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리즘'에 매료되다] [下] "친구 따라 강남 간다? 딱 제 얘깁니다"

김미리 기자 2014. 9. 24.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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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쯤 한국 친구를 만나기 위해 이 땅을 밟았을 때 그야말로 충격이었어요. 좋은 충격요. 일해보고 싶은 나라의 맨 위 순서가 바로 한국으로 바뀌었죠."

출판사 '열린책들' 해외문학팀장 그레고리 림펜스(38)씨가 유창한 우리말로 기억을 되살렸다. 벨기에 출신인 그에게 한국의 첫 이미지는 '입양아의 고향'이었다. 자신의 조카가 한국에서 입양됐기 때문이다. 지난 1998년 독일 교환학생 시절 한국인 친구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 대한 정보나 관심은 거의 백지상태였다. "영국 친구까지 포함해 우린 삼총사가 됐죠. 한국 친구가 보고 싶어 결국 2003년에 열흘간 여행을 왔어요. 세상에나! 완벽하게 이 나라에 반하고 만 거예요." 문학과 저작권에 관심 있던 그는 2005년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저작권 관련 업무를 하다 2008년 출판계에 입문했다. 6개 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그는 지금까지 161권을 기획해 106권을 출간했다.

문화·예술계에 종사하는 외국인을 한국으로 불러들이는 요인에는 이처럼 네트워크의 힘을 빼놓을 수 없다. 세계로 뻗어간 한국인의 힘이 '문화 서울'을 만드는 주요 핵이 되고, 한국을 세계 문화 흐름의 '파워하우스(powerhouse)'로 발돋움시키는 바탕이 되는 것이다. 특히 과거와는 달리 한결 여유로워진 현지 유학생이나 현지 주류 사회로 편입된 교포 등을 보며 한국에 대한 이미지도 바뀌고 있다.

지난해 서울 서초구 서래마을에 음식점 '디 안다만'을 연 태국의 식당 재벌 2세 아마릿 아이콰니치(36)씨도 십여년 전 스위스 호텔학교 유학 시절 여러 한국 학생을 만나면서 한국의 수준 높은 문화 경쟁력을 엿봤다. 그때 만난 한국 학생 차성제씨와 교류를 잇다가 현재 식당의 공동 대표가 돼 SR컴퍼니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말레이시아 출신 무용가 용신(29)씨는 "지난 2005년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세계 무용 페스티벌에서 만난 무용가 전미숙·유미나 교수의 모습에 반해 한국을 동경하게 됐다"며 "3년간 맹렬히 노력한 끝에 국가장학금을 받았다"고 말했다.

미국 할리우드나 뉴욕 등 패션 문화의 중심지에서 한국계 혹은 한국인이 줄줄이 성공하면서 이들이 중간다리 역할도 하고 있다. '겐조'의 총괄 디자이너이자 뉴욕 패션 브랜드의 오프닝 세리머니를 이끄는 한국계 디자이너 캐롤 림이 대표적이다. 제일모직과 꾸준히 교류하며 양국에서 팝업 스토어를 열거나 신진 디자이너를 소개하는 등의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내조의 힘도 작용한다. 한국계 아내를 둔 미슐랭 스타 셰프 장 조지는 '김치 크로니클'이란 음식 다큐멘터리를 진행했고, 할리우드 거물급 제작자인 켄 목의 아내이자 재미 소설가인 이혜리씨는 남편이 제작하는 '도전 수퍼모델'의 한국 촬영을 성사시킨 주인공이다. 3년 전 한국에 정착한 캐나다 출신 작가 폴 카잔더씨는"네트워크에 끌려 한국에 온 뒤 마치 서울의 문화 대사가 된 듯 한국과 외국 작가 사이에 다리 놓는 역할도 하게 됐다"며 "우리 같은 이들이 역으로 한국과 해외를 잇는 또 다른 네트워크를 형성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내가 본 서울, 내가 직접 알린다" 외국인 웹진들]

'서울리즘'을 만들어가는 중요한 축으로 각종 블로그나 웹페이지를 통해 스스로 '한국 알림이'가 되는 이들의 힘을 빼놓을 수 없다.

영국에 살면서 지난 2006년부터 한국 문화·예술 관련 전문 사이트 '런던코리안링크스'를 운영하는 필립 고우먼씨나 스웨덴에서 한국 인디 음악 전문 블로그 '인디풀 ROK'를 만든 안나 린드그렌씨 등이 대표적이다. 옥스퍼드 대학 출신으로 JP모건 등을 거쳐 현재 HSBC 은행의 글로벌 금융 분야를 맡고 있는 고우먼씨는 전화 인터뷰에서 "1990년대 한국 클라이언트를 통해 '폭탄주 문화'를 접했다가 한국에 빠져들기 시작했다"며 "수차례 한국 여행을 하고 나니 한국이 문화적으로 상당히 우수하다는 걸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 사이트를 통해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됐고, 한국에서 작업하고 싶다는 영국 예술가들의 편지를 자주 받는다"며 "찰스 몽고메리 (동국대) 교수의 한국 문학 전문 사이트(KTLit.com) 등 외국인에게 유용한 한국 전문 사이트가 꽤 있다"고 말했다. 대만과 한국 여행에 관한 블로그를 한국어로 운영하는 대만인 서어첩(26)씨는 대만 출판사로부터 '부산 여행'에 관한 책 출간 제의를 받아 곧 부산을 찾을 예정이다.

국제 학생 웹진 '서울리즘'은 외국인들이 유창한 한국말로 '한국이 몰랐던 서울'에 대해 이야기한다. 필진인 코노노바 에바(러시아·26)씨는 "한국인들로 하여금 외국인을 통해 더 서울을 잘 알게 하자는 취지로 뭉쳤다"면서 "'그들만의 리그'처럼 폐쇄성을 띄는 것이 아닌, 서울의 매력을 적극 수용해 더 한국인 같은 외국인으로 진화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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