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드'로 본 일본 검찰이 한국 검찰과 다른 점

2014. 9. 6.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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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히어로2>, 피의자에 반말하는 검사는 없어

기소독점권 갖되 경찰에 수사지휘 하지 않아

무고한 피해자 만들지 않으려는 노력 인상적

요즘 '일드'(일본 드라마) 팬들 사이에서 가장 화제가 되는 드라마는 일본 톱 스타 기무라 타쿠야(41)가 주연을 맡은 <후지 테레비>의 '게츠구'(월요 9시 방송 드라마) <히어로> 시즌2가 아닐까 합니다. 지난해 9월 도쿄 특파원으로 부임한 저도 <전차남> <노다메 칸타빌레> <결혼 못하는 남자> <춤추는 대수사선> 등 주옥 같은 일드를 통해 일본어를 공부한 '일드 팬'입니다. 그 중에서 가장 재미있게 본 드라마를 꼽으라면 아무래도 정의감에 넘치는 구리우 고헤이 검사(기무라)와 아마미야 사무관(마쓰 다카코) 사이의 이뤄질 듯 이뤄지지 않는 은근한 러브스토리를 그린 <히어로>(2001년 1월~3월까지 11회로 방영)가 아닐까 싶네요. 이 드라마는 방영 당시 일본에서 35%를 뛰어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는 등 대히트를 칩니다.

<히어로> 시즌2는 7월14일 1화를 시작으로 13년 만에 팬들 앞으로 돌아왔습니다. 애초 시즌1에서 스물일곱의 젊은이로 소개됐던 구리우 검사도 이제 마흔이라는 원숙한 나이가 되었더군요. 그러나 하는 짓은 시즌1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여전히 통판(통신판매)을 통해 쓸데없는 물건을 구입하고 '아루요(있어요) 아저씨'가 마스터로 있는 카페 겸 식당에서 저녁을 먹습니다. 아쉬운 점이라면 2007년 극장판 마지막 장면에서 구리우 검사와 '충격적인!' 키스신을 선보였던 아마미야 사무관이 출연하지 않는다는 점이지요. 아마미야 사무관에 대해선 1회에서 '구리우 검사와 잠시 사귀다가 헤어진 뒤 사법시험에 합격해 현재 검사로 활동 중'이라는 정도의 근황을 전하는 정도로 처리되고 있습니다.

기자로서 이 드라마를 볼 때 주목하게 되는 점은 드라마에 그려진 일본 검찰의 모습입니다. 이 드라마가 일본 검찰의 현실을 얼마나 정확히 반영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국 검찰과 비교해 볼 때 부럽다고 느껴지는 장면이 적지 않습니다. 먼저, 구리우 등 일본 검사들은 피의자들에게 꼭 존댓말을 씁니다. 이는 우리보다 존댓말과 겸양어가 발달한 일본어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물론, 검사가 다소 격양된 상황에선 피의자에게 명령조의 반말을 쓰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는 예외적인 상황일 뿐 피의자와 증인을 대하는 공식 언어는 존댓말입니다. 또, 한국의 검찰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와 달리 검사가 피의자의 머리를 두꺼운 책 따위로 때리는 장면은 절대 발견할 수 없습니다(반대로 야쿠자가 검사를 위협하는 장면은 등장합니다).

두번째로 흥미로운 것은 드라마가 그리는 검찰과 경찰의 관계입니다. 한국이나 일본은 모두 검사가 피의자를 재판에 회부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기소권을 갖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이 권한을 가진 이는 검사밖에 없습니다. 이를 검찰의 기소 독점주의라고 하죠. 일본 검찰도 한국 검찰처럼 기소 독점주의에 기반해 있습니다. 이는 구리우의 상사 가와지리 겐자부로 부장검사가 "검사는 피의자를 재판에 회부할지를 결정하는 유일한 직업"이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점도 많습니다. 검찰과 경찰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수평적인 협조 관계로 그려집니다. 일본의 경우 1차적 수사는 경찰이 담당하고 검찰은 경찰이 송치한 사건에 대해 공소유지에 필요한 경우 사후적으로 이를 보충하거나 보정하는 2차적 수사만 담당합니다. 즉, 일본의 검찰은 한국 검찰처럼 경찰 수사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하는 '수사 지휘권'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물론 검찰이 기소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경우엔 지시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지시는 말 그래도 '지시'라기보다는 '업무 협조 요청'에 가까운 모습입니다. 예를 들어, 지난 1일 방송된 8회에서 경찰의 수사가 미비하다고 판단한 구리우 검사는 담당 경찰서를 찾아가 보충 수사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경찰은 "어차피 정해진 결론이니 그냥 기소를 하라"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한국에서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이지요. 그래서 구리우 검사는 어떻게 하느냐고요? 담당 경찰의 '조인트'를 까는 대신 "확신이 없는 피의자는 기소할 수 없다"며 불기소 처분을 내립니다.

