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리즘'에 매료되다] "서울은 기회의 땅".. 세계 예술인들이 몰려온다

김미리 기자 2014. 9. 23.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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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관광객이 너무 많아졌어요. 전세도 많이 올랐고요. 이젠 다른 동네로 떠나야 할까 봐요."

캐나다 작가 폴 카잔더(34)씨가 작업실 겸 집으로 쓰는 서울 북촌의 다가구주택 3층에서 창밖을 내다보며 웃었다. 외국인이면서 외국인 관광객 유입을 걱정했다. 카잔더씨는 3년 전부터 한국에 살면서 영상과 설치 작업을 해오고 있다. 2010년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미디어시티'에 참여했던 캐나다 친구들이 '최신 예술을 접할 수 있는 에너지 넘치는 도시'라고 흥분하는 걸 보고 이듬해 아예 서울에 정착했다. "무용계에선 아시아뿐만 아니라 유럽 친구들도 '지금 서울에 가라. 예술계에서 가장 핫하고 트렌디한 도시다'고들 해요." 한국에 6년째 머물며 활동하고 있는 말레이시아 출신 무용가 용신(29)씨가 능숙한 한국말로 말했다.

서울이 젊은 외국 예술인들의 문화 터전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단순히 K팝·한국 드라마가 좋아 한국에 잠시 여행 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아예 서울을 기반으로 삼아 상주하며 활동하는 예술인이 급증하고 있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장단기 체류 외국인 현황' 통계에 따르면 올 8월 기준 '문화예술' '예술흥행' '예술연예'를 위해 체류하는 외국인은 5987명이었다. 2010년 4930명, 2011년 5407명, 2012년 5628명, 2013년 5681명(매년 8월 기준)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주로 유럽·미국 등 문화 선진국에서 온 20~40대 젊은 예술가들로, 미술·디자인·건축·사진·무용 등 분야도 다양하다. 1990년대 시작된 동남아시아 산업 연수생과 중국 교포의 유입이 돈을 벌기 위한 '경제적 이주'라고 본다면, 이들 젊은 예술가의 유입은 '문화 이주'다. 서울의 역동적인 문화 풍경을 일컬어 '서울리즘(Seoulism)'이란 신조어도 등장했다.

◇'기회의 땅' 한국으로 '문화 이주' 급증

"런던은 문화적으로 이미 포화(saturated) 상태예요. 사진가로서 새로운 기회를 잡고 스스로 시험해 볼 수 있는 최적지가 서울이었어요." 런던에서 8년간 활동하고 지난 4월 한국행을 택한 이탈리아 사진가 파비오 페차리니(33)씨가 말했다. 아내가 한국인이라는 현실적 이유도 있었지만, 그가 한국을 선택한 진짜 이유는 '도전의 기회가 많다'는 것이었다.

외국인 예술가들은 "지금 한국은 문화적으로 '기회의 땅'"이라고 입을 모은다. "뉴욕, 런던, 파리 등 세계 문화 중심지들은 이미 고착화돼 있어 젊은 무명 예술가들이 설 자리는 되레 부족하다. 반면 서울(한국)은 세계 예술계의 변방에서 중심부로 이동하는 문화적 전환기를 맞고 있다. 세계 예술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새로운 시도가 많기에 젊은 외국 예술가들에게 돌아가는 기회가 많다"는 것이다.

말레이시아 예술가 용신씨는 "다른 나라에선 무용 관련 국제 페스티벌이 1년에 1~2개밖에 없는데, 한국엔 4~5개 있다. 글로벌 오디션도 많이 열린다"며 "한국은 세계 무용 트렌드를 볼 수 있는 장인 동시에 국제적 명성을 얻는 디딤돌이 된다"고 했다.

이제 막 세계 예술 담론을 논하는 단계에 진입해 국제적 수준의 행사가 활발히 열리고 있어 글로벌 흐름을 볼 수 있다는 점, 단일 문화이기 때문에 외국인 예술가가 지닌 희소성이 주는 혜택이 많다는 것 등이 현실적으로 서울이 부상한 이유다.

주한독일문화원 직원 알렉산드라 러트예(33)씨는 문화적 불모지였던 한국의 상전벽해를 체감하고 있다. 아버지 일 때문에 1984~87년 한국에 살았고, 2002~2003년엔 교환학생으로 다시 한국을 찾았다. 2007년 박사 과정을 밟으려고 온 뒤 계속 한국에서 살고 있다. 러트예씨는 "예전엔 외국인이 연고가 없거나 업무와 상관없이 한국에 자발적으로 와서 사는 경우는 거의 없었는데, 요즘은 역동적인 문화가 매력적이라며 한국에 와서 사는 독일 건축가나 영화감독이 꽤 있다"고 했다.

◇'낯선 서울' 아시아의 새 문화 아지트로

이주 외국 문화인들이 말하는 서울의 또 다른 매력은 '낯설다(unfamiliar)'는 점이다. 6년째 서울에 살고 있는 미국인 소설가 카렌 MK(44)씨는 "동양 문화에 대한 서구의 관심 축이 도쿄에서 서울로 이동했다"고 말했다. "도쿄는 너무 많이 알려져 식상하고, 베이징이나 상하이는 아직 살기엔 위험하단 인식이 있다. 서울은 생활 인프라가 국제 수준으로 갖춰져 있으면서 이국적인 아시아 문화를 갖고 있다. 안전하게 살면서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어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문화인들이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6년 전부터 서울에 살고 있는 독일인 화가 잉고 바움가르텐(50·홍익대 회화과 교수)은 1990년대 말 일본에 살았다. "1980~90년대 일본에는 문화적으로 희망적인 기운(positive spirit)이 있었는데 지금 일본은 그 동력을 잃은 것 같아요. 일본이 잃어버린 문화적 다이너미즘(dynamism·역동성)을 이젠 한국이 갖고 있어요. 너무 역동적이어서 모든 것이 너무 빨리 변한다는 게 문제지만요." 그는 "제자 중 한류로 한국 대중문화에 관심을 가졌다가 한국의 디자인·건축에 매료돼 이곳에서 활동하려는 친구들이 늘고 있다"고 했다.

서울이 '문화적 성공'을 가늠해 보는 시험대가 되기도 한다. 지난해 방배동 서래마을로 이사와 태국 음식점 '디 안다만'을 연 아마릿(36)씨는 태국의 유명 재벌 2세다. 태국 최대 규모 레스토랑 '타이 난' 오너 아들인 그는 "지금 가장 문화적으로 트렌디한 도시인 서울에서 성공하면 글로벌 무대에서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서울리즘(Seoulism)

서울(Seoul)과 사상을 뜻하는 영 단어 이즘(ism)의 합성어. 외국인의 시각에서 바라본 서울의 문화적 특수성을 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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