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꽃단장하는 부지런쟁이

2014. 9. 11. 12: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 [매거진 esc] 김훈종의 라디오 스타

추석 연휴가 끝났다. 무사히. 명절이 끝나면 긴장 가득했던 스튜디오엔 안도감이 찾아온다. 귀성·귀경길 교통상황을 전해야 하기 때문에 평소보다 생방송을 더 많이 해야 하는 라디오 노동자는 명절이 두렵다. 지난 10년간 가족들과 명절을 즐긴 기억이 없다. 남들은 휴가 하루 더 붙여 해외여행도 가는 시기에 청취자들의 편지, 문자 사연들을 친구 삼아 명절을 보냈다. 대부분 추석에도 일하고 있다는 사연이다. 주유소에서, 편의점에서,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떡집에서.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추석 사연은 <이숙영의 파워에프엠>을 담당하던 2009년 추석 즈음에 도착한 손편지였다. 추석을 이틀 앞두고 청주 교도소 소인이 찍힌 편지가 도착했는데, 내용은 이랬다. "매일 새벽 기상과 함께 교도소 내에 이숙영씨 목소리가 들립니다. 방송에서 긍정적인 문구나 이야기를 들으며 하루하루 마음을 다잡고 있어요. 추석이나 설처럼 명절이 다가오면 가족들이 보고 싶어 외로움이 한층 더 깊어집니다. 그래도 이숙영씨가 밝은 목소리로 추석 사연을 들려줄 때면 마치 집에서 송편을 먹으며 가족들과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어요." 추석 생방송 땐 간단히 줄여서 이 편지 사연을 전해주었지만 명절만 되면 가끔 그 편지를 보낸 사람이 생각난다. 그는 지금은 아마도 출소했을 것이고 사회에 적응을 잘하며 새로운 인생을 걷고 있을지 궁금하다.

디제이 이숙영의 특징 중 하나는 어떤 사연이건 발랄하게 소개한다는 점이다. 실연 사연이건, 돌아가신 부모님을 그리는 사연이건, 심지어 재소자의 편지건 간에 활기찬 목소리를 잃지 않고 읽어내려간다. 그리고 톡톡 튀는 발랄한 '메소드 진행'을 위해 발랄하기 짝이 없는 의상으로 매일 아침, 아니 매일 새벽 방송국으로 달려온다. 월 화 수 목 금 토, 주 6일을 매일 새벽 풀메이크업에 미니스커트를 입고 15㎝ 킬힐을 또각거리며 스튜디오에 등장한다.

아침 7시에 방송을 시작하려면 스태프들과 진행자는 아무리 늦어도 새벽 6시에는 스튜디오로 모여야 한다. 당시 나는 일산에 살았기 때문에 다음날 새벽 눈이 온다는 예보라도 있으면 행여 늦을까봐 전날 밤은 숙직실에서 덜덜 떨며 전기장판에 의지해 잠을 청했다. 한달에 서너번은 전날의 술자리 덕에 머리는 부스스 떡지고 수염이 덥수룩한 채 출근했다. 하지만 내가 <이숙영의 파워에프엠>을 담당하던 2년 동안 단 한번도 이숙영씨의 맨얼굴을 보지 못했다. 한번은 프로그램 전체 회식이 있어서 새벽까지 고정 패널들과 술자리를 가졌는데, 당연히 나는 눈곱도 못 뗀 채 스튜디오에서 생방송을 진행했고, 이숙영씨는 역시나 완벽한 풀메이크업으로 방송을 했다. 다만 그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녀의 핏발 선 눈을 보았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라디오를 하더라도 티브이 출연자 못지않게 단장하는, 자기 관리의 화신 같은 그가 구수하고 정스러운 모습을 보일 때가 있는데, 추석 같은 명절에 특히 그렇다. 피디나 작가는 물론이고 엔지니어에 방송국 경비 아저씨한테까지 알뜰살뜰하게 선물을 챙긴다. 그리고 그녀는 '밥정'을 무척이나 중요하게 생각한다. 함께 식사할 때 보면 다이어트 한다며 정말 새 모이처럼 식사를 하지만 꼭 스태프들과 밥을 먹어야 직성이 풀린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은 점심을 같이 해야 하고, 또 한번은 커피에 빵이라도 먹어야 한다. 그 당시에는 바빠 죽겠는데 자꾸 밥 먹자는 디제이가 원망스러웠지만, 지나고 보니 밥 먹으며 나눴던 대화들이 오롯이 기억에 남는다. 이숙영 디제이는 지난해부터 파워에프엠 채널에서 러브에프엠 채널로 자리를 옮겼다. 20대부터 60대까지 듣는 러브에프엠은 파워에프엠에 비해 청취자 나이가 좀더 많고도 다양한 편이다. 흔히 파워에프엠을 티브이의 예능 프로그램에 비유한다면 러브에프엠은 시사, 교양에 가깝다고들 한다. '생활밀착형' 프로그램을 맡았고 방송시간도 아침 7시에서 아침 8시30분으로 늦어졌지만 이숙영은 여전히 킬힐을 신고 방송국의 새벽을 깨우며 등장한다. 런웨이를 걷듯.

김훈종 SBS 라디오 피디

<한겨레 인기기사>■ "삼성에 맞서 7년 싸움…유미와 약속 지켰다"[포토] "개보다 못한 것들…" 일베 향한 '개밥 퍼포먼스'수컷들의 학교…오 나의 '맥심' 여신님![화보] 세상에 이런 건물도…세계의 진기한 건물 49선[포토] 죽음을 부르는 '셀카', 인생의 마지막 사진이 될 줄이야…

공식 SNS [통하니][트위터][미투데이]| 구독신청 [한겨레신문][한겨레21]

Copyrights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