송치된 사건에 대해 기소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검찰이기 때문에 상하관계는 분명 존재합니다. 검찰의 보충 수사 요구에 '일손 부족'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는 경찰에게 가와지리 부장이 전화로 호통을 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물론 가와지리 부장은 전화를 끊은 직후 '괜한 문제를 일으켰다'며 바로 후회를 합니다. 일본 검찰에 대한 자료를 좀 더 찾아보니 "일본 검찰은 경찰의 구체적인 개별 사건 수사의 진행단계에는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없다"고 되어 있네요.

물론 일본 검찰에도 독자적인 수사권이 있습니다. 그러나 검찰이 이를 행사하는 것은 고도의 정치적 중립성이 유지되는 이른바 '특수부' 사건뿐입니다. 이에 대해서 마고사키 우케루 전 일본 외무성 국제정보국장 등은 "검찰 특수부의 표적이 된 이들은 대부분 미국의 노선에 어긋나는 정책을 추진한 반미 성향의 정치인들 뿐"이라는 비판을 내놓기도 합니다. 일본 검찰도 상당히 정치적이라는 지적인 셈이죠.

세번째로 저를 놀라게 한 장면은 '열 사람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사람의 무고한 피해자를 만들지 않는다'는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을 강조하는 구리우 검사의 모습이었습니다. 1화에서 피의자의 기소 여부를 놓고 고민하는 구리우 검사에게 참고인 진술을 하던 이자까야 사장이 이렇게 묻습니다. 아, 참고인이 검찰로 출두를 했냐고요? 아닙니다. 구리우 검사가 생업에 피해를 받지 않도록 그의 가게로 방문을 했지요.

"검찰이 유죄-무죄를 정하는 게 아니잖아요. 어쨌든 기소해서 재판에서 결론을 내면 안되나요?"(사장)

"그건 안됩니다. '어쨌든 기소'라는 것은 있을 수 없어요. 시민들에게는 재판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부담이 됩니다. 인신이 구속되면 집에 갈 수 없고, 일을 할 수 없고, 그 때문에 회사에서 잘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사람이 분명히 범죄를 저질렀다고 확신할 수 없는 이상 기소하면 안됩니다. 아무리 중대한 사건이라도, 아무리 시효가 임박했더라도."(검사)

"그 사람이 진범일 수도 있잖아요."

"얼마 전 무죄로 40년 동안 형무소에서 복역한 사람이 있었죠. 그게 사실이라면 그것은 검찰의 책임입니다. 그 사람을 기소해 재판에 넘길지 말지 결정하는 것은 검찰뿐이잖아요. 진범을 놓치더라고 무죄인 사람을 절대 재판에 걸면 안 된다, 그게 우리가 하는 일의 가장 중요한 룰입니다."(검사)

"그런가요?"(사장)

"그렇습니다."(검사)

한국 검사들도 이 원칙을 모르진 않을 겁니다. 원칙이란 모두가 알지만 모두가 지키지는 못하는 '어떤 것'이 아닐까요. 일본에 살면서 가장 열패감이 느껴질 때는 두 나라의 어쩔 수 없는 경제 규모의 차를 확인할 때가 아니라 기본적인 인권 문제에 대해 좀 더 민감한 일본 사회의 반응을 볼 때입니다. 일본 사회가 이전에 견줘 많이 우경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은 배울 점도 많습니다. 한-일 양국 모두에서 원칙에 충실하면서 정의로운 검사가 더 많아졌으면 하는 마음에서 써봤습니다. 좋은 추석 보내시길.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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