푸른 창공에 로프를 던져라' 등 50여 편의 산노래를 기억할 것이다. 노래에 관심이 없는 산악인들이라도 이런 노래 한두 곡쯤은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이 시기 불리던 산노래 가운데 으뜸은 '설악가'였다. 밤하늘의 별을 보며 설악산의 야영지에서 나지막하게 부르던 '설악가'는 누구에게나 감동을 줬다. '즐거운 산행길'은 가수 김홍철이 음반으로 취입했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산악인의 노래'는 당시 한국산악회장을 역임한 노산 이은상이 작사했고 김동진이 작곡한 곡으로, 한국산악회 회가로 지정되어 지금까지 산악인들에게 애창되고 있다. 이렇게 산악인들은 산노래를 통해 연대의식을 키워 왔고 아픔을 나누기도 했다.
산노래는 1980년대에 들어가며 잠시 정체기를 맞는다. 취사야영제한조치가 시행되며 캠핑장소가 제한되면서 산노래의 열기가 점차 식어버렸다. 활발하던 산노래 창작과 개사곡 만들기 역시 주춤해졌다. 야영장에서의 노래 부르기도 금지되며 새내기 산꾼들이 산노래를 접할 기회까지 줄어들었다. 이때부터 우리의 산노래 문화는 전수와 발전은커녕 명맥유지도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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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산] |
정체기를 겪었지만 산노래 2세대를 잇는 활동은 꾸준히 이어졌다. 1990년대 들어 산악단체 회원들 중심의 산노래 모임이 생겨났고, 1993년 전두성씨(광운대 산악부 OB)는 산노래 악보를 정리해 '노래모음 산이야기'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1999년에는 한양대산악회 출신의 정규현, 이영수, 류문환, 이승구씨가 모여 알파인 코러스를 만들고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88년 히트한 '난 바람 넌 눈물'의 주인공 포크가수 신현대씨도 1990년대 후반 산에 입문해 지금은 산을 노래하는 가수가 됐다. 조일민씨는 영남지방에서 산노래를 하는 대표적인 인물로 꼽힌다. 그는 산노래 전문 홈페이지 '위드 마운틴'을 개설해 운영하며 활동 중이다. 이들 가운데 현재까지 활발히 산노래 창작과 보급활동에 열을 올리고 있는 사람은 알파인 코러스와 신현대씨, 조일민씨 정도다.
지금은 산노래를 접하고 부를 곳이 없다
알파인 코러스의 정규현씨(한양대산악부 OB)는 "요즘에는 인수봉을 오르는 젊은 클라이머 가운데 산노래를 들어보지 못했다는 이들도 적지 않다"면서 "우리의 소중한 등산문화인 산노래를 보급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각계각층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산노래가 외면받는 것은 음악교육의 부재도 한몫을 했다고 생각한다"면서, "학창시절에 음악을 배우지 않으면 아무래도 감성적으로 부족해 노래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가 산악단체나 등산학교에서 산노래 교육을 해보면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많았다. 하지만 일회성 교육으로 그칠 뿐 지속적으로 찾고 즐기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자극적인 미디어에 둘러싸인 현대 산악인들 사이에는 산노래가 문화로 자리 잡을 만한 여유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노래 부를 기회가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오스트리아 방송 프로그램 중에는 요들송과 같은 자국의 민요를 사람들이 함께 모여 부르는 것이 있습니다. 이 방송은 그 나라뿐만 아니라 주변국에서도 인기가 높습니다. 이런 문화가 우리에게 있었다면 상황이 달랐겠지요. 산악단체는 물론, 언론과 학교, 아웃도어 업체까지 산노래 보급을 위해 조금씩만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2014년 현재, 우리 산노래가 놓여 있는 상황은 위태롭기 그지없다. 창작물은 줄어들고 노래 소리는 작아졌다. 산노래를 부르고 즐기려는 이들도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소수의 노력으로 근근이 현상유지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나마 1960~1970년대의 추억과 감성을 공유하던 대다수의 산노래 마니아들도 이제 노령에 접어들었다. 이대로 두면 아름다운 등산문화인 산노래의 맥이 끊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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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산] |
본지는 침체된 우리의 산노래 문화를 되살리는 노력의 일환으로 이번호부터 산노래 이야기를 연재한다. 다음호부터는 특정한 산노래를 선정해 소개하고, 노래의 탄생 배경, 노랫말과 시대적 분위기 등을 조명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사라져가는 산꾼들의 노래 문화가 다시 한 번 활성화되기를 기대해 본다.
고 이정훈 작사 작곡 '설악가'대한민국 산꾼들이 애창하는 대표적인 산노래
'굽이쳐 흰띠 두른 능선길 따라~/ 달빛에 걸어가던 계곡의 여운을/ 내 어이 잊으리오, 꿈같은 산행을/ 잘 있어라 설악아, 내 다시 오리니~.'(1절)
'저 멀리 능선 위에~/ 철쭉꽃 필 적에~/ 너와 나 다정하게 손잡고 걷던 길/ 내 어이 잊으리오. 꿈같은 산행을~/ 잘 있거라, 설악아~ 내 다시 오리니~.'(2절)
'설악가'를 작사·작곡한 사람은 중동고 산악부를 거쳐 고령산악회에서 활동한 고 이정훈(1949~2014)씨다. 치과의사였던 그는 오랫동안 산노래를 부르며 1960~1970년대 산노래의 중흥기를 이끈 우리나라 산노래 보급의 전도사격인 인물이다. 그는 10여 년 전 발병한 구강암으로 오랜 투병생활을 하다 지난 5월 27일 세상을 떠났다.
한국 산악인들이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산노래인 '설악가'는 이정훈씨가 연세대 재학 중인 1969년 가을에 작사 작곡했다.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널리 애창되고 있는 곡으로, '산꾼이 설악가를 모르면 간첩'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인지도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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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산] |
애조를 띤 이 노래를 원작자는 8분의 6박자 형태로 불렀으나, 대부분의 산사람들은 그보다 느린 4분의 3박자로 부르고 있다. 이 노래는 대중가요에만 익숙해 있는 일반인도 쉽게 감흥을 느낄 정도로 큰 울림이 있어 인기다. 특히 어둠이 내린 산속에서 산 친구들과 함께 부를 때 감동이 배가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이정훈씨는 '설악가'의 작사·작곡 동기를 어느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달빛 고요한 천불동을 홀로 걷다가 한국산악회 10동지가 죽음을 맞은 죽음의 계곡을 바라보는 순간 이상한 격정이 끓어올랐고, 달빛에 반사되는 설릉을 바라보는 순간 즉흥적인 감흥으로 흥얼대다 보니 노래가 만들어졌다. 그때의 감흥을 가슴에 품고 집으로 돌아와 흰 띠를 두른 듯한 달빛 아래의 설릉을 떠올리며, 기타로 대강 선율을 그려본 후 피아노로 음을 확인하며 악보를 완성했다."
그가 활동했던 고령산악회의 후배 지훈구씨는 "원래 1절은 겨울, 2절은 봄을 묘사한 데 이어, 여름과 가을까지 4절을 만들었으나 지금은 2절까지만 남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당시 산악계 선후배들이 너무 길게 가면 늘어지니 2절로 끝내는 것이 좋다고 해서 본인도 동의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 울돌목의 파도울음이 보이는가 병사들의 심장소리가 들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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