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집 '보다' 낸 김영하 작가 "젊은이조차 희망 없이 사는 시대는 처음.. 전시 상황 같은 사회를 들여다봐야 했다"

김여란 기자 2014. 9. 21.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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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여간 언론매체 등에 기고한 글 모아독서·강연 정리 '읽다·말하다' 곧 출간

"제가 1968년생인데 희망이 사라진 시대는 처음 살아보는 것 같습니다. 특히 젊은 세대조차 이전보다 잘될 거라는 희망 없이 사는 건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국면이에요. 전시 상황 같아요. 이 사회 안으로 탐침을 깊숙이 찔러넣지 않으면 안되겠다, 싶었습니다."

2008년 미국 뉴욕으로 떠났던 소설가 김영하씨(46·사진)는 2012년 귀국해 소설보다 산문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용산참사,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 4대강 사업 그리고 올봄 세월호 사고까지 한국에서 일이 벌어질 때 김씨는 언제나 타국에 있었다. 김씨는 지난 19일 "해외에서는 그저 보고 느끼는 게 전부였지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정리해 쓰는 것까지가 '본다'는 행위가 완결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며 "주 단위로 산문을 쓰면서 오래 떠나 있던 한국 사회에 다시 들어갈 수 있었다"고 밝혔다. 등단 20주년을 맞은 그가 2년여간 여러 매체에 기고한 글을 모아 산문집 <보다>를 펴냈다.

책에는 부자와 빈자, 생존 같은 단어들이 자주 등장한다.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을 벌이면서도 이런 상황이 개선될 거라는 희망 따위는 감히 품지 않는 세상에 살게 됐다." 비정규 노동, 빈부 격차 같은 뿌리 깊은 사회적 불평등과 인간 자유에 대해 작가답게 비틀어 통찰하고 있다. 이후 김씨는 석 달쯤 간격으로 책과 독서에 대한 글을 모은 <읽다>, 공개 강연 내용을 정리한 <말하다>까지 산문집을 두 권 더 낼 계획이다.

- 사회 문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글이 많다.

"일부러 의도한 게 아니라 묶어놓고 보니 사회적 불평등, 빈부 격차 같은 문제에 대한 글이 많았다. 2012년에 돌아와서 실제 그런 문제가 첨예해졌구나 느꼈다. 전에는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있는 거라 생각했는데 4년 만에 보니 앞으로는 어려운 상황만 있겠구나 싶었다. 낙관주의는 사라졌고, 거리를 걷는 사람들 표정이 어둡다. 내가 대학 다닐 때는 무모한 꿈을 가진 친구들이 많았는데, 이제 젊은 친구들은 꿈이 뭐냐는 질문 자체를 싫어한다. 역사는 큰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실은 그 저류에 흐르는 것, 사람들이 이 사회에 대해 어떻게 느끼느냐가 중요한데 그런 감정들이 나빠진 것 같다."

- 4년 만에 사회가 그렇게 변했다면, 세월호 사고 이후 변화는 어떻게 보나.

"배가 침몰하고 사람이 죽을 때 많은 사람들이 전화를 했다. 자기가 책임질 수 없으니까 어디론가 신호를 보냈지만 어디로도 가 닿지 않았다. 카프카의 <성> <심판>과 어울리는 사태다. 일종의 카프카적 카오스 속에 한국 사회가 들어 있는데 아직 그 혼돈의 정확한 규모도 모르겠다. 히치콕 영화 <로프>에 방 탁자 아래에 있는 시체에 대해 아무도 말하지 않고 파티를 벌이는 장면이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국가는 기능을 멈추고 사망한 지 꽤 됐는데도 아닌 것처럼 살아오다가 드디어 시체가 드러나자 이제 누구도 피할 수 없게 된 거라고 생각한다."

- 이런 카오스 속에서도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은 보고 쓰는 것까지라는 데 한계를 느낄 것 같다.

"사실 소설가 없이도 사회는 잘 굴러간다. 예술은 무용한 건데, 굳이 그 기능이 있다면 세상의 변화를 민감하게 감지하는 센서라고 생각한다. 나는 특별히 사회적인 문제에 천착하는 편이 아닌데도 느낄 정도니, 동료 작가들을 만나보면 사람들의 정서가 바뀌는 걸 굉장히 민감하게 받아들이더라. 예술가로서 누릴 수 있는 자유도 줄었다. 예술가는 가장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진지하게 살고 있는 데서 혼자 객쩍은 농담을 하고 이상한 실험을 할 수가 없다."

<김여란 기자 pee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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