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성남시 엿새간 '쓰레기 대란'..속사정은?

최형원 2014. 9. 18.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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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가 끝난 직후, 경기도 성남시의 거리마다 쓰레기더미가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연휴가 끝난 직후여서 그런지 별로 이상할 것은 없었습니다. 주민들도 처음에는 '환경미화원들도 돌아가며 쉬나 보다', '조금 지나면 다시 수거해 가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루 이틀 사흘...쓰레기더미는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시내 곳곳에서 악취가 진동을 하고 파리와 구더기가 들끓었습니다.

환경미화원들이 전부 파업이라도 했던 걸까요? 아닙니다. 환경미화원들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열심히 쓰레기 수거작업을 했습니다. 다만, 분리수거가 안된 쓰레기나 종량제 봉투에 담기지 않은 쓰레기들을 그대로 놔둔 채 분리수거가 완벽하게 된 것들만 수거해 간다는 게 전과 달라진 점이었습니다.

쓰레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재활용 쓰레기와 비재활용 쓰레기죠.

통상 비재활용 쓰레기는 종량제 봉투에 담겨져 소각장에서 소각 처리됩니다.

재활용품인 고무, 플라스틱 등과 음식물 쓰레기 등은 소각 과정에서 유독가스를 배출하기 때문에 소각장 반입이 금지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종종 종량제 봉투에 소각에 부적합한 쓰레기들이 섞여 들어오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성남시에서 소각장으로 유입되는 쓰레기 가운데 약 40% 정도가 이런 '부적합' 쓰레기라고 합니다.

이런 부적합 쓰레기의 반입을 감시하는 건 소각장 인근 주민들의 몫입니다. 주민들은 감시단을 구성해 돌아가며 부적합 쓰레기가 있는지 확인해왔습니다. 성남시내에서 쉴 새 없이 쓰레기 수거 차량이 드나들기 때문에 원활한 반입을 위해 그동안은 표본 검사를 해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추석 연휴가 끝난 직후인 지난 11일부터 전수 검사에 나서면서 쓰레기 대란이 일어난 겁니다.

이들은 소각장으로 반입되는 쓰레기 봉투를 일일이 뜯어보고 부적합 쓰레기가 조금이라도 포함돼 있으면 반입을 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바람에 15분이면 끝날 쓰레기 반입 작업이 꼬박 하루가 걸릴 정도로 길어졌습니다. 이마저도 부적합 쓰레기가 한 개라도 들어있으면 반입을 거부했기 때문에 대부분 되돌려보내지기 일쑤였습니다.

주민 감시단이 전수 검사를 시작하며 쓰레기 반입을 거부하자, 환경미화원들도 부적합 쓰레기가 조금이라도 담겨 있거나 종량제 봉투에 담기지 않은 쓰레기는 아예 수거조차 하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어차피 가져가 봐야 반입이 거부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죠.쓰레기 대란은 그렇게 시작된 겁니다.

그런데 그동안 표본 검사만 해온 소각장 인근 주민들이 왜 갑자기 전수 검사를 한 걸까요? 주민들은 건강 문제를 내세웠습니다. 부적합 쓰레기가 워낙 많이 소각장으로 유입되다보니 악취와 유독가스가 많이 배출돼 주민들의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는 논리였습니다. 하지만, 성남시가 정기적으로 소각장 주변의 유독가스 농도를 측정한 결과, 기준치를 초과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고 합니다. 10년 이상 소각장을 운영해 왔는데 갑자기 건강 위협을 주장하며 쓰레기 반입을 거부하는 것이 조금 이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럼 진짜 이유는 뭘까요? 알고보니 성남시와 소각장 인근 주민들 간의 갈등이 문제였습니다. 성남시는 소각장 운영 수익금으로 기금을 조성해, 소각장 인근 주민들의 복지에 사용해왔습니다. 혐오 시설인 소각장 인근에 사는 주민들에게는 일종의 보상인 셈이죠. 지난해부터 이 기금으로 소각장 주변 가구의 옥상 방수 공사를 해왔는데, 1차 공사 때는 주민들이 직접 업체를 선정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2차 공사를 앞두고 성남시가 공사 업체 선정 방식을 공개 입찰로 바꾸려 하자 주민들이 반발했습니다. 주민들은 공개 입찰로 진행하게 되면 공사 비용이 수천만 원 더 늘어날 거라며 기금을 아끼기 위해 종전대로 자신들에게 업체 선정권을 달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성남시 측이 국가계약법상 공사 대금이 1억 원 이상이면 공개 입찰을 하는 것이 원칙이라면서 뜻을 굽히지 않자, 주민들이 결국 쓰레기 반입을 막으며 '실력 행사'에 나선 겁니다. 이런 내막을 알 길이 없는 시민들만 영문도 모른 채 넘쳐나는 쓰레기더미 속에 곤욕을 치러야 했습니다.

성남시는 이런 속사정을 시민들에게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시민들이 쓰레기를 제대로 분리 배출하지 않아서 쓰레기 대란이 빚어졌다', '무분별하게 쓰레기를 내놓는 시민 의식부터 바꾸기 위해 단속을 강화하겠다'며 시민들에게 으름장을 놨습니다. 물론, 쓰레기 분리수거를 철저히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불법 쓰레기 단속도 제대로 해야 합니다. 하지만, 소각장 인근 일부 주민과의 이권 갈등 문제를 제대로 조정하지 못해 쓰레기 대란을 촉발시켜놓고 이 책임을 온전히 시민들의 탓으로만 돌린 성남시의 태도는 정말 후안무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성남시는 결국 쓰레기 대란 엿새만인 지난 16일 소각장 인근 주민들에게 백기를 들었습니다. 성남시는 공사 업체 선정 권한을 주민들에 돌려줬고, 주민들은 이날 오후부터 쓰레기 반입을 정상화했습니다.시민들에겐 분리배출을 제대로 하지 않아 이런 일이 생겼다며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훈장 노릇을 하던 성남시가 정작 소각장 인근 주민들과는 애초의 원칙을 뒤집고 법도 무시한 타협을 한 셈입니다.

시민들도 쓰레기 분리 배출을 생활화하고 무단 투기를 하지 않도록 좀 더 노력해야 할 부분이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분리수거를 잘 하고 무단 투기를 막더라도 이번처럼 전수 조사를 해가며 반입을 막으면 쓰레기 대란은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소각장 인근 주민들이 더 큰 이권을 요구하며 쓰레기 반입을 막을 경우 시는 또 무원칙한 양보를 해야할지도 모릅니다. 행정 절차를 투명하게 시민들에게 공개하고 문제가 생기면 시민들의 지혜를 모아 풀려는 시의 열린 자세가 아쉬운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